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
013. 국회의 꽃, 국정감사 (3) >
아침 일찍 의원실로 들어선 박주미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멍한 눈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지훈을 발견했다.
“어머! 자기 설마 집에 안 갔어?”
지훈은 들려오는 소리에 양손으로 눈을 비비곤 그대로 기지개를 켰다.
“아, 박 비서님 오셨어요.”
“김 비서, 자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우리 인턴까지 고용했는데.”
“어떻게 인턴 시킵니까. 근로기준법이 있는데. 막차 끊기기 전엔 애들 보내줘야죠.”
지훈은 이전의 삶에서부터 인턴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다.
자신이 인턴 출신이라 그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곳이지만 그들을 위한 법은 없었다.
국회 의원실 노동자 중 제일 불쌍한 존재가 인턴이라는 존재들이었다.
근로기준법? 그냥 고용계약서에만 적혀 있는 형식적인 것이다.
보좌관들과 비서관들의 직급차별은 물론이거니와 모시던 의원이 직을 상실하기라도 한다면 그냥 해고였다.
“참, 그러면서 자기 몸은 함부로 쓰네?”
“제가 맡은 일인데, 제가 해야죠. 저도 지금 목숨 걸린 내기 중입니다.”
지훈의 말에 박주미는 윤성준과 대거리하던 지훈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가서 씻고 와, 곧 다들 출근하겠다.”
박주미의 말에 지훈은 그러겠다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 1층에 있는 국회 샤워실로 향했다.
지훈은 샤워시간이 길었다.
그 시간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샤워시간은 지훈에게 있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흐르는 물을 맞으며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 지훈이었다.
한참 여러 가지 잡념을 털어내고, 새로운 긍정적인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채운 지훈은 샤워실 밖으로 나와 몸을 닦아내고 있었다.
“힘들지요?”
옆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지훈은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지훈의 시선이 닿는 곳에 조재만이 서 있었다.
지훈은 순간 미치는 분노와 메스꺼움에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허허, 초임인 거 같은데. 국정감사 기간에는 원래 다 죽어나요. 젊은 친구 고생해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배어있는 서울말로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 나가는 조재만에게서 지훈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지훈은 지금이라도 옷을 챙겨 입고 있는 조재만을 쫓아가 얼굴에 주먹이라도 한 대 갈겨버리곤 왜 그랬냐 묻고 싶었지만, 이내 화를 삭인 지훈이었다.
‘후···. 조재만이 샤워실을 자주 사용한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어.’
조재만은 사우나 같은 대중목욕탕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의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국회 목욕탕 대신 샤워실을 자주 사용했었다.
지훈은 옷을 차려입고 탈의실을 빠져나가는 재만의 뒷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복수할 수 있을 때까지 숨죽인 듯 살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정현석, 정현석이 힘을 키울 때까지만 기다려라, 조재만 너는 꼭 내 손으로 보낸다.’
**
계절도 어느덧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지훈은 국정감사를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을 최종으로 확인했다.
오늘 국토해양위원회의 첫 국정감사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훈이 원한 증인 신청도 받아들여졌는데, 이것은 보수연이 원내 교섭단체가 되어 위원회 간사직을 가져온 이유도 있었고,
윤성준이 어디 한번 네 맘대로 해보라며 중앙당에 요청해서 증인이 채택되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어휴, 나는 저런 사람들은 왜 하나 같이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지 모르겠네.’
지훈은 윤성준이 자신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치적 업무를 오래 한 사람의 기본자세는 상대방을 낮잡아 보는 것이었으니까.
‘네가 정치에 대해 뭘 알아!’ 같은 뭐 그런 거.
지훈은 수행비서인 최준호의 도움을 받아 국정감사에 필요한 자료들을 이사용 상자에 담아 차로 옮기고 있었다.
세 상자를 연달아 옮긴 지훈은 허리를 펴며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야, 김지훈!”
지훈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장영수!”
“야, 얼마 만이냐 이게. 보자 졸업하고 1년 조금 넘었네.”
지훈은 자신을 보고 반갑다는 듯 한달음에 달려온 장영수와 악수하다가 장영수를 끌어안았다. 지훈의 포옹에 장영수는 당황한듯했지만 반가움의 표시겠거니 생각했다.
“너, 설마 진짜 국회 들어왔냐?”
“그래, 정현석 의원실 9급 비서야.”
“와, 이 자식 새내기 때부터 정치인이 꿈이니 뭐니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은 국회에 한발 걸쳤다?”
지훈은 7년 전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장영수가 대단해 보였다. 지훈과 영수는 자리를 옮겨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본격적인 대화를 했다.
“너는? 너는 요즘 뭐하냐?”
“기다려봐.”
장영수는 그렇게 말하고선 낡은 가죽 크로스백을 한참 뒤지더니 꾸깃꾸깃해진 명함을 지훈에게 건넸다.
“한성경제신문? 너 여기 기자 됐냐?”
“아직, 수습이야 인마.”
지훈은 장영수의 미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놀랐다는 듯 장영수에게 말했다.
“야,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 경제지인데. 공부 열심히 했나 봐?”
“말도 마, 뒤지는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수습 딱지는 언제 떼?”
“글쎄다. 뭔가 좋은 소스 없냐? 수습기자라고 의원실에서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지훈은 그렇게 말해오는 장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장영수가 이번 삶에서는 좀 더 빠르게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국정감사가 시작될 거고···. 어차피 나갈 보도자룐데, 단독으로 영수에게 줘야겠다.’
“영수야, 너 단독 소화할 수 있어?”
“다···. 단독?”
지훈의 말에 장영수는 놀란 표정을 짓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큰 거야?”
“이번에 웅천시에서 일어난 해일 인명사고 그거에 관한 거야. 소화할 수 있어. 없어?”
“야, 야 잠시만 기다려봐.”
장영수는 그렇게 말하고선 바로 전화를 꺼내 들었다.
“선배, 장영수입니다. 정현석 의원실 쪽에서 이번 웅천 인명사고 사건 단독 소화할 수 있겠냐고 물어와서요. 예···. 예예. 소스는 확실합니다. 의원실에 제 동기가 있습니다.”
지훈은 전화하는 장영수를 한참 기다렸는데, 전화 속 상대방이 사수인지 두 손 공손히 전화기를 떠받들고 통화하는 장영수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자료, 받을 수 있어?”
“그래, 어차피 오늘 국정감사 때 터뜨릴 거야.”
지훈은 전화를 끊은 장영수가 물어오자 대답을 해주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보자···. 4시간 안에 소화해야 해.”
“자료 주라, 선배가 받아서 바로 본사로 날아오란다.”
지훈은 다시 차로 돌아가 상자에서 보도자료 뭉치를 꺼내 한 부를 영수에게 건넸다.
“확실하게 하자, 기사 중간에 우리 영감님 사진 박고, 우리가 제공했다고 적고 그렇게만 해주면 단독 타이틀 달아도 좋아.”
“야, 지훈아 나 이번에 정식기자 달면 이 은혜 안 잊는다. 고맙다.”
장영수는 그렇게 말하고 부리나케 뒤돌아 뛰어갔다.
지훈은 그런 영수의 모습을 보며 이전 삶보다 더욱 깊숙이 영수의 삶에 개입하게 된 것 같아 불편했지만,
이전과 같은 나쁜 방향은 아닌 거 같아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
과천에 있는 국토해양부 회의실에는 산하 기관장들과 증인들이 먼저 도착해 배석하고 있었다.
지훈은 오늘 정현석과 함께 국감장에 자리했다.
의원 배지를 단 이후 처음으로 같이한 공식 일정이었다.
감사위원인 국회의원 뒤에 앉아 필요한 자료를 건네주는 직원이 필요했는데.
대개 인턴 한 명과 함께 5~6급이 동행했지만,
정현석 의원실의 특성상 지훈이 동행하였다.
곧 위원회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이 입장했고,
위원장이 자리에 앉아 감사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부터 헌법 제61조, 국회법 제127조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국토해양부에 대한 2008년도 국정감사를 실시할 것을 선언합니다.”
감사 실시 선언이 있고 난 뒤 국토해양부 장관이 증인을 대표하여 선서하였고,
업무 현황보고를 시작했다.
“야, 내 차례 언제냐?”
지훈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속삭이는 현석을 바라보았다.
“그, 순서는 다섯 번째이신데요. 아마도 한 시간쯤···.”
“거, 시펄 졸라 지루하네.”
“자료 좀 외우고 계십시오.”
“이미 머릿속에 다 넣었어 새꺄, 오히려 지루해서 까먹을까 걱정···.”
“거! 정숙하세요! 동료의원이 의사 진행 발언 중입니다!”
현석과 지훈의 대화를 보고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숙덕거렸는지 모르겠지만 위원장의 호통이 떨어지자 현석은 마치 ‘시발’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곤 돌아앉았다.
지훈은 잠시도 못 참는 현석을 보며 성인 ADHD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고 나서 드디어 기다리던 현석의 차례가 돌아왔다.
시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주 질의 시간 10분, 추가 질의 5분을 합쳐 15분의 시간을 적절하게 배분해야 했다.
지훈은 그것을 다 고려하여 대본을 써 넘겼으니 공은 현석에게로 돌아갔다.
“충청남도 당양군 정현석 위원입니다. 장관께 질문하겠습니다. 웅천시 향도에서 일어난 해난사고 기억하시죠?”
현석의 질의 시간이 시작되고, 현석은 먼저 장관에게 질문했다.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해양연구원장 나오셨죠? 해양연구 원장께도 똑같은 질문 하겠습니다. 기억하시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관, 이 사고가 자연재해로 일어난 사고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웅천시 재난대책본부에···.”
“아뇨, 웅천시 말고 국토해양부 의견도 똑같습니까?”
“네, 동일합니다.”
“근거 있습니까?”
“그···. 근거가···.”
“자연재해라고 확신하셨으면서 근거는 없습니까?”
“아무래도 주무 부처가 아니다 보니, 자료 준비가···.”
“장관님! 자료도 준비 안 됐으면서 어떻게 확신을 합니까!”
현석은 갑자기 장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 저놈의 과몰입···.’
지훈은 또 과몰입하기 시작한 현석을 보며 조금 톤을 다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자료들을 살펴보던 다른 국회의원들마저 현석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해양연구원장님, 자연재해에 대한 근거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연구원 측에서는 먼바다에서 일어난 너울성 파도가 근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자료 준비되어있습니까? 제가 그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는데 연구원에서는 넘겨주지를 않았어요.”
“그 부분은 저희 측에서도 아직 자료가 준비되지 않아···.”
“아니, 제가 자료를 요청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자료가 준비가 안 됐답니까?. 예?”
현석의 말에 연구원장은 자료를 곧 제출하겠다고 말하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증인 신청을 했었는데요, 이주환 증인 출석했습니까?”
지훈이 한국대학교 교수 이주환을 찾자, 이주환은 마이크를 넘겨받고 대답했다.
지훈은 관련 자료를 담은 커다란 패널을 현석에게 넘겼다.
“이주환 증인, 한국대학교 기상학과 정교수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사건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 산둥반도에서 일어난 30노트 이상의 해상풍 대(帶)가 관측되었습니다. 맞죠?”
“네, NASA에서 운용 중인 연구용 인공위성에 그렇게 관측되었습니다.”
“그리고 12시간 후에 제주도에서 동일한 속도의 해상풍이 발견된 것도 맞고요.”
“네, 맞습니다.”
현석은 지훈이 준 대본을 읽지도 않고 훌륭하게 주환과 질문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럼 이를 근거로 이 해상풍 대가 웅천 앞바다에 영향을 줘서 이번과 같은 해일에 의한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30노트의 해상풍 대는 최대 6m 이상의 파도를 동반합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다시 해양연구원 원장께 여쭙겠습니다.”
아까 현석에게 한 번 당한 해양연구원 원장의 표정엔 긴장이 가득했다.
“제가 봤을 땐 이렇게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보니, 자연재해가 맞는 거 같은데 기상청의 발표는 왜 다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구조물이 원인이라고 하는 근거도 사실 없습니다.”
“정현석 의원, 1분 남았습니다, 추가 질의 시간 쓰세요.”
현석의 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위원장이 확인해줬다.
이제 승부수를 던져야 할 타이밍이다.
끝
ⓒ 네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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