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조금은 알 것 같아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지 않은 소식이네요.”
“그러게요. 한에게도 분명히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갔을 것입니다.”
존이 대답하며 스마트폰을 품에 넣으려는데, 주머니에 들어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지이잉 – 지이잉 –
액정 화면으로 한치우의 이름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
“어디야?”
“지금 실버 인베스트먼트. 미스터 실버와 함께 있어.”
“후 – ! 휴의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아. 지금 아파트로 와 주겠어?”
“그러지. 바로 갈게.”
이제야 스마트폰이 존의 재킷 안주머니로 들어갔다.
“한이로군요.”
“예. 지금 와 달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서 일어날게요. 다시 연락드리죠.”
“그렇게 하세요. 이건 뭐, 여유가 생길 틈을 만들어 주지 않는군요.”
“예. 조금도 한가할 틈을 주지 않죠. 한국이라는 나라는…….”
존은 휴와 악수를 하고, 바로 사무실을 나와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치우는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숙인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차림으로 보아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오랜만에 잘 쉬고 있었는데!’
존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한치우의 앞으로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지금 한치우가 어떤 표정을 하는지,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연락이 온 거 있어?”
“어. 네 전화가 오기 직전에 휴와 내게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오더군.”
“그래. 그럼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겠네.”
“헉!”
한치우가 고개를 들어 눈을 떴고, 존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터졌다.
존의 눈을 바라보는 한치우의 두 눈은 금방이라도 피를 쏟아 낼 것만 같았다.
“하, 한! 일어나! 병원에 가야겠어! 어서!”
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흥분하지 말고, 냉동실에서 아이스 팩이나 갖다 줘. 내가 가고 싶은데, 일어나면 다리가 풀릴 것 같으니까.”
“그, 그래도.”
“일단 머리 좀 식히자. 부탁할게. 그리고 저녁에는 약속이 있어. 중요한 일이야. 페어와 필을 만나기로 했으니까.”
한치우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담긴 힘은 존을 어쩔 수 없이 주방으로 가게 했다.
“아예, 얼음주머니를 만들어서 갈까!?”
“아니. 그냥 아이스 팩이면 돼!”
“여기. 그래도 병원에는 가 보자.”
“후 – ! 잠깐만.”
한치우는 존이 건네주는 의료용 아이스 팩을 눈과 이마 위쪽으로 올려놓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디 아픈 데 있는 건 아니고?”
“아프기는 무슨. 답답할 뿐이지. 정말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병원에 가기 싫다면, 한스 박사님께 알려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존.”
“응?”
“조금은 알 것 같아. 아까 생각을 조금 해 봤는데, 확실히 눈은 내 수면 상태와 연관이 있어.”
“그건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아니. 그냥 그러려니 생각한 정도였고, 런던으로 돌아와서 어제까지 쭉 생각해 보니까 수면 부족. 그리고 내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의 변화가 생기면 바로 눈이 이렇게 변하는 것 같아. 잠은 많이 잤지. 그래도 어떤 날은 내 눈이 붉어진 채 경기를 뛰어야 했어. 그런 날에는 미친 듯이 그라운드를 뛰어야 했지. 그래야 답답한 속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으니까.”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하는 기관차…….’
한치우가 하는 말을 들으며 존 역시 아까 휴 실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최근 경기장에서 보여 주는 한치우의 모습이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응? 뭐라고?”
존이 잠시 생각한 사이, 한치우가 뭐라고 중얼거린 것 같아 존은 다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한스 박사님께는 내가 연락 드릴까?”
“그럴 필요 없어. 병원이나 박사님께서 해결하실 일이 아니야. 이것보다 빨리 한국에서의 일을 정확히 알아봐 줘. 부탁할게.”
“그 일은 내가 알아볼게. 어차피 아까 휴와 함께 있었던 것도 한국에서의 일 문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 버렸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것뿐인데.”
“언제나 감춰진 진실을 꺼내는 일은 무거운 결과가 뒤따르는 법이야. 솔직히 너도 이상한 느낌이 있어서 알아보려 했던 거였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바로 잡아야지. 네 것을 되찾는 일이고, 나는 너를 도와줘야 할 의무가 있지.”
“계약서에 그런 것도 있었나?”
“아니. 이것은 친구로서 네 파트너로서 내가 할 일이지.”
“고마워. 진심이야.”
“그래. 나중에 회장 자리에 앉게 되면, 내 자리는 분명히 있어야 할 거야.”
“헛소리하지 말고.”
“약속은?”
“내가 알아서 할게. 조금 있으면 민석이 형이 올 거야. 둘이 함께 움직일 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바쁘면 가서 일해.”
“그래. 이상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는 거다.”
“물론.”
존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직원도 더 구해야 했고, 업무 체계도 더 갖출 필요가 있었다.
혼자 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회사를 차리고 보니 손이 가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 몸이 이렇게 회복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한치우는 나가는 존의 발소리를 들으며 아예 몸을 소파 위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약속 시각까지 천천히 잘 생각해 보기로 했다.
왜 스무 살의 신체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지금 눈에 나타나는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 * *
남성시 제일병원.
수술실 앞 보호자 대기실에 정남용 부원장과 문형철 변호사가 초조한 표정으로 수술실 입구 앞을 서성이고 있었고, 옆에 보이는 의자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인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일단,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런던에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잘했네. 후 – 우. 내일이 검찰청에 출석하는 날이었지?”
“예. 아마 마지막 조사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는데, 거의 모든 게 드러났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이 지나면 구속이 확실해졌을 테니까요. 이제 더는 부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구속을 피할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래도 오빠를 잘 따르던 동생이었는데.”
“저도 안타깝습니다. 처음부터 잘못 꿰인 실타래였습니다. 처음부터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자네까지 책임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아버님께서는 차마 아들을 보내 놓고, 딸까지 죄인으로 만들 수는 없었겠지. 물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해. 그게 순리고, 사람 사는 도리이지. 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어. 그래서 하루도 편한 마음으로 지내시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께서 유성이가 그렇게 가고, 이 년이 채 되지 않아 돌아가셨겠지.”
“앞이 캄캄해진 기분입니다. 회사도 걱정이고, 치우와 서우도 걱정이에요. 그리고 유선이, 유성이도 앞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문형철이 옆에 보이는 여인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을까?
앉아 있던 김유선이 고개를 들어 정남용과 눈을 마주쳤다.
“부원장님, 아니 아저씨. 엄마는, 엄마는요?”
“기다려 보자. 뇌에 산소가 오랫동안 공급되지 못한 상황이라 일단, 숨이라도 붙여 놔야지.”
“흐, 흐흐흑! 어, 엄마……. 내가 집에 있어야 했는데, 내가 미안해 엄마! 흐흐흐흐…….”
“유선아. 정신 차려라. 그래도 일찍 발견한 거야. 사람이 죽기로 마음먹고 벌인 일이다. 여기서 숨만 붙여 놓고, 수원으로 갈 거야.”
“흐흐흑! 수, 수원이요……?”
“그래. 대학병원으로 가야지. 이미 연락은 다 했으니까. 나오기를 기다리자. 기운 좀 내! 유성이는?”
“미, 미국에 있는 아이가 빨리 온다고 해도 오, 오늘은 들어오지 못해요. 내일 저, 저녁이나 도, 도착 하겠죠…….”
“그래. 그러니까, 네가 기운을 더 차려야지.”
촤아 –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인공호흡기를 입에 단 채, 의식이 없는 한우선이 죽은 사람처럼 바퀴가 달린 침대에 누운 채로 나오고 있었다.
“유 과장. 어떻게 됐어?”
“예. 후두부에 혈전이 많습니다! 여기서 건들기는 어렵고, 빨리 수원으로 올려보내야 합니다.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래. 옥상에 닥터 헬기를 준비시켰네. 어서 올라가 대학병원에는 내가 다 연락을 했으니까!”
“그럼. 가지.”
드르르 –
유 과장이 시간이 촉박한지,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엄마! 엄마!”
“유선아! 나와 같이 올라가자! 엄마는 시간이 없어! 헬기로 갈 거야! 걱정하지 말고!”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한우선의 싸늘한 모습에 김유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잡으려고 애썼지만, 정남용이 붙들며 말했다.
“문 변. 자네도 함께 가지.”
“예.”
“바로 지하로 내려가야 해. 앞에는 기자들이 깔렸을 테니까.”
정남용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모두 누르며 말했다.
털썩 –
“엄마! 흐흐흑, 으아아아아아! 엄마!”
그런데 김유선이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아! 일어나! 어서! 엄마 보러 가지 않을 거야!?”
“유선아. 일어나.”
정남용과 문형철이 김유선의 팔 한쪽씩을 붙잡고 일으켰다.
띵 –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둘은 얼른 김유선을 부축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 변. 차에 타면, 생수가 있을 거야. 일단 유선이 물부터 마시게 해.”
“예.”
띵 –
이미 정남용이 대기시켰는지, 지하 주차장으로 나오자,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탁 – 탁 –
“수원 영통으로 가지. 이런 부탁하게 되어 미안하네. 솔직히 나도 지금 제대로 운전할 기분이 아니라서.”
“아닙니다. 이럴 때일수록 안전하게 가셔야죠.”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얼른 내려 차 뒷문을 열고 문형철을 도와 김유선을 태웠다.
정남용의 차가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병원 앞은 저녁이 지난 시간임에도 기자들로 혼잡했다.
병원 보안 직원들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특종을 놓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진짜 꼴 보기 싫은 것들!”
정남용이 기자들을 쓰레기 보듯이 훑어보며 품 안에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적어도 한 시간은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그때, 환자의 상태와 수원으로 긴급 이송했다는 것을 발표하도록 해. 한 시간이면, 될 거야!”
병원에 담당하는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보였다.
두두두두두두 –
그리고 정남용의 승용차가 병원을 빠져나오자 저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11월 16일 오후.
그새 살이 많이 빠진 김유선이 EMA 건물 앞에 서 있었다.
“후 – 우 – ”
런던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처음 와 보는 곳이어서 그런지, 깊게 내쉬는 그녀의 숨이 아지랑이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냥 커다란 창고 건물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보니 곳곳에 달린 CCTV와 건물 입구를 지켜선 보안 직원의 모습에 김유선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십니까?”
“예. 약속하고 왔어요.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전해 주시면 될 거예요.”
김유선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나오고, 보안 직원은 이어폰으로 손님이 왔다는 것을 전했다.
곧 입구의 문이 열리며 김유선은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홀에는 조명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사방의 벽에는 EMA에 소속된 선수들로 보이는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한치우의 사진은 한쪽 벽면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리옹에서 뛰던 모습, 아스날에서 뛰던 모습, 그리고 지금 웨스트햄의 망치 엠블럼에 키스하는 모습까지.
김유선은 사진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이, 이게 지금 치우의 모습이라고?’
김유선은 한치우의 사진이 걸린 벽 앞에서 자꾸 떨리는 손을 매만졌다.
‘한국의 국가대표팀으로 뛰었을 때의 사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구나.’
그녀라고 한치우가 어떤 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게 되었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사진에서 전해지는 한치우의 마음에 다리까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지이잉 –
“들어오십시오.”
김유선이 눈을 감고 속으로 주문을 외는데, 안으로 들어가는 자동문이 열리며 새로운 보안 직원이 나타났다.
“후!”
짧은 숨을 내쉰 그녀가 보안 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먼저 안으로 걸었고, 그녀가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넓은 사무실 안에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은 직원들이 각자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김유선은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직원들에게 시선을 준 상태로 보안 직원을 따라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그런데 사무실 가장 안쪽에 앉은 여인이 자신을 보는 게 느껴져 눈을 마주쳤다.
‘왜?’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적대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이것은 여인의 직감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듯한 표정과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
김유선은 잠깐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실로 보이는 공간을 끼고 왼쪽으로 들어가자,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위로 올라가셔서 가장 안쪽에 있는 방 중에 오른쪽입니다.”
“예.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유선은 보안 직원에게 공손하게 인사했고, 보안 직원 역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회의실로 보이는 공간과 그 안쪽으로 방 세 개가 보였다.
오른쪽에 있는 방의 문에는 존 리처드라는 명패가 보였다.
똑 – 똑 –
“들어오세요.”
김유선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존과 그 앞, 소파에 앉아 있는 한치우의 모습이 보였다.
* * *
김유선.
나와는 동갑인 고종사촌. 아니, 이제는 사촌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관계였지만, 그래도 유선이와는 나쁜 사이가 아니었다.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고, 함께 자랐기에 친구처럼 편한 사이였을 때도 있었다.
물론, 다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다행이야. 엄마를 닮지 않은 것은.’
유선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심성이 착했고, 머리도 똑똑했다.
여기에 눈치까지 빨라 서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었고, 서우가 태어나자 자신의 자리를 재빨리 양보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남성시에 있는 유일한 백화점인 우성 백화점 홍보팀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것까지 들었다.
이것도 이 년 전의 일이지만.
엄마를 똑 닮은 것은 동생인 김유성이었다.
멍청하고, 거기에 욕심까지 많은데 눈치는 없는 새끼.
누나와는 다르게 돈을 처발라 LA로 유학 갔다는 소식은 들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내게는 한국말로 존에게 영어로 인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똑똑한 머리로 내 연락처를 몰랐음에도 EMA의 연락처를 찾아 존과 통화할 수 있었고, 런던까지 스스로 찾아왔다.
“예. 예전에 한국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죠? 반가워요. 앉으세요.”
존이 살갑게 인사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직 내가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한국에서의 사건 때문에 시끄러워질 것 같아 일부러 이리로 오라고 했다.
어차피 나를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부터 무슨 이야기를 쏟아 낼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용서해 달라고 빌겠지.’
그래서 일부러 존을 내보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에 더 상처를 입히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런던 생활을 시작하고, 아니 처음 리옹에서부터 외국에 나와 있는 나를 찾아온 고모의 가족 중에는 유선이가 처음이었다.
언제나 나를 찾아왔던 가족은 살아계셨을 당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이모와 서우뿐이었다.
‘흥!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나는 이미 매몰차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릎 꿇고 빈다고 내 마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후! 그래. 많은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직접 보고 얘기하고 싶었어. 우성 물산 내가 갖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