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64
장마르크는 몰라도 태화는 알아본 이들이 그의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고 싶어 둘 주변을 헤맸으니까.
태화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그를 향한 시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것이다.
그러나 철벽처럼 둘러싼 장마르크의 경호원들에 의해 태화의 팬들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를 제한됐다.
태화가 ‘평범’이라 왜곡한 진실이었다.
“뭐······. 둘이 즐거웠으면 된 거지. 영화는 재미있었고?”
“네. 찍을 때 예상했던 것과 좀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네요.”
“그래······.”
현규는 기뻐하는 자신의 배우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장마르크 쪽 관계자에게 들은 내용과 태화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사건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 탓이다.
특히 주변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랐기에, 현규는 태화가 은근히 타인의 시선에 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뭐, 오랜만에 제대로 쉰 거 같으니 다행이지······.’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인지라,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리는 와중에도 현규는 태화가 잘 쉰 것 같아 기뻤다.
최근 바빠진 스케줄과 물오른 미모 탓일까. 태화의 행동반경은 상당히 좁아졌다.
그 좋아하던 영화관을 가지 못했고 혼자 집 밖을 나서는 경우도 줄었다.
톱스타 반열에 들었어도 은근 제멋대로 돌아다녔던 태화에게 답답한 상황이었을 리 분명했다.
‘그 쪽 경호원들을 괴롭힌 것 같아서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태화가 오랜만에 편히 쉬었으니.’
한국 인지도가 적은 장마르크를 경호하는 것과, 한국 톱스타 태화를 경호하는 건 난이도가 다르다.
남의 일을 힘들게 한 것은 미안했으나 그로 인해 태화가 오랜만에 편히 쉰 덕에 현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태화의 매니저였다.
타인보다 태화를 먼저 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현규가 ‘끝난 거 어쩔 수 없지’라 생각하며 운전하는 사이 나래는 가늘게 뜬 눈으로 태화를 응시하며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게 만족하고 추가 약속을 안 잡았다고? 얘가 그럴 리 없는데.’
뉴욕에서 크게 대였던 나래는 태화의 욕심을 언제나 경계했다.
친절하고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도, 태화는 결정적인 순간 예상 밖의 행동으로 주변인들의 심장 건강을 위협했다.
반대쪽 선택지가 ‘작품 감상’. ‘연기’와 같은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으면, 태화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제 욕심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달, 아니 미국에서 자유를 느낀 뒤 정말 오랜만에 느꼈을 해방감이었을 텐데, 태화 성격에 고작 하루로 만족할 리 없었다.
그녀의 예상이 맞았던지 태화는 ‘관광 안내’를 빙자한 제 욕심을 드러냈다.
관광 일정에 GGB 용산점 방문을 언급한 것이다.
최근 국내 거주 외국인과 외국인 관광객 비율이 높아지면서 GGB는 일부 한국 영화에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태원에 가까운 용산점에는 영어 자막을,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 비율이 높은 명동점에는 중국어 일본어 자막을 추가해 블루오션을 노렸다.
물론 자막 자체가 화면을 가리는 것은 사실이기에 한 주에 2, 3회 특정 시간에만 외국어 자막 영화를 상영했고, 자막 제작에 시간이 걸리니 개봉 후 3, 4주가 지난 후에야 자막 일정이 잡혔지만 거주 한국 내 외국인들에겐 나름대로 호평을 받는 서비스였다.
특히 사극의 경우 한국어를 알아도 단어와 말투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데, 자막이 해당 문제를 단순화하거나 제외하는 탓에 재미는 조금 줄어도 내용 이해와 사극의 진입 장벽 완화에는 도움이 됐다.
“마침 정조도 이번 주말에 영어 자막 일정이 있더라고요.”
“······태화야. 아무리 쿵짝이 잘 맞아도 안내한다면서 하루 종일 영화관 죽돌이는 안 되는 거 알지······?”
“물론이죠.”
“그래······.”
끝까지 ‘정조’만 본다는 소리가 없어 현규는 아스러질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그래도 하루 종일 있을 계획은 아니었구나······.’하는, 타협한 자의 미소였다.
“일정은 미리 장마르크 감독 스텝에게 말해 둬. 감독이야 그냥 내키는 대로 다녀도 스텝들은 동선을 알아야 사고 위험이 주니까.”
‘그러면 그렇지’란 표정을 지은 나래가 옆에서 충고를 건넸다.
유명인이 계획 없이 움직이면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사고의 수습은 아랫사람들 몫이며, 태화가 즉흥적으로 장마르크를 이끌면 감독이야 좋을지 몰라도 경호원과 스텝들은 죽어날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원망은 고용주도 아닌 제3자인 태화를 향하겠지.’
그러니 미리 준비시켜야 한다.
문제가 생겨도 ‘배우 본인이 이야기해뒀는데도 사고가 난 건 너희의 관리 미흡이 원인이다’라 주장하며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고집을 부리는 태화가 가끔 얄미워도, 나래는 그가 밖에서 욕먹고 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네, 그럴게요. 누나. 근데······. 저 피부 상했어요?”
나래의 충고를 되새기며 태화는 자신의 피부를 손등으로 쓸었다.
황금 사과와 ‘동안’의 효과로 태화의 피부는 언제나 백옥같이 잡티 하나 없고 매끄러웠다.
아기가 안겨서 울고 갈 완벽한 피부.
그렇게 좋은 피부였지만 나래는 두 남자가 잊을 때쯤 되면 꼭 피부관리실을 예약했다.
“네 피부야 언제나 짜증 날 정도로 완벽하지. 그런데 이것도 꽤 필요하거든.”
현규와 BGA는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장소에 따라 모이는 정보나 소문이 다른 법이었으며 에스테틱은 그런 ‘다른 종류’의 정보가 맴도는 장소 중 한 곳이었다.
몇 시간씩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 있다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마련이니까.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는 정보들을 모으기 위해선, 그곳에 직접 가야 했다.
“그리고 내가 네 피부 좋다고 백날 떠들어봐야 거기서 두 시간 누워있는 것만 못해.”
또한 이런 방문 아랜 자기 연예인을 자랑하고 싶은 심리도 존재했다.
많은 이들이 태화의 얼굴이 화장에 의해서 천변(千變)하는 것만 알았지 그 피부가 얼마나 비단 같은지는 몰랐다.
‘관리받은 연예인 피부가 다 그렇지’로 넘기기엔 억울한 수준.
태화가 너무 잘난 나머지 그 완벽한 피부가 도외시되는 걸 들을 때마다, 나래는 은근히 억울함을 느꼈다.
“······그래도 다음 주부턴 좀 한가해지니까 다행이다. 그치?”
현규는 슬쩍 말을 돌렸다.
마이페이스인 이들과 일을 하기 위해선 타협뿐 아니라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눈치가 필요했다.
“한가하다고 하기 힘들지 않아? 광고도 있고 벌써 8월 중순이잖아. 10월, 11월도 금방이니 미리 준비해야지.”
아직 초대장도 날아오지 않았는데 나래는 벌써부터 시상식을 입에 담았다.
안타깝게도 5월에 있던 백상에선 어떤 상도 받지 못했다.
‘야누스’가 칸에서 남우주연을 수상하긴 했으나 영화 자체의 평은 낮은 편에 속해 크게 주목받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매해 다작하는 유명 배우에게 계속 상을 몰아주는 건 편파적으로 비칠 수 있다’란 한 심사위원의 주장 탓에 영화 부문 남우주연상은 다른 배우에게 돌아갔다.
물론 이후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었지만 이미 결정된 결과가 번복되는 일은 없었다.
그랬던 ‘야누스’와 달리 ‘정조’의 경우 정통 사극의 틀을 확실히 지키면서 흥미로운 주제를 잘 표현했다는 평이 다수를 차지했다.
대사 자체가 어렵다는 말은 있어도, 작품 완성도가 높아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이 확실시됐다.
“일단은 드라마에 집중하자. 1화 반응 좋더라. 너 베트남어도 잘한다고 난리 났어.”
“장마르크 감독님도 꽤 재미있다고, 프랑스 가서 챙겨보시겠대요.”
“······설마 같이 봤니?”
“정조 못 보게 된 걸 아쉬워하셔서.”
영화 대신 드라마를 감상했단 의미다.
제 생각보다 꼭 한 발짝씩 앞서가는 태화의 행동에 현규는 오늘도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
현규가 언급했던 것처럼 ‘이삿갓’의 스타트는 참 순조로웠다.
‘정조’와 ‘젊은 연인’으로 연일 화제를 이어가는 이태화가 오랜만에 안방극장을 찾았으니 그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자 주연은 무서운 성장세로 신인상 받을 시기에 여우주연상과 대상을 제 것처럼 챙기던 슈퍼 루키, 천성효.
상당히 근사한 조합이었고 시청자들은 둘이 만들어가는 의료 드라마를 기대했다.
└전에 김창현이 이시도역 한다고 기사 났을 땐 1도 기대 안 됐는데 배우님 싱크로 100ㅠㅠㅠ
└와, 애 보는 눈빛이 녹내 녹아.
└1화에 삿갓 써서 이삿갓임? ㅈㄴ 성의 없네. 그리고 저거 삿갓이 아니라 논라인데ㅋㅋㅋ
└ㅂ1ㅅ나 논라가 베트남식 삿갓이거든?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ㅉㅉ
└4가지 없는 남자가 애한테만 웃어주는데 왜 내가 심쿵하냐······.
차가운 도시의 남자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나 일엔 냉정한 사람이, 한 여자에게만 따뜻한 것이 사람들의 감성을 울렸기 때문이다.
태화가 맡은 이시도 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 여자에게 따뜻한 것은 아니었으나 냉랭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아이들에게만 잔잔하게 웃어주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말투부터 행동까지 전부 얄밉고 때려주고 싶은데, 아이들을 몰 때만 살살 풀려서 자애로운 성모 같은 미소를 짓는다.
이 캐릭터는 뜰 수밖에 없었다며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와 천성효 비율 보소. 얼굴 진짜 작네
└천성효 연기도 한 재수 하는데 이태화는 더 하넼ㅋ 처음보는 사람한테 늙은잌ㅋㅋ 도랐ㅋㅋ
└남여주이긴 한데 설마 연애 나오진 않겠지? TvM 너만 믿는다
└코블보다 이게 재미있어 보여서 봤는데 일단 주연들 연기력엔 합격점 드리고요.
주인공인 이시도 뿐 아니라 라이벌이라 여겨지는 유시우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해당 배우인 천성효는 캐릭터의 성격과 분위기를 잘 살렸으며, 인물 간의 혈압을 올리는 언쟁은 시청자들에겐 즐거움을 줬다.
2화에서 수술해야 하는 아기의 병명과 상태를 들은 이시도가 허를 찔린 표정으로 거절하지 못하는 장면은 2, 30대에 머물렀던 시청층이 4, 50대로 확장되는 기적을 낳았다.
바늘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남자가 아이만은 예외로 두는 모습이, 어머니 세대들의 호감을 자극한 것이다.
└이대로만 가면 경쟁작들 지상파까지 씹어먹을 듯ㅋㅋ
내부적으로 여자 주연이 흔들리고 있음에도, 1화에서 7.3퍼센트였던 시청률이 단숨에 9.8퍼센트로 뛰는 기적을 선보이며 ‘이삿갓’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끝
ⓒ 마늘소금
‘정조’와 ‘젊은 연인’은 목표하는 방향은 달라도 하는 역할은 같았다.
이전 작품들이 그러했듯, 두 영화 모두 태화의 커리어에 확실히 도움되고 있었으니까.
태화가 사극에도 통하는 외모와 발성을 지녔다는 걸 증명한 ‘정조’.
그의 인맥과 프랑스어 실력, 그리고 치명적인 페로몬을 온전히 드러낸 ‘젊은 연인’.
성수기인 만큼 여러 흥행작과 대형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여름 영화 업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태화였다.
‘이삿갓’도 그런 흥행 행렬에 합류했다.
태화를 향한 식지 않은 열기는 바로 안방극장을 향했고, 주연들의 훌륭한 연기력이 시청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2화 방영이 끝나고 ‘이삿갓’을 향한 평가는 갈렸다.
‘이 업계에 용두사미를 넘어서 용두사망으로 가는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벌써부터 대작 소리를 하느냐’라며 성급한 발언을 질색하는 목소리와.
‘주연들 연기력은 이미 전작들로 훌륭하게 증명된 상태다. TvM이 괜히 드라마의 왕국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라며 월메이드 드라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이들로 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1, 2화가 별로라거나 부족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샘을 한다 해도, ‘해는 동쪽에서 뜬다’와 같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고작 1, 2화가 방영됐어도.
애피타이저를 한 입 먹은 것에 불과할지라도.
‘이삿갓’은 ‘잘 만든 작품’의 냄새가 폴폴 풍겼다.
“컷. 후······. 다시 갑시다. 아니 아니. 일단 10분 쉬고 갑시다.”
허용우는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며 휴식을 고했다.
스텝들은 ‘지겹다’와 ‘살았다’라는 생각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장비를 내려 둔 채 몸을 풀었다.
감독이야 앉아서 ‘컷’과 ‘다시’만 말하면 된다지만, 그들은 무거운 장비를 이리저리 옮겨야 했다.
건물 안이라 날씨의 영향에선 벗어났어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난 담배 좀 피우고 온다.”
“여기 병원 건물인데요······?”
“어딘가 흡연 공간이 있겠지.”
더 이상 남아 있기 싫다는 듯, 용우는 AD에게 손을 한 번 휘적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즐거워서 5일째 금연인데도 금단 현상 하나 없다고 자랑한 게 어제였는데, 몇 시간 사이 PD의 얼굴은 팍 늙어버렸다.
“천성효씨······. 후. 아니다, 애들 이따 동선 체크 다시 한번 시키고 있어.”
천성효를 잠시 보던 감독은 또다시 티 나게 한숨을 한번 쉬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 모습에서 실망과 한심함, 포기 등의 감정을 느낀 성효는 고개를 숙여 빨갛게 변한 얼굴을 감췄다.
안절부절못하던 성효의 매니저가, 용우가 자리를 뜨기 무섭게 성효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코트를 올리고 카메라 밖으로 데려갔다.
인형처럼 뻣뻣한 걸음으로 사라지는 성효를 보며 몇몇 스텝들은 안타깝다는 시선을 한 채 작게 혀를 찼다.
그러나 대다수는 곱지 않은 눈으로 그녀를 흘리며 제 할 일에 눈을 돌렸다.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지네······.”
태화에게 방금까지 찍었던 동영상을 넘기며 현규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성효와 태화가 주연으로서 소화해야 할 장면은 정확히 3개.
첫 번째 장면에선 NG가 없었지만 어딘지 힘이 부족했고, 두 번째 장면에선 유시우의 야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두어 번 NG.
그리고 지금 촬영하는 마지막 부분에선 벌써 6번째 실수가 터졌다.
물론 천성효만 NG를 낸 건 아니다.
현재 그들이 촬영 중인 장면은 메인 환자인 유남서를 치료하기 전, 다른 아동 환자의 수술 계획을 의논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두 주연 배우 말고도 많은 배우들이 자리를 함께해, 대사를 교환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가끔 손발이 맞지 않아 NG가 났고 그렇게 생긴 끊김이 3번이었다.
즉, 여섯 번 중 세 번은 성효에 의해 생긴 NG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