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19
제자이자 후배인 용훈이 언급했을 땐 그저 요새 뜨는 신인 정도라 생각했거늘, 직접 만나 가르쳐본 태화는 근성과 열정, 그리고 재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아직 거친 연마 (Rough grinding)만 마쳐 형태만 잡은 보석.
이런 보석을 미세 연마하고 샌딩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주술사라고 했으니 약간 우아하게, 춤 같은 동작이 나오도록 가르치는 편이 낫겠어.’
그는 매의 눈으로 태화를 살피며 역할에 알맞은 액션과 동작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를 위한 기본 체력과 유연성, 훈련 과정도 함께 정리했다.
“자! 휴식 끝! 다시 가자!”
“저, 그, 그래도 저희 배우가······.”
“어허! 내 설마 배우가 상할 정도로 혹사 시키려고? 걱정 말고 저기서 TV나 보고 있게.”
“아, 아뇨 얌전히 여기 있겠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격리시켜버리겠단 무언의 압박에 현규는 속으로 태화에게 사과하며 꼬리를 말았다.
심약한 그가 상대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상대였다.
“형, 전 괜찮아요. 다시 가겠습니다.”
“태화야······.”
태화는 지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것이 일종의 기회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홍위환 무술 감독이 아무리 스턴트계를 위하는 인물이라지만 그에게도 급이라는 게 있었고, 태화는 그의 급과 비교하면 한참 아래 있는 배우였다.
영화 촬영장에서 간단히 몇 동작 배우고 지적 받는 수준이면 모를까, 이렇게 일대일 교습을 받는 건 엄청난 특전이었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해.’
힘들더라도 최대한 그의 지식과 가르침을 흡수해야 한다. 목표를 가진 태화의 눈은 별을 머금은 듯 반짝거렸다.
* * *
‘괴물’은 순조롭게 역대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고, 태화 본인은 내년 촬영을 위해 내실을 다졌다.
딱 여기까지만 보면 그의 일정과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오, 신이시여.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경고합니다. 오민재에 적응했다고 자신만만해 하시는 분들 뒤로 가기 누르세요. 이건 힘들어요. 배우님 연기 확인은 공식판으로 충분합니다.
└진짜 끔찍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타미님들, 심약한 분들은 덕심 믿지 마시고 그냥 넘기세요. 이건 정말 힘들어요.
└전 이태화 배우님 연기 잘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차기작이나 미래의 작품에서 스릴러와 고어는 빼주셨으면 좋겠어요. 아니, 악역이라도 이런 구제할 길 없는 악마는 안 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정말 충격과 공포네요······. 자식 있는 부모로서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 한번 새겨지는 영화였어요.
└오재빈 사형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갔다고 하네요. 이거 보고 저도 서명하고 왔습니다. 이런 살인마를 옹호하는 인간들이 있다니 반성해야 해요.
모두가 안심하며 하하호호하던 그 때, ‘괴물’의 감독판 DVD가 등장했다.
영상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널뛰기하듯 변하는 심의 기준이 올해 따라 너그러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만큼 충격적인 장면을 다수 포함하고 있었으며 영화관에서 감탄하며 관람했던 관객들조차 감독판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부는 어떻게 그 장면이 이런 식으로 해석 될 수 있느냐고, 속았다고, 기억을 지우고 싶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일을 더 하고 싶어 하는 족속이었으며 일부가 남긴 경고는 홍보가 되어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다.
경고를 무시하고 후회하던 이들이, 그 분노를 세금으로 건사 중인 사형수들에게 향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거대한 충격을 남긴 채 ‘괴물’은 한 해의 여름을 장식했다.
끝
ⓒ 마늘소금
비웃음을 띠던 남자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어린아이처럼 티 없이 반짝이는 눈으로 옆에 있는 이를 응시했다.
“저기 나 좋은 장소가 생각났거든? 내일 바빠?”
“바쁩니다.”
“그럼 모레는?”
“바쁩니다.”
“그다음 날······.”
“그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다다다음 날도 바쁩니다.”
차갑게 일갈하는 호영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은 남자는 곧 환하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일주일 후는 괜찮아?”
백치미 넘치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바쁩니다.”
“차갑네. 난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공무원이라는 분이 이렇게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나 아쉽다는 듯, 남자는 한숨을 내쉬고 서글픔이 섞인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일견 가녀려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호영은 단호했다.
“안 통합니다.”
“이럴 땐 마음 약해져야 하는 거 아니야? 못 이긴 척! 응?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남자는 살짝 따지듯 물었다.
물론 항의라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내 귀여움을 받아들여라 닝겐!’이라 외치는 고양이의 그것처럼 반짝거렸다.
그럼에도 그의 애교 어린 시선은 철벽 그 자체인 호영에겐 통하지 않았다.
“안 불쌍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무뚝뚝하게 답한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가사(袈裟)를 입은 남자들이 널브러진 채 괴물 보듯 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들의 중심에 선 중년 남자는 가라앉은 표정으로 지그시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일하세요.”
“하! 이 아가씨가 이렇게나 도도하단 말이지. 뭐, 그런 모습도 매력이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내 가슴에 못이 박히고 있어.”
그는 가슴 아프다는 태도로 과장되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물론 그가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주변의 시선들은 점점 더 질려 갔다.
「검은 양복, 화려한 귀걸이에 진중해질 줄 모르는 언행이라······. 명성은 익히 들었소, 브로커.」
“그것 참 다행이네. 나도 많이 들었어, 방장. 이번 방장은 젊다더니 정말 젊은걸? 50은 됐어? 설마 40대인 건 아니겠지?”
중국어를 한국어로 맞받아치며 브로커 한상길, 아니, 태화는 싱그럽게 웃었다.
「이 무례한 자가!」
한국어를 알아들었는지 쓰러져있던 이들 중 한 명이 태화를 향해 곤(棍)을 뻗었으나, 그는 태평한 얼굴로 무기를 쳐 내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방장을 응시했다.
“나름 중국 정부의 이야기를 듣고 온 손님인데 취급이 너무하지 않아? 내가 착한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취급 받으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여기 애들을 인형 두들기듯 토닥거려 줄지도 몰라. 그러다 뭔가 튀어나오면 안 될 게 튀어나올 수도 있고, 그럼 방장 눈에서 눈물이 퐁퐁 솟지 않겠어?”
태화가 과장된 슬픔을 드러내며 손가락을 튕기자 방금 전 공격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그만하시오!」
괴로움 섞인 울부짖음에, 지금껏 침착함을 유지하던 중년 남자가 결국 소리쳤다.
“싫은데? 난 지금 침입자잖아? 침입자가 말 듣는 거 봤어?”
끝까지 약 올리는 그는 딱 미운 일곱 살을 닮았다. 스무 살이 넘은 것으로 보이는 청년이 보이기엔 퍽 얄미운 모습이었단 뜻이다.
그런 행동을 보며 소림 방장 청운은 작게 이를 갈았다.
「······손님을 해영당으로 모셔라.」
그러나 이 이상 피해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한 청운은 귀한 손님들을 맞이할 때나 사용하는 해영당의 문을 열었다.
「방장께서 이리도 융숭하게 대접해 주다니, 일개 중개업자로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셔라’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화는 예를 다했다.
아주 우아하고 공손하게 소림의 방식으로 양손을 모으는 그의 모습은 흠 잡을 곳이 하나 없어, 역으로 모여 있는 이들의 미움을 샀다.
“······의외로 쉽게 들어가게 됐군요.”
호영은 더 이상 충돌 없이 손님으로 대접받는 작금의 상황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일단 패면 높은 사람이 튀어나올 거야’라 말하고 협력을 얻어야 할 이들을 다짜고짜 공격했으니 그녀 입장에서는 ‘미친놈이었구나’ 싶었을 것이다.
태화가 생각해도 한상길은 나사 하나 빠진 인간이었지만,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무언의 동의를 표하는 대신 배시시 웃었다.
“어때, 함부로 행동해도 누가 뭐라 못하는 남자. 좀 유능하고 매력적이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잘난 척을 곁들인 태화는 슬쩍 그녀 쪽으로 어깨를 밀었다. 의도가 분명한 몸짓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그녀는 정확히 한 걸음 물러 선 뒤 그의 어깨가 살짝 닿았던 부분을 먼지 털듯 털어 냈다.
“바쁩니다.”
“······나 아직 본론 안 꺼냈는데? 일 이야기일지도 모르잖아?”
허를 찔렸는지 잠시 할 말을 못 찾은 호영은 그럼 한 번 말해 보라는 태도로 태화를 흘겼다.
주인에게 칭찬받은 강아지처럼 활짝 피어난 그는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여기 산 중턱에 기가 막힌 온천이······!”
“그냥 닥치세요.”
“너무해······. 난 조금 상냥한 반응을 원할 뿐인데. 그래도 국가를 위해 이리저리 애쓰는 사람을 생각해서 조금만 받아 주면 안 돼?”
호영의 역할은 브로커의 감시 겸 보조였다. 남자인 브로커에게 아름다운 여성 공무원을 붙인 건 그렇고 그런 뜻이었다.
미인계로 이면 주민과의 연결점을 붙잡을 수 있다면 국가 입장에선 남는 장사였으니까.
그녀에게도 보상과 승진이 약속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태양처럼 눈부신 미소로 그가 원하는 바를 들어줬다.
“닥치세요.”
“응······.”
태화는 대본을 끝까지 읽고 연기하면서도 상길이 정말 그녀를 좋아해서 들이댄 것인지, 들이대다 보니 좋아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그의 심정에 변화가 있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곱게 미친놈이 무뚝뚝한 아가씨에게 잡혀서 낑낑거린다는 거지.’
물론 누군가는 남자 망신 다 시킨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차도남, 까도남은 몇 년이 지나도 여성 팬들에게 잘 먹히는 캐릭터였다.
남자 쪽에게 강대한 힘이 있을수록 더더욱.
그리고 그런 역차(逆差)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
「그래서, 소문 무성한 브로커께선 이곳까지 어인 일이시오?」
해영당은 예스러운 외형과 달리 현대적인 내부를 자랑했다.
소파는 푹신했으며 나르는 이가 스님일 뿐 다기부터 찻잎까지 고급이었다.
차가 테이블에 닿기 무섭게 청운이 입을 열었다.
뼈가 담긴 물음이었으나 태화는 모른 척 방긋 웃었다.
「소림의 힘이 필요하기에 찾아왔습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중국 정부도 허가한 부분이지요.」
몇 분 전까지 숭산을 뒤집던 왈패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차분하고 진중한 협상가가 앉아 있었다.
태화는 대사를 읊으며 ‘내부자들’에 대해 떠올렸다.
제작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때리고 부수고 생각 없이 즐기기 좋은 영화답게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 또한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상길을 연기하는 것도 길이가 길다는 점만 빼면 상당히 무난했고 꽤 재미있었다.
‘뭐, 한상길이 엄청 강력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괴리감이 적은 것도 한몫하지.’
도대체 이 짧은 기간에 어떻게 이런 스토리와 대본을 생각해 낸 것인지, 러닝 타임이 3시간 정도일 것이라 예상되는 점만 빼면 영화는 스토리도 인물들도 정말 좋았다.
특히 태화는 없는 재능을 다른 부분으로 메워 낸 한상길이 마음에 들었다.
브로커는 주술사로서 재능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술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으며 주술 도구 제작자로서는 상당히 유능했다.
스승에게서 배운 주술의 기초를 바탕으로 현존하는 주술을 제 입맛대로 수정했고, 그런 행위와 반골 특유의 말투 덕에 장로들에게 밉보여서 파문당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그런 일련의 과정이 스승과의 반목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몇 번이나 봤는데도 그 사람은 여전히 무섭단 말이야. 그나마 마지막에 합류해서 다행이지.’
앞서 겪었던 대본들과 달리 ‘협력자들’의 어려움 난이도는 클리어‘만’ 한다면 쉽게 100퍼센트를 넘었다.
지금껏 있었던 성공이 그러했고, 덕분에 태화는 재능 하나와 추가 보상을 진즉에 획득했다.
그랬음에도 어려움 난이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직 크랭크 인은커녕 미팅도 시작하지 않은 터라 작품이 소소하게 수정될 수 있어 처음부터 유동적인 어려움으로 연습을 시작한 것이고.
둘째는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협력자들’의 어려움 난이도는 동기화가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 오버.
‘태양을 품은 바다’에서 가람과 다른 행동으로 주변의 의심을 세 번 사서 대기 장소로 돌아갔던 것과 달리 ‘협력자들’에선 심심하면 퇴장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연기 도중 한상길이 사망해서다.
첫 죽음은 방금 전 곤을 휘두른 남자를 제대로 막지 못해 발생했다.
손으로 쳐 내는 것이 늦어 그대로 곤이 몸을 관통했고, 그 순간 주변이 부서져 대기 장소로 돌아왔다.
고통은 없었으나 상당히 황당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