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tiring from the national team, Poten exploded RAW novel - Chapter 3
3화. 회복
나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목발을 내던졌다.
이내 정장 바지도 벗어 버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단단히 감긴 압박 붕대를 풀었다.
그리고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곧게 섰다.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도, 도대체?!”
허벅지로, 무릎으로, 종아리로 힘을 주었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폈다.
근육은 주인의 의지에 따라 그동안의 울분을 풀어내려는 듯 단단한 모양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다리만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모든 신체가 열아홉, 스무 살의 유연함과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마치 청소년 월드컵 당시 준우승의 영광을 함께했던 몸 상태 같았다.
“으……으하하하하하하하!”
나는 미친 사람처럼 가족 묘지를 내달렸다.
봉분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갈 때도, 내려올 때도, 허리와 무릎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게 해 준 레몬 향이 모두 날아가도록, 저수지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을 만끽하며 넓은 잔디 위를 질주했다.
가족 묘지와 저수지 근처 모두 내 개인 사유지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바지를 벗고 뛰어다니는 나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 과학으로, 상식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나는 매우 기쁜 나머지 한참을 달릴 수 있다는 희열을 만끽했다.
“헉! 헉! 헉! 헉!”
심장이 이제 그만하라고 가슴을 세게 두드린 후에야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크크큭!”
나는 입가로 흘러내리는 침을 손등으로 훔쳤다.
이제는 이성을 찾아야 할 때다.
바지를 주워 뒷주머니에 넣은 스마트폰을 꺼내고, 정장을 다시 입었다.
부재중 전화가 추가되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일일이 반응한다면, 한도 끝도 없었다.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예, 기사님. 죄송해요. 입구에서 기다릴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목발을 다시 쥐었다.
‘나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아직은 전부 드러낼 때가 아니야.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멀리 저수지 옆길을 따라 검은색 벤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인사가 기셨던 것 같습니다.”
양 기사님 얼굴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예.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까요.”
걸음걸이에 신경을 쓰며 목발을 쥔 채로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 주세요.”
“예?”
“어차피 이제 깁스도 풀었고, 은퇴까지 한 마당에 집이 나을 것 같아요. 병원에 더 민폐를 끼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알겠습니다.”
나는 바로 은산동의 집으로 향했다.
아마 병원에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하지 못한 기자들이 바글바글할 것이었다.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눈이 이상하게 뻑뻑한데……?’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확인해 보니 눈이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건 뭐, 귀신도 아니고.’
나는 봉분에 기대어 잠들었었다는 걸 생각하며, 다시 어지럽게 밀려오는 생각을 정리했다.
집에 도착해서 2층 내 방으로 올라갈 때, 양 기사님이 잡아 주시는 부축도 사양하지 않았다.
“감사해요. 오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는데, 얼른 돌아가서 쉬세요. 아! 당분간 집에 아무도 들이지 마세요. 아무도요.”
“예. 알겠습니다.”
양 기사님은 할아버지를 모셨던 기사님이시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도 우리 집안을 위해 일해 주고 계시는 고마우신 분.
집이 깨끗하고, 가족 묘지가 잘 관리되고 있는 것도 양 기사님 덕분이었다.
나는 기사님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통화 목록을 찾아 필요한 전화를 걸었다.
“부원장님. 저 때문에 병원이 시끄러우시죠? 예. 예. 죄송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 퇴원 절차는 부탁할게요. 예. 다시 전화 드릴게요.”
먼저 아버지의 친구이자, 남성제일병원의 부원장이신 정남용 박사님께 퇴원 절차를 부탁했다.
삼촌 같은 분이시지만, 나 때문에 하시는 일을 방해받아서는 안 되었다.
“후!”
오랜만에 내 침대에 벌렁 드러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말 그대로 궁궐 같은 집에 나 혼자밖에 없었지만, 외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집은 그런 곳이다.
얼굴에 느껴지는 뜨거운 햇볕에 감은 눈을 떴다.
침대에 눕자,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습관처럼 목발을 찾았다.
‘아!’
나는 목발이 필요 없어졌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창문에 달린 커튼을 쳤다.
간단하게 씻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충혈된 눈도 원래의 색을 찾았다.
간편한 운동복을 입고 방 옆에 있는 내 전용 운동실에 들어갔다.
가벼워진 다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러닝머신을 달리고 레그 프레스를 밀어도, 다리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다리의 근육들이 더 무겁게, 더 많이 밀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확실해졌다.
지금 내 몸 상태는 스무 살의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그래도 무리할 이유는 없다.’
지금은 발톱을 숨긴 채, 다시 도전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나는 스트레칭으로 온몸의 근육들을 늘려 준 후, 깔끔하게 씻고 나왔다.
‘그곳은 이른 아침이겠지만, 부지런한 녀석이었으니.’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잠시 본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치우는 이제 막 잠에서 깼을 런던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아침이야. 존.”
* * *
영국 런던.
회의실의 테이블에는 세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중년의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월드컵이 끝나기 전에 정리할 것은 빨리 정리하지! 시간이 별로 없어.”
“먼저 한의 재계약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료진에서는 무릎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입니다. 물론 정밀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그동안 한을 살폈던 팀 닥터 해리는 그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뭐, 어차피 재계약은 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우리가 그를 위해 아까운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야 하나?”
오른쪽에 앉은 안경을 쓴 남자가 서류를 보며 답을 듣고, 이번에는 왼쪽의 남자에게 물었다.
왼쪽에 앉은 남자가 바로 입을 열었다.
“서포터즈의 반발이 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먼저 버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선수 생명이 끝났을지도 모르는 그를 안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은 데 우리 역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의료진의 오진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하지. 우리의 실수를 인정할 필요는 없어. 서포터즈의 반발? 설마 동양의 남자 한 명에게 클럽의 운명을 맡기라는 건가?”
“거너스의 영광을 찾기 위해 그가 보여 준 모습은 서포터즈에게 충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 지난 시즌 A매치에서 복귀하자마자 블루스(The Blues)를 무너뜨렸던 그의 마지막 패스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자네도 그중 한 사람인 것 같군. 그래서 감독인 자네가 그의 재계약을 두고 이렇게 내 시간을 뺏는 것이겠지만. 물론 나도 첼시를, 그것도 스탬퍼드 브릿지에서 역전 골을 어시스트한 한의 능력은 높이 사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미래가 달라지는 건 아니야.”
“미스터 고든. 수뇌부의 의견이 이미 결정되었다면, 저 역시 시간을 뺏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거너스의 영광을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요한. 자네가 그를 아낀다는 건 잘 알겠네. 물론, 서포터즈 역시 동양의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우리가 이러는 동안에도, 다른 클럽들은 빅 네임과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그리고 주주들의 생각은 경기에 뛸 수 없는 선수에게 주급을 쥐여주는 멍청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야. 서포터즈도 비싼 티켓을 구매하는 일이 봉사가 되어서는 안 돼. 자네의 연봉도 마찬가지고!”
아스날의 대주주 프레딕 고든이 냉정한 시선으로 감독 요한 슈미트를 보며 확실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불만인 사람이었다.
한치우?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는 보도가 유럽으로도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졌다.
그가 사랑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다는데, 이게 이미 그의 선수 생명이 끝난다는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클럽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물론 그가 아스날에 입단해서 국가대표에서 보여 주었던 헌신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며 서포터즈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서포터즈도, 그의 유니폼과 관련된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수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관광?
신혼여행을 런던으로 오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그의 경기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관람하는 것보다 티브이로 시청하는 것을 선호했다.
‘엔진이 꺼져 버린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줄 이유는 없어.’
프레딕은 비서와 감독을 돌려보내고 존 리처드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존. 한 시간 후, 한이 FA가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할 것이네. 물론 자네도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 * *
존 리처드는 뛰어난 에이전트다.
런던 출신이었지만, 가끔 쉴 때와 업무에 집중할 때를 제외하고는 전 세계의 유망주를 찾아다니는 일을 마다치 않는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스카우터를 시작으로, 그는 선수를 발굴하는 능력을 관리하는 영역까지 넓히며 에이전트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선수가 아니라면 계약을 하지 않았고, 운동 능력만이 아니라 사람의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빅 클럽들은 존의 고객이라면 믿고 계약을 맡겼다.
존이 관심을 보이는 클럽이나 대회가 금방 소문이 도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아스날의 공식 발표가 있고, 유럽의 클럽들은 한치우의 미래 가치에 관해 이야기했다.
독일 뮌헨.
“런던의 발표대로라면, 이적료 없이 한을 데려올 수 있습니다.”
“한은 매력적인 선수이지요. 그의 능력은 탁월하니까요. 또한, 그는 헌신과 동료를 위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물론 그것이 애국심으로 발휘되었을 때는 부작용이 따르긴 하지만요.”
“대한민국 국가대표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이제 A매치에 대한 부담감은 없어졌지요.”
“중요한 건, 선수 재활 분야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저희가 그를 부활시킬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게 있죠. 과연 우리 바이언(Bayern)이 한을 영입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가 요청한다면, 재활을 위해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영입은 불필요한 일 같은데요.”
“맞습니다. 보수적인 아스날에서 그의 FA를 발표한 만큼, 그의 상태가 훨씬 심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저도 한의 영입은 반대입니다. 우리가 그의 재활에 개인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바이언의 선수로서 영입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프랑스 리옹.
“한(원래 불어 발음대로 한다면 ‘안으’에 가까운 발음이 되지만, 편의상 한으로 하겠습니다.)의 상황을 모른 척하기에는 그가 리옹을 위해 헌신했던 과거가 떠오릅니다.”
“그를 다시 데려오겠다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미 많은 선수가 보강되어 있습니다. 옛정으로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를 원하는 리옹의 팬들이 많습니다. 그가 올랭피크 리오네의 옛 영광을 찾아주었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그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영광을 찾은 게 아닙니다.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니까요.”
“맞습니다. 때로 개인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웃도는 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주위에서 받쳐 주는 동료가 항상 있었습니다. 한 역시 그렇지요. 그가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일 년 이상 재활에 시간을 소모할지도 모르는 그를 다시 데려오는 것은 너무 효율이 좋지 않습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저희는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이런 일일수록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요. 만일 그가 재활에 성공하여 옛 모습을 찾는다면, 그때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면 될 일입니다.”
아스날의 공식 발표에도 명문 클럽들의 보드진은 냉정하게 한치우의 상황을 분석하여 판단하고 있었다.
아직 월드컵은 끝나지도 않았고, 한치우는 예전의 매력을 잃어버린 선수였다.
그럼에도 혹시 그가 재기한다면, 국가대표를 은퇴한 한치우가 보여 줄 가능성에 대해 여러 곳에서 한치우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게 사실이었다.
유럽과 대한민국의 분위기는 달랐다.
지금 한국의 축구 여론은 한치우의 은퇴 발표 이후, 그에 관한 특집 기사와 방송을 내보내기 바빴다. 한국 축구의 현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은퇴와 관련된 자극적인 기사와 방송에 묻히기 일쑤였다.
대회 기간이 길어진 월드컵 조기 탈락의 후유증을 고스란히, 한치우를 물어뜯는 것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특히 한치우가 중국에 진출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존 리처드가 여러 클럽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그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도 이어지고 있었다.
* * *
엑스커베이터(Excavator)라고 불리는 발굴자 존 리처드는 유망주를 발굴하여 빅 클럽과 계약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존 리처드에게 한국 출신의 한치우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처음 리옹에서 그를 만났을 때 보았던 한치우의 맑은 눈동자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고객을 떠나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예의를 아는 신사였다.
하지만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고집에 화가 날 때도 많았다.
배려와 예의를 아는 것은 훌륭했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였다.
“치우. 자네가 내 아들이었다면, 방에 가두는 벌을 주었을 거야.”
“자네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하늘에 감사해야겠군. 그리고 나는 이미 훌륭한 아버지가 계시지.”
몇 년 전, 런던의 펍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오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월드컵이 끝나고 여름 이적 시장이 마감하는 시점에 한치우와 에이전트 계약을 종료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일단 한치우가 재기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FA가 되었음에도 매력이 떨어져 버린 고객이자, 친구인 한치우의 현실은 답답했다.
“후! 바람이라도 쐬어야겠어.”
존은 안개비가 내리는 런던의 회색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냥 거리를 향해 발을 옮겼다.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도움되어 줄지도 모른다.
‘치우…….’
그가 잘 아는 한치우는 재활에 성공한다면, 재기 역시 성공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리고 이제는 족쇄처럼 그의 다리를 무겁게 했던 국가대표마저 은퇴한 상황이 아닌가.
존은 문득 며칠 전 이른 아침에 걸려온 전화로 한국에서 몸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한치우의 말이 떠올랐다.
“존. 내가 지금 개인 운동실에서 통화하고 있다면 믿을 거야?”
“대한민국은 좋은 곳이야. 국가대표를 은퇴해서 그런가? 몸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기분이야. 가벼운 조깅까지 할 수 있는 정도니까.”
‘러닝머신? 조깅? 젠장! 당장에라도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군!’
“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은 반대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얘기하는데, 중국으로는 절대 가지 않아.”
존 리처드는 한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한치우의 말도 떠올랐다.
그날 오후에 걸려온 고든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한치우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노력했겠지만, 아스날의 공식 발표 이후 쌓여 가는 자신의 메일 수신함과 울려 대는 스마트폰 때문에 한치우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다.
비록 비공식 채널을 통해 명문 클럽들은 한치우의 영입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거너스의 사령관이었던 한치우의 가치를 알아주는 클럽들은 많았다.
특히 제일 적극적인 곳은 중국이었다.
비록 선수가 경멸하는 곳일지라도 현재 중국의 황금은 축구 시장에 찬란한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예전부터 중국의 여러 클럽은 한치우를 영입하려고 상상 이상의 금액을 부르곤 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이자 고객은 단 한 번도 중국의 황금에 유혹된 적이 없었다.
‘치우의 부상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면?’
그야말로 런던의 잊혀지는 명가 아스날이 아니라, 스페인의 마드리드도 노크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중국?
친구의 말대로 헛소리였다.
존 역시 중국의 황금이 가지는 무서움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황금은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족쇄를 한치우의 다리에 채워 버릴 것이다.
우우웅- 우우웅-
그때, 비가 내린 탓에 습기를 머금은 런던 거리에서 깊은 생각에 잠긴 존에게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머스(The Hammers)!?”
존은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에 찍힌 발신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해머스의 보스께서 직접 제게 전화를 걸어주시고. 반갑습니다. 미스터 그랜트.”
“나 역시 아주 오랜만에 자네 목소리를 들어 보는 것 같군. 런던인가?”
“물론입니다. 같은 잿빛의 런던 하늘 아래 있지요.”
“반가운 소식이군. 자네와 나눌 이야기가 있는데, 오랜만에 템스강 근처의 펍에 들르는 건 어떠한가?”
존은 왠지 모를 나쁘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제 고객에 대해 문의를 하시려는 것입니까?”
“물론이네. 비록 자네가 한때는 해머스에 소속된 스카우터였지만, 이제는 자네의 고객에 관한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 그리고 자네도 듣게 된다면 반가운 얘기가 될 걸세.”
“제 고객 중에 누구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그야 당연히 빌어먹을 거너스의 커맨더(Commander), 미스터 한의 이야기지. 아직 자네의 고객이라면 말이야.”
씨익-
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해머스의 보스께서 사령관의 가치를 제대로 보고 계시는지,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네요. 오랜만에 템스강을 보러 내려가야겠군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걸세. 저녁을 맥주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
이건 반전에 가깝다.
다른 클럽도 아닌 같은 런던을 연고로 하는 라이벌,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