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65
아카데미 담당 일진 165화
며칠간의 체력단련이 끝났다.
연무장에는 마법 전형과 무공 전형 학생들이 전부 모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개미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며칠간의 체력단련은 학생들의 군기를 바짝 들게 하기 충분했으니.
단상 아래에서 학생들을 보고 있던 나혁중에게 당자인이 다가왔다.
“학장님, 학생들은 전부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알았다, 올라가겠다.”
고개를 끄덕인 나혁중은 연무장 단상에 올랐다.
단상에 오르니 한눈에 모든 학생의 표정이 담겨 들어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멀뚱멀뚱 비둘기처럼 고개를 흔드는 학생.
주먹을 꽉 쥔 것이 긴장한 티가 역력한 학생.
별다른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태평해 보이는 학생까지.
나혁중은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유심히 응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
학생들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착잡함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미안하다.’
사실, 저들의 희생을 막으려면 기말고사 임무 따위는 하면 안 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만약에 막지 못한다고 한들, 자신이 필사적으로 막았다면 임무를 다른 방식으로 교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이는 학생들을 사지로 내몬 것이 나혁중 자신이라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나혁중은 모든 죄책감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빛에 복잡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텔로스를 잡는다.’
이번 기말고사 임무는 텔로스에게 있어서 다시 실혼인을 보충할 좋은 기회일 터.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가이오 왕국에서의 일로 텔로스는 자신을 향해 이를 악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자신을 처리할 기회가 생긴다?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정체를 드러내 놓고 텔로스를 들쑤신 이유였고 기말고사 임무를 막지 않은 이유였다.
이번 기말고사 임무는 텔로스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나혁중 자신에게 있어서도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나혁중이 생각을 마쳤을 때쯤 단상 위로 올라온 당자인이 그에게 물었다.
“학장님,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끄덕-
“다음으로는 무공학부 검제 나혁중 학장님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당자인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나혁중이 훈화를 시작했다.
“임무에 나가기 전,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말은 단 하나밖에 없다. 임무를 할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것다. 첫째도 그리고 둘째도 마지막도.”
학생들은 꿀꺽- 침을 삼키고 나혁중의 말을 경청했다.
“물론, 듣기 좋은 말, 귀에 발린 말을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 죽어버리면 누가 보상해 주지? 누가 책임져 주지?”
말을 하는 도중, 나혁중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위험할 것을 뻔히 알고도 내모는 주제에 안전을 유의하라는 말을 하는 자신에 대한 비웃음일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혁중은 안전을 조심하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살아야 하니.
조금이라도 더 살려야 하니.
그런 나혁중의 마음을 모르는 학생들은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말을 마친 나혁중은 단상에서 내려왔다.
“형님.”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단계홍이 팔짱을 낀 채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내, 저번에는 형님이 돌아온 찰나라 말하지 못한 게 있는데…….”
“뭐냐.”
“이미 벌어진 일.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느낄 시간에 눈앞에 상황에 집중하시오.”
“뭐?”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단계홍의 울대가 움찔거렸다.
“후우, 말하는 게 영 껄끄럽군.”
“해라.”
팔짱을 풀고 안대 안에 손을 넣어 벅벅 긁은 단계홍은 한숨을 내쉬며 재차 입을 열었다.
“하아, 형님 때문에 학생들이 사지에 몰렸다고 얘기하지는 않겠소. 교수 투표에서 결정된 일을 오롯이 형님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는 싫으니까.”
“…….”
“하지만, 형님이 이번 임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으시오.”
“……알고 있다.”
“그러니, 이번엔 지키시오.”
날카로운 눈매 속 나혁중의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알았다.”
“하, 같이 학생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 모순되고 웃기군…….”
뭐, 이런 게 어른의 사정이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돌아선 단계홍은 자신이 맡은 무공 전형 검단 쪽으로 걸어갔다.
* * *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예자원에게 다가간 남궁종수가 눈가에 쌍꺼풀을 짙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남궁종수는 느끼한 얼굴이 되었다.
“소저, 괜찮소? 내가 있는데 왜 그렇게 긴장했소. 그대가 떨고 있으니 꽃잎이 떨어지잖소.”
예자원이 피식- 웃자, 남궁종수는 쌍꺼풀을 풀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혁중 학장님도 같이 가시는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런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지켜줄게.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남궁종수의 말을 들은 주변 학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벌렸다.
우우우우-
황보철수와 모용석도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양팔을 감싼 채 남궁종수를 쳐다봤다.
“와, 존스, 쟤는 사람이 안 바뀌나? 아직도 저러네.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체력단련을 더 시켜서 입을 열 힘도 없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안 그러냐 일진.”
“동감한다.”
하지만 두꺼운 콩깍지가 껴 있는 예자원은 그들의 날 선 반응과는 달리, 배시시 홍조를 띠고 있었다.
“고마워, 종수.”
“고맙긴 뭘.”
그렇게 말한 남궁종수는 예자원의 어깨에 슬쩍 팔을 올렸다.
치사율을 넘을 것 같은 달콤함에 크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기침을 내뱉으며 다가왔다.
“허, 참. 남궁종수 저 새끼 저거, 뭐 하냐? 지랄이 났네, 진짜. 임무 전까지 저러는 거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
토마스도 크리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맞아, 아카데미에 공부하러 와서 무슨 연애질이야. 연애질이나 하는 놈들 다 죽어야…….”
“토마스, 쉿. 저기 봐.”
“어딜 보라는 거…… 백일진?”
말을 멈춘 토마스는 크리스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엘리아와 황보수정, 백일진이 서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는 남궁종수와 예자원 못지않았다.
차마 백일진한테까지 욕을 할 수 없었던 크리스는 허허 소리를 내며 태세를 전환했다.
“허허, 생각해 보니까 연애질할 수도 있지?”
“응, 할 수도 있지. 하하…….”
“선배들, 너무 없어 보여요.”
황보철수는 크리스와 토마스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나저나 크리스탈 쟨 거의 뭐 울려고 하네.”
백일진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자신이 알던 황보수정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뭐, 맨날 화내는 것보다는 보기 좋네.”
촉촉이 젖은 눈망울을 한 황보수정이 백일진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포션, 구급상자 등 구호 물품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이건 유산균이니까 하루에 한 번씩 꼭 챙겨 먹어야 해. 여기 구급약은 설사할 때, 이건 머리 아플 때, 그리고 이건 속이 쓰릴 때…….”
황보수정은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서 보여주며 설명했다.
사실,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황보수정이 내민 모든 약품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언제 먹어야 하는지,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가 적혀 있었다.
“고맙다.”
“혹시 몰라서 이렇게 넣긴 했는데, 절대 아프거나 다치면 안 돼.”
“……알았다.”
황보수정과 달리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던 엘리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툴툴댔다.
“흥,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임무에 가는데, 뭐가 이렇게 유난이야.”
황보수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엘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아, 넌 또 왜 시비야.”
“시비가 아니고, 그냥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이것저것 챙겨오니까 그렇지.”
“그럼 너도 준비하든가. 그냥 네가 준비 못 해서 짜증 부리는 거잖아.”
정곡을 찔린 엘리아의 귀가 붉어졌다.
“아, 아니. 준비를 못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 맞잖아.”
“아니라니까?!”
백일진은 만나기만 하면 투닥거리는 둘을 보고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예전엔 찰스랑 투닥거릴 때가 많았는데, 요즘엔 상대가 엘리아로 바뀌었군.’
“싸우지 마라.”
“싸운 게 아니라 엘리아가 먼저 시비를 걸잖아.”
“아니, 시비가 아니라 그냥 한 말이야.”
“흥.”
“흥.”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난감했던 백일진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카랑카랑한 단계홍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공 전형 검단은 전부 이쪽으로 모이도록.”
아공간을 열어 황보수정이 챙겨준 구호 물품을 집어넣던 백일진은 단계홍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간다. 기말고사 끝나고 보자.”
“자, 잠깐.”
황보수정은 몸을 돌린 백일진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 걱정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진. 진짜 절대 절대 다치면 안 돼.”
“알았다.”
불같은 눈을 하고 황보수정이 붙잡은 오른손을 째려보던 엘리아는 슬쩍 백일진의 왼손을 움켜쥐었다.
“……백일진, 다치면 죽어.”
“알았어.”
표현법은 달랐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천마검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여난은 유전이냐?
-수백과 일진은 얼굴이 똑같이 생겼으니, 유전 아니겠나.
잠시 그녀들을 바라보던 백일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도…….”
“응?”
“다치지 마라.”
그렇게 말한 백일진은 검단이 모인 곳으로 달려갔다.
* * *
단계홍의 앞에는 체력훈련 때 정해진 검단 학생들이 6개 조로 나뉘어 모여 있었다.
학생들의 면면을 훑어보던 단계홍은 자신의 앞에 모여 있는 검단 조장 학생들을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듬직한 녀석들이 많아서 다행이군.’
지도를 꺼내 든 단계홍이 지시봉으로 북해라고 적혀 있는 곳을 콕- 집었다.
“무림 연맹에 도착하면 곧바로 북해로 갈 것이다. 북해의 날씨는 척박하니 여분의 옷과 내복, 동절기 외투를 챙겨오라고 했는데, 가져오지 않은 사람 있나.”
학생들은 고개를 내저으며 소리쳤다.
“없습니다!”
“좋아, 다음으로는 주의 사항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조장들 전부 앞으로 나오도록.”
6명의 조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중에는 백일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조장들은 항시 이걸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단계홍은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 조장들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지?’
얼핏 봤을 때, 코끼리의 상아나 들소의 뿔같이 생긴 물건이었다. 그것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크기가 손바닥만 하다는 것.
“소리 증폭 마법이 담긴 뿔피리다.”
그렇게 말한 단계홍은 뿔피리를 불며 시연을 선보였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이렇게 두 번 불면 구조 요청, 세 번 불면 지원 요청, 네 번 불면 퇴각 신호다. 뭐라고?”
“두 번 불면 구조 요청, 세 번 불면 지원 요청, 네 번 불면 퇴각 신호입니다!”
“좋다.”
“다음으로는…….”
단계홍의 주의 사항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 여기까지다. 전부 준비됐나.”
“네!”
“목소리가 작다. 전부 준비됐나!”
“네!!”
“좋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