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Football Talents Are Mine RAW novel - Chapter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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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창과 방패의 대결(4)
골키퍼의 계보는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프 야신(Lev Ivanovich Yashin)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각지대는 나만이 막을 수 있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올 타임 넘버원이었고, 그의 이름을 본따 ‘야신상(Yashin award)’이라는 골키퍼 상까지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도 디노 조프, 고든 뱅크스, 슈마이켈, 올리버 칸 등 엄청난 골키퍼들이 나오면서, 괴물 같은 실력으로 세계 스트라이커들에게 악몽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
각 리그를 대표하는 골키퍼는 크게 세 명이었다.
잉글랜드 1부 리그(EPL)의 에드윈 반 데 사르.
이탈리아 1부 리그(Serie A)의 잔루이지 부폰.
스페인 1부 리그(La liga)의 이케르 카시야스.
대충 이 정도로 꼽을 수 있었는데, 여기에 프랑스 1부 리그까지 확장한다면 ‘그레고리 쿠페(Gregory Coupet)’까지 낄 수 있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프랑스 1부 리그 팀 ‘올림피크 리옹(Olympique Lyonnais)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전설의 골키퍼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올 시즌 프랑스를 떠나 스페인 라 리가에 오게 되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말년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쿠페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그리고 경험과 노련함을 갖춘 그의 등장은, AT마드리드의 고질적인 수비문제를 해결해주는 듯 보였다.
오늘 경기가 있기 전까지는.
‘젠장······.’
전반 종료 이후 홈팀 라커룸.
어이없이 실점을 허용하고만 쿠페는 망연자실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악몽.
오늘 경기를 위해 컨디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망할, 망할, 망할.’
자책감이 들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점한 것이면 모를까, 우호영의 중거리 슈팅과 방향 전환에 대한 대비는 지난 며칠 간 철저히 준비를 한 상태였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전략실에서 업로드 해주는 우호영의 플레이 영상을 지켜보며 그의 움직임을 눈에 익혔다.
침투 시에 자주 나오는 침착한 슈팅, 반 박자 빠른 토킥, 스핀킥, 오른발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왼발슈팅, 그가 좋아하는 슈팅 각도, 강력한 중거리 슈팅 등.
그 모든 것에 충분히 대비가 되어있었다.
물론 모든 공을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준비한 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알고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아······.”
첫 번째 실점이었던 묵직한 중거리 슈팅.
각도도 각도였지만, 슈팅 파워가 장난이 아니었다.
공을 펀칭해낸 순간 마치 농구공을 막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참나.’
프로생활만 16년 차인 그는 지금껏 수많은 슈팅을 막아봤다.
막다가 손가락이 골절된 적도 있고, 공의 속도 때문에 손목이 접혀 들어간 경험도 있었다.
아까가 그런 비슷한 순간이었다.
방심한 것도 아니건만, 그 한 방의 슈팅 때문에 손목에 또 무리가 가고 말았고, 그 뒤로 추가실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손목은 괜찮나?”
전술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걱정스런 목소리였다.
쿠페가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살짝 충격이 간 것뿐이에요. 45분은 더 뛸 수 있습니다.”
“흐음.”
전반전 결과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던 아기레 감독은 얼굴이 울긋불긋 붉어져 있었다.
선제골을 넣고도 패배하는 것만큼이나 열 받는 건 없었다.
그래도 아기레는 쿠페를 믿었다.
“그래, 네 몸은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투혼을 발휘해라.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야. 네가 몇 번이나 좌절을 시켰던 그 레알 마드리드 말이다.”
맞다.
3년 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절망을 선사시켰던 게 바로 쿠페였다.
그 기억이 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자신감을 되찾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꼬맹이.’
우호영의 슈팅을 막을 수 없다면, 슈팅을 하지 못하도록 상황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경기의 흐름을 읽어야 돼.’
손이 안 되면 발로, 그리고 머리로 막는다.
‘경험에서는 날 이길 수 없어.’
마인드 컨트롤로 자신감을 되찾은 쿠페는 손가락에 테이핑을 감았다.
골키퍼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 다음 손바닥 위에 물을 뿌렸다.
점성을 높여 글러브의 성능을 상승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에는 위닝 멘탈리티를 다졌다.
더 이상의 실점은 없으리라, 각오를 새기며 하프타임을 보냈다.
쿠페가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무렵.
원정팀 라커룸의 선수들도 마지막 점검에 돌입하고 있었다.
“더도 말고 딱 두 가지만 얘기하자.”
전술 회의가 끝나고 슈스터가 나가자, 라울이 라커룸 한가운데로 나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첫째, 우리는 전반전에 좋은 모습을 보였어. 모두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실행했지. 다만 불운하게도 그레고리의 초반 활약이 너무 눈부셨어.”
“맞아. 그 자식 완전히 돌아이 모드 발동 중이더라고요. 하지만 영(Young)에게 관광 당했지 뭡니까! 큭큭.”
“페페, 너는 좀 자제할 필요가 있어. 팀까지 구설수에 휘말리게 하는 행동은 절대 일어나선 안 돼.”
“아, 예.”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으면 그걸로 되는 거야.”
라울은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후반전에는 지난 2주간 준비해온 전술을 유감없이 펼칠 거야. 서로가 조금씩 더 뛰어주면 돼. 그게 승리를 위한 지름길이야. 마드리드는 ATM에게 질 수 없어. 다들 알아들었지?”
“옙.”
짝짝짝.
연설이 끝나자 라울은 곧바로 호영을 따로 불러냈다.
“영(Young). 환상적인 골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기회를 모두 못 살린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전반전이 끝났을 때의 아쉬움은 필드에 남기고 오는 거야. 대신 개선해야 할 점을 찾으면 되는 거지.”
가슴에 와 닿는 말.
오늘도 또 하나 배워가는 호영이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후반 막바지에는 내가 수비를 등지고 골문을 바라본다. 풀타임은 처음이니까 체력을 미리미리 아껴놔야 돼. 오늘의 교체카드는 2선에서 쓰일 예정이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라울은 손바닥을 내밀었고, 잇달아 짝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Vamos.”
“¡Vamos!”
삐익-
흥이 돋는 AT마드리드의 응원가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면서 킥오프가 이뤄졌다.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교체된 선수 없이 그대로 진행하는군요.] [반면 AT마드리드는 대열을 변경해 공격력을 보강했습니다.]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던 AT마드리드는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경기장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져 갔다.
아군이 공을 잡으면 열광했고, 상대가 공을 잡으면 미친 사람들처럼 광적으로 야유를 쏟아냈다.
이러나저러나 그 함성은 90분 내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공격력이 강해지고 있었다.
지난 2주간, AT마드리드만 특훈을 해온 것이 아니었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AT마드리드를 낱낱이 해부하다시피 면밀하게 분석하였고, 그들을 상대할 대응책을 충분히 세워놨다.
중요한 건 지금 후반전.
여기가 바로 승부처였다.
[우호영! 간결한 드리블로 아순상의 압박에서 벗어납니다! 욘 헤이팅야가 붙어보지만, 글쎄요!]타닥, 탁.
휙.
“익!”
알고도 당한다는 마르세유 턴.
마치 컴퍼스로 그린 것처럼 순식간에 반원을 그리며 몸을 회전시킨 호영은 헤이팅야를 젖혀냈다.
개인기를 남발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선수야말로 진정 무서운 법이었다.
[우호영! 수비수의 다리 사이로 패스를 흘려보냅니다!] [라울이 잡는군요!]한 번 균열이 일어난 AT마드리드의 수비라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
축구감각이 월등한 호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끊임없는 오프 더 볼 무브먼트로 기회를 만들어냈고, 계속되는 위협에 쿠페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후반 74분.
완벽한 찬스가 하나 나오고야 말았다.
역습의 역습이었다.
포를란이 때린 중거리 슈팅이 카시야스의 선방에 막혔고, 그 공은 지단의 발아래로 떨어졌다.
역습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이어집니다! 전방으로 향하는 지단의 패스!]레알의 역습찬스.
역습대비를 위해 AT마드리드가 포백라인을 낮춘 상태였지만, 이미 균열이 일어나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는 상황이었다.
타악!
지단의 땅볼패스가 대지를 갈랐다.
[수비를 등진 라울!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받습니다!] [공격과 수비 숫자는 정확히 4대4! 막아야 할 곳이 너무도 많은 가운데, 라울,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요!]“달려!”
잠시도 지체하지 않는 움직임.
그의 선택은 좌측 뒷공간으로 넘어가는 로빙스루패스였고, 그 자리에는 우호영이 골문을 바라본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
미리 약속되었던 플레이는 거침이 없었고, 호영은 패스만 바라보며 뒷공간을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라인은 이미 붕괴된 상태.
AT마드리드의 포백라인은 단 한 번의 연계플레이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우호영이 좌측 터치라인을 따라 달립니다! 공을 잡기 일보직전!]하지만 마냥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쿠페가 아니었다.
경기의 흐름을 주시하고 있었던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한 발 빠르게 반응하여 박스 바깥으로 뛰쳐 나왔다.
골대를 비웠다는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이 정도 거리면 무조건 자신이 공을 커트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빠르게 굴러가는 공을 선점하기 위한 둘의 사투가 벌어졌다.
그 넓은 뒷공간에는 두 사람만이 존재했다.
우호영과 쿠페.
양쪽에서 달려오는 둘은 마치 치킨게임을 벌이는 것처럼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리고.
“읏!”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한 쿠페는, 미끄러지면서 발을 뻗어 공을 잘라냈다.
반대진영으로 걷어내려고 했지만, 우호영의 스피드가 생각보다 빠른 탓에 일단 터치라인 밖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간발의 차이로 먼저 도착한 쿠페!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아웃시키자마자 골문으로 돌아갑니다! 베테랑만이 할 수 있는 과감하고 훌륭한 판단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근처에 있는 동료가 빨리 와서 공을 받아줘야 할 텐데요. 레알 마드리드의 스로인이 주어졌습니다.]하지만.
스윽.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호영은 본능적으로 스로인을 담당하여 터치라인 아웃된 공을 황급히 잡았다.
그의 눈앞에, 허겁지겁 골문으로 돌아가고 있는 쿠페의 뒷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헤이!”
훽!
[아! 우호영 뭐하나요!] [돌발적인 행동! 근처에 동료도 없는 상황에 전방으로 공을 살짝 던집니다!]근처에 동료라고는 한 명도 없었지만 호영은 일단 공을 던지고 봤다.
쿠페가 골문으로 돌아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직후 호영이 던진 공은 원하는 목표지점에 착지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툭.
“뭐야?!”
쿠페의 등.
호영이 가볍게 던진 공이, 황급히 뒤돌아가던 쿠페의 등을 맞춘 것이었다.
그리고 등에 맞은 공은 튕겨서 돌아오는 게 이치.
통통 튀겨서 부메랑처럼 되돌아온 공은 다시 호영의 발아래로 돌아왔다.
“야 이 씹! 그딴 게 어디 있어! 주심!”
찰나, 쿠페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주심은 경기를 그대로 진행시켰다.
플레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맞추더라도, 과도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게임을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쿠페는 하도 어이가 없었지만 투정 부릴 시간은 없었다.
허겁지겁 박스 안쪽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그러면서 외쳤다.
“야! 다 골대 안으로 들어가!!!”
그 외침에 반대편에 서있던 수비수들이 허겁지겁 골대 안으로 달려가보았지만, 공은 이미 호영의 발끝을 벗어난 뒤였다.
좌측 터치라인에서 골문으로 향하는 크로스.
아니, 43미터짜리 슈팅이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으로 향했다.
박스 안쪽으로 달려가던 수비수들이 중간에서 공중볼을 커트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공은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통, 통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그리고 그 뒤에 골 네트가 출렁이는 소리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공은 그대로 굴러 들어가 골네트 안쪽에 조용히 꽂혔다.
그리고.
“호우!”
여느 때보다 강렬한 세리머니.
그 모습에 쿠페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X발 뭐 저딴 놈이 다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