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4
014. 국회의 꽃, 국정감사 (4) >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 동료 여러분, 그리고 국토해양부 장관님. 저는 이 사고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현석은 시선을 여러 사람에게 돌리며,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첫째, 기상청의 기상예보만 있었더라도, 둘째론 웅천시의 시설관리가 제대로만 되었더라도, 셋째론 여기 있는 해양연구원이! 제 일을 똑바로 했더라면 안타까운 국민 일곱 명의 목숨을 떠나보내고서 수습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훈은 현석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준 질의서긴 했지만, 그걸 현석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달랐다.
현석의 진심이 담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관계 기관과 부처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책임지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떠넘길 수 있을까?’ 같은 잔머리들만 굴리고 있단 말입니다. 해양연구원장에게 묻습니다.”
현석이 해양연구원 원장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지난해, 해당 지역 외해에 해저 수중 관측장비를 설치하기 위해서 사업을 시행했고, 사업비가 실제 지출되었습니다. 이번에 그 자료 조사했습니까?”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폭풍해일, 지진해일을 연구한다고 되어있습니다. 맞죠?”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사고가 일어난 지 4개월이나 지났는데 조사가 안 되고 있습니까! 네?”
현석의 추궁에 해양연구원 원장은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장관님, 해안에서 일어나는 해일 대비시스템에 관해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한 지 2년 지났습니다. 성과 있습니까?”
“그것은 저희가 현재 연구용역을 준 상태입니다.”
“2년 전에 연구 용역비가 지급됐는데, 아직 연구 결과도 안 나왔습니까? 정말 세금 이렇게 쓰실 거예요?”
현석의 물음에 장관의 얼굴엔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
“장관님, 지금이라도 해당 연구에 대한 감사를 철저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제가 시간이 다 되어서 그러는데. 다음 국정감사 때 해당 부분 확실하게 확답받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해양연구원장님도 연구자료 꼭 제출해주세요.”
현석이 위원장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하며 마이크를 밑으로 내리자 위원장도 수고하셨다며 칭찬의 말을 건넸다.
현석은 자신의 뒤에 앉은 지훈을 향해 돌아보며 아주 작게 ‘나 잘했냐?’라고 물었고, 지훈은 그런 현석의 물음에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
“한편, 기상청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책임자의 엄중 문책과 동시에 청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의원실 중앙에 켜져 있는 티브이에서는 현석의 국정감사 장면이 뉴스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네네, 저희 의원님이 내일 라디오 일정이 있으셔서요. 네 스튜디오는 안되고 전화로···.”
지훈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제 한성경제신문의 단독기사가 뜬 후 국정감사에서 현석이 질의한 게 9시 뉴스 한 꼭지로 나가면서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부터 주류 언론의 지면 인터뷰까지, 몇몇 약속들을 잡았다.
‘어우, 이럴 땐 홍보 담당 그냥 하나 뽑았으면 좋겠네.’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트위터에 접속했다.
어제 있은 국정감사 질의들을 카드뉴스로 만들었고, 트위터에 올렸다.
‘팔로워 260명···. 늘긴 늘었네.’
하루하루 십여 명씩 늘어가는 팔로워 숫자에 뿌듯하긴 했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게 어디 가겠나,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지훈이었다.
어쨌든, 첫 국정감사를 통해 성공적인 데뷔를 한 현석이었지만 의원실의 분위기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여전히 자존심을 지키며 앉아 있는 윤성준과 김용일 때문이었는데.
인턴들마저 지훈과 그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컴퓨터 자판 소리와 티브이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 만이 사무실을 가득 채울 때쯤 문이 열리고 현석이 들어왔다.
“의원님, 좋은 아침입니다.”
강승태가 현석을 보고 인사하자 정현석은 기분 좋은 미소를 강승태에게 지어 보였다.
“자, 다들 내 방으로 들어와요.”
정현석의 말에 사무실 모두가 일어나 정현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직사각형 모양의 회의 테이블에 모두가 자리하자 정현석이 입을 열었다.
“강 보좌관님 수고했습니다, 김지훈도 수고했고. 우리 막내들도 수고했어. 그리고 이거 받아.”
정현석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사무실 인턴과 입법보조원인 막내들에게 건넸다.
“저기 있는 김 비서가 너희가 제일 수고 많았다고, 금일봉이라도 한번 쏘라고 해서 주는 거니까 나 말고 쟤한테 고마워하고.”
정현석이 그리 말하자, 봉투를 받아든 막내들은 정현석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지훈을 바라보았다.
‘좀 그냥 본인이 쿨하게 준다고 하지.’
지훈은 막내들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자,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 우리 윤 보좌관님도 수고 많으셨고, 청산해야 할 게 있지 않나?”
정현석이 윤성준을 바라보며 그렇게 얘기하자, 윤성준은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우리 윤 프로가 표정을 왜 그렇게 지으실까? 그날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내가 못 들었을 거 같아요?”
그제야 윤성준은 정현석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테이블 아래에 있는 윤성준의 손은 주먹을 꽉 쥐고 떨림을 멈출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윤성준은 마음먹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강승태와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승태 수석 보좌관님, 그리고 의원님 제가 그동안 건방졌습니다. 죄송했습니다.”
“아이고, 윤 보좌관 고개까지 숙일 필요 있나. 괜찮아요, 괜찮아. 사람 사는데 다 똑같지”
강승태는 윤성준의 사과에 부담스럽다는 듯 말을 꺼냈지만, 정현석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윤 보좌관, 쟤한텐 왜 사과 안 해?”
정현석이 고갯짓으로 김지훈을 가리키자 성준은 노골적으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김 비서, 내가 미안했습니다.”
윤성준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자 지훈은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내기에는 자신에게 사과하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자, 아직 국정감사 첫날이 지났을 뿐이니, 며칠간 다들 수고 좀 해주세요. 나가보세요.”
정현석이 그렇게 설명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지만, 지훈은 나가지 않고 있자 현석이 물었다.
“뭔데, 넌 왜 안 나가.”
“공고 새로 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뭐가, 무슨 공고?.”
“4급 정책 보좌관 말입니다. 윤 보좌관님 아마 사표 가져오실 겁니다.”
“그래, 뭐 그것도 괜찮네.”
지훈은 참 속 편한 소리를 하는 정현석에게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전 안 주십니까?”
“뭘?”
“인턴 애들 챙겨주랬더니, 진짜로 애들만 챙겨주셔서 저 서운했습니다.”
“하하, 새끼 점점 맞먹으려고 하네. 넌 기다려봐 내가 휴가 때 좋은 선물 하나 주려고 생각 중이니까.”
지훈은 농담 섞인 투정을 정현석에게 하고선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정현석의 방 밖으로 나왔다.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분위기를 살피니 윤성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훈은 자리로 가 옆자리에 있는 박주미에게 물었다.
“윤 보좌관님 어디 가셨어요?”
“모르겠어, 의원님 방에서 나오자마자 휙 나가시던데.”
지훈은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원인 제공자는 분명 윤성준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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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윤성준은 정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원실을 떠났다.
윤성준이 사무실을 떠나자 눈치를 보던 김용일은 지훈에게 다가갔다.
“지훈 씨, 밖에서 나 좀 보자.”
지훈은 자신에게 대화를 청하는 김용일을 따라나섰다.
의원회관 각층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서자 김용일은 곤란한 표정으로 지훈에게 말을 꺼냈다.
“지훈 씨, 내가 미안했어.”
다짜고짜 자신에게 사과하는 김용일의 말을 지훈은 듣고만 있었다.
“지훈 씨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나가면 어디 가겠어. 윤 보좌관님이야 지금 관둬도 연구소니 어디니 가시겠지만···.”
“김 비서님 저한테 사과하실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지훈 씨, 나도 국회 밥 8년 먹었어. 이젠 눈치만 봐도 영감님이 누구 말을 제일 신뢰하는지 알고 있다고.”
지훈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듯한 태도의 김용일을 보면서, 하루아침에 변한 태세에 당황스러웠다.
“지훈 씨가 의원님한테 잘 말씀드려서 나 좀 밀어주라. 자기 입장에서도 새로운 사람이 와서 또 윤 보좌관님처럼 안 그러란 보장이 없잖아?”
용일은 말을 에둘러 했지만 누가 봐도 윤성준의 사퇴로 비어버린 4급 자리에 자신을 추천해달란 소리였다.
지훈은 그 말에 고민에 빠졌다.
‘그래, 김용일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움직이기 편하지.’
지훈은 그리 오래 고민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김용일에게 말을 꺼냈다.
“김 비서관님이 생각하시는 거 만큼 제가 힘은 없지만, 의원님께 말씀 잘 드려보겠습니다.”
지훈이 그리 말하자 김용일은 세상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지훈 씨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고맙지!”
**
다음 날 아침, 여전히 국정감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사무실 직원 모두가 피골이 맞닿은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윤성준이 사표를 내고 나가버리니 업무의 강도가 더 올라버렸다.
모두 일에 집중하는 사이 의원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국정감사에 요청하신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 예예 여기 앉으세요.”
들어온 사람의 말에 승태가 자리로 안내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정현석 국회의원실 수석 보좌관 강승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국토해양부 건설정책국 과장 고진규입니다.”
강승태와 고진규가 인사를 나누고 있자.
담당 실무자들이 자료를 의원실 직원들에게 건넸다.
지훈은 별일 다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자료를 요구하면 팩스나, 이메일로 발송하거나 6급 담당자가 들고 왔지 3, 4급 과장이 들고 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저, 혹시 더 요구하실 자료 있으시면 꼭 저한테 연락해주십시오. 국정감사 때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예 걱정하지 마세요. 살펴 들어가요.”
강승태가 그렇게 그들을 배웅하자 별일이라는 듯 얘기했다.
“아이고, 군의원 할 때 군에 지원 좀 해달라고 그렇게 만나자고 해도 안 만나주던 양반들이 별일이 다 있네.”
지훈은 이유를 얼핏 알 것 같았다.
‘그날, 우리 영감님에게 깨지고 들어가서 밑에 사람들 갈궜나 보네.’
장관이 국정감사 첫날, 초선한테 깨지고 들어간 게 불편했었는지 고위직을 시켜 살살 좀 해달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었다.
어차피 첫날 너무 몰아붙인 탓에 남은 국감 일정에서는 현안질의 위주로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수위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들이 먼저 찾아와 이렇게 숙이고 돌아간 후 수위가 약해지면 저들 입장으로선 효과가 있었다는 느낄 것이고,
다음번 이쪽에서 협조를 구할 때 편해지므로 지훈은 기분이 좋았다.
“강 보좌관님,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나쁘진 않네요, 허허.”
지훈의 물음에 강승태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지 싱글벙글 웃었다.
강승태와 짧은 얘기를 나눈 지훈은 자리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메모장에 적어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정현석 국회의원실입니다. 웅천시에서 사고를 다시 조사하기로 했어요.”
-아이고, 안 그래도 한번 찾아가야 하나 했어요.
“이제 더는 국회 나오지 마시고 집에서 편히 쉬고 계세요. 저희가 계속 챙길게요.”
이후로도 여러가지 얘기를 한 지훈은 유가족과 통화를 끊고 감회가 새로워져 왔다.
마음 한편으로 자신도 이 사고를 정현석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이용한 게 아닐까.
죄책감이 들었는데,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좀 털어내도 되겠단 생각을 한 지훈이었다.
끝
ⓒ 네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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