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ing Genius Myung Do Hyuk RAW novel - Chapter 20
광고 천재 명도혁 20화
“CF가 한 편 더 있다구요?”
김철준의 목소리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1팀이 직관적인 CF를 찍어 온 것은 기특했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벌써 세 팀의 메인 컨셉이 겹치는 데다 광고주까지 있는 자리였다.
태강애드의 대표로서 목이 바짝바짝 타고 있던 차였다.
한수철이 눈을 반짝이는 김철준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설명을 이어갔다.
“인턴 팀들의 컨셉이 비슷해서 실망하셨을 텐데요. 저희는 다른 컨셉으로 한 편 더 준비해 보았습니다.”
“바로 CF부터 볼 수 있겠습니까?”
“네. 대신 놀라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죠.”
두 대표의 눈에 기대에 찬 호기심이 일었다.
곧 불이 꺼지고 기대에 찬 시선이 화면으로 집중되었다.
어두운 화면.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 옷장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갑자기 경수현이 옷장 문을 연 채로 외쳤다.
“일레라!”
문을 닫고 옷장으로 들어가는 경수현.
다시 그가 문을 열고는 소리쳤다.
“일레라.”
세 번 정도 반복되는 브랜드명.
곧 문을 연 옷장과 경수현이 복제되어 점점 늘어났다.
세 명의 경수현에서 여섯 명으로, 아홉 명으로 늘어난 경수현이 수차례 일레라를 외쳤다.
그리고 잠깐의 암전 뒤 한 줄 카피가 흘러나왔다.
시작은 일레라로부터. 일레라 가구.
CF 시연이 끝나고 장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충격적인 영상과 브랜드명만을 강조한 카피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위기였다.
한수철이 심호흡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김영석 대표님, 놀라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놀란 눈치시네요.”
“네. 좀 많이 놀랐습니다.”
“저희가 의도한 것이 정확히 통한 모양입니다. 저희 1팀의 기획 의도는 단 두 가지입니다. 소비자를 놀라게 하자, 그리고 그 놀란 무의식의 틈에 브랜드 이름을 각인시키자.”
“꿈에 나올 거 같은데요? 일레라!”
“국내에서 흔한 컨셉은 아니지만, 해외 광고에서는 가끔 볼 수 있습니다. 브랜드명만 강조해서 인지도를 높이는 방향의 광고들이죠.”
한수철이 말을 끊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일레라 가구는 시장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사무용 가구가 주력 상품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지도 하나만 올리고 가자?”
기획국장의 말에 한수철이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일단 ‘일레라 가구’라는 브랜드명을 소비자의 머릿속에 넣어주자는 겁니다. 물론 이건 1차 캠페인입니다.”
“1차 캠페인이라, 인지도를 쌓고 브랜드의 강점을 강조해서 2차 캠페인으로 확장해 나가자는 거군요.”
“맞습니다. 인지도가 뒷받침되어야 선호도가 따라오니까요. 2차 캠페인으로는 아까 보여 드렸던 봄 시즌 광고를 제안합니다.”
“딱이네요. 시기적으로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파격적인 광고는 소문이 날 확률이 높습니다. 국내에서는 본 적 없는 광고이고 촬영 기법도 파격적입니다.”
한수철의 말에 김영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뭇하게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광대가 승천하는 중이었다.
‘넘어갔구만.’
도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 파격적인 일레라 광고는 사실예전에 도혁이 참여했던 캠페인을 변형한 것이다.
적은 제작비와 강렬한 이미지로 회귀 직전까지 인구에 회자되었던, 도혁의 히트작.
회귀 후, 약간씩 미래가 틀어지고 있지만 여러 마케팅 사례를 조합해서 새로운 캠페인을 창조한다고 큰일 나지는 않겠지.?
‘어차피 복제한 것처럼 전생을 살아갈 수는 없잖아? 그렇게 살라고 환생한 것 같지도 않고.’
도혁이 턱을 어루만지며 한수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수철이 마지막으로 김영석에게 쐐기를 박았다.
“저희가 이렇게 파격적인 컨셉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일레라 가구의 제품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거 비행기 태우시는 겁니까?”
“아니요. 저희 1팀이 직접 일레라 가구를 사용해 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이건 인지도만 오르면 선호도는 자연히 따라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용적이고 간결한 디자인이 사무용 가구와 학생 가구로 제격이었거든요.”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요.”
역시 저런 감각은 타고나나 보다.
대단한 자식. 천생 AE구만.
한수철의 광고주 띄워주기는 오글거리지 않았고 효과가 좋았다. 막판 신의 한 수라고나 할까.
한수철이 마지막으로 의례적인 주의 사항을 설명했다.
“끝으로 이 CF는 배우 경수현 씨의 협조로 사전 촬영되었으며, 계약 전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그럼 계약을 해야죠.”
“네? 계약이라고 하셨습니까?”
김철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영석이 뭘 망설이냐고 오히려 김철준을 재촉했다.
“기업 이미지 광고는 가을 겨울에 풀고, 봄 시즌 광고 진행합시다. 망설일 거 뭐 있습니까?”
“당연히 저희는 좋습니다.”
“데모 CF 보니까 느낌이 딱 왔습니다. 회사 경영하다 보면 이런 촉이 발동할 때가 있어요. 이럴 때 놓치면 항상 후회하더라구요. 이거 기대 이상인데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우리 태강애드는 인턴이 이 정도입니다!”
“김철준 대표님은 밥 안 드셔도 배부르시겠습니다. 통 크게 제가 계약 진행하도록 하죠. 예산을 더 늘려야겠는데요?”
김영석은 성격대로 직진으로 나오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됐다!
도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김민수를 돌아보았다.
그는 잠깐 이를 바드득 갈더니 옆문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넌 그길로 끝이다. 한심한 놈.’
통쾌한 기분으로 김영석을 보았는데, 그는 이미 계약서에 사인할 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발표 못 한 팀 있는데 어떡해?”
“그렇네. 들러리 서는 거지, 뭐.”
최민아가 남은 팀들이 안타깝다며 속닥거렸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이미 미소가 가득했다.
그 뒤로 무난할 뿐 아니라 별 의미 없는 발표가 이어지고 김철준이 앞으로 나섰다.
“우승 팀을 발표해야겠죠. 우승 팀은…….”
김철준이 의례적으로 뜸을 들이며 말을 끊었지만, 대회의실 안에서 우승 팀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광고주가 관심을 가진 팀도, 질문을 던진 팀도 도혁의 팀뿐이었다.
무엇보다 광고주가 계약하자고 먼저 나서지 않았는가.
“우승 팀은 인턴1팀! 축하드립니다!!”
팀장 한수철과 멘토 탁기준이 앞으로 나서 1등 상패와 상금을 받아 왔다.
곧 심사 위원단이 나가고 그제야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김민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기쁨을 만끽했다.
“악!!! 어떡해. 우리 진짜 우승했어!!!”
“대박이야! 아, 실화냐. 정말. 으!”
“나 지금 소름 돋았어!”
탁기준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는 1팀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야, 명도혁. 너 이번에도 잘했다. 끝내줬어.”
“별말씀을요.”
“어떻게 인마, 인턴이 데모 CF를 모델까지 섭외해서 찍고, 기업 이미지 광고까지. 미친놈.”
탁기준이 도혁을 칭찬하자 팀원들이 몰려들어 모두 그를 추켜세웠다.
팀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막판 다른 컨셉 광고는 진짜 대박이었어. 울컥하기까지 했다니까.”
“나도. 근데 참, 경수현 씨는 어떻게 섭외한 거야? 기획사에서 미리 CF 찍는 거 허락해 줬어? 난 다른 거보다 그게 더 신기해.”
“맞아. 계약서에 사인한 것도 아닌데 대단하다!”
“운이 좋았지 뭐.”
누나 찬스 한번 썼지.
그날, 그러니까 경수현이 김성빈에게 굴욕을 당하던 날 도혁과 명현진이 사이다를 날려줘서 그렇게 고마워했다는 후문을 들었었다.
매니저와 팀장까지 속 시원해했다고.
그 말을 듣고 찾아가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한 시간만 경수현 빌려달라고. 어떻게든 CF를 따보겠다고 팀장을 설득했다.
그러자 경수현 쪽에서 의외로 흔쾌히 수락했고, 그는 철저한 프로의 자세로 샘플 촬영에 임했다.
결과물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웬만한 정식 CF 못지않은 퀄리티였다.
그걸 보고 다시 한번 느꼈었다.
경수현, 정말 대성하겠다고.
도혁이 섭외부터 CF 촬영까지의 과정을 떠올리며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한수철이 물어왔다.
“그런데 어떻게 데모 CF까지 찍을 생각에 기업 이미지 광고까지 한 거야? 난 사실 기존 시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충분한 건 없어. 당장 봄 컨셉 카피당했잖아. 이 바닥 그냥 전쟁터야. 항상 대안을 준비해야 해.”
“이 자식, 진짜 수석 AE처럼 말하네.”
뜨끔하다. 이쯤에서 베테랑 놀이는 그만해야겠다.
지금은 인턴으로서 즐길 수 있는 걸 즐길 생각이었다.
“자, 그럼 오늘 상금으로 당장 술이나 마시러 갈까?”
“나 사흘 밤을 새웠더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완전 신나게 마실 수 있을 거 같다. 당장 가자!”
“그럼, 그럼! 일 독은 알코올로 푸는 거야. 갑시다!”
모두 맥줏집으로 이동해 정신없이 술을 들이부었다.
이게 입인지 코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이 술 저 술 마셔댔다.
“하여간 광고쟁이들 술 푸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이거라도 안 하면 어떻게 사냐. 자, 고생들 많았다!”
“멘토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탁기준과 팀원들이 정신없이 술을 마시는데, 앞자리에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새치름한 표정을 한 서희주 선배였다.
탁기준의 그녀, 서희주 카피라이터.
그녀는 계속 우리 테이블을 바라보며 맥주잔을 홀짝거렸다.
탁기준은 아예 서희주 쪽으로 의자까지 돌려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난리가 났다.
‘저 때부터 서로 좋아했었구나. 좋을 때다.’
눈을 맞추든 말든 내버려 두고 대학생들끼리 죽도록 달렸다.
회귀 후 제일 신나는 걸 꼽자면 젊어진 술자리였다.
그 전엔 늙은이들끼리 바 구석탱이에서 위스키나 마시든지 소주 혼술로 외로움을 달래곤 했었다.
젊은 놈들이 노땅이라고 안 끼워줬거든.
이렇게 신나는 술자리가 얼마 만인지.
잔을 높이 부딪치며 죽을 만큼, 아니, 딱 죽지 않을 만큼 술을 마셔댔다.
청춘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지나기 전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 * *
출근하자마자 대표실에서 호출이 왔다.
“인턴1팀 모두 모이셨나요? 이쪽으로 오시죠.”
비서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대표실로 향하는 발길이 가벼웠다.
우리는 개선문을 지나는 군인처럼 당당하게 김철준을 찾아갔다.
“이쪽으로 앉지들. 축하해!”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래, 어제 뒤풀이는 거하게 했고? 우리 우승 팀이랑 차라도 한잔 같이하고 싶어서 불렀어.”
“상금 덕분에 정말 실컷 먹었습니다.”
김철준이 미소를 띤 채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광고주 김영석 대표가 아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군. 덕분에 나도 뿌듯했지. 정말 잘해줬어.”
“감사합니다.”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 기획부터 카피까지, 디자인도 상당히 좋더군. 젊은 친구들 기량이 이 정도구나 싶어서 솔직히 많이 놀랐어.”
“과찬이십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광고 수십 년 해온 선수들이지 인턴인가 싶었다니까? 나도 한 사람의 광고인으로서, 또 선배로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을 정도야.”
칭찬이 이어지자 한수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해했다.
“탁기준 멘토님도 많이 도와주시고 멤버들 합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한수철의 말에 김철준이 입가의 웃음을 거두었다.
“자, 치하는 충분히 했으니 지금부터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하는데?”
김철준이 그의 말에 긴장한 인턴을 돌아보며 시선을 명도혁에게 꽂았다.
도혁은 피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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