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6
016. 청문회 (1) >
“야, 이제 네가 들어오면 좀 불안하다.”
지훈이 방으로 들어오자 강승태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정현석이 농담조로 얘기했다.
“당 대표실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그래? 이리 줘봐.”
지훈이 건넨 공문을 읽은 정현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공문을 강승태에게 전달했다.
“아이고, 의원님 축하드립니다.”
“강 수석님, 좋은 일이에요?”
“당연하지요! 이거 서로 하려고 줄 설 텐데 대표님이 우리 의원님 이쁘게 보셨는가 보네.”
강승태는 경사라도 난 듯 정현석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 심각한 듯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정현석도 덩달아 웃었다.
“의원님, 수석님. 당 대표의 명령이라는 걸 신경 쓰셔야 합니다.”
지훈이 그렇게 얘기하자 마치 산통이 깨졌다는 듯 두 사람은 지훈을 바라보았다.
“뭔데, 뭐가 혼자 그렇게 심각하냐?”
“의원님, 준비하면서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우리가 준비하는 모든 것들을 대표가 알아야 합니다.”
“뭐?”
“제가 의원님께 드린 말씀 기억하십니까?”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기억을 되새기는 눈치였다.
“당 대표가 명령해서 일어난 사건은 모든 게 다 그의 공과 사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제 의원님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거 같습니다.”
“정치력?”
“네, 정치적 힘겨루기 같은 것 말고, 다른 의미의 정치력 말입니다. 당 대표에게 직보하실 수 있는 권한이 생기셨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훈이 말하자 정현석과 강승태는 어떤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을 타라 이 말이지?”
“네, 저희가 준비한 자료를 당 대표에게 보고하시고 설명하신다면 대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겁니다. 대표의 입에서 나오는 대로만 하면 되겠죠.”
“이게 네가 말한 내 정치 뭐 그런 거냐?”
“생각보다는 빠르게 찾아오긴 했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어쨌든 좋은 거 맞지? 근데 왜 심각하게 말해 새꺄. 놀랐잖아.”
“죄송합니다. 의원님이 너무 들뜨셔서···.”
“거야 인마 강 수석님이..크흠..”
강승태는 무안한 듯 정현석을 바라보았지만, 정현석은 시선을 피했고 모든 잘못은 강승태에게 돌아갔다.
“의원님,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의해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당 대표가···.”
**
어느덧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찾아왔지만,
2주 후 열릴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위해 정현석의 보좌진들은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 업무 분담부터 합시다.”
강승태가 수석보좌관답게 먼저 교통정리부터 시작했다.
“지훈 씨는 제보 위주로 담당하고, 용일 씨는 후보자 가족, 친인척 파악하시고. 우리 주미 씨는 후보자 재산 형성과정에 이상한 점 없는지 알아봅시다.”
강승태가 그렇게 말을 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막내 둘은 선배들이 자료를 만들면 크게 패널로 준비해주고, 나는 다른 의원실이랑 이견 조율하고 다 됐죠?”
강승태는 능숙하게 모두에게 업무를 지정했으며 인턴에서 9급으로, 입법보조에서 인턴으로 승진한 두 사람도 업무에 투입되었다.
“자, 다들 해산합시다. 수고들 하고!”
지훈이 제 자리로 돌아와 앉자 옆에 앉은 박주미가 투덜대기 시작했다.
“어우, 국정감사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지훈 씨, 일 좀 그만 물어와!”
“박 비서관님, 이번엔 제가 물어 온 게 아니라···. 당에서 꽂은 겁니다···.”
지훈은 박주미의 불만에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정말 자신에게 일복이 터진 것인지, 이전의 삶에서도 일,일,일뿐이었던 국회 보좌진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국회의원 보좌진이 그렇긴 하지만 유달리 일이 몰리는 정현석 의원실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지훈은 꽤 난감했다.
박홍주의 비리가 있었다는 것만 알았지.
누가, 무슨 일로 제보했는지는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부터 파야 한다···.’
보통 청문위원 명단이 발표되면,
사무실로 제보 전화가 왕왕 오기는 하지만, 발표되고 2주가 지났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지훈은 박홍주에 대해 검색하다 일을 잠시 멈추고는 페이스북에 접속해 정현석이 청문위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게재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 신청들을 받아주고, 습관적으로 쪽지함을 눌렀다.
최근 페이스북을 시작한 이후 페이스북 쪽지로 민원들이 꽤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공적인 영양가가 없거나, 부풀려진 민원들이 대다수였다.
지역의 민원들은 따로 메모해놓고 보좌진 회의 때 얘기해야 했다.
한참 쪽지들을 살피던 지훈은 한 쪽지를 읽다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지훈이 본 쪽지에는 여러 문서 파일들이 담긴 링크가 있었는데,
링크를 클릭하니 박홍주가 운영하던 회사의 회계자료가 담겨 있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서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자, 지훈은 전화를 끊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훈이 짧게 메시지를 남기자 1분도 안 돼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는···.”
-여기 주소,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훈이 자신의 소개를 하려고 하자, 상대방은 지훈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말만 한 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훈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강승태에게로 향했다.
“저, 수석님 큰 건 하나가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화하기엔 너무 큽니다.”
지훈이 다짜고짜 그렇게 얘기하자 강승태는 놀란 얼굴로 지훈을 바라보았다.
“이번 청문위원 명단에 진보당 장태진 의원이 있던데, 그쪽이랑 같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그래? 많이 커요?”
“네, 분식회계에 대출사기까지 제보만 보면 비리 종합백화점입니다. 일단 제보자를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어여 갔다 와요. 일단은 제보의 신빙성부터 파악하는 게 먼저 같네.”
“네, 연락 드리겠습니다만, 의원님께 보고해주시고, 당 대표에게도 진보당 장태진과 함께하려 한다고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훈은 많이 당황했는지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는 강승태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
제보자가 알려준 곳으로 향하는 택시를 탄 지훈은 내심 불안했다.
제보의 덩치가 정현석이 혼자 삼키기에는 너무 큰 것도 있었고,
이전의 삶에서는 튀어나오지 않은 박홍주의 비리였기 때문이다.
‘구린내가 풀풀 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더니···.’
택시에서 내린 지훈은 자신의 앞에 있는 모텔 건물을 확인했다.
제보자가 보내준 곳이었다.
모텔의 4층으로 올라간 지훈은 방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한참 동안 반응이 없자 지훈은 한 번 더 두드린 후 말했다.
“선생님, 정현석 의원실에서 왔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상대방은 문을 작게 열고는 지훈의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지훈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지훈은 조재만의 보좌관 생활을 할 때도 이런 인물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큰 비리를 제보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만큼 권력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훈은 방안을 살폈다.
암막 커튼이 쳐져 컴컴한 방에는 여러 장의 문서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지훈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지훈이 건넨 명함을 지켜보던 남자는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서용환입니다.”
자신을 서용환이라고 소개한 남자는 흩뿌려져 있는 문서들을 정리하며 지훈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줬다.
지훈은 서용환의 손짓에 자리에 앉아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보내주신 자료는 잘 봤습니다.”
“어떻게 박홍주를 낙마시킬 수 있을까요?”
지훈은 자신에게 다짜고짜 그렇게 물어오는 서용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료의 신빙성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지 제가 알아야 하고요.”
지훈이 그렇게 말하자 서용환은 자신의 가방을 뒤지더니 명함 한 장을 꺼내 지훈에게 건넸다.
명함에는 서원테크 재무이사 서용환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원테크는 박홍주의 파인텍이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기 위해 인수한 회사입니다.”
종종 벤처 기업은 까다로운 신규상장 절차를 거치지 않기 위해,
이미 주식시장에 상장되어있는 회사를 인수하여 우회로 상장하는 방식을 택했었다.
서용환이 말하기로는 박홍주의 파인텍이 그런 방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왜 저희 의원님에게 제보하시게 되었는지···.”
“얼마 전 뉴스에서 정현석 의원의 국정감사 장면을 봤습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안경 위치를 고쳐 잡았다.
“이곳에서 꽤 오래 있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서요. 정현석 의원이 박홍주 청문회에 참여한다는 걸 듣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선생님은 박홍주와 무슨 사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박홍주가 서원테크를 인수한 후 분식회계를 하는데 이용당했습니다.”
지훈은 서용환이 하는 말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저는 박홍주의 파인텍이 분식회계를 통해 우회 상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이후에 그들이 대출사기까지 손대려 하자 거부하다 쫓겨났습니다.”
“선생님, 이번 사건이 물 위로 올라온다면 선생님도 법적인 처벌을 피할 수···.”
“각오했습니다. 저도 나쁜 짓 많이 했지만, 박홍주 같은 인간들이 나라를 주무른다 생각하니 치가 떨리더군요.”
지훈은 그렇게 말하는 서용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공익제보자들은 그 판에 발을 안 걸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 소수는 처음부터 거부하고 제보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서용환처럼 처음엔 그들의 범죄에 동조하다 범죄의 크기가 점점 커질 거 같아지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부류가 많았다.
지훈은 이후로 오랫동안 서용환에게 제보를 받은 후 모텔을 나섰다.
**
정현석의 방에는 정현석 의원실의 보좌진 외에도 진보당의 장태진 의원과 그의 보좌진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자, 여기는 진보당 장태진 의원님이고, 이거 우리 당 대표님이랑 진보당 대표님이랑 다 얘기된 거니까. 서로 협조 잘합시다. 편 나누지 말고.”
정현석의 말에 두 의원실 보좌진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용일 보좌관부터 시작합시다.”
강승태가 김용일을 지목하자 김용일이 입을 열었다.
“제가 파악한 걸 보시면, 박홍주의 장모가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단에 속한 사립대학에서 이사장으로 있으며 일종의 상품권깡을 했다는 게 대학교수들의 증언입니다.”
“상품권깡?”
“네,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산 후 현금화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장부에는 선물로 나간 것으로 되어있고요.”
김용일이 자신이 파악한 박홍주의 친인척 비리에 관해 얘기했다.
심각한 문제긴 했으나, 저 정도로는 국무총리 후보를 날릴 정도는 아니었다.
장모의 일이라 잘 몰랐다고 해명하고 사과하면 될 일이니까.
“그래, 그건 언론을 통해 군불 때는 장작으로 사용하면 되겠네.”
정현석이 먼저 그렇게 말을 했다.
지훈은 감동한 듯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정무적 판단이란 것을 하는 정현석이었다.
지훈의 시선을 느낀 정현석은 옆에 있는 장태진의 존재 때문에 눈빛으로만 욕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자, 다음은 주미 씨 박홍주의 재산은?”
“박홍주의 회사가 꽤 잘 나가긴 하지만 사유재산들이 좀 상상 이상입니다.”
박주미의 말에 장태진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제주도에 개인별장을 사들이는데 20억을 사용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우리 돈 30억 상당의 저택이 있다고 합니다.”
“뭐, 배당금 받고 그러면 그 정도는 살 수 있잖아?”
정현석의 말에 박주미는 답을 이어갔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부인 명의의 커피숍과 연예기획사에 개인 돈으로 60억가량 투자한 게 있습니다.”
“음···. 듣고 보니 확실히 자금출처가 궁금하긴 하군요.”
장태진이 박주미의 말에 동조했다.
“이거, 우리 사무실에서 받아가겠습니다. 이 부분 저희가 조사해보죠.”
장태진은 무언가 냄새를 맡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그럼 지훈 씨가 준비했다는 거 한번 들어볼까요.”
강승태가 그리 말하자 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의 불을 끈 후 프로젝트 빔을 틀어 스크린에 비추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끝
ⓒ 네시십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