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43
142. 눈에는 눈 (2)
“즐거운 식사시간 되셨습니까?”
청와대로 향하는 차 안, 대통령 비서실장 홍석민은 자신의 수행 비서의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웠지.”
홍석민의 웃음에 수행 비서는 아무런 대꾸 없이 룸미러로 홍석민을 바라보았다.
“허훈 장관 참 훌륭한 사람이야. 한 번쯤은 국회의원 선수로 뻗댈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또 대통령님 앞에서 국회 경험을 가지고 얘기해오지 않았어.”
수행 비서는 홍석민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행정부 내에 국회 경험자가 적다는 단점을 채워줬던 양반이었는데 내년 총선 때문에 그만두고 나니 안타까워 다음은 누구로 저 자리를 채워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하고 말이야.”
공직선거법상 장관직을 포함한 고위공무원들은 선거에 출마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려면 90일 이전에 사퇴해야 했고 홍석민은 그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총리께서 인터뷰하시는 걸 보면 조직법 개편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 우리도 이제 임기 말을 향해 달려가는데 슬슬 협치는 내려놓고 저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겠나. 특임 장관직을 없애고 다시 정무수석을 두는 방향으로 대통령께서도 생각하시고 있어.”
홍석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고, 수행 비서는 홍석민의 웃음소리에 아이러니하다는 표정으로 룸미러를 통해 홍석민을 바라보았다.
“정현석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야. 동시에 탐이 나기도 하고 말이야. 왜 우리 당이 아닌 보수당 인물인지 샘이 나더군.”
“정현석 대표 말입니까?”
“그래, 그 친구 만날 때마다 나를 즐겁게 해주는 친구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젠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습니까?”
수행 비서의 물음에 홍석민은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잔잔한 물가에 돌 하나를 던지고 왔지. 막상 던져놓고 보니 왜 그랬나 후회도 되긴 하지만 이미 물결은 퍼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파도가 될지 금방 잦아들지는 정현석의 손에 달렸어.”
수행 비서는 홍석민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홍석민은 그런 수행 비서의 표정을 룸미러를 통해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궁금한가? 지켜보자고 정현석이 정말 난 놈이라면 내가 한 장난도 잘 넘기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현석의 계파는 분열하게 될 거고 우리는 다음 대선에서의 경쟁자를 제거할 수도 있을 거야.”
홍석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식사 잘하고 오셨습니까?”
한편, 국회로 향하는 차 안.
차에 올라탄 정현석의 표정이 즐거워 보이자 지훈은 정현석과 허훈의 얘기가 잘 진행된 것으로 생각하고 정현석을 향해 물었다.
지훈의 질문에 즐거운 표정을 하던 정현석은 삽시간에 표정을 굳히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홍석민 비서실장 말이야.”
지훈은 정현석의 입에서 홍석민의 이름이 나오자 정현석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보더라고, 대단한 양반이야. 그 자리에서 그런 장난을 걸어오는데 나랑 허훈 장관 둘 다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무슨 말을 해왔길래 그러십니까?”
“허 장관에게 대권에 관심 없냐고 물어오더라고.”
정현석의 말에 지훈 또한 덩달아 표정이 굳어갔다.
“장난이 심하군요.”
“인상 펴 인마. 홍 실장의 장난이 지나치긴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으니까.”
정현석의 말에도 지훈은 쉽사리 표정을 풀지 못했다.
“대표님께서는 허 장관님을 믿으십니까?”
“당연히 믿지.”
“확신하시는군요?”
“…”
정현석은 지훈을 향해 허훈을 믿는다고 얘기했지만 확신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저 또한 허 장관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진 않습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권력의 맛’ 때문입니다.”
“허 장관이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잖아.”
“대표님, 허 장관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은 제가 심어드릴 수 없습니다. 제게 그렇게 답을 원하셔도 따로 대답 드릴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정현석은 마치 허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길 바라는 듯 지훈에게 얘기해왔고, 지훈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확신을 얻길 원하신다면, 허훈 장관과 직접 얘기를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정현석은 지훈에게 답을 원하는 듯 말해왔고 지훈은 정현석을 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표님께서 제게 말씀하셨듯 허훈 장관의 마음속에 있는 권력욕에 불을 지피시죠.”
“만약, 허훈 장관의 마음속에 있는 그 권력욕이 내가 생각했던 그것보다 훨씬 크다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뭐라고?”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놀란 듯 되물었다.
“설사 허 장관이 대표님과 대권 경쟁을 하게 되더라도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대표님은 이미 대권가도를 걷고 계십니다. 탄탄하게 준비해온 길이기에 누가 오더라도 질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현석은 가만히 지훈의 말에 집중했다.
“허 장관님의 부상은 대표님 외에 마땅한 인물이 없던 우리 당의 대권 후보를 하나 더 늘려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대권 경선 흥행이라는 보상으로 따라오게 되고요.”
지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눈빛을 보냈다.
“이 정도의 장난은 그 길의 방해물조차도 되지 못합니다. 걱정을 덜고 허 장관님을 만나십시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민과 걱정을 덜어버린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보수당의 당 대표실에서는 정현석의 요청으로 허훈과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제 잘 들어가셨습니까?”
“그럼요. 오랜만에 푹 쉬었습니다.”
허훈의 답에 정현석은 미소를 지었고, 허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표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게 뭐 있겠습니까?”
“정치생활 시작할 때 제 성 뒤에 장관 직함을 달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더군다나 여당에서 저를 개각의 대상으로 잡았을 때도 저를 지켜주셨지 않습니까?”
“하하, 허 장관께서 의지가 있으셨으니 도운 것일 뿐입니다.”
“대표님 덕분에 일 년이란 시간을 더 장관직에 있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출범시킨 정부는 아니지만 나름 국가 개혁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킬 수도 있었고요.”
“예. 참으로 큰일을 하셨지요. 덕분에 허 장관께서도 대선주자로 발돋움하시지 않았습니까? 국민이 판단했을 때는 허 장관께서도 대권 주자로서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셨나 봅니다.”
정현석의 말에 허훈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혹시 어제 홍 실장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계신다면······.”
허훈이 조심스레 얘기하자 정현석은 손을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어제 그 자리를 벗어나기 전까진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는 개의치 않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허훈은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뱉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허 장관님의 대답은 듣고 싶습니다. 허 장관님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던 허훈은 정현석의 말에 표정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는 대표님의 경쟁자가 되지 못합니다.”
허훈은 그렇게 얘기하며 정현석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저는 속이 좁아 제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보수연 시절 군소 정당의 당 실무를 맡고 있다 보니 워낙에 일이 많아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보수당과 합당 이후 제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었고요. 그때 대표님께서는 본인의 몫을 포기하고 제 몫을 챙겨주셨지요. 만약 그때 대표님께서 본인의 몫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지금보다 더 쉬운 길을 걸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정현석은 허훈을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당을 개혁한다고 아등바등하실 때마다 저는 그때의 일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수십 년 했으면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 새파란 초선의원이 내 자리를 챙겨주었을 때 차마 자리에 욕심이 나서 거절하지 못한 걸 말입니다.”
“그게 어디 허 장관님이 부족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잖습니까? 당의 업무를 보다 보니 그랬던 거지요. 저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허훈은 미소를 지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대표님께서 아등바등하며 키워놓은 나무에서 열매만 홀랑 따먹는 염치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이 아닌 다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을 노리신다는 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힘 없는 장관직을 맡으며 느낀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높은 곳까지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졌고 말입니다.”
허훈의 말에 정현석은 씩 웃으며 허훈을 바라보았다.
“잘 됐습니다.”
“잘 됐다니요?”
“사실 어떻게 허 장관님 속에 있는 권력욕에 불을 댕길까 고민했습니다. 한데 괜한 저의 걱정이었군요.”
허훈은 여전히 정현석의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시지요.”
“제, 제가 말입니까?”
허훈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정현석을 향해 되물었고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대권을 위한 당 대표가 되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당이 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등바등 키워놓은 나무에서 다음 해에도 열매가 열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대표님을 선택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무슨······.”
“대표님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돈 많은 집안의 철부지가 뭘 알까 했습니다. 국정감사와 청문회에서 활약할 때도 초선이 튀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옆에서 오래 지켜보니 대표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비록 저보다 어리시지만, 정치인으로서 배울 점도 존경할 점도 많은 사람 말입니다.”
허훈은 결심이 선 듯 확신에 찬 표정과 말투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제게 뒷일을 부탁하신다면 대표께서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습니다.”
정현석은 허훈의 답이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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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이젠 확신하지?”
허훈이 자리를 떠난 당 대표실에는 정현석의 호출을 받은 지훈이 정현석과 독대를 나누고 있었다.
“네. 허 장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더는 의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 다음 당 대표 경선에도 출마한다고 하셨으니 고민은 덜었다. 물론 당선이 확실한 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당선될 수 있게 대표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우셔야겠죠.”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지훈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한 가지 일이 더 남지 않았나?”
“네. 상대가 못된 장난을 걸어왔으니 돌려줄 일이 남았습니다. 과하지 않게 우리가 받은 만큼만 말입니다.”
“방법은 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를 귀찮게 만들었으니 그들도 귀찮아져야겠죠. 마침 좋은 정보를 준호가 물어왔습니다.”
정현석은 받은 만큼만을 돌려준다는 지훈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듯 지훈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