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27)
제 325화
유령의 집
브이로그?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한서진의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서진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 지금 영상도 안 찍고 있는데 어떻게?”
나는 살짝 당황한 목소리로 한서진에게 되물었다.
브이로그를 올리건 말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일단 동영상을 찍어야 브이로그를 편집해서 올릴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내 주변에는 촬영용 카메라가 없다.
카메라가 없는데 어떻게 브이로그를 올린다는 거지?
내 질문을 들은 한서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길. 촬영용 드론을 통해 도쿄 데스 랜드 전역을 실시간 촬영 중입니다.”
촬영용 드론?
실시간 촬영 중?
상상을 초월한 그녀의 준비성에 할 말이 없어진다.
[파트너, 한서진 씨······. 역시 조금 무서운 것 같은데.]흑태자마저 기겁할 정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봤다고 생각한 내가 잘못 생각한 거였다.
한서진은 역시 한서진이었다.
“아, 그래······. 유령의 집이나 가자.”
어차피 내가 말해봤자 촬영 중단도 안 할 거, 굳이 입 아프게 더 말할 필요는 없다.
원래 계획대로 그냥 유령의 집이나 가는 게 맞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네.
내 말에 한서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김덕성 님. 그럼 유령의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유령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고성처럼 생긴 전형적인 놀이공원 유령의 집.
해골과 핏자국으로 장식된 입구부터 뱀파이어의 성처럼 음산한 분위기가 피어오른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법 오싹하게 느낄 만한 모습.
일본 애니메이션 유원지 데이트 필수 코스인 유령의 집이 등장했으니, 이제 대관람차만 타면 이 빌어먹을 데이트도 끝난다.
데이트 신청권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끼이이이익.
지나치게 낡은 소리와 함께 유령의 집 성문이 열린다.
성문 너머에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맣게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한서진이 흔들림 없는 비장한 표정으로 유령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한서진과 유령의 집이라.
그녀가 유령을 보고 무서워하는 광경은 상상이 잘 안 간다.
이것만큼 안 어울리는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령의 집을 데이트 코스에 집어넣은 건 역시 히로인들 짓이겠지?
참 별짓을 다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서진의 뒤를 따라 유령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탁.
성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어두컴컴한, 미로를 연상시키는 복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최소한의 어두운 빨간 조명과 복도에 널린 해골 모형, 거미줄이 보인다.
저벅, 저벅.
한서진과 함께 음산한 복도를 걷는다.
[이히히히히히히] [꺄아아아아아아악!]복도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리는 귀곡성과 비명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딱 입시 유령의 집 수준의 공포다.
앞장서서 걷던 한서진의 얼굴을 슬쩍 본다.
예상대로 전혀 안 무서워하는 표정.
이럴 줄 알았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놀이공원을 돌아보면서 스태프 한 명 본 적 없는데, 유령의 집은 어떻게 운영하려고 그러지?
여기만 스태프를 투입하나?
내 머릿속에 이런저런 잡념이 스쳐 지나가던 그때.
툭.
앞서 가던 한서진의 발 끝에서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덜커덕.
그와 함께 천장이 열리면서 섬뜩한 배경음악과 함께 창백한 얼굴 분장에 피를 묻힌, 익숙한 얼굴과 익숙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와아아앙! 에리링, 이 아닌 귀신 등장!”
그건 에리였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귀신 분장의 에리.
스태프가 왠지 없다 싶었는데, 얘네가 귀신 역할 대신 하는 거였어?
“야, 너. 네가 왜 여기 있냐?”
“흥. 주인님, 아니 손님. 지금은 에리링이 아니야 귀신이야! 무섭지? 그렇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에리가 혀를 내밀면서 내게 말한다.
무섭다고?
이게?
무섭기는커녕 어이가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을 겪은 그때.
“꺄, 꺄악.”
흡사 수업 시간에 담임에게 지목당해서 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어색한 비명과 함께 한서진이 내게 돌진한다.
그녀가 내 허리를 꼬옥 감싸면서 끌어안는다.
“······무, 무섭습니다.”
발연기 같은 목소리로 내게 무서움을 호소하는 한서진.
이제 와서 저런 어설픈 분장과 등장에 놀란 척이라니.
이게 무슨 코미디지?
그 모습을 본 에리가 웃으면서 윙크한다.
“그럼 에리링 퇴장! 얍!”
뿅.
이상한 효과음과 함께 기프트를 사용해 투명해진 모습으로 사라지는 에리.
그러자 한서진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내 품에서 떨어진다.
‘이게 무슨 황당한······.’
어이가 없다.
설마 브이로그 콘텐츠 때문에 저러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일리가 있긴 하다.
확실히 유령의 집에 들어가면 다들 놀라는 걸 기대할 테니까.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딱딱한 한서진이 놀란 척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래도 한서진의 발연기는 심했다.
예능도 다 각본이 있는 시대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기가 이 정도로 어색하면 좀 그렇다.
“흠흠. 그럼 다시 안내하겠습니다.”
한서진이 빨개진 귓불과 함께 다시 앞장선다.
그녀와 함께 유령의 집 내부를 다시 걷는다.
좁은 복도를 지나 도착한 곳은, 뜬금없이 테마에 안 맞는 고대 이집트풍 상형문자와 벽화가 가득한 무덤 안.
화르륵.
어두운 무덤 안을 초록빛 불꽃이 밝히고 있다.
거대한 석조 제단 위에는 관이 놓여 있었다.
아, 이 뻔하기 짝이 없는 컨셉.
딱 봐도 뭐가 나올지 예상이 간다.
내가 한숨을 쉬면서 관 쪽으로 향한 그때.
딸깍.
내 발걸음이 바닥 밑에 있는 무언가를 밟았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
그와 함께 무덤 방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다른 건 몰라도 특수효과 하나는 제법 그럴싸하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굉음과 함께 석조 제단 관 위의 문이 열린다.
거기에서 나온 건.
커다란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아 가린 남색 포니테일의 미소녀.
린이었다.
“······.”
흔히 고대 이집트 미라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전신 붕대 차림을 하고 있는 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저거 설마 붕대 아래가 알몸은 아니겠지?
미처 붕대가 감지 못한 구간에서 하얀 살결이 비치는 것 같다.
출렁.
누가 일본 라노벨 세상 아니랄까 봐, 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제단에서 내려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붕대로 감싸인, 터질 듯한 거유가 흔들린다.
일명 바스트 모핑.
이쯤 되면 무섭다기보다는 민망하고 쪽팔린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저런 짓을?
“······으어어어어어어······.”
좀비처럼 이상한 괴성을 입에서 흘리는 린.
에리와는 다르게 제법 미라 컨셉에 충실하다.
그래서 이게 끝인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쿠구구구구구구구.
굉음과 함께 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점점 좁아지기 시작하는 벽과 함께 한쪽에 좁은 출구가 나타난다.
“김덕성 님! 저 저주받은 미라를 피해 어서 여기를 탈출해야 합니다!”
한서진이 미리 외워둔 것 같은 대사를 어색한 연기와 함께 내게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기는 좀 연습하고 오면 안 되나?
덥석.
그녀가 내 손목을 잡는다.
“그래. 빨리 나가자.”
여기 말고 아예 유령의 집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
한서진의 손에 이끌려 뒤쫓는 미라 분장 린과 좁아지는 벽을 피해 출구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출구는 갱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동굴.
이 유령의 집은 대체 규모가 얼마나 되는 거야?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아직 구간이 남았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쿠궁!
어디선가 불길한 굉음이 들려온다.
소음이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커다란 돌이 있었다.
애니메이션, 만화에서 자주 나오는 통로를 막을 정도로 커다란 바위가 지금 우리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일명 바위 함정이었다.
“이런 염병.”
오랜만에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다.
유령의 집이라더니 빌어먹을 바위 함정은 대체 누가 준비한 거냐고.
지금 당장이라도 힘을 사용해서 바위를 부수고 싶지만, 영상이 찍히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 빌어먹을 바위 함정도 유령의 집이라는 놀이기구의 일부.
저걸 부수면 100% 기물 손괴죄로 고소당할 거다.
그러니 부술 수는 없다.
쿠구구구구구구.
완만히 경사진 통로를 구르는 바위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던 그때.
“김덕성 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업히십시오!”
한서진이 내게 말한다.
업히라니?
그래도 괜찮나?
하긴 이것도 그 빌어먹을 브이로그인지 뭔지의 일부겠지?
순식간에 판단을 끝낸 나는 한서진의 등에 업혔다.
나를 등에 업은 한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번쩍!
회색 섬광과 함께 한서진이 스피드스터 능력과 함께 통로를 질주해서 끝에 다다른다.
“후우.”
도착한 그녀가 나를 등에서 내려놓는다.
“아무 피해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한서진.
제법 연기가 익숙해진 모습이다.
이게 대체 뭐하는 촌극인지.
이 웃기지도 않는 유령의 집을 이제는 그만 나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앞에 있는 육중한 문을 보았다.
유령의 집 입구와 버금가는 거대한 석조 문에는 던전 보스 방처럼 커다란 해골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문에 손을 댔다.
크그그그그그그그그.
무거운 소리와 함께 석조 문이 자동문처럼 열린다.
한서진과 함께 석조 문 너머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탁.
그녀와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문이 닫힌다.
콰-광!
곧이어 닫힌 석조 문에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굴러오던 그 바위인 모양.
굉음을 들으면서 나는 주변을 살핀다.
“여기가 어디일까요?”
한서진이 어색한 말투로 대사를 던진다.
이번 컨셉은 황폐화된 서양 고택 로비.
낡은 붉은 레드카펫 위에 깨진 샹들리에가 놓여 있고, 벽에는 기괴한 초상화가 걸려 있다.
피눈물을 흘리는 대리석 석상도 보인다.
창문처럼 꾸며진 벽에 달린 길쭉길쭉한 모니터에서는 음산한 밤의 서양 정원 모습이 송출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쯔꾸르 공포 게임에서 저택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
영화로 치자면 뱀파이어가 관짝 안에 잠들어 있을 법한 고성의 로비 같은 느낌이다.
귀신에 미라에 다음은 뱀파이어 컨셉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두운 저택 로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한 그때.
“김덕성 님. 피하십시오.”
한서진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한다.
피하라니.
이것도 브이로그의 일부인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
[아냐, 파트너. 이 마력 패턴은······!]흑태자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서진이라면 몰라도 흑태자까지 저렇게 말하다니.
나는 그제야 경각심을 느끼고는, 눈을 감고 기감을 활성화하고 기프트를 사용해 암흑과 주변의 어둠을 동기화했다.
암흑과 연결된 기감이 활성화돼서 감각이 극대화된 순간.
내 기감에 무언가 낯선 패턴이 감지됐다.
그것은 히로인들도, 한서진도, 흑태자도 아닌 제3자의 마력 패턴.
순간 유령의 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오싹한 기분을 느낀 내가 눈을 뜨고 마주한 사람은.
“······드디어 만났어.”
낡은 고택 컨셉으로 꾸며진 로비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아이보리색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미소녀.
그녀가 밝은 고스 로리 드레스를 입고 누더기 곰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김덕성······.”
언더테이커.
빌헬미나 하이젠버그.
그녀의 우울한 황금빛 시선이 나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