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38
137. 정현석 의원실 (2)
“…준호가 가져온 정보입니다.”
“준호가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왔다고? 아니 그 전에 경제부총리 후보자 낙마는 네가 이미 보고한 거잖아? 기업 대관팀에서 우리 쪽 접촉을 시도하는 것도 이미 너한테 다 들은 거고.”
지훈에게 보고를 받은 정현석은 의문스럽다는 듯 지훈을 향해 되물었고, 지훈은 웃으며 정현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호가 처음으로 정보를 가져와 회의시간에 주도적으로 입을 열었는데 ‘이미 아는 정보야’하고 단칼에 잘라버리면 다음부터 준호는 입 못 열 겁니다.”
“얼씨구, 애 키워?”
지훈의 말을 들은 정현석은 농담을 던지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요즘 이승호가 나한테 하는 말이 있는데.”
지훈은 가만히 정현석을 바라보았고, 정현석은 신이 난다는 듯 연신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방은 직원들이 어떻게 그리 오래 일하냐는 거야. 내가 그 말을 듣고 그런가? 싶어서 다른 의원들한테 물어보니까 막내가 9급으로 4년째인데 다른 방 같았으면 진즉에 도망갔을 거라고 하더라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그건 그럴 거 같더라.”
“네. 국회 9급은 일반 행정직 9급이랑은 다르니까요······ 아무래도 자기 생활이 없다는 게······.”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다들 어떻게 버틸까하고 요 며칠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오늘 네 말을 들으니까 답이 나오네.”
“내리신 답이 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알면서 묻는 거야? 너 말이야 우리 의원실에서 너의 역할때문이라고.”
“저요?”
“그래. 일은 제일 많이 하지, 아래 직원들 기 살려주느라 팔자에도 없는 연기까지 하고 있지. 장태진은 아직도 너 달라고 난리다.”
진보당의 장태진은 여전히 정현석을 향해 지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보내 달라고 한 번씩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얘기를 꺼냈고, 그때마다 정현석은 웃으며 넘기고 있었다.
“올해가 마지막이야.”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국회 생활도 올해가 마지막이니까 의원실 식구들 조금만 더 너한테 맡겨도 되겠냐?”
“대표님께서는 모두가 각자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내는 보좌진을 원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만큼은 하지 않아도 좋아. 다만, 어디 가서 ‘정현석 보좌진 출신은 저렇게 일하는구나 일 정말 잘하네.’ 소리 들었으면 좋겠어.”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지훈은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이미 우리 의원실 직원들은 모두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지난 몇 년 대표님을 만든 것은 대표님의 개인 능력일 수도 있지만, 의원실 보좌진 모두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기 때문입니다.”
“알고 있어. 다만······.”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큰일을 하게 되셨을 때 이 식구들이 계속해서 대표님의 일을 돕길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게 모르게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더욱 성장할 거고요. 그 성장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돕겠습니다.”
“그래. 내가 원하던 답이었어.”
정현석은 만족스러운 듯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래, 더 보고할 거 있어?”
“설 귀향 인사 일정이 설 연휴 시작 전날 서울역으로 잡았다고 중앙당에서 알려왔습니다.”
“음, 그래. 대신 이번에 정부 실책 비판하는 전단은 준비하지 말라고 해.”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지훈의 표정을 살피자 지훈은 궁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분 좋게 고향 내려가는데 다른 사람 저주하고 망하라는 전단 보면 무슨 기분 들겠어. 그리고, 정부가 못하는 게 있으면 국민이 제일 먼저 알고 있을 테니까. 그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요?”
“그래. 그런 부분들로 준비하라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각 계에 대표님 명의로 명절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래?”
“예. 충남 당양의 해마루 쌀로 만든 떡국 떡과 전남 강진의 한과, 경남 거제의 말린 멸치로 준비했습니다.”
매번 명절 때마다 각계각층으로 보내지는 선물 세트였지만 올해는 각 지역의 특산품들을 모아 화합을 상징하고자 했다.
“그리고 불교계에는 멸치를 보내는 것이 실례일 것 같아, 선물 세트 대신 무형문화재인 옻칠장께서 만드신 목재 다기 세트를 보냈습니다.”
“잘했어, 멸치를 보낸다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
“네. 그리고 소속 의원님들과 원외 위원장님들 또 당직자들에게도 명절 선물을 보내야 하는데 혹시 마음에 두신 게 있으십니까?”
“실용적인 걸로 하자.”
“실용적인 것이요?”
“그래. 받는 사람이 잘 쓰고 해야 뜻깊은 선물이 아니겠어?”
“따로 생각하신 게 있으십니까?”
“글쎄······ 너는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음······ 실용적이라면 전통시장 상품권이 어떻겠습니까?”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메시지도 담을 수 있고.”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게 준비하라고 전해주고, 더 보고할 거 있나?”
“아닙니다. 모든 보고 다 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며칠만 고생하자.”
지훈은 정현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서서 당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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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에게 보고를 마치고 의원회관으로 향하던 지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손수레를 밀고 있던 박주미와 마주쳤다.
“잘 만났어. 같이 가자.”
지훈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자신을 미는 박주미의 손에 이끌려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이긴 카트 끌고 가잖아.”
“택배예요?”
지훈의 물음에 박주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나 막내가 있는데 박 비서관님이 왜 직접······.”
“다들 바쁘게 일하는데 전화 받은 사람이 해야지.”
박주미의 말에 지훈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웃어?”
“멋있어서요. 말은 쉽지 어디 그러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지훈의 말에 박주미는 쑥스럽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뭐 이런 거로 띄워주고 그래. 낯부끄럽게, 그래도 좋네! 오랜만에 지훈 씨랑 이렇게 얘기도 하고.”
지훈은 박주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회 거절하셨다면서요?”
지훈은 눈치를 보다 코를 긁적이며 박주미를 향해 입을 열었고, 지훈의 물음에 박주미는 놀란 듯 지훈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이 말씀하셨어?”
“네. 대표님도 고민 많이 하시고 내리신 결정인데 박 비서관님께서 거절하셨다고······.”
“그 양반도 참, 지훈 씨한테는 다 얘기하나 보네. 내가 그렇게 다른 식구들에게는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제가 실수한 건가요? 모르는 척해야 했을까요?”
“실수는 무슨, 나도 지훈 씨한테 말하리란 건 알고 있었어. 그냥 재미없을 것 같아서.”
“…”
“정현석 의원실에 있으면 하루하루가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가는데 그걸 버틴 내가 다른 방 가면 재미 없어서 버틸 수 있겠어?”
“그래도 임건식 의원님이면 차기 원내대표는 가능하신 분이시고 박 비서관님도 보좌관에 어울리시는······.”
“어우, 눈치는 진짜 영감님이랑 똑같아서, 그냥! 우리 식구들이 좋고 영감님이 좋으니까 더 좋은 조건을 받더라도 옮기기 싫은 거야. 그러니까 그 얘기 그만해.”
지훈은 박주미를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지훈 씨는 어때? 나는 지훈 씨가 우리랑 얘기하기 싫어하는 줄 알았어.”
“네?”
“그렇잖아. 우리 사무실에서 제일 만나기 힘든 사람도 지훈 씨고 얘기를 나누기 힘든 사람도 지훈 씨야.”
“제가요? 너무 과장하신다.”
“잘 생각해 봐. 지훈 씨랑 나랑 바로 옆자리야 파티션이 있다고 해도 이번 달에 나랑 몇 번 얘기 했어?”
박주미의 물음에 지훈은 곰곰이 고민하는 듯했다.
“거 봐, 고민한다는 거 자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서 아냐?”
박주미의 말에 지훈은 머쓱해진 듯 머리를 긁적이며 박주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런 것 같네요. 제가 식구들한테 너무 무심했나요?”
“그럴 리가.”
지훈은 미안하다는 듯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박주미의 답변은 지훈을 안심시키는 답이었다.
“무심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언젠가 나랑 약속한 적 있는 거 같은데. 기억 안 나?”
“…”
“고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 모두에게 말하라고 내가 말 안 했나?”
“그랬나요?”
“이거 봐. 지훈 씨랑 나랑 얘기를 자주 안 하다 보니까 나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던 걸 말을 못 했네.”
“죄송합니다.”
“죄송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혹시 우리가 못 미더운 건 아니지?”
박주미의 물음에 지훈은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다들 제 몫 이상을 해주니 제가 대표님을 위한 고민만 할 수 있는 건데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이런 말 하면 지훈 씨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이긴 한데 우리 식구 모두 지훈 씨를 안쓰러워해.”
“저를요?”
“그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이 혼자 끙끙 앓는 것을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같이 고민해 알았지? 우리는 동지잖아.”
박주미의 말에 지훈은 알겠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핸드카트를 밀고 의원회관 후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의원회관 후문으로 향하자 여러 대의 택배차가 물건을 내려놓고 있었고, 각 방에서 나온 보좌진들은 자신의 의원에게 온 선물을 카트에 옮겨 싣고 있었다.
지훈도 재빨리 다가가 정현석의 이름으로 온 택배들을 카트에 실었는데 상자가 여간 많은 게 아니라 수레 하나로는 부족해 보였다.
박주미는 전화를 꺼내 의원실에 전화하는 듯 보였고 지훈은 한쪽으로 정현석에게 온 선물 상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스물여섯.”
지훈이 소리 내 상자 개수를 세자 박주미는 지훈의 옆으로 다가와 혀를 찼다.
“역대 최고지?”
“예. 작년 추석 때 하루 선물 상자 들어오는 게 열다섯 개 수준이었는데 스물여섯 개는 많긴 하네요.”
“내일도 올 거고, 모레도 올 텐데 큰일이야 정말.”
두 사람은 한쪽에 쌓아둔 상자를 보고는 고민에 빠진 듯 상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김용일과 최준호 홍보 비서관과 막내까지 모두가 손수레를 끌고 회관 뒷문으로 나오자 지훈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카트 어디서 났어요?”
“어디서 나긴 옆방에 빌려왔지.”
김용일의 말에 지훈은 웃으며 한쪽에 쌓아둔 상자를 고갯짓으로 가리켰고, 김용일 또한 놀랍다는 듯 상자를 보고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가져가는 것도 가져가는 건데 어떻게 처리하냐 저 많은 선물을.”
“다들 맘에 드는 거 골라서 가져가면 되지.”
김용일의 말에 뒤쪽에서 대답을 해오는 목소리가 들렸고 모두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열심히 짐을 옮기는 다른 방 보좌진들 사이로 정현석이 다가왔다.
다른 방 보좌진들 또한 놀라서 고개를 숙였고 정현석은 그들을 바라보며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제가 여러분들을 방해했나요? 미안합니다. 인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들 볼일 보세요.”
정현석은 손사래를 치고는 의원실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어떻게 아시고······.”
“의원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잘못 들어갔나 하고 명패를 확인하러 밖에 나갔는데 옆방 직원이 모두 택배 가지러 갔을 거라고 해서 한 번 와봤지.”
“죄송합니다. 대표실에 계속 계실 줄 알았습니다.”
“죄송은 무슨······ 나도 요즘 우리 식구들 자주 만나지 못해서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온 거지 대단한 거 아니잖아.”
김용일의 말에 정현석은 손사래를 치고는 한쪽에 쌓아져 있는 상자를 보곤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 옮겨야 할 게 저건가? 보자······.”
정현석은 택배 상자로 다가가 제일 가벼운 상자로 두 상자를 들더니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무겁네. 내가 두 개 들었으니까 준호는 다섯 개 들고 와라.”
“예? 예!”
정현석이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걸어가자 의원실 식구들은 정현석의 뒷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짓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안 올 거야?”
“갑니다!”
최준호가 크게 답하고는 상자 다섯 개를 끙끙대며 들어 올리다가 실패하고는 세 개를 들고 따라나서자 의원실 식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으며 상자를 챙겨 정현석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