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07
다시 고민에 빠졌던 중국은 이웃 나라이자 영화 평가의 선발대라 불리는 작은 국가, 한국에 시선을 옮겼다.
‘어쩐지. 독불장군에 가까운 중국 정부가 이유도 없이 한국과 나눠 먹을 리 없지······.’
중국은 자신들의 자본과 한국 영화계를 섞어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한창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던 한국 정부도 중국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쿵짝을 맞춰가고 있을 때, 슬그머니 일본도 한 발을 걸쳤다.
계속된 실정(失政)으로 정치에 관심 없던 국민들이 끓어오르려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싫어하는 중국이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미국에게 처 맞을 때, 고기방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음으로 그들은 일본의 참여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국뽀옹! 아시아는 위대해! 한중일은 위대해애!’를 외치며 발호한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바로, ‘어느 나라에서 촬영하고’, ‘어떤 배우들을 쓸 것이며’, ‘누가 메가폰을 잡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슬픈 이야기지만 누구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엎어질 뻔했죠.」
「아, 네······.」
평소라면 그렇게 찢어져 각자의 길을 갔겠으나, 이번엔 서로의 일부가 아쉬워 갈라서지 못한 채 세 정부는 지지부진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차에 가 방영된 것입니다.」
고작 방영 4화만에 구석에 처박혀있던 저장 티비를 후안성급으로 올린 .
그리고 드라마 내에서 인간 같지 않은 매력을 뽐낸 이태화.
손녀와 어울리다 드라마를 접하게 된 중국의 투자자가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르신께선 정부가 원하는 돈만 건네고 방관할 생각이셨습니다. 검열이 가득 찬 영상 매체로 인민을 세뇌한다는 게 허황된 계획이라 생각하셨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사람을 세뇌하듯 홀리는 배우가 나타났고, 그 배우는 중국 보통화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언어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그대로 중국인민에게 들려 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어르신께선 리두이화 선생과 같은 배우가 셋, 아니 넷만 있어도 그 터무니없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 거라 믿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런 배우들을 찾아내셨죠.」
그녀가 작정하고 찾기 시작하자 태화처럼 감정을 건드릴 수 있으며 외국어에도 능통한 배우들이 각국에서 나왔다.
중국의 쑨다오밍, 한국의 박현호, 일본의 혼죠 유리아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바로 아시아의 수호자였습니다!」
태화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음미하듯 눈을 감고 있는 자우펑을 멍하니 바라봤다.
“······사기가 아니었네.”
너무나 스케일 큰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본심을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지금 뭐라고······?」
「참 대단한 분이시라 저도 모르게 감탄이.」
「하하! 그렇군요. 역시 리두이화 선생이라면 알아 볼 줄 알았습니다! 중국에 방문하시면 어르신께서도 한 번 뵙기를 원하시니 그때 해후를 풀면 될 겁니다. 하하하!」
「하하하······.」
태화는 태연하게 웃었다. 여기서 사기인 줄 알고 몰아 붙였다고 말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중국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걸로 포장하고 영화에 관심이 지대한 걸로 해두는 게 나았다.
‘근데 박현호라고? 우와, 차이니즈 극장 앞에 최초로 손도장을 남긴 배우가······.’
다른 둘에 대해선 알지 못했으나 박현호라는 이름 세 글자만큼은 한국인으로서 모를 수가 없었다.
유부남임에도 상대역으로 만나는 모든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는 배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연기력을 앞세워 관객들을 ATM으로 만드는 배우.
이제는 당당하게 할리우드 배우라 말할 수 있는 한국 최고의 배우가 바로 박현호였다.
「박현호씨는 승낙 한 건가요?」
「빡연호우쉬······? 아, 푸샨하오 선생 말이군요. 물론이죠. 저희 어르신께서 원하시는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태화는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으나 그녀는 박현호의 출연료로 1억 5천 위안(한화 250억)을 불렀다.
할리우드에서도 두 손에 꼽히는 금액이었으며 어르신의 의지에 따라 새로 완성된 대본까지 겹쳐지자, 박현호는 중국 대부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쑨다오밍 선생도, 유리아 여사도 모두 합류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제 남은 건 리두이화 선생뿐이죠.」
사실 각국의 쟁쟁한 그들과 비교하면 태화의 이름값은 턱없이 낮았다.
그러나 어르신은 자신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희망을 준 태화를 예우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기에, 모든 캐스팅이 완료된 후 크리스마스트리의 꼭대기 장식(topper)를 맡겼다.
「······이 자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아니었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보안 문제상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사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야기만 들으러 왔다가 졸지에 캐스팅 계약까지 하게 된 태화는 그가 꺼내 둔 서류를 확인했다.
중문으로 제작된 원본과 한국어로 번역된 공증 사본은 동일한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었고, 출연료 란은 공백으로 비어있었다.
「왜 출연료가······?」
「그 부분은 리두이화 선생이 의사를 밝히면 BGA와 합의할 것입니다. 그들이 선생의 몸값으로 얼마를 부를 지 궁금하군요.」
자신에 차 있는 그를 보고 태화는 혀를 내둘렀다.
어쩌면 흡혈귀라 불리는 서연이 처음으로 실패할 지도 몰랐다.
손가락 끝으로 두어 번 서류를 두드리던 태화는 곧 종이 위에 유려헌 사인을 남겼다.
엄청난 배우진, 거대 자본으로 이뤄진 괴물이 호의를 보내고 있는데 그걸 거절하면 배우라는 직업이 울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내년 여름을 강타할 모든 수호자가 결정됐다.
끝
ⓒ 마늘소금
대단한 규모의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태화의 생활은 변함없었다.
배우의 참여가 필요한 일정은 내년에야 시작됐고 아직 4월에 불과했으니까.
그가 해야 할 일은 의 행사 일정과 의 촬영에 성실히 임하는 것, 그 두 가지 뿐이었다.
‘아, 아니지. 하나 더 있었지.’
가 방영마다 상한가를 갱신하자 태화에겐 일부 연예인들이 하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는 광고가 하나 붙었다.
고급 화장품 광고.
그것도 아는 사람은 꼭 찾아 쓴다는 브랜드, 광고였다.
도대체 여성들이 주 소비층이고 고객층인 상품에 왜 남자 배우를 쓰려는 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광고주 측에서 ‘피부가 좋기로 소문났다’, ‘화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핫한 배우’, ‘키스를 부르는 입술’같은 알 것 같기도 알기 싫은 것 같기도 한 이유를 들먹이며 참여를 권유했다.
광고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1년간 자사 제품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말이 태화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현재 쓰고 있는 색조와 립 제품 대부분이 의 화장품이었으니까.
뭐든 고작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은 주제에 매번 무시 못 할 금전적의 존재감을 보였던 품목인지라 태화는 1년 동안 신제품과 신상 컬러까지 무료로 ‘미리’ 보내주겠다는 제안에 냉큼 사인하고 입술에 립스틱 바른 사진을 찍었다.
‘왜 좋아하는 건지.’
단순히 입술을 채운 붉은색을 엄지로 쓸며 카메라 너머의 고객을 주시하는 사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광고가 실리자 평소 돈 좀 있는 분들만 산다는 명품 카탈로그가 매진됐다.
게다가 일부 뷰티 숍에서 고객들의 허영심을 채워 주기 위해 구비해둔 카탈로그들은 태화의 광고 부분만 찢겨졌다.
당연히 해당 제품의 매출은 전에 없이 급등.
그 말을 전달 받은 태화는 ‘여자는 여러 조건을 고민해가며 제품을 사는 인종이 아니었나?’라는 의문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 소소한 혼란이 있었으나 태화는 요즘 생활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촬영하면서 친해진 최강원 덕분이었다.
“사투리에는 억양 악센트도 중요하지만 문법도 중요해. 어떤 건 그냥 서툰 한국어 같아도 그 안에 다 규칙이 있거든.”
방언Ⅰ을 얻었지만 그것은 재능일 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아니었다.
당연히 태화는 BGA에게 여러 지방의 토박이와 연변 조선족들을 중개해 달라 부탁했고, 기다리며 사투리로 유명한 배우이자 근래 형 동생 관계가 된 강원에게 그에 대해 질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방언의 스페셜리스트. 토박이들도 인정하고 조선족들마저 사실 연변 출신이 아니냐고 의심할 만한 실력을 지닌 인물답게, 강원은 막힘없이 태화의 경험치를 채워줬다.
좋은 선생이 나타나자 높은 암기력과 언어 능력, 그리고 방언에 대한 재능까지 지닌 태화는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순식간에 관련 지식과 중요 포인트를 받아들였다.
“······너 진짜 괴물이구나.”
나날이 발전해 이제는 곧잘 따라하는 태화를 보며 강원은 떨떠름함과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15년이라는 한 세대에 가까운 나이 차이가 아니었다면, 분위기가 같아 연기하는 대역폭이 비슷했다면 그는 태화의 재능을 보며 질투하고 시기했으리라.
‘박현호 보면서도 천재는 다르구나 싶었는데 이건 진짜······.’
강원은 20년 가까이 연기하면서 딱 한 번 박현호와 작업을 했고 당시 상당한 박탈감을 느꼈다.
자신보다 3살 많고 연기 경력은 5년 많은 인물이었으나 그런 년차와 상관없이 박현호는 처음부터 별이었고 누구보다 압도적이었으니까.
같은 방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존재란 기분에 그는 재빨리 이미지를 바꿨으며 덕분에 고유의 매력을 가지고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심정을 이 나이 먹어서 느낄 줄은 몰랐는데······. 애들이 죽어나겠군.’
본인의 일이 아니기에 강원은 조금 편한 심정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현호라는 규격 외 인물이 등장했을 당시, 관계자들은 그의 환한 빛에 고만고만한 배우들이 사라지고 독주로 인한 캐스팅의 암흑기가 올 거라 예상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배우들은 멍청이가 아니었으며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알았으니까.
강원이 이미지를 바꾸고 대사 소화 능력을 갈고닦아 독보적인 위치를 이룩했듯, 다른 배우들도 각자 자신의 강점을 최대로 끌어올려 팔방미인인 그에게 하나의 특별함으로 맞섰다.
결국 현재 와서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대부분은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들로 채워졌다.
‘쉽지도 않고 괴로운 길이었지만 결과만 보면 박현호란 존재가 향상심에 도움이 됐지.’
물론 그렇지 못한 배우들 상당수가 빛을 잃고 조연을 맴돌다 은퇴의 길을 밟았으나 그가 촉진제 역할을 한 건 사실이었다.
강원은 태화에게서 비슷한 것을 봤다.
동시대 남자 배우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상당한 자극을 줄 무언가를 말이다.
‘나야 쓸 만한 후배들이 늘면 좋고.’
연기돌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20대 남녀 배우의 많은 수가 가수나 아이돌에서 전향한 이들로 이뤄졌다.
개중엔 정말 타 분야의 인기 말곤 볼 거 없는 인간도 있었고 이딴 거랑 연기하라는 건지 쎄쎄쎄를 하라는 건지 모를 머저리도 있었다.
‘인기 하나 믿고 이 바닥 찾아오는 건방진 것들을 혼내기엔 딱 좋은 거름망이지.’
고작 쌓아둔 인기만 믿고 그와 같은 무대에 서게 되면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가 돼버린다.
한껏 떠받들려져 자신들이 주역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그런 대접을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래서 윗대 선배들이 은근 박현호한테 호감을 느꼈구나······.’
적으로 만나면 좌절감을 주고 고통을 주는데 한 세대가 차이나면 자정작용을 돕는 훌륭한 필터가 되어준다.
높은 재능과 반비례로 살갑지 못한 후배인 박현호가 원로 배우들에게 예쁨을 받는 이유를 강원은 불연듯 알게 됐다.
“그래, 너도 잘 받아먹고 쑥쑥 커라.”
“네? 네······.”
기르는 새한테 모이 주는 농장주인 같은 시선으로 다정하게 말하는 강원을 보며 태화는 묘한 찝찝함을 느꼈지만, 지식에는 죄가 없기에 열심히 그가 알려주는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따 축복 실행하는 게 기대되네.’
방화가 단 한 번의 목숨의 위협을 통해 엄청난 숙련도를 올렸듯 강원의 도움은 거의 무협지의 기연수준으로 태화의 이해도와 언어 범위의 확장을 도왔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숙련도가 변했고, 그리 많은 연습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벌써 70퍼센트의 육박하는 숙련도를 채웠다.
‘그럼 오늘은 어제 구한 나 볼까.’
태화는 방언이 상당수 섞였다는 미국의 B급 영화를 떠올렸다.
강원에게 배우는 건 한국어와 관련된 방언뿐이었으나 이렇게 올린 재능은 외국어에도 적용되어 한두 번 듣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지역 악센트가 나왔다.
따라서 그는 후일을 대비해 방언이 심한 해외영화들을 닥치는 대로 보고 있었으며 그러한 행동은 언어의 향상을 가속시켰다.
그렇게 일대일 강의를 주고받는 둘을 유진은 조용히 관찰했다.
오디션 당시 그렇게나 화를 내던 최강원이 후배랑 잘 노는 것도 신기했고, 스위치를 켜고 끄듯 카메라 앞에서만 무서워지는 태화도 신기했다.
‘괜찮아. 내가 이긴다, 내가 이긴······. 으아아, 난 왜 이렇게 쫄보지?’
후덕한 인상과 달리 화를 내면 심장이 내려앉는 선배와 얼굴은 잘 생겨서 그냥 보면 눈이 즐거운데 카메라 앞에선 그 좋은 외모가 하나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동료 덕에 유진은 요즘 청심환을 달고 살았다.
똑같이 심약한 매니저가 그렇게 먹으면 간에 안 좋으니 물에 타먹으라고 말릴 정도.
태화의 조언을 듣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민재의 미소나 다정한 행동을 볼 때마다 뱀이 쥐를 품어주는 듯한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다.
‘난 그냥 참가만 해본 건데······.’
그녀는 자신이 엄청난 비율을 뚫고 뽑힐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쉬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어필을 해보려고 참가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빠른 눈치와 확 튀는 외모가 더해져 유진은 얼떨결에 최종 심사까지 갔으며, 어른들의 사정으로 덜컥 합격했다.
‘분명 하라 선배님이 나보다 더 잘한 거 같은데······.’
유명 배우 몇몇이 이끌어가는 중소 기획사가 그렇게 굴러들어온 호박을 놓칠 리 없었고 결국 유진은 주변의 압박에 못 이겨 계약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오늘도 뻔뻔한 배우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루루팡 루루피 루루······.’
“준비 끝났습니다! 배우 분들 이리로 와주세요!!”
“꺄악!”
나름의 의식(儀式)에 집중하고 있던 유진은 갑자기 들려온 고함에 놀라 의자에서 넘어졌다.
그녀가 소란을 피운 덕에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던 시선들이 일제히 유진에게 쏠렸다.
“으으······.”
“······괜찮아요?”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