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15
114. 견월망지(見月忘指) (1)
2014년 2월.
예정보다 빠른 임시국회 소집을 위해 여야는 한창 의사일정을 위한 회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계류 중인 법안들 또한 크게 이견이 없는 민생법안들을 우선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류되어있는 법안의 숫자가 1만 개가 넘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물국회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재적 과반이 되지 못하는 여당인 진보당은 사민당에 손을 내밀어 쟁점 법안들을 처리하고자 했지만, 사민당은 오히려 진보당과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대표님! 도와주십시오.”
정현석은 평소와 같이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을 하는 길에 큰 목소리로 자신을 불러오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남자가 정현석을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는 애가 탄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도 농어촌 지역구 국회의원이지 않습니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아니, 강 의원님 다짜고짜 도와달라고만 하시면······.”
정현석에게 고개를 숙여온 남자는 보수당의 국회의원 강희성이었다.
“강 의원님 일단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대표실로 가셔서 얘기 좀 나눠보시죠.”
정현석은 자신의 주변을 따라다니는 기자들의 눈이 부담스러운지 강희성을 데리고 의원실로 올라왔다.
의원실로 들어오는 정현석의 곁에 강희성이 같이 있는 것을 본 지훈은 정현석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서서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나오셨습니까?”
“어, 나 강 의원님이랑 얘기 좀 나눌 테니 나중에 들어와요.”
“네. 알겠습니다.”
정현석은 강희성을 데리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 서로 마주 앉았다.
“강 의원님, 아침부터 이 무슨 소란입니까?”
“대표님, 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서 말입니다······ 지난 국회에서도 안 된다, 이번 국회에서도 안 된다고 하니 너무 속이 터져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정현석은 정말로 답답한 듯 말해오는 강희성의 모습에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는 강희성을 바라보았다.
“차라도 한잔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차근차근 얘기해주십시오. 뭐가 문제인 건지.”
정현석이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말해오자 강희성 또한 답답해하던 표정을 풀고는 미리 준비한 듯 가방 안에서 서류를 뭉텅이로 꺼내기 시작했다.
“이 서류는 나중에 보시라고 두고 가겠습니다. 핵심은 이거 한 장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서류를 건네는 강희성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았다.
품속의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든 정현석은 안경을 쓰고는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서류는 법률 제정안의 요약본인 것 같았다. 정현석이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이자 강희성은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방에서는 공공 의료대학의 신설이 너무나도 절실합니다.”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강희성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현석은 서류를 내려놓고 강희성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 대표님께서도 농어촌 지역이 얼마나 의료낙후지역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의료기관의 필요성을 지훈에게 배웠고 지역구에 성산의료원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다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제 지역구 서창군에는 공공병원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민간 병원도 없습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그렇습니다만 말 그대로 아프면 죽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습니다.”
정현석은 가만히 집중하며 강희성의 말을 듣고 있었다.
“거기다가 고령의 주민들이 대다수다 보니 뇌혈관 질환부터 심장질환까지 목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질환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지역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이송합니까?”
정현석이 자신의 의견에 관심을 가지자 강희성은 신이 난 듯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대구로 이송합니다.”
“대구요?”
“네. 경남이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경북과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보니 대구가 더 가깝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걸립니까?”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은 걸립니다.”
“음······. 확실히 문제가 있네요.”
“예! 대표님, 거기 요약본에도 나와 있지만, 수도권 같은 경우는 뇌혈관 질환 환자 사망률이 0.9명입니다. 하지만 제 지역구 같은 경우는 1.37명으로 전국에서 사망률이 제일 높습니다.”
정현석은 꽤 심각한 표정으로 강희성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또 다른 자료를 보시면 수도권 지역의 경우는 중증질환자가 지역 내 병원에 입원해서 진료를 받는 비율이 93%입니다만, 우리 지역이 속한 지자체는 30%에 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역 내에 중증환자를 입원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이 상대적으로 적을 테니까요.”
“네. 그러니 제가 준비한 공공 의대 설립 법안이 시급한 겁니다.”
정현석은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강희성을 보며 아이러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 알겠습니다만, 공공 의대보다는 복지부에 찾아가 지역에 공공병원 설립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대표님 말도 마십시오. 보건복지위가 상임위인 제가 그것도 안 해 봤겠습니까? 벌써 7년째 제가 요구하고 있습니다. 겨우 요구가 받아들여져 사업계획 용역을 주고 조사에 들어갔는데 결과가 의료인 지원이 적을 것 같다는 심사평이 나왔다고 합니다.”
정현석은 강희성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예! 시골에 누가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정말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수가 적어 종합진료병원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요.”
“그래서 이 법안을 발의하셨고요.”
“예. 저는 이 법안을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발의했고 이번 국회에서도 발의했습니다만 지난 국회에서도 쟁점 법안이라며 안된다고 하고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쟁점 법안이라는 이유로 기다리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여기 가져오신 요약본을 보면 우리 당을 넘어서 진보당과 사민당 하다못해 대안당 의원들까지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쟁점이라니요?”
정현석은 아이러니하다는 표정으로 강희성을 향해 되물었다. 초당적으로 참여하는 의원들이 많은 법안인데 쟁점 법안으로 밀렸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들 전부 저처럼 의료 낙후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계신 의원분들입니다. 왜 쟁점 법안이냐고 물으셨죠?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계시는 의원님들은 이 법에 관심이 없어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이해관계자들뿐입니다.”
“반대하는 의원님들은 그럼······.”
“예! 의료계 출신 국회의원들이나 관련 단체에 입법 반대 로비를 받으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골치 아프네요. 관심에 멀어진 법안인데 또 그 안에서는 찬반이 갈린다니 말입니다.”
정현석은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이런 복지법안이야말로 해당 지역에는 절실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수도권과 지방 광역시에 몰려 생활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공감대를 얻기가 힘든 법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영식 원내대표께 말씀드려보셨습니까?”
“예. 제가 찾아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옴과 동시에 반대하시는 분이 이영식 원내를 찾아가더군요.”
정현석은 이영식 원내대표가 쟁점 법안 치부해버리는 것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대표님 저는 정말 절실한 심정으로 대표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 지역에 사시는 노인들 하루건너 하루 뇌혈관이 터져 죽습니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아보고 이송 도중에 죽어요. 저를 보지 마시고 의료낙후지역민들을 생각해서 한 번만 힘 써주십시오.”
정현석은 강희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의 답이 떨어지자 강희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강 의원님 저보다 연배도 높으신 분이 이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보다 확실한 의지를 모아주십시오.”
“의지요?”
“예. 국회의원들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럼 어떤······.”
“시도지사협의회를 이용하시지요.”
“시도지사협의회요?”
정현석의 말에 강희성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쟁점 법안이 아닌 사람을 살리기 위한 법이라는 것부터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낙후지역 도지사에게 건의해 시도지사협의회가 언론을 통해 입장문이라도 발표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공론화를 원하시는군요.”
“네. 뭐라도 공론화가 되어야 제가 말할 명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강희성은 정현석의 말에 고개를 주억였다.
“자, 그럼 저는 곧 최고위원회가 열려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대표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 오늘 오후에 국회에서 간담회가 열립니다.”
“간담회요?”
“네. 이미 공청회는 여러 차례 진행했지만, 이번 임시국회 내에 통과를 바라는 마음에 간담회를 준비했는데 여전히 관심 밖이긴 합니다.”
“저는 오늘 일정이 안되니 제 보좌관을 보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강희성은 그렇게 말하며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는 정현석의 방에서 떠났고, 강희성이 떠나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정현석이 들어오라고 말하자 지훈은 보고 파일을 들고는 정현석의 방으로 들어왔다.
“대표님, 오늘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 하실 연설문입니다.”
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보고서 파일을 건네왔고 정현석은 그런 지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안 궁금하냐?”
“네?”
“강희성 의원이랑 같이 들어온 이유 안 궁금해?”
“궁금합니다. 하지만 방을 나오시는 강희성 의원님의 표정이 매우 밝으셨습니다. 대표님께서 판단하신 일인데,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묻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정현석은 그렇게 말해오는 지훈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강희성에게 받은 문서를 건넸다.
“이거 내가 해주기로 약속했는데 한 번 조사해볼 수 있지?”
“해주기로 하셨다면?”
“이번 임시국회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어. 너는 반대냐?”
지훈은 정현석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공공을 위한 일인데 반대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니, 나는 네 의견 안 물어보고 해준다고 해서 혼날 각오 하고 있었는데.”
지훈은 정현석의 농담에 웃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말씀드렸듯 저는 길잡이일 뿐입니다. 대표님께서 하겠다고 하시면 그 방법을 마련하는 사람이고요. 앞으로는 이렇게 그냥 명령만 하시면 됩니다. 다만, 공론화가 먼저 필요할 것 같은데······.”
“아, 그거 시도지사협의회 이용 한번 해보라고 충고했어.”
“시도지사협의회요?”
시도지사협의회는 지방 광역단체장들의 협의체였다. 법적으로 필요한 협의체였고 시도지사들이 뽑은 대표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도 참가하고 있었다.
회의에서 각 지방단체의 민원을 협의하고 지방단체 발전을 위해 국회와 중앙정부에 방안이나 의견을 전달했다.
“그래, 거기 이용해서 입장문이라도 내보도록 하라고 했어.”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들어도 꽤 괜찮은 공론화 과정이었다. 결국, 수혜를 보는 쪽에서 먼저 나서줘야 정현석이 움직일 명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훌륭하십니다. 꽤 괜찮은 방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지훈의 칭찬에 정현석은 활짝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이야. 나도 국회 생활 헛 한 건 아니네. 우리 김지훈 보좌관 칭찬도 다 받아보고. 오늘 오후에 간담회가 있다니까 거기 한 번 가봐. 언제쯤 보고받을 수 있을까? ”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최고위원회 들어가시면 바로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늦어도 임시국회 개의 협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김 수석이랑 나눠서 해 또 혼자 하지 말고.”
“네. 아무래도 정책 쪽 일이다 보니 김 수석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훈은 정현석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정현석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이용해 해당 법안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의료 낙후지역에서 이송 도중 사망률이 꽤 높네.’
지훈은 지방 인터넷 신문사들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의료 낙후지역 언론을 제외하면 이 부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 한 번 움직여볼까.’
생각을 마친 지훈은 옷을 챙겨 입고는 김용일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김 수석님, 이거 한번 보시겠습니까?”
김용일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지훈이 건네온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공공 의대?”
“네. 대표님께서 이번 임시국회에 처리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다는 건 상임위에 계류 중이라는 거네?”
“네. 아까 나가신 강 의원님께서 대표님 찾아오신 이유가 그 법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알겠어. 한번 검토해볼게.”
“네. 저는 국회도서관에서 자료 좀 검토한 후 오후에 열리는 간담회에 참석하겠습니다.”
“그래. 조사 끝나면 아침 회의에서 의견 교환하는 거로.”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지훈은 김용일에게 인사를 건넨 이후 의원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