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65
오늘 전만 해도 아슬아슬하게 NG를 피해가던 성효가 단숨에 무너졌다.
연기를 잘 모르는 이들조차 할 수 있을 정도로 성효는 빠르게 균형을 잃었다.
“사실은 연기를 그렇게 못하는 건 아니에요.”
현규가 녹화한 영상을 확인하며 태화는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몇몇 조연들은 성효의 추락을 즐거워하며 ‘발연기’, ‘도금’같은 단어들을 은밀히 주고받았지만, 사실 그녀의 연기력은 험담하고 있는 이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단지 그 전에 보였던 연기력 임팩트가 너무 컸던 거지.’
완벽한 1, 2화. 그리고 또 완벽하게 방영될 3, 4화.
미리 촬영했던 분량들은 상당한 퀄러티를 자랑하는데 이후 분량에서 맥아리 없는 연기를 보인다면, 드라마는 올라간 인기만큼 거칠게 떨어지게 된다.
당연히 감독으로서는 성효에게 조연급 이상의,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란 어찌나 이리 간사한지······.’
의자에 앉은 태화는 시선을 돌려 쉬고 있는 배우들의 표정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촬영 지연으로 신경질을 부리는 배우, 감독을 따라 나가 조금이라도 인연을 굳혀보려는 배우는 언제나 있었기에 감응이 없다.
그러나 ‘천성효가 그럴 줄 알았다’, ‘신인 주제에 건방지더니 잘됐다’라며 은근히 비웃는 이들은, 볼 때마다 입안이 썼다.
성공가도에서 벗어나자 조롱의 대상이 된 그녀의 모습이 회귀 전 다리를 잃었을 때와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이들 대부분이 천성효가 연기를 잘할 때 앞장서 친한 척 굴던 이들이라 더더욱 마음이 불편했다.
“이대로면 드라마 펑크 날 수도 있겠는데······.”
“그렇진 않을 거예요 지금도 타협하려 들면 그냥 타협할 수준은 되니까. ······단지 수목 드라마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긴 힘들어지겠죠.”
KBC가 이를 갈고 만든 ‘코드 블루’가 바싹 ‘이삿갓’의 뒤를 쫓고 있는 상황.
자존심을 위해서라곤 해도 이미 엄청난 돈이 들어간 상태에서, PD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천성효의 연기력을 되돌려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서게 만든다’밖엔 없었다.
“과연 나아질까······.”
“나아지긴 할 거예요. 단지 그게 이번 드라마 끝나기 전이라고 확신을 못 할 뿐이지.”
“······그거 참 안 좋네.”
태화의 담담한 분석을 듣고 현규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배를 부여잡았다.
고질병인 위염이 다시 도진 탓이다.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왠지 답을 알게 된 거 같아요.”
태화는 성효가 사라졌던 방향을 물끄러미 살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언제나 ‘왜? 회귀 전엔 그녀의 이름을 들은 기억이 없었나?’라는 의문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가장 유력한 설은 ‘‘직장생활백서’가 방영되지 않아 재능을 선보일 기회가 없었다’였으나 그렇다고 보기에 성효의 연기는 퍽 훌륭했다.
해당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뜰만 한 실력과 외모였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말려들어서 슬럼프가 왔었을 지도. 근데 천성효를 저렇게 꺾으려면 박현호 선배나 비슷한 상위 클래스 배우들이 함께 했어야 하는데······?’
하나를 풀면 하나가 또 생기는 것이 마치 꼬리 물기 같다.
풀리지 않는 지혜의 고리를 만지듯 약간의 답답함을 느끼며 태화는 대본을 펼쳤다.
머리가 복잡할 땐 대본 읽기만 한 게 없었다.
***
사실, 태화의 추측은 어느 부분은 맞고 어느 부분은 틀렸다.
당시에도 ‘직장생활백서’는 똑같은 시기, 똑같은 방송국에서 방영됐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성효가 없었다.
이미 ‘법의 경계’에 캐스팅되었기 때문이다.
회귀 전 ‘구미호’는 현재와 같은 반항과 신드롬을 일으키지 못했다.
‘구미호’로 성공하지 못했던 상아는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대던 흔한 여배우 중 하나였고, 데뷔작에서 합을 맞췄던 봉춘 감독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마지막 도전을 어떻게든 성공시키고 싶었던 봉춘 감독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으며, 천성효란 원석을 찾아냈다.
성효는 배우만 잘하면 작품은 당연히 뜰 거라 생각하는 순진함을, 그 당시에도 여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흥미를 드러내고 소속사가 말린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상아도 간신히 성공시킨 작품을 연줄도 지명도도 없는 천성효가 띄우는 일은 요원했다.
성효의 연기가 아무리 대단해도 쌓아둔 인맥이 없었다.
외모가 톱급이라 해도 데려올 투자자가 없었다······.
저예산으로 하면 된다지만, 영화는 돈을 아껴가며 찍기엔 스케일이 너무 컸다.
설상가상으로 성효의 뛰어난 연기력에 가난과 성공에 허덕이던 이들은 어설픈 희망을 품었다.
저렇게 잘하는데 이 정도 스토리면 성공하겠지.
저렇게 박력 있으면 투자는 후반에라도 알아서 붙을 거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야하는 상황에도 감독과 스텝들은 이상을 꿈꿨다.
상아가 태화를 꾀어 투자자와 배우들을 이리저리 긁어모은 후에야 간신히 성공시켰던 영화다.
그러고도 평작 소리를 듣던 영화다.
당연히 영화는 쫄딱 망했고 봉춘 감독은 영화계를 떠났다.
물론 작품이 망해도 배우의 연기력을 확인하고 출연을 제의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감독들도 아무 영화나 보는 게 아닌, 어떤 작품을 볼지 고른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봉춘 감독은 감독들 사이에서 기대치가 낮은 축에 속하는 감독이었다.
스토리를 완성하는 능력도, 장면을 개연성 있게 편집하는 능력도 괜찮으나 정작 중요한 배우의 연기력의 고하를 느끼지 못하는 감독.
그런 자신의 단점을 깨닫지 못하는 감독.
수없이 쏟아지는 작품의 홍수에서, 봉춘의 작품은 우선도가 상당히 떨어졌고 성효를 주목하는 감독도 없었다.
거창하게 주연을 말아먹은 신인 배우는 재수 없게 여겨졌다.
수많은 신품이 있는데, 굳이 한번 실패한 제품을 끌어오는 이는 없었으며 성효는 태화가 회귀하는 날까지 제대로 된 배역을 맡지 못했다.
“흑······.”
“성효야 그만 울어.”
“언니이, 나 어떡하지······.”
평소 언니라곤 불러도 거리를 지키던 성효가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매니저를 불렀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테레사도 없고, 롤모델이던 태화도 성효를 싫어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그녀가 붙잡을 사람은 이제 매니저밖에 남지 않았다.
“일단 우리 이거 끝나고 조금 쉬자. 그럼 곧 나아질 거야.”
“나,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 크흡. 근데······.”
“알아 알아. 원래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매니저는 성의 없는 답변으로 성효를 달랬다.
귀찮긴 해도 계약금을 많이 주고 데려온 배우를 함부로 대했다간 윗선에게 깨지기에 매니저는 겉으로 친절을 가장해 성효를 다독였다.
그것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성효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테레사아······.’
그 많은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서 언제나 진심으로 성효를 위해주던 건 테레사뿐이었다.
성공한 후 전 동료들의 탐욕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성효는 그 많은 사람들 중 테레사만이 천성효란 사람을 봐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과하면 돌아오는 걸까? 너무 힘들어······.’
무엇을 잘 못 한 진 모르겠지만.
그래서 뭘 사과해야 하는 진 모르겠지만.
성효는 테레사의 화를 풀게 하기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지금 상황은 그녀에게 너무 힘들었다.
끝
ⓒ 마늘소금
성효는 매니저를 먼저 보냈다.
잘 나갈 때도 기댈 만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슬럼프를 겪으면서 알게 된 매니저의 밑바닥은 훨씬 더 성의 없었다.
수족으로 적당히 부릴 거면 모를까, 연장자로서 도움이 될 인물상은 못 됐다.
‘오늘은 어떡하지······.’
홀로 남은 성효는 평소처럼 계단에 앉아 무릎을 모았다.
벌써 비슷한 실수를 세 번이나 저질렀다.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은 변한지 오래였고 이젠 무섭기까지했다.
물론 대사를 잊거나 말을 더듬은 건 아니다.
단지 은근히 드러내야 하는 권력욕이 대사에 묻어나지 않았고, 차가움 속에 들어있을 정열이 냉기가 되었을 뿐이다.
복잡해야 할 감정 표현이 단순하게 변해버린 것.
그게 바로 성효의 슬럼프였다.
‘어떻게 표현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바로 앞에 있던 레일이 태화의 연기에 휘말리면서 박살 났다.
조금 더 간다면, 어쩌면 그 뒤에 깔려있을 레일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길을 잃은 그녀에게 다음 레일까지 가야 할 방향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가기 싫다······.”
“프로 의식도 없을 줄은 몰랐는데요.”
“선배님······!”
성효가 한숨처럼 우울한 말을 뱉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무표정한 태화의 얼굴이 비쳤다.
딱히 적의도, 호의도 없는, 단지 귀찮음만이 약간 남은 눈빛.
밉다고 생각하던 사람인데, 무심하고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는 눈을 보자 성효는 순간 그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촬영 시작한대요. 어서 와요.”
성효가 혼자 무너져버리고 태화는 그녀에게서 관심을 껐다.
호기심 때문에 계약까지 했건만, 성효의 사상은 태화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고, 그녀의 무지(無知)는 헛웃음을 짓게 했다.
한 번 휘둘렸다고 제 길을 잃는 온실 속 화초 같은 모습은 부스러기처럼 남아있던 흥미마저 없앴다.
그녀의 이름을 처음 듣고 가졌던 의문이 관성이 되어 문득문득 호기심을 자극했으나 그게 전부.
태화는 이제 그녀가 어떤 연기를 하던 관심 없었으며 지금 온 것도 단순히 PD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니······. 조금 싫어하는 지도.’
다른 사람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작품이 망가지지 않도록 균형을 잃은 배우를 도와줬을 것이다.
해당 배우가 무너진 원인이 자신이란 걸 알고 있으니 다시 길로 돌아갈 수 있게 이끌어줬을지 몰랐다.
그러지 않고 방관하는 건, 성효의 사고 방식에 상처받은 자신이 있어서다.
연기를 접하고 태화는 인생의 많은 부분은 연기와 그것을 잘 하려는 노력으로 이뤄졌다.
축복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있어도 그것이 내놓는 과제를 성공하기 위해 태화는 언제나 연습을 거듭했다.
물론 태화의 하루는 다른 사람과 같은 24시간이 아니었으며 그것이 불공평한 경쟁일 수 있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그 불공평하다 하여 그의 노력이 폄하 당할 이유는 없었다.
태화는 자신이 연습과 노력을 통해 점차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그런 본인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인하며 단지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기 때문’으로 치부하는 성효가 싫었다.
“선배님······. 저 상담 하나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성효씨.”
성효는 찔끔 눈물이 날 것 같았으나 참았다.
태화가 밉고 두려워졌어도 그녀는 여전히 태화만한 연기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화면으로만 접한 대단한 배우들이 몇몇 떠오르긴 했지만, 태화만큼 상대를 잘 이끄는 배우는 없다고 여겼다.
‘······선배님이라면.’
그녀는 태화가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걸 볼 때마다 신기함을 느꼈다.
다른 배역들을 누르는 것으로 자리를 확인하는 자신과 달리.
조화를 이뤄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고 극을 현실로 만드는 현태와 달리.
태화는 상대방의 연기를 위로 끌어올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다.
분명 ‘저 정도로 잘하는 배우가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자신의 연기를 200퍼센트 펼쳤다.
전적으로 태화의 능력이었다.
그는 자신을 감싼 액자가 싸구려 금도금 일지라도 그것을 진짜 금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 명화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며, 지금의 성효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한 번이면······.’
오늘만 넘기고 다음 촬영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 다시 균형을 잡는다.
그러니 오늘만 태화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면 뭐가 다르지?’
성효의 자존심은 태화에게 기대자는 타협안에 대단히 상처받았다.
다른 사람의 연기에 이끌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건 자신답지 않았고,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느냐며 본인을 비난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한 번도 무너져 본 적이 없던 성효는 주변에서 들어오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참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