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5
아카데미 담당 일진 95화
마지막 남은 프로그맨의 머리통을 박살 낸 황보철수는 주먹에 묻은 초록색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일진이랑 존스는 괜찮을까?”
“괜찮을 거야. 여기서 누구 걱정을 해.”
“맞아.”
하긴, 저번 마녀의 숲처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몬스터라면 모를까, 이런 소형 몬스터들만 있는 곳에서 백일진을 걱정하는 건 어불성설.
그래서인지 황보수정, 엘리아도 마음 한구석 약간의 불안한 감정은 있을지언정 저번처럼 혼이 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저벅저벅-
“또 온다.”
“또? 징글징글한 자식들.”
모용석과 황보철수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잠깐!”
설하윤은 주먹에 내공을 두르고 달려나가려던 그들을 막아 세웠다.
“왜 그러지, 하윤.”
“프로그맨이 아니야.”
“뭐?”
그러고 보니 프로그맨 특유의 거슬리는 숨소리가 없다. 토악질 날 것 같은 냄새도 없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대비는 해. 복마단원분들도 대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프로그맨이 아니었으니까.
“일진!”
“존스!”
“사형!”
떨어져 있던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움을 표출했다.
“근데 사형, 이빨이 왜 그래요?”
“어? 그러네. 그러고 보니 내 이빨이 왜 부러졌지?”
정기용은 있었던 일을 되짚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휘날려 어디론가 떨어졌고……. 그다음 겨우 몸을 추스르고 어디론가 걸었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백일진이 보스 거미를 상대하고 있었다.
‘뭐지?’
남궁종수는 정기용의 치아를 모조리 박살 내놓고도 짐짓 모른 체를 하고 있는 백일진을 보고는 기가 질린 듯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독한 놈.”
* * *
바닥에 엎어진 해청은 둔기로 구타를 당했는지 눈 한쪽이 푸르딩딩하게 부어오른 채 감겨 있었다.
카리스는 발을 들어 해청의 머리를 지그시 밟았다.
극도의 모멸감이 해청의 전신을 휘감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몬스터를 광폭화시키는 스크롤을 사용했다?”
“마, 맞습니다!”
“그 스크롤은 너네 문주가 준 거고?”
“맞습니다!”
카리스는 흐트러진 머리를 질끈 묶었다. 과거 용병 시절, 다혈질 마검사라 불리었을 때 생긴 그만의 버릇이었다.
“만약.”
카리스가 동굴 입구에 흉흉한 시선을 던졌다.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면 넌 죽는다.”
“히끅.”
“그리고 너희 문주는 무조건 죽는다.”
“시, 실례지만, 문주까지 건드리면 고, 공동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해청의 말대로 하해파는 공동의 속가 문파. 아무리 카리스가 로브나인 가문의 생존자라 한들 공동을 상대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상관없다.”
“예?”
“그딴 게 걱정됐으면 여기까지 따라오지도 않았어.”
해청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카리스의 얼굴을 훔쳐봤다.
‘진짜다.’
이 미친놈은 공동을 적으로 돌리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문주를 죽이려 하고 있다.
“일단, 동굴로 들어가라.”
“네?”
해청이 반문하자마자 카리스가 해청의 안면을 걷어찼다. 얼굴에서 피를 흩뿌린 해청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커억-”
“들어가라.”
“네, 넵. 알겠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질척질척한 늪 바닥이 카리스의 가죽 구두를 이염시켰다.
“저, 저쪽입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그런데 왜 몬스터가 없지?”
카리스의 말에 해청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
정말로 몬스터의 사체만 난무할 뿐 살아 있는 몬스터는 하나도 없었다.
‘어, 어떻게……. 설마, 그 전력으로 미쳐 버린 몬스터를 전부 처리했다고?’
그것은 아닐 것이다. 광폭화된 몬스터는 본래 기량의 세 배 이상을 뿜어낸다고 들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렇게 프로그맨의 사체가 많이 쌓여 있다면 그중에 아카데미 학생이 죽어 있어도 찾아내기란 요원할 테니.
“앞으로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내해라.”
더욱 깊숙이 들어간 그들이 커브 길을 돌아섰을 때였다. 낯익은 이들이 단체로 카리스를 맞이했다.
“카리스 교수님?”
“교수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해청 장로님도 계시네.”
“근데 해청 장로님은 얼굴이 왜…….”
카리스는 학생들에게 아는 체도 하지 않고 해청의 머리끄덩이를 움켜쥐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해청의 머리털이 툭툭-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꿇어라.”
해청은 차마 무릎을 꿇지 못하고 애원하듯 카리스를 바라보았으나, 카리스는 그의 절절한 눈빛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꽉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으아악-”
“꿇어라.”
해청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더니 제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교수님! 그분은……!”
황보철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카리스를 말리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황보수정이 그런 황보철수의 팔을 붙들고 고개를 저었다.
“철수, 가만히 있어 봐.”
공동의 제자들은 차마 그 장면을 보지 못하겠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 중 가장 배분이 높은 정기용이 카리스에게 다가왔다.
“저, 카리스 님. 어떤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해청 장로님은 우리 공동의 속가제자입니다.”
정기용답지 않은 공손한 말투였다. 하지만 카리스는 그런 정기용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서.”
“예?”
정기용도 카리스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빵한 얼굴이 되었다.
“그, 그래서라니요?”
카리스는 잡고 있던 머리끄덩이를 끌어 올려, 해청을 세운 다음 그대로 따귀를 내리꽂았다.
쫘아아악-
동굴 깊은 곳까지 소리가 울려 퍼질 정도로 강하게 뺨을 맞은 해청의 턱이 그대로 돌아가며 눈을 까뒤집었다.
-찰지군.
기절한 해청을 다시 들어 올린 카리스가 재차 그의 뺨을 휘갈기려 할 때, 정기용이 팔을 벌리고 그를 막아섰다.
“카리스 님!”
“비켜라.”
“무슨 일인지는 말씀해 주셔야…….”
“직접 들어라.”
“네?”
카리스는 정기용을 밀쳐내고는 해청의 몸에 내공을 주입했다. 곧바로 해청은 전기를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번뜩 눈을 떴다.
“꿇어라.”
“네, 넵! 알겠습니다.”
해청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더는 자존심과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학생 여러분, 공동파 여러분, 사체 처리반 인원들까지 모두…….”
사체 처리반 인원들은 저 해청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해청이 맞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저 사람 내가 아는 해청 장로 맞지?”
“와, 내가 살면서 해청 장로가 무릎 꿇는 장면을 다 보네.”
“그러게, 저 옆에 있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인가 봐.”
카리스는 무릎을 꿇고 있는 해청의 정수리에 발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적셔진 구두에서 흘러나온 검은 물이 해청의 광대를 타고 흘렀다.
“네 입으로 네가 한 짓을 밝혀라.”
“아, 알겠습니다.”
해청은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이 했던 모든 짓을 밝혔다. 밝히지 않아도 될 개인적인 유흥 생활까지.
“사형, 저게 사실이면…….”
“음…….”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공동에서도 할 말이 없다. 아니, 할 말이 없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봉문을 해도 모자랄 만한 일.
“…….”
“…….”
정기용과 복마단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신에 황보수정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곳에 우리를 데려온 목적이 보스 몬스터를 추격하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동굴에 있는 몬스터와 싸우게 만들어 공멸시키려고 데려온 거라는 거죠?”
“마,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죽이는 것은 위험하고 효율도 낮은데 왜 그런 짓을 벌인 거죠? 차라리 예정대로 우리가 보스 몬스터를 처리하는 임무를 하는 게 하해파 입장에서는 더 이득 아닌가요?”
해청은 남궁종수의 검과 정기용의 가슴팍에 있는 찌그러진 경갑을 가리켰다.
“아, 아티팩트와 무구를 노리기 위해서…… 커억-”
카리스는 말을 하던 해청의 목을 쥐어 기절시키고는 정기용에게 던졌다.
“공동의 책임은 추후에 묻도록 하겠다. 5조, 가자.”
그렇게 말한 카리스는 5조원들을 이끌고 동굴 밖으로 나섰다.
* * *
공동파 제1 베이스캠프.
콰앙-
식탁 위를 울리는 진동에 찻잔이 부르르 떨렸다.
“뭐라 했느냐?”
공동의 장문인 주청은 자신의 제자인 도명에게 되물었다. 찻잔만큼이나, 아니 찻잔보다 더욱 떨리는 목소리였다.
도명은 조심스럽게 뭔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하해파에서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마수를 펼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괴물의 입이라는 몬스터 소굴로 학생들을 보냈답니다. 그러고는 장로를 시켜 몬스터를 광폭화하는 스크롤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처리한 사체들은 공동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니, 거기서 얻은 몬스터의 사체를 빼돌리려 했겠지.
“그런데, 학생들이 왜 그런 곳에 있었던 거지? 내 분명히 아카데미 학생들에게는 보스 몬스터를 쫓는 임무만을 내렸을 터인데?”
“그것도 하해파에서…….”
“그럼, 광폭화는 왜 시킨 게냐. 사체만을 빼돌리려 했다면 굳이 그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것이…… 아카데미 학생들이 지닌 무구들을 노리고…….”
주청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기가 찬 나머지 실소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어찌, 어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당대에 이르러서는 비즈니스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공동과 거의 연관이 없긴 했지만, 하해파는 엄연히 공동파의 속가.
“확실히 조사한 것이 맞느냐.”
“네, 스승님. 그리고, 피해자 중에 저희 3대 제자인 복마단원들과 하해파의 제자들도 섞여 있었다고…….”
“하아, 무량수불.”
“어떻게 할까요? 장로원들을 소집할까요.”
“그렇게 하거라. 그리고 내 하해파 문주의 말은 꼭 들어봐야겠으니, 내 앞으로 데려오너라.”
이 말인즉, 다른 이에게 하해파의 문주를 넘긴다면 일이 커지니, 공동의 선에서 해결하자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빠르게 말귀를 알아들은 도명이 고개를 숙이고 거처를 나왔다. 그러고는 수정 구슬을 통해 자신의 제자인 유용에게 통신 마법을 연결했다.
잠시 후, 수정 구슬 내부가 오묘하게 일렁이더니 녹색으로 빛깔이 바뀌었다.
“용아.”
-네, 스승님.
“그쪽은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저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헌데, 이것을 알아낸 것이 카리스 교수라고? 저번에 그?”
-맞습니다.
하필이면 아카데미의 교수, 중소방파의 인물이라면 위력 과시라도 해보겠지만, 아카데미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카데미는 무림연맹에도 속해 있었지만, 절반은 마탑에도 속해 있는 기관. 육대문파의 하나인 공동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상 숨길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이번 일은 우리 공동 내부에서 처리해야 한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절대, 카리스라는 교수에게 문주를 넘겨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문주의 처분은 어떻게…….
“야진은 감히 우리 공동의 제자들도 노렸다. 처분은 확실하게 할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수정 구슬의 녹색 빛이 꺼졌다.
‘큰일이군.’
알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미 장원 너머로 들려오는 거친 신음은 이미 그가 한발 늦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둘러 하해파의 장원으로 들어온 유용은 이미 카리스에게 맞아 초주검이 되어 있는 야진을 보고 눈을 찡그렸다.
‘쯧,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걸 어찌 모르셨소.’
유용이 들어온 것을 본 야진이 눈물을 흘리며 그를 쳐다봤다.
유용에게 기대는 것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을 동아줄이라 생각했는지, 유용을 보는 야진의 눈빛은 집요했다.
그런 야진의 눈을 못 본 체한 유용은 종종걸음으로 카리스의 앞으로 갔다.
“카리스 교수, 일단 멈추시오.”
카리스는 손에 마법진을 꺼뜨리지 않은 체 고개를 까딱였다. 맹렬히 회전하는 마법진의 소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싫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