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4
아카데미 담당 일진 94화
슬쩍 고개를 들었을 때, 찰랑거리는 긴 머리가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백일진!”
남궁종수의 안색은 백일진을 보더니 환하게 밝아졌다. 백일진 녀석이 이렇게 반갑기는 또 처음이다.
그때, 남궁종수에게 업혀 있던 정기용이 가만히 서 있는 백일진을 보고 날 선 고함을 질렀다.
“씨X, 보지만 말고 뭐 좀 해봐!”
“……씨X?”
“아, 아니! 실수야, 실수. 아 몰라. 그것보다 일단 살려주고 얘기하라고!”
“넌 말버릇을 고치는 게 좋을 것 같군.”
백일진은 지태경보다 입이 거친 사람은 처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걸어갔다.
그러고는 남궁종수의 옆구리에 붙어 있던 거미를 하나하나 뜯어내기 시작했다.
“악! 아파!”
“참아.”
그러는 와중에도 거미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이미 죽인 거미도 많은데 새로 나타나는 녀석들은 더 많았다.
‘끝도 없군.’
앞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혼자라면 뚫고 지나갈 수 있겠지만 남궁종수와 정기용은 아니었다.
‘곤란한데…….’
지금 남은 방법은 다시 돌아가서 체력을 회복한 후 돌아오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남궁종수와 정기용의 상처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기용은 치아가 다 부서지고 전신에 피멍이 가득한 상황이고, 남궁종수는 옆구리가 터져 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포션도 한 개밖에 안 남았다.’
백일진은 남궁종수에게 포션을 건넸다.
“고맙다.”
“응.”
포션 절반을 마시고 절반은 몸에 뿌린 남궁종수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이놈의 거미 새끼들. 징 하게도 나오네.”
물량 공세로 퍼붓는 거미들에게는 어떤 무공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내공을 사용해 무공을 펼치는 것이 손해였다.
백일진은 까맣게 변색되어 버린 천마검을 검집에 넣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매직 로켓.”
그의 손에서 생성된 마법은 거미를 으깨듯 부수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전방이 짓눌린 거미의 사체로 난장판이 되었다.
“너무 느린데.”
당연히 한 방에 죽는 거미의 숫자는 검을 휘두를 때보다 많았지만, 마법진이 생성되고 그 안에서 마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때문인지 오히려 더 답답하게 느껴졌다.
한 마리, 열 마리, 백 마리, 어느 순간 숫자도 세지 못할 만큼 많은 수를 죽였음에도 남은 거미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그냥 직접 죽이는 게 낫겠군.”
그렇게 말한 그는 다시 한쪽에는 천마검을, 다른 한쪽에는 구름의 검을 쥐었다.
“저거 내 검 아니야? 언제 가져갔어!”
백일진은 정기용의 외침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거미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아악!”
남궁종수가 비명을 지르고는 제자리에 엎어졌다. 그러다 보니 남궁종수의 등에 업혀 있던 정기용도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
찢어진 남궁종수의 의복 사이로 벌어진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옆구리 외에도 온몸이 피범벅이었다.
‘상처를 숨기고 있었군.’
잠깐의 틈은 거미들이 쓰러진 그들의 몸 위에 올라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으아아악!”
“남궁종수!”
백일진의 외침과 함께 눈앞이 번쩍였다.
콰릉-
곧이어 타는 냄새가 공동 안을 가득 메웠다.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고개를 쳐든 정기용이 나지막이 외쳤다.
“구름의 검…….”
콰릉-
백일진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번개가 내리쳤다. 한 번 내리친 전류는 곧바로 소멸하지 않고 주변 거미들에게 연쇄적으로 옮겨붙었다.
정기용은 무심하게 번개를 내리치는 백일진을 보고는 경악에 빠져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내공이 얼마나 많길래, 저걸 저렇게 연속으로 사용하는 거야!’
아티팩트에 담긴 마법은 마법진의 생성 없이 곧바로 발현되기 때문에, 새겨진 마법진이 지워지거나 마정석이 닳지 않는 한, 이론상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론상이라고 말을 하는 이유는 아티팩트를 사용할 때 소모되는 마력–혹은 내공- 때문이었다.
예컨대 6성급 마법이 새겨진 아티팩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않은 동급의 마법보다 최소 다섯 배에서 많게는 열 배의 마력-혹은 내공-이 소모된다.
그렇기에 구름의 검에 담긴 벼락은 자신의 스승도 하루에 세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아마 내 내공으로는 한 번 사용하는 것이 한계겠지.’
그런 아티팩트를 백일진은 지금 열 번도 넘게 사용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그의 모습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백일진도 눈을 좁히며 구름의 검에서 뿜어내는 번개를 가늠했다.
‘흠…… 이런 효과가 있었으면 진작 사용할 걸 그랬군.’
남궁종수가 위험해 보여서 급한 마음에 사용했는데 생각 이상의 파괴력이었다. 구름의 검을 보고 쓰레기라고 말하던 천마검도 놀랄 정도였으니.
-흥, 그 정도의 능력은 네가 천마신공만 익힌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천마검의 투덜거림과 동시에 거미들을 전부 정리한 백일진이 입을 열었다.
“끝난 건가.”
“도대체 이게 몇 마리야.”
“못해도 몇천 마리는 될 것 같은데…….”
드넓은 공동의 절반 이상이 거미의 사체로 가득 찰 정도였으니,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었다.
“그래, 이제 나가야지. 어이 정 씨, 나가는 길 알고 있지?”
“어이 정 씨?”
“그래, 정 씨.”
남궁종수의 물음에 정기용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답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쯧, 그러면 네가 하는 건 도대체 뭐야.”
“…….”
공동파에서 복마단원들을 파견한 이유는 임무 수행 중 일어날 수 있는 돌발상황의 보조와 길 안내를 담당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기용은 둘 중에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군.”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고개를 끄덕인 남궁종수가 먼저 공동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 정 씨, 빨리 안 오고 뭐 해. 몸도 움직일 수 있는데 또 업어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야!”
남궁종수를 따라가려던 정기용은 자신의 허리춤을 톡- 건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검, 잘 썼다.”
“어? 응…….”
* * *
황보철수가 달려드는 프로그맨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으며 소리쳤다.
“아니, 갑자기 왜 이렇게 날뛰는 건데!”
“전부 조심해!”
원래 프로그맨들은 자신의 근방 10m 안으로 접근하지만 않는다면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프로그맨들은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입에 침을 질질 흘리며 그들을 노렸다.
“어떻게 하지?!”
“일단 먼저 오는 것들부터 막아!”
눈을 하얗게 뒤집은 프로그맨 하나가 황보수정을 덮쳐왔다. 하지만 그녀의 진주 귀걸이에서 발현된 실드 탓에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게 누굴 노려!”
황보수정의 곁으로 달려온 황보철수는 실드를 맞고 튕겨 나간 프로그맨의 머리통을 수박 터뜨리듯 부숴 버렸다.
푸확-
프로그맨의 머리가 터짐과 동시에 사방으로 퍼진 녹색 피가 옆에 있던 황보수정의 옷을 적셨다.
“미, 미안. 크리스탈. 일부러 그런 게…….”
“사과는 됐어, 어차피 옷은 버리면 돼. 철수, 석 너희는 앞에서 프로그맨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줘.”
놀랄 만한 상황이었음에도 황보수정은 당황하지 않고 5조의 조원들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나만 믿어!”
“알겠다.”
황보철수와 모용석이 프로그맨들을 상대하러 나가자, 황보수정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윤, 너는 인원 파악을 도와줘!”
“알겠어.”
“하이린, 엘리아 너희는 석이와 철수를 보조해 줘.”
황보수정은 달려나가는 5조원들에게 보조 마법을 사용하며 사체 처리반 인원들을 살폈다.
사체 처리반은 명목상 공동파의 속가제자들이긴 하지만, 그중 대다수는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일반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안전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었다.
“복마단원들은 사체 처리반 인원들을 지켜주세요!”
“알겠습니다! 가자!”
“기용 사형은?”
“안 보입니다. 아마 다른 곳에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러면 내가 가장 앞자리에 서겠다. 무조, 착마검진(剒魔劍陳), 개진(開陳).”
황보수정의 지시를 받은 고준은 자리를 비운 정기용을 대신해 복마단원들을 이끌고 검진을 펼쳐 사체 처리반을 감쌌다.
“감사합니다. 그럼 사체 처리반 인원들은 공동분들께 맡길게요.”
“네, 알겠습니다.”
고준은 뒤돌아서 곧바로 5조원들을 보조하는 황보수정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 어떻게 저리 침착할 수 있지?’
분명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황보수정이라는 인물은 하염없이 눈물이나 흘리는 감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서 본 그녀의 모습은 그러한 연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순간이지만 노련하게 전장을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보다 댓 살은 어린 나이에 저런 기상을 풍길 수 있다니.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그녀뿐만이 아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프로그맨들을 학살하는 모용석, 황보철수, 설하윤의 무공은 감히 자신은 다다르지도 못할 높은 곳에 있었다.
‘저 나이에 검기를 사용한다니.’
마법은 잘 알지 못하기에 엘리아, 하이린의 정령 마법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하기가 힘들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복마단의 그 누구도 저 엘프들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
‘도대체 아카데미라는 곳은 어떤 곳이길래.’
언젠가 저들이 완숙해진다면 자신은 쳐다볼 수도 없는 별이 되리라.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더니…….’
* * *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 밖으로 빠져나온 해청은 멈춰서 무릎에 양손을 기대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헥, 헥. 젠장, 그 바람은 뭐야. 입구 앞에서 바람이 불어왔기에 망정이지.’
스크롤을 찢자마자 웬 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에 하마터면 자신도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 할 뻔했다.
그런 해청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혼자 나오지?”
해청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의 옆에는 웬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부리부리하게 쌍꺼풀진 눈과 송충이처럼 진한 눈썹.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역정을 내며 감히 누구를 막는 것이냐며 경을 쳤을 상황이지만, 남자가 풍기는 살벌한 분위기를 느낀 해청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누구시……”
해청이 입을 움찔대며 조심스레 말을 하려 했으나, 남자의 짙은 눈을 보는 순간 마치 호랑이 앞에 선 토끼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움찔- 몸이 경고한다.
이 사람은 위험하니 어서 도망치라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라고.
하지만 그 경고와는 반대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군지는 알 것 없고, 왜 혼자 나오는지 물었다.”
“……그, 그래도.”
해청은 기가 질린 얼굴로 열리지 않는 입을 열어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비브라토라도 섞은 듯 이리저리 떨리긴 했지만.
“그대가 누구인지는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니오.”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남자에게 부릴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카리스 로브나인.”
“로, 로브나인?”
당연히 카리스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 없었다. 그러나 뒤에 따라오는 ‘로브나인’은 다르다.
해청의 눈시울이 급격히 뜨거워졌다. 안색이 새하얗게 질리고 숨이 멎을 듯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은 마법이라고 하면 당연히 마탑을 떠올리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탑에 필적하는 가문이 있었다.
“마법명가…….”
“알고 있나?”
알고 있다니 다행이었다. 쓸데없이 길게 말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니까.
해청의 앞에 쪼그려 앉은 카리스는 고개를 들고 입술을 매만지며 차가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거짓말을 하면 죽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