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98
아카데미 담당 일진 98화
-길거리가 온통 붉은 것이 예전의 신교를 보는 듯하구나.
천마검의 말대로 요동 거리는 온통 붉은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길거리에 내놓은 입간판부터 시작해서 실내장식, 하물며 곳곳마다 설치된 가로등까지.
이때까지 산동, 장안시티, 감숙, 안휘 총 4곳의 저잣거리를 다녀봤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만취해서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더 적은 것 같군.’
치안이 안 좋다고 유명한 사실과 다르게 길바닥에는 담배꽁초 하나 찾기 힘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그게 무슨 뜻이지?’
-가게 앞에 있는 떡대 녀석들을 봐라.
백일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각 가게의 앞에는 곰같이 생긴 사람들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는 기둥처럼 서 있었다.
‘저들은 뭐지?’
-치안 유지용 떡대라고 할 수 있지.
‘치안 유지용 떡대?’
-그래.
요동은 퇴폐업과 유흥업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는 도시, 그렇기에 관광객은 요동의 돈줄이자 주 고객이었다.
하지만 관광객은 대다수가 무공, 마법 따위는 모르는 일반인들이었기에 위험해 처하는 일이 잦았고, 그러다 보니 위험을 느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길 뻔한 적이 있었다.
위험하다면 누가 요동을 찾아오겠는가.
그 후로 심각성을 인지한 중소방파 연합은 자신들의 사업장에 기도를 붙여 밤거리의 치안을 안전하게 유지했고 그 때문에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저잣거리만큼은 장안만큼이나 안전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저잣거리까지가 끝이었다.
백일진이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 문신을 가득 채운 무리가 그를 둘러쌌다.
‘안전하다며.’
-골목길까지는 터치하지 않는 거겠지.
왠지 북적북적한 거리와 다르게 골목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싶었다.
‘쯧, 돌아가야겠군.’
백일진은 살짝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어이, 친구 거기 잠깐 멈춰봐.”
“…….”
뻔한 레퍼토리. 제자리에 멈춰선 그는 문신 무리의 다음 말을 예측했다.
‘가진 걸 다 내놓고 가라고 하겠지?’
정답이었다.
“친구, 요동까지 놀러 왔는데, 몸 성하게 돌아가야지. 알아서 가진 거 다 내놓고 가라.”
-잘됐네. 저 새끼들한테 길 안내를 부탁하면 되겠어.
‘그럴까.’
유흥업소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요동 거리에서 직접 ‘요화루’를 찾아다니는 건 비효율적인 상황.
‘오히려 잘됐군.’
생각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문신 무리의 대장을 응시했다.
“금붕어야? 뭘 꿈뻑꿈뻑 꼬라보고 있어, 빨리 가진 거 놓고 꺼져.”
“싫다.”
문신 무리는 백일진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저들끼리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야, 안 준다는데?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 봐.”
“씨X, 근육 봐, 무림인 아니야?”
“허리에 검도 차고 있잖아. 저런 거 잘 살펴야 한다니까.”
“그러네. X 될 뻔했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무림인이 맞는 게 확실하다 싶었는지 아까 그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아까 한 말은 장난이었고 그냥 가쇼.”
“…….”
그렇게 했음에도 백일진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자, 남자는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 뭣, 할 말이라도?”
“요화루가 어디냐.”
요화루를 찾는다는 소리를 들은 문신 무리가 다시 술렁였다.
“……요화루?”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요화루라고 했지?”
그러고는 안타까운 눈으로 백일진을 쳐다봤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무림인 나리, 취향 참 독특하시네.”
“나리는 때리는 쪽이요? 맞는 쪽이요?”
알아듣지 못할 이상한 소리를 하던 문신 무리는 머리통을 몇 대 갈겨 맞고 나서야 눈물을 찔끔이며 길을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고맙다.”
“……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문신 무리들은 행여나 백일진이 다시 자신들을 붙잡을까 두려워 빠르게 멀어져 갔다.
-웃긴 놈들이군.
“근데 잘 알려준 거 맞나?”
-요화루라고 쓰여 있잖아.
“흠…….”
요화루는 굳이 안내받아 찾아올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간판 양쪽에는 채찍과 수갑, 목줄이 걸려 있었고 담벼락은 마치 감옥을 연상시키는 쇠창살이 있었다.
백일진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요화루의 정문 앞에 섰다.
“여기가 요화루입니까?”
정문 양쪽 의자에 앉아 있던 기도들은 앉은 자세 그대로 눈만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뭐냐 이 꼬맹이는?”
“여기 애들 노는 곳 아니다. 저기 가서 놀아라.”
* * *
암시장(暗市場 Black Market).
각종 규제 품목과 마약, 심지어 노예까지 돈만 있으면 누구나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뒷골목의 장물 거래소.
사파 연합이 있는 가이오 왕국에는 이러한 대규모 암시장이 수십 개는 존재한다고 하지만 로체트 왕국 내에 있는 대규모 암시장은 요동에 있는 것이 유일했다.
이는 요동의 지리적 위치가 아르반트 후작령과 맞닿아 있어 무림 연맹에서 관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요동을 차지한 중소방파 연합에서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중소방파 연합과 후작이라는 거대 귀족을 등에 업고 견제 없이 성장한 암시장은 요동 내에서 흐르는 돈의 1할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가 되어 있었다.
그런 암시장이 지금 죽립을 쓴 남자 하나로 인해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죽립의 남자는 뭔가를 질문하고 대답하지 않으면 가게를 뒤엎어놓았다.
마약상 페블은 옆 가게 장물아비 고 씨에게 소리쳤다.
“저, 저거 뭐야! 고 씨! 살왕님한테 연락드렸어?”
“네, 진작 드렸죠! 지금 당장 오신답니다.”
“씨X, 저 새끼 도대체 누구야! 누군데 남의 가게를 박살 내는 거야!”
물론 암시장 측에서도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암시장이라 함은 장물들을 취급하는 곳. 그렇기에 언제나 도둑, 강도, 살인자 등의 목표가 되곤 했다.
때문에, 암시장에서는 자신들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에게 막대한 급여를 지급하고 영입했는데, 그들의 실력은 최소 절정이나 5성급 마법사 이상으로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평소 페블은 듬직한 경호원들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이 정도의 전력이면 웬만한 귀족가나, 세가에서 쳐들어와도 싸워볼 만할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런 페블의 믿음과 달리 암시장의 경호원들은 죽립의 남자 단 하나를 제지 못 하고 있었다.
‘아니, 제지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염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같이 순식간에 으스러지고 있잖아.’
죽립 남자와 경호원들의 실력 차이는 무공을 모르는 자신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저 많은 인원을 쓰러뜨릴 때도 검집에 있는 검도 뽑지 않았을 정도니.
‘이, 이게 맞아?’
수년 동안 마약을 복용했음에도 수전증이 생기지 않던 페블의 손이 두려움으로 덜덜 떨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죽립 남자는 암시장 전체가 목적은 아닌 듯, 스크롤 상점 주인 파스칼만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스크롤을 파는 녀석이라더군.”
죽립 남자는 검집 끝부분으로 파스칼의 목젖을 강하게 짓눌렀다.
“광폭화 스크롤, 어디서 구했지?”
“…….”
파스칼도 이 바닥에서 십 년 이상 구른 빠꿈이.
단순히 목숨을 위협한다고 해서 가볍게 입을 놀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꾸욱-
파스칼의 목젖이 한 치 더 들어갔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었다.”
“커억-”
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곧 눈앞이 샛노래졌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파스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버티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는 구석은 단 하나, 암시장의 주인 살왕 제이드.
그가 오면 상황은 종결될 것이다. 살왕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고 해도 주검이 될 것이니.
‘조금만 버티면 된다. 여기서 입을 열면 나는 어차피 죽는다.’
어차피 도박할 거라면 조금 더 확실한 패를 잡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다행히 그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타앙-
죽립 남자의 검집에 바람으로 만들어진 탄환이 쏘아졌다. 파스칼의 목을 누르던 검집은 탄환을 맞고 밀려났다.
총을 쏜 장본인, 살왕 제이드는 꽤나 놀란 듯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호오, 총알을 맞은 검집을 그대로 잡고 있어?’
보통의 악력으로는 검을 놓치게 마련이다. 그런데 죽립의 남자는 살짝의 떨림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검집도 멀쩡한 것을 보니 평범한 물건은 아닌가 보군.’
목을 누르던 압박에서 겨우 빠져나와 크게 들숨을 들이쉬던 파스칼은 제이드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넙죽 조아렸다.
“헉, 제이드 님, 오셨습니까.”
“그래,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냐. 시장 분위기가 험하구나.”
“이 남자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파스칼의 말에 제이드는 죽립을 쓴 남자가 서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죽립 남자도 제이드에게 시선을 던졌다.
평소 다른 이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나혁중도 살왕 제이드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살왕, 제이드?’
물론,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네가 이곳의 주인인가?”
“그렇다면?”
제이드는 살짝 치켜든 죽립 아래로 드러난 강렬한 눈과 마주쳤다. 순간, 제이드도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죽립인의 정체는.
‘나……혁중?’
아카데미가 있는 장안 시티에 처박혀 있어야 할 인물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나혁중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제이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눌러 내린 다음, 나혁중에게 물었다.
“……암시장을 찾아온 목적이 뭐지?”
“광폭화 스크롤. 출처가 어디지? 그것만 말해주면 그냥 가주도록 하지.”
“광폭화 스크롤?”
광폭화 스크롤은 그가 속한 조직 텔로스로부터 지원받은 것. 다른 물건도 물론이지만, 광폭화 스크롤의 출처는 더욱더 알려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찾아와서 광폭화 스크롤 타령이지?’
텔로스에 가입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은 제이드는 나혁중과 텔로스의 관계를 일절 모르고 있었기에 검제가 광폭화 스크롤의 출처를 묻는 이유를 파악할 수 없었다.
몇 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중, 얼마 전 방씨세가에서 받았던 의뢰가 떠올랐다.
아카데미 학생을 죽여달라는.
‘설마 우리가 학생을 노렸다는 것을 알고 온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갔을 리는 없어.’
그러던 중, 자신의 제자 구서락이 살행에 돌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냈던 보고가 떠올랐다.
[하해파의 멍청한 돼지 새끼가 광폭화 스크롤을 이용해 아카데미 학생들을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이번 목표인 백일진도 속해 있습니다. 아무리 이제 갓 입학한 애송이라지만 소형 몬스터한테 광폭화를 쓰는 정도로는 그 녀석을 처리할 수 없을 터. 제가 하해파의 잡부로 변장해 따라 들어가서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구서락의 보고까지 생각하니 이제야 생각이 정리됐다.
‘아!’
나혁중은 백일진이라는 학생이 광폭화 스크롤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찾아온 것이다. -실은 자신의 제자인 구서락이 죽였겠지만-
‘상대가 아카데미 학생이다 보니 서락이가 백일진인가 하는 놈 시체에 살패를 물려놓지 않았나 보군.’
하긴 아카데미 학생을 죽여놓고 살패까지 물려놓는다면, 살루는 그날로 멸망할 것이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되는군.’
딱 하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학생 하나 죽었다고 검제급이나 되는 인물이 직접 움직였다는 것 정도?
‘검제 이 양반, 보기보다 감성적인 성격인 모양이야.’
상황 파악이 끝났으니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싸워야 하나? 이길 수 있나?’
아니, 죽었다 깨어나도 검제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면으로는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림인들 사이에서 팔왕이제(八王二帝)라고 묶여 부르고 있긴 했지만, 팔왕과 이제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럼 요동을 버리고 도망쳐야 하나?’
머리는 그렇게 하라고 속삭였지만, 가슴속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
로체트 내에서 청부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요동이 유일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일궈온 곳이다.
한마디로 이곳을 버리면 새로운 지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 그리고 어찌 자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요동에서만큼 크게 성장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생각을 마친 제이드가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신호 마법을 보냈다. 몇 분 안에 신호를 받은 모든 살수가 이곳으로 집합할 것이다.
‘그래, 해보자. 단 한 번의 틈만 있으면 죽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