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7
017. 청문회 (2) >
강승태가 그리 말하자 지훈은 회의실의 불을 끈 후 프로젝트 빔을 스크린에 비췄다.
“이야기가 꽤 길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간단하게 제보가 지목하는 범법행위들만 설명해 드리자면 분식회계, 대출사기, 횡령배임 등 비리 종합백화점 같습니다.”
“회사 소개부터 해봐.”
정현석의 말에 지훈은 화면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파인텍, 2002년에 설립한 제조업체로 주력 상품은 로봇청소기 같은 가전입니다. 설립 당시 이름은 박홍주의 이름을 딴 HJ전자였으나 서원테크를 인수하고 우회 상장을 하며 파인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고 합니다.”
“자, 그럼 일단 분식회계부터 들어보죠.”
지훈의 말에 진보당의 장태진 의원이 대답했다.
장태진은 시민단체에서 기업저격수라 불렀던 인물로 특히 분식회계를 파악하는데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다.
“네, 2005년 미국에 수출했던 로봇청소기 2만 대 분량이 불량으로 반품됐다고 합니다. 이에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반품된 물건을 허위로 수출이 되었다고 장부에 기재한 게 첫 시작입니다.”
“2만 대 분량이면 얼마 정도입니까?”
“수출가가 대당 5만 원 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파인텍은 대당 30만 원으로 금액을 부풀려 허위신고까지 합니다.”
지훈의 말에 회의실 내에서는 불편한듯한 탄성이 들려왔다.
“결국, 허위로 기재한 서류를 들고 무역보험공사와 시중은행 6곳을 상대로 사기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야, 네 말 듣다 보니까 아이러니한 게 왜 은행들은 그냥 대출을 해줬냐는 거야, 심사는?”
정현석이 궁금한 듯 물어왔다.
“은행들도 철저하게 속은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수출하기로 했던 미국의 기업과 짜고 허위수출액의 5~10%를 수수료로 준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미국 기업이 그걸 도와줬다고?”
“네,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 홍콩의 기업들 또한 수수료를 받고 허위 거래를 묵인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지훈은 화면을 다음 장으로 넘긴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사기 행각 중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입니다. 한국 무역보험공사를 상대로 사기대출을 할 때 공사에서 공장 실사를 나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장이 홍콩에 있다고 되어있는데?”
“네, 홍콩에 가짜 공장을 만들어놓고 심사 나오는 날마다 공장을 돌렸다고 합니다. 실사를 나온 관계자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는 거죠.”
“자, 그럼 총 규모를 들어볼까요?”
장태진의 말에 지훈은 답을 해줬다.
“총 분식회계 규모는 4조 이상이고, 사기로 대출을 받아간 금액만 2조 6천억 원가량 됩니다. 이 중 446억이 박홍주 명의로 된 페이퍼컴퍼니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있습니다.”
“야, 이거 우리가 아니라 검찰 들고 가야 하는 거 아냐?”
정현석도 삼키기엔 너무 큰 비리 규모라 놀란듯했다.
“제보자는 정권 초기 지명된 장관의 비리를 제보한 제보자가 어떻게 됐는지 봤다고 합니다.”
정권 초기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비리를 제보한 사람이 있었다.
정부는 초기부터 비리와 얽히자 오히려 제보자 주변을 털어 제보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데, 온 힘을 쏟았다.
결국, 여론은 제보자의 말을 믿지 않았고 제보자만 법적 처벌을 받게 된 적이 있었다.
결국, 다섯 달 후에 사실로 밝혀져 장관이 사임한 사건이었다.
지훈이 사무실 구석으로 다가가 불을 켰다. 그리고 사무실을 둘러보니 모두가 심각한 표정에 빠져있었다.
“어떻습니까? 장 의원?”
정현석이 장태진을 보고 먼저 물었다.
“정 의원님, 이거 혼자 드셨으면 분명 탈 나셨을 겁니다. 제가 분식회계 쪽을 담당하죠.”
“좋습니다. 그럼 우리 사무실에서 대출사기와 횡령을 담당하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모든 보좌진이 밖으로 나가자 장태진이 말을 꺼냈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시더니, 이런 큰 건까지 물어오는 걸 보면 난 놈이긴 한가 봅니다.”
“어휴 말도 마세요. 얼마나 똑똑한지 나까지 가르치려 든다니까. 하하.”
“젊은 친구가 보고하는 거 보니 탐이 납니다.”
“하하. 장 의원님 한 번 봐주십시오. 저 떨어지거들랑 데려가시죠. 자 이럴 때가 아니네요. 일단 장 의원님도 당 대표한테 보고하러 가셔야죠?”
“네. 아무래도 크기가 크다 보니···.”
“저도 가봐야 할 것 같네요. 청문회까지 수고 좀 해주세요.”
정현석과 장태진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았다.
정현석의 방에서 나온 보좌진들은 다시 보좌진 회의를 진행했다.
“자, 아까 영감님 방에서 회의한 걸 종합해 봅시다.”
강승태가 먼저 회의를 주도해나갔다.
“용일 씨는 아는 기자들 좀 있죠?”
“네, 보수신문에 몇 명 있습니다.”
“보수신문은 좀 곤란하고, 다른 데는 없나?”
강승태의 질문에 김용일이 난감해했다.
“제가 아는 한성경제 기자가 있습니다.”
지훈이 그렇게 말을 꺼내자 강승태가 지훈을 바라봤다.
“그래?”
“네. 김용일 보좌관님한테 연락처 드리겠습니다.”
“좋아요. 용일 씨는 후보자 장모 상품권깡 있죠? 그거 언론에 토스해주고. 다음은 주미 씨”
강승태의 말에 박주미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제가 조사하던 자료는 장태진 의원 방으로 넘어갔으니 저는 지훈 씨를 좀 도울게요.”
박주미가 지훈을 보며 얘기하자, 지훈도 좋은 듯 동의했다.
“아무래도 제가 밖에서 사람들을 좀 만나야 할 것 같아서 곤란했는데 박 비서관님이 사무실에서 자료 정리를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자! 됐네. 그럼 9급들은 주미 씨 자료 정리 돕고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강승태의 교통정리가 끝나자 모두 제 자리로 향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지훈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장태진 의원실에서 분식회계에 대한 분석이 나오기 전까지 파인텍을 조사해야겠어.’
지훈은 서용환이 건네준 자료들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파인텍의 기초부터 파고 들어가기로 생각한 지훈은 자료에 나온 파인텍의 홍콩지사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오랫동안 감에도 불구하고 전화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용건은 팩스로 보내 달라는 영어 안내만 흘러나왔다.
지훈은 전화를 내려놓고 인터넷에서 잠깐 검색을 한 후 다시 전화를 들었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홍콩 한인회 맞습니까?”
-아,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정현석 국회의원실의 비서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국회의원실요? 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들은 지훈은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처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네, 안녕하세요. 국회의···.”
-네, 들었습니다. 저는 홍콩 한인회 기획팀 팀장 김규태입니다.
지훈은 당황했다. 간단 한 걸 물으려 전화했을 뿐인데 받는 사람의 직급이 높아 보였기 때문이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의원님께서 홍콩기업의 초대를 받으셨는데. 실제로 있는 기업인지 궁금해서요. 주소를 불러드리면···.”
-네, 불러주시면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지훈은 서용환이 준 자료에 나와 있는 파인텍 홍콩지사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 상대방에게서 답이 돌아왔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이곳은 주택단지입니다. 아마도 일반 가정집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저 혹시 그곳의 사진을 저희가 좀 구해볼 수 있을까요?”
지훈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럼 저희 직원을 보내 해당 주소의 사진을 찍어 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너무 무리한 부탁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
-혹시, 저희도 이번에 한인회에서 행사를 주최하는데 정현석 의원님의 축사 동영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보통 국회의원의 축사 동영상을 요구해오는 단체들이 있긴 있었다. 이번엔 상대방에서 먼저 도움을 줬으니 지훈은 승낙하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자세한 자료 메일로 보내주시면 그에 맞는 영상 찍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하신 사진과 저희 측 자료를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지훈은 전화를 끊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청문회에서 터뜨리더라도 후속으로 기사가 생산되어야 철저한 사법 조사가 이루어질 거라 지훈은 결론 내렸다.
“저, 박 비서관님 혹시 방송국 쪽에 아시는 분 없으세요?”
지훈이 박주미를 보며 묻자 박주미는 한참 고민 후에 답을 내놓았다.
“그···. 어린이 프로그램도 괜찮아?”
“어린이 프로그램이요?”
지훈은 당황스러운 듯 되물었다.
“응, TBS어린이 프로그램 PD가 내 동기긴 한데···.”
“아, 상관없어요. 그분을 통해서 시사 PD를 소개받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래? 그럼 잠시만 기다려봐.”
박주미는 지훈에게 기다리라 말하곤 휴대전화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훈은 방송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브리핑을 해야 하므로 자료 정리를 시작했다.
얼마 후 돌아온 박주미의 손에는 전화번호 메모가 들려있었다.
“지훈 씨, 이거 시사교양국 탐사보도 팀 PD 전화번호래.”
지훈은 수완 좋은 박주미의 능력에 감탄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주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지훈은 전화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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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원회관 보수연의 대표 김무길의 사무실에는 정현석이 김무길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사안입니다.”
정현석의 보고에 김무길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생각에 잠긴듯했다.
한참 말이 없던 김무길은 생각이 선 듯 입을 열었다.
“하나, 하나는 낙마시킨 다음에 터뜨리지.”
“네···?”
“사기대출. 우리 선에서 터뜨릴 필요가 있겠나? 그건 언론에 힌트만 던져주게.”
“힌트라 하시면···.”
“허허, 이 친구야 그건 자네가 생각해봐야 할 일이겠지.”
“대표님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정현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당과 대통령에게도 출구전략을 만들어 줘야 하네. 자네 그런 속담 알지 않나? 쥐도 구석에 몰리면 문다는 걸.”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허, 자네는 내게 답을 원하는구먼? 이번 일이 자네에게 큰 경험이 될걸세 한번 돌아가서 생각해보지.”
김무길은 정현석에게 확답은 주지 않고 독대를 끝냈다.
당 대표실에서 나온 정현석의 표정은 마치 큰 근심을 안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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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 의원님 잘 알겠습니다. 자세한 건 들어가서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그 부분은 엠바고(embargo, 보도유예)로···. 네 알겠습니다.”
지훈은 걸려온 정현석의 전화를 끊고는 TBS 건물 안으로 향했다.
TBS 시사교양국 회의실에는 지훈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엔 약속 잡은 PD와 얘기를 나누다 상대방도 큰 사건인 걸 인지했는지 국장까지 불러다 놓았다.
“한 작가, 이거 와꾸 어때?”
자신을 국장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탐사보도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에게 물었다.
“말해서 뭐하겠어요. 저기 비서님 이거 제보자 확보된 거죠?”
“네, 다만 제보자가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원하신다면 제보자가 원하는 곳에서 저 포함 두 분만 가시죠.”
지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보자는 됐고···. 비서님 혹시 의원님도 인터뷰 가능한가요?”
지훈은 자신에게 물어오는 메인 작가를 바라보았다.
“네, 가능합니다. 혹시 편성 일자를 물어봐도···.”
“음···. 청문회가 언제죠?”
“1월 19일, 20일 이틀입니다. 저희는 19일 오후 질의에서 터뜨릴 예정입니다.”
“열흘 후···.”
지훈의 말에 작가가 고민하자 옆에 앉은 CP(Chief Producer, 총괄PD)가 말을 꺼냈다.
“뭐 고민할 것도 없네요. 저희가 수요일 밤에 방송되니까 바로 21일 날 방송하도록 하죠.”
“자, 좋습니다. 다들 차질 없이 방송 준비들 하시고, 비서님은 저 좀 잠시 뵙죠.”
국장의 말에 제작진은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지훈과 국장만 남았다.
“김 비서님, 이거 방송사에서 삼키기에도 너무 큰 건이에요. 초선 국회의원이 버틸 수 있겠어요?”
지훈은 상대가 물어오는 저의를 알고 있었다.
“국장님, 저희 쪽 보안은 철통입니다. 또 당 대표님의 허가가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새는 일만 없도록···.”
“그럼 서로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장태진이야 진보당이니까 입 틀어막을 테고, 보수연 중진들 다들 보수당에 발 한쪽씩 걸치고 있는 거 알죠?”
지훈은 걱정이 없었다. 김무길이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것이다.
“네, 알고 있습니다.”
“영감님 입단속 확실하게 해주시고, 특히 보좌진분들도 입단속 하시고.”
“네, 알겠습니다. 한 가지 더, 사기대출 건은 일주일간만 보도를 늦춰주십시오.”
지훈의 말에 상대방은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일주일 후 우리 방송사 단독입니다.”
지훈은 상대와 서로 다짐 후 악수하고 방송국을 나와 여의도로 향했다.
끝
ⓒ 네시십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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