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처음은 역시 (1)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여기서 알은 채를 했다간 상황이 복잡해질 게 너무 뻔해서 우선 자리를 피했다.
리아가 기자들에 둘러 쌓여 어쩔 줄 모르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쪽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그녀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지금 저기 다가가서 연락처라도 물어봤다가는 기자들이 아니라 경호원들에게 먼저 패대기 당할 것 같다.
‘한국 에이전시에서 나왔나?’
몰래 한국에 들어왔으니 경호원들이 늦게 왔다고 화낼 수도 없고.
그나마 경호원들이 왔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해서 우선 공항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날 불렀다.
“임선우 대표님? SW 공업사의 임선우 대표님 맞으시죠?”
“네, 그런데 누구신지.”
“저 연락드렸던 한서울 경제 신문의 정현호 기자라고 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시간을 많이 뺏지는 않겠습니다.”
조금 전에 리아 앞에서야 우쭐한 척 말하긴 했지만, 설마 정말로 공항까지 왔을 줄은 몰라서 조금 놀랐다.
내 눈 앞에 선 한 사람의 기자, 그리고 뒤쪽에는 우글거린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모인 기자들의 열띤 경쟁 현장.
두 곳을 번갈아 보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신문사 기자의 손을 낚아챘다.
“한 분이라도 저한테 와 주셔서 감사하네요.”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근처 카페로 가실까요?”
원래 인터뷰 같은 걸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의 당황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차분하게 웃는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고 있는 리아의 모습을 보고는 조금 마음이 바뀌었다.
공항 안의 카페로 옮겨 자리에 앉은 기자는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처럼 보이나 싶기도 하고,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쉬지않고 움직였으니 바쁘다면 바쁜 것도 맞다.
무엇보다 성과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능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이번에 미국에서 가셔서 AMD 본사와 계약을 체결하셨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떤 제품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수랭 쿨러에 들어가는 부품입니다. 하지만 고성능 CPU를 위한 제품이라 개인용 컴퓨터에서는 수요가 그다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자는 녹음을 하면서도 열심히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아니라면 서버용 컴퓨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버보다는 전문가용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네요. 아마 가격도 상당한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라 시중에는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중에 풀리지 않는다면··· 설마 기존의 기본 쿨러를 대체하는 제품인가요?”
단순히 경제 전문지의 기자라고 생각했는데, 본인 스스로도 컴퓨터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거기까지는 아직 제가 말씀드릴 수준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리아 수 회장이 어떤 식으로 판매를 할지는 아직 나도 들은 바가 없으니까.
내 역할은 그저 방열판의 제작뿐이다.
“그렇군요. 그럼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SW 공업사는 사업자 등록을 하자마자 AMD로 부터 꽤 큰 금액의 투자를 받으면서 잠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다 문래동에서는 대한민국의 제 1세대 철강 산업 주역으로 손꼽히던 오성락 씨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이렇게 주변에서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을 수 있었던 것에 특별한 노하우라도 있으신가요?”
인터뷰를 요청하기 전에 꽤 조사를 했는지, 기자는 꽤 여러가지 질문을 해왔다.
노력이 엿보여서 나 역시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성실하게 답변을 해줬고, 인터뷰는 꽤 부드럽게 진행됐다.
그렇게 10여분이 넘도록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가고, 기자는 노트북을 덮으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혹시 가수 클라리아 씨랑은 어떤 관계신가요?”
쿨럭.
순간적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뿜을 뻔했다.
“···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아, 그게 제가 두 분이 입국장에서 함께 나오시는 걸 본 것 같아서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있어서 몇 마디 인사를 나눈 것 뿐이라···.”
“그렇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만 어떠신가요?”
마지막 질문을 던지기 전이었다면 제법 그럴듯한 포즈까지 잡아줄 수 있었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갑자기 거부감이 든다.
기자란 특종이라면 목숨까지 거는 사람들이니까.
이 사진이 어떻게 쓰일지, 왠지 불안해져서.
“사진은 다음으로 미루시죠. 겨우 이런 걸로 사진까지 실리는 건 좀 민망해서요.”
“민망한 수준은 절대 아닙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인텔이나 AMD와 직접 계약을 맺는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심지어 저쪽에서 클린룸까지 지원해 주는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죠.”
“그런가요?”
애써 담담한 척 답했지만, 정보력이 상당한 기자다.
극비까지는 아니었지만 회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히 파악했다니.
특히 클린룸에 대해서는 일반 직원들도 잘 알지 못하는 일인데도.
‘회사 내부적으로 보안 유지가 필요하겠네.’
AMD처럼 최첨단 보안 설비까지는 아니지만, 문래동에도 상당한 수준의 보안 시설이 되어 있다.
문제는 아직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
‘보안 실장이랑 이야기를 좀 해봐야 겠다.’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클린룸의 시공 상황도 확인해야 하고, 심 비서에게는 사내 보안 규정 점검을 위해 회의도 준비하라고 일러뒀다.
참석자는 대표인 나, 책임자인 보안 실장, 법무 팀장, 공장장.
그리고 어쩌면 내부 보안에 가장 민감할 수 있는 개발 팀장이다.
***
“어서오십시오. 대표님!”
“미국 출장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대체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다들 여기서 뭐 하세요?”
화가 나서 묻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네? 그야 대표님이 출장에서 돌아오셨으니까 마중을···.”
심 비서야 그렇다 칠 수 있다.
애초에 비서가 하는 업무가 이런 일이니까.
하지만 회사의 주요 임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금 한창 바쁜 공장을 챙겨야 할 공장장까지 나와있었다.
차에 내리니 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황당하기 까지 했다.
택시 기사가 움찔할 정도였으니 말해 뭐할까.
“아니, 제가 무슨 그룹 회장입니까?”
당장 내일모레 어떻게 될 지 모를 노인이 어쩌다가 회사에 시찰 나온 것도 아니고.
출근하는 게 당연한 사람이 왔는데 이러는 건 정말이지 자원 낭비, 시간 낭비다.
“혹시나 앞으로 이런 일이 생겨도 절대 이러지 마세요. 이게 무슨 쓸데없는 짓입니까?”
“그래도 대표님이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신 건데, 이 정도 마중은 당연히···.”
“제가 뭐라도 됩니까? 차라리 이 시간에 직원들 업무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 주세요. 여러분들이 할 일은 저한테 잘 보이는 게 아니라, 직원들한테 힘든 일은 없는지, 일하면서 어려운 건 없는지 확인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마세요.”
나는 전문적으로 경영을 배운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 경험이 많아 사람들을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야 많이 먹었지만, 골방에 틀어박혀서 평생 마법진이나 연구했던 시간이 공장 대표가 되어 무슨 도움이 될까.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나를 대신해서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임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래와 위를 잇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써야 하는 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다.
무엇이든 튼튼하게 성장하려면 뿌리가 단단해야 하는 법.
“아, 알겠습니다.”
“심 비서, 회의 준비는 다 됐어?”
“네, 보안 실장님은 현재 회의실에서 자료 검토 중이시고, 개발팀의 이욱기 팀장님은 대표님이 오시면 회의실로 바로 온다고 합니다.”
“좋아요. 다른 분들은 이만 업무로 복귀하시고, 공장장님은 저랑 같이 회의실로 가시죠.”
조금 전에 으름장을 놔서 그런가, 모여있던 직원들이 얼른 흩어졌다.
“공장장님.”
“네. 대표님.”
“내용은 전달 받으셨죠?”
“네. 회사 보안 규정을 점검하고 싶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별 것 아닌 일이라면 별 것 아닌 일이었다.
기자들이 하는 일이야 기사를 위해 파헤치는 일이고, 회사가 무슨 특수 기관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다니는 회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일은 그저 고개를 한 번 젓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 안돼.’
어쩌면 미국의 백악관보다 더 중요한 비밀이 보관될 곳.
알려지게 된다면 인류가 외계인과 조우한 적이 있었다는 증거보다 사람들에게 더 충격적인 일이 될 비밀이 보관될 곳.
그러기 위해서 특별한 대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표실에 준비된 회의용 테이블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모여있었다.
회사의 보안을 책임지는 보안 실장.
어쩌면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도와 기술을 개발하게 될 개발팀의 이욱기 팀장.
이해하기 힘든 물건을 만들어 내라는 지시를 받게 될 공장장.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도 절대 의문을 품지 말아야 할 측근, 심 비서.
“우선 보안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필요성입니다.”
보안 실장의 말로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필요성이요?”
“네, 비밀이란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안전해 지는 법이니까요. 보안 등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업무에 관련된 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대외비. 그리고 사내에서도 특정한 권한이 있어야만 열람할 수 있는 기밀 등급이죠.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무엇이, 왜 필요한 지에 따라 정확한 구분을 지을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직급만으로 구분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예를 들자면, 개발팀에서 연구중인 자료라면 개발팀 직원 누구나 열람을 할 수 있어야겠지만, 보안 실장인 제가 접근을 할 필요는 없겠죠.”
보안 등급을 관리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게 되지만, 정작 개발팀이라면 일개 직원도 열람할 수 있는 자료를 보안 실장이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특히 보안 자료에 대한 열람 기록은 그 누구라도 예외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설령 대표님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제 정보를 알아내 접근하더라도 확인이 가능하게 한다는 거겠죠.”
“네, 정확하십니다. 열람 자료는 실시간으로 동기화가 가능한 서버에 저장되게 만들고···.”
회의는 제법 길어졌지만, 막힘은 없었다.
보안 실장은 이미 지시를 받기 전부터 이에 관해서 대비를 하고 있었는지, 상당히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고, 내용들은 대부분이 타당했다.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보안 유지 각서를 받아야 하고, 무엇보다 클린룸의 입장 허가자에 대해 정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보안카드와 지문 인식으로 충분하지만, 만약 대표님께서 더 높은 등급의 보안을 원하신다면 하나 생각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다만, 설비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게···.”
“보안 설비에 관해서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걱정말고 말씀해 보세요.”
그 말이 믿음직스러웠는지 보안 실장의 입가에 만족의 미소가 걸렸다.
“제가 제안드리는 건 바로 바디 스캔입니다.”
“바디 스캔이면··· 전신을 찍는다는 말이네요?”
“네. 클린룸 출입 인가자에 대해 매주 보안 서버에 본인의 정보를 등록하고, 만약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자료를 갱신하게 됩니다. 지문이나 각막은 물론이고, 몸의 흉터, 신체 주요 장기의 위치나 형태가 모두 일치해야만 입장이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심지어 심장 박동으로 상태를 확인해서 무언가 이상이 있다고 판단되면 보안실에서 직접 현장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과학이 아니라 마법진을 이용하면 생각보다 간단하게 구축이 가능하겠지만, 그 정보를 컴퓨터와 연동하는 것은 아직 나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지금 공장 안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클린룸이고, 그에 대한 비용은 아낌없이 지원할 예정이다.
“좋네요. 바디 스캔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자료로 정리해서 심 비서에게 전달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욱기 과장님은 개발 팀원들에게 보안 유지 각서와 신체 스캔에 대해 안내해 주시고, 동의서 받으시고, 동의하지 않는 인원에 대해서는 원하면 다른 부서로 배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외는 없다.
무엇이든 예외를 두는 순간, 어긋나기 시작하는 법이니까.
“클린룸 시공은 현재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Class 3 등급의 클린룸으로 시공 중이라 생각보다 시일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이크로 성형 기계는 창고에서 대기 중이고···.”
두 시간에 걸쳐 회의가 이어지는데도, 누구 하나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였나, 이미 점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아, 벌써 시간이··· 회의 때문에 식사도 놓칠 뻔 했네요. 다들 식사하고 잠시 쉬었다가 하시죠.”
“대표님, 마침 사내 식당이 어제부터 운영을 시작했는데 한 번 가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런가요? 좋아요. 그럼 다 같이 가실까요?”
보안 실장이 입사한 이후 가장 많이 신경 썼다는 대표실의 문이 열리고, 다섯 사람은 사내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