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09
108. 전당대회 (4)
2014년 1월.
“준호 씨, 의원님 드시게 도시락 좀 준비해줘요.”
“어떤 것으로 사 올까요?”
“그냥 간단한 것으로. 샌드위치 같은 거면 더 좋고.”
“네. 알겠습니다.”
보수당의 전당대회는 어느덧 중반을 넘었고, 오늘은 충청권 후보자 합동 연설회가 열리는 대전의 한 체육관에 나와 있었다.
“얼마나 남았어?”
한참 메이크업을 받던 정현석이 거울을 통해 지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습니다. 세 시에 시작되니 한 시간 반 정도 남았습니다.”
“이 시간만 되면 어디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의원님······.”
“아, 여기 선생님은 제가 이런 얘기한다고 어디 가서 말씀하실 거 아니죠?”
지훈이 메이크업을 해주는 미용 스태프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정현석은 스태프를 향해 되물었고, 스태프는 웃으며 자신은 없는 사람 취급하라고 말을 건네왔다.
“오늘 이후 경기지역과 전당대회 본 대회만이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힘내셨으면 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잠시 후, 화장을 마친 정현석은 최준호가 사 온 샌드위치로 간단한 끼니를 때우고 연설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대기실을 벗어나 행사장으로 향했다.
“오늘 더 많이들 오신 것 같은데?”
정현석은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 후보 지지자들을 바라보고는 지훈을 향해 물었다.
“나름 내 지역 기반인데 우리가 제일 적네.”
“어차피 ARS 위주의 투표가 될 예정인데 책잡힐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보였습니다.”
지훈은 합동 연설회에서 정현석의 명의나 혹은 계파원들을 통한 조직동원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정현석 또한 그렇게 해줄 것을 의원들에게 당부했었다.
보수당 당헌 당규상에도 전당대회에 관광버스를 전세해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 선거운동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래, 아이러니하게 지지율은 최하위인데 오태영 지지자들이 제일 많네.”
정현석은 관중석 한편에 제일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태영의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지훈을 향해 얘기했다.
“조직을 동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딱히 잡아내기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있나. 나는 나만 잘하면 되지 내가 괜히 말 꺼냈네 신경 쓰지 말자.”
잠시 후, 본격적인 합동 연설회가 시작되었고 정현석은 제일 먼저 후보등록을 마쳐 기호 1번을 부여받았고, 지금까지 열린 합동 연설회에서도 제일 먼저 연설을 해오고 있었다.
정현석이 사회자의 호명에 맞춰 단상에서자 관중석에서는 지지자들이 정현석의 이름을 크게 연호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지지자들답게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정현석의 이름을 외쳤다.
12분이라는 후보자별 연설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공 소리가 들리자 정현석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충청 당원동지, 대의원 동지 여러분! 그리고 충청도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충남 당양 사람 정현석 인사 올리겠습니다.”
정현석은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충청권 합동 연설회답게 자신이 충남 출신임을 강조하는 인사로 연설을 시작했고,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석은 이후로 충청지역에 대한 발전 공약들을 발표하고는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덮고 오로지 정면만을 주시했다.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올해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 우리 당이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습니까?”
정현석은 그렇게 운을 떼며 귀빈석에 앉아 있는 김무길 등 당 지도부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경제도 중요하고, 안보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치인들은 많은데! 왜! 불필요한 것들은 얘기하지 않는지 저는 불만이었습니다.”
지훈은 연단 위의 정현석을 바라보다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타이머에는 정현석의 남은 연설 시간이 3분여가 적혀 있었고, 충분하다고 생각한 지훈은 다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당원동지 여러분! 우리 당은 이제는 보수의 가치만을 대변하는 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국민이 생활 속에서 정치의 효능감을 느껴야 하는 이때 우리는 아직도 보수니 진보니 나누어져 갈등과 분열만을 하고 상대를 이념으로 낙인찍어 할퀴고 상처만을 내고 있습니다.”
정현석은 목청 높여 얘기하며 결연한 눈빛으로 정면을 주시했다.
“저 정현석은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저 하나 정치적 욕심으로 이기자고 나온 자리가 아닙니다. 제가 당 대표가 되면 낡은 이념 논쟁은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공언하겠습니다.”
발언 시간이 1분 남았다는 공 소리가 들리자 정현석은 마무리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창출시킨 정권에서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배웠습니다. 더는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제 한 몸 불쏘시개가 되어 우리 당이 앞으로 10년, 20년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올바르고 당원동지 여러분들이 남에게 당원이라고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정현식이 말을 끝내고 인사를 하자 연설 시간 종료를 알리는 공 소리가 체육관 안을 울렸고, 지지자들은 어느 때 보다 정현석이 자랑스럽다는 듯 목청껏 정현석의 이름을 연호했다.
**
며칠 후, 정현석 의원실은 아침부터 보좌진 회의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재산 형성과정에서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어. 문제는 장관직을 그만두고 기업의 사외이사로 가면서 연봉을 1억 5천만 원을 받았네.”
지훈은 박주미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박주미를 바라보았다.
“이사회가 몇 번 열리는지 확인해 보셨습니까?”
“작년 같은 경우는 여덟 번 열렸다고 되어있어.”
“그럼 1년 동안 여덟 번 참석하고 연봉은 1억 5천을 받았다는 거네요.”
“응, 아무래도 장관 출신이다 보니 인맥도 많고, 기업으로서는 얼굴마담 겸 대관 업무를 시키기 위해 고용한 게 아닐까 해.”
“글쎄 나는 다르게 보는데.”
박주미의 말에 김용일이 자신이 조사한 자료들을 모두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지훈 씨가 경제부총리 시절 정책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말라고 했는데, 뭔가 좀 걸려서. 그래서 한 번 조사를 해봤어.”
지훈은 김용일이 건넨 자료를 유심히 바라보며 김용일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경재가 경제부총리 시절 경제부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관광진흥법을 개정하자며 언론에 대고 계속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었어.”
지훈은 자신이 전혀 생각지 못한 법을 얘기해오는 김용일의 말에 자료를 내려놓고는 김용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생각납니다. 전 정권 초기에 강하게 드라이브 걸던 정책이었죠.”
“맞아. 그 당시에 충청산업 벨트 건 때문에 한창 시끄러웠던 때였는데. 기억하네.”
“어쨌거나, 학교 앞에도 유흥시설이 없는 특급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거였는데 실제로 충청산업 벨트로 정국이 시끄러울 때 잘 묻어가서 통과도 됐고.”
김용일의 말에 지훈은 눈을 번뜩이고는 김용일을 바라보았다.
“그게 사외이사로 임명된 기업과 연관이 있습니까?”
“맞아. 그 당시 제일 시끄러웠던 게 여중 앞에 특급호텔의 허가를 못 받아서 3년간 공터로 비워뒀다가, 토지를 매각한다는 소문까지 나왔었는데 그 법이 통과되면서 숨통을 틔었지.”
“확실히 이상하긴 합니다. 경제부총리가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언급한 것도 그렇고······.”
“맞아. 당시 대통령의 엄청난 신임을 받던 부총리여서 그런지 국무회의에서 이경재가 한마디 하니 문체부에서 바로 나서서 법안을 준비해 국회에 제출했지.”
김용일의 설명이 지훈은 구린내가 진동한다는 듯 씩 웃으며 김용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경재는 경제부총리의 옷을 벗고 한 달 후 바로 해당 기업의 사외이사로 들어갔고. 연봉이나 대우는 뭐 주미 씨가 말한 그대로고. 중요한 건 직무 관련성 심사도 받지 않은 거 같아.”
지훈은 김용일의 말에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김용일을 바라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거면 이경재의 도덕성을 건드릴 수 있는 충분한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군불 한번 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당장 발표할 수 있도록 자료를 바탕으로 제가 보도자료 준비하겠습니다. 김 수석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슨, 내가 할 줄 아는 게 정책 보는 거 말고 더 있나.”
지훈의 칭찬에 김용일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다들 지난 며칠간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이제 이 일에선 손을 떼고 본래 업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모두가 해방감을 느낀 듯했고, 막내는 기지개를 켰다.
“막내는 아직 아니야. 혹시라도 정론관에 자리가 안 날 수도 있으니까 예약 좀 해줘 오후 3시쯤으로.”
“3시면 너무 늦지 않을까?”
김용일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이 대충 다섯 시쯤 시작한다고 보고 언론사 마감 전이니 대충 그때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가 이경재에 대한 의혹 제기를 정현석이 직접 발표하기 위한 회견문과 보도자료 작성을 시작했다.
곧 시작되는 전 국민 대상 여론조사가 다가왔음에도 상대방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정현석에 대한 비위는 없는 것 같았고, 이쪽에서 먼저 움직이기로 생각했다.
“저 보좌관님.”
그때 자신을 부르는 막내 비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지훈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는 막내 비서의 모습을 보았다.
“왜? 무슨 일 있어?”
“말씀하신 시간대에는 정론관 예약이 어려울 거 같아요. 오후 시간대는 예약이 꽉 차서요······.”
“벌써? 예약명단 있어? 우리 당 의원님 있으시면 양보 좀 해달라고 내가 설득해 볼게.”
“네. 잠시만요.”
잠시 후, 막내 비서는 정론관 예약명단을 지훈에게 건넸고 지훈은 시간대가 겹치는 의원들의 이름을 찾다가 오태영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정론관에서 회견을 잘 하지 않는 양반이······.’
지훈은 오태영의 이름이 예약명단에 있는 것 자체가 찝찝하게 느껴졌다. 한참 고민을 이어나가던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현석의 방으로 향했다.
**
오태영은 자신의 의원실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예약해두었습니다.”
-하하, 거참 이르게도 하십니다. 정현석의 지지율은 계속해서 올라가는데 좀 더 일찍 나셨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드는군요.
“일전에 말씀드린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 의원님, 내가 당 대표가 되어야 오 의원이 산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오태영은 자신을 보채오는 이경재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한참 무엇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에 빠져있던 오태영은 노크 소리가 들리자 문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보좌진 뒤편에 정현석이 서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보좌진을 향해 나가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정 의원, 어쩐 일입니까?”
“오 의원님, 일단 자리에 좀 앉으시죠.”
오태영은 마치 자신의 방인 듯 말해오는 정현석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자리에 앉아 정현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경재 후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려고 합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보도자료로 준비한 서류 한 장을 오태영 앞에 내려놓았다.
“정 의원은 지지율 1위인데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하, 제가 지지율이 1위인 것과 전 경제부총리의 비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나에게 와서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정론관 예약이 꽉 찼더군요. 예약을 양보해주셨으면 합니다.”
오태영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정 의원! 나도 보수당의 당 대표 후보입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양보 해달라니요! 정 의원도 내가 우습게 보입니까?”
오태영은 억눌러져 있던 것들을 모두 쏟아내듯 정현석을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고, 정현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이 굳은 표정으로 오태영을 바라보았다.
“오 의원님의 모습은 한 정당의 대표 후보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예전의 항상 여유로웠던 오 후보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단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셨습니까?”
정현석이 자신을 향해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해오자 오태영은 아무런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이경재와 거래 하셨습니까? 자리를 두고요?”
“…”
“아마 오늘 기자회견은 저에 대한 어떤 것이겠죠.”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듯 얘기해오는 정현석의 말에 오태영은 정현석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저에 대한 어떤 의혹 제기라도 하십시오. 그리고 제발 오 의원님의 정치를 하십시오. 이젠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현석은 오태영을 바라보며 진심이 담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한 정당의 대표가 되기 위해 출사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할 것이 아니라 오태영이란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시란 말씀입니다.”
“…”
“다음 총선까진 2년이란 시간이 남았습니다. 제가 오 의원이라면 협잡이 아니라 국민의 눈에 들기 위해 최소한의 발악이라도 해볼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할 말이 모두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오태영을 바라보았다.
“저에 대한 의혹 제기 좋습니다. 제가 국민이 요구하는 도덕적인 모습을 벗어났다면 하셔야겠죠. 앞에 제가 하려던 기자회견문 놓고 가겠습니다. 잘 읽어보시고 오태영이란 사람이 정말 이 당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 밖으로 나가버렸고, 오태영은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