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Football Talents Are Mine RAW novel - Chapter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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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변화 아닌 진화(3)
월드컵이 끝난 직후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한국.
지단의 인터뷰가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비록 월드컵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값진 선물을 얻은 셈이었다.
한편, 프랑스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면서 축구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는데, 특히 레알 마드리드가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2006년 여름이적시장.
여러 가지 호재가 겹쳐 경질 위기에서 벗어난 페레즈는 마지막 기회를 얻어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5개월.
만약 겨울 휴식기까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레알의 소시오(유료회원)들은 가차 없이 그를 경질시키겠다는 여론을 주도하였다.
페레즈로서는 더 이상 돌아갈 곳 없는 외통수에 서게 된 셈이었다.
그의 임무는 12월까지 리그 1위와 더불어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진출하는 것.
페레즈 회장은 그를 위해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그 노력은 06년 여름이적시장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프랑스산 폭격기 ‘프랑크 리베리(Franck Ribery)’를 향한 구애였다.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함에 따라, 이미 수많은 유럽의 명문클럽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스날이 2100만 유로를 제시하는 둥 치열한 영입경쟁이 예고되었으나, 여기서 페레즈 회장이 4000만 유로(한화 약 600억)을 제시하면서 모든 것이 종결 났다.
프랑크 리베리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적이 성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이적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속팀은 아직 계약기간이 4년이나 남았다며 리베리에게 접촉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할 페레즈가 아니었다.
곧바로 다음 타깃을 노렸는데, 폭발력을 지닌 프랑스산 좌측 윙어 플로랑 말루다(Florent Malouda)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이적료는 2000만 유로(한화 약 300억).
잘생기지 않았다는 점이 의외였지만, 이는 우측 클래식 윙어 베컴과의 비대칭조합을 꽤하기 위한 이적이었다.
또한 갈락티코 군단의 멸망을 초래한 ‘마케렐레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프랑스산 특급 수비형 미드필더 마마두 디아라(Mahamadou Diarra)를 460억에 영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페레즈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최고로 비싼 선수가 가장 값싼 선수’가 그의 모토였으니, 두둑하게 마련된 총알을 쏘아댈 작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축구계를 뒤흔들만한 거대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칼치오폴리(Calciopoli).
이탈리아 축구계 최대의 스캔들로, 유벤투스의 단장이 축구·언론계의 고위 인사들과의 인맥을 이용해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건이었다.
예컨대, 그는 심판배정담당자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해 심판지명을 지시하는 등 해서는 안 될 짓을 수없이 반복했었다.
또한 AC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등 명문클럽들이 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들에게는 중징계가 주어졌다.
많은 관계자들이 축구계에서 퇴출당했고, 유벤투스는 3부 리그로의 강등판정을 받았다가 재판정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는데, 여기서 유벤투스의 많은 선수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에 페레즈의 눈이 바쁘게 굴러갔다.
먼저 수비진 강화를 위해 칸나바로와 에메르손을 영입하였다.
더해, 레알의 보드진은 맨유의 반 니스텔루이까지 값싸게 영입하면서 그야말로 드림팀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페레즈가 아끼는 호나우두가 팀에 있음에도 반 니스텔루이를 영입했다는 것은, 페레즈의 구단 내 입지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뜻이었다.
이에 포화상태가 아니냐는 언론의 반응이 있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이제 시작이라며 겨울이적시장을 준비하였다.
2006년은 지단에게도 뜻깊은 해였다.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했던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축구 인생의 연장선이 되어주었다.
만 33세.
이제 황혼기에 접어가는 나이였음에도 지단은 꾸준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공을 차고 몸을 길렀다.
물론 어려운 결정이었으나, 지단의 아내는 그의 뜻을 존중해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지단은 피나는 노력 끝에, 12월까지 팀을 1위로 끌어올리는 노장의 힘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해, 발롱도르까지 수상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호영과의 튜터링도 계속되었다.
그러다 1월.
마드리드에 한파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브라질 리그에서 빼어난 활약을 선보인 마르셀루와, 구단 측에서 예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아르헨티나산 특급 유망주 곤잘로 이과인(Gonzalo Higuain)이었다.
이로써 레알 마드리드는, 주전-로테이션-유망주로 이뤄진 꿈의 스쿼드를 구축하여 리그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또한 호영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20일에 예정된 대 발렌시아CF 전 때문이었는데, 이는 호영에게나 팀에게나 매우 중요한 리그 경기였다.
나날이 연승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후베닐B로서는, 리그 2위인 발렌시아를 격파해야 리그우승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발렌시아CF 후베닐B(U17)와의 승점 차이는 단 4점.
시즌이 중반을 넘어선 지금, 이번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후에 있을 컵 대회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리그 후반으로 갈수록 약해지는 호영으로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지단의 재능.
-마에스트로의 빌드 업(SU)
지단만의 재능.
아트사커의 근간이 되는 빌드 업.
빌드 업(Build-up)을 쉽게 말하면 ‘게임운영능력’이다.
이것은 시대가 지날수록 따라 점점 중요해지는 능력인데, 지금이야 플레이메이커들을 필두로 한 빌드 업이 득세를 보고 있다지만, 후에는 골키퍼에게까지 요구된다.
그런데 만약, 지단의 빌드 업 재능을 가지고 수년 뒤 프로리그에서 뛰게 된다면?
꿀꺽.
발렌시아와의 경기를 앞둔 호영이 마른 침을 한 번 삼켰다.
물감처럼 번져가는 상상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신(新)과 구(舊)의 조화.
그 연결고리 역할을 자신이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수비수의 개념을 바꾼 베켄바우어가, 토탈 사커의 창시자 크루이프가, 아트사커의 선구자 지단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 또한 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짜릿한 생각에 전율이 올라왔다.
물론 지단만의 빌드 업이 미래에 가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도 그럴 게 축구계의 흐름은 변화무쌍하게 변해가고 있다.
압박, 빌드 업, 공간, 템포, 포지셔닝, 지역분담 등.
수많은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수많은 조합을 통하여 새로운 축구가 매일같이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호영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안 통할 리가 없어.’
좌우간 분명한 건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리란 것.
그 밑그림이 오늘 경기에서 완성될 것이다.
‘할 수 있다.’
단 한 골이면 된다.
부담감은 라커룸에 남기고, 대신 각오를 다지며 피치 위로 올라섰다.
금일 경기는 발데베바스 훈련장에 위치한 후베닐B 구장에서 펼쳐졌다.
레알 마드리드의 홈경기인 만큼, 흰 유니폼을 갖춰 입은 선수들은 경기 초반부터 활기 넘치는 경기를 선보였다.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땐 짧고 정확한 패스플레이로 발렌시아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 갔고, 반대로 공이 없을 땐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상대에게 압박을 가했다.
빌드 업과 압박이라는 카드를 꺼낸 전술이었다.
물론 체력이 부족한 유소년들이 수행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우호영이 1-2선의 공격템포를 조율하면서 전술의 중심을 잡아주었기에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서툰 공격은 최대한 배제하면서, 안정적인 운용을 통해 계속해서 발렌시아의 틈을 노렸다.
‘천천히.’
겉보기에 발렌시아의 수비대형은 촘촘한 것 같지만 직접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은 느끼고 있었다.
틈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빌드 업은 효율적인 공격의 원동력이면서 동시에 양날의 검이다.
어렵게 성사시킨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그 즉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기회를 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발렌시아CF는 ‘박쥐군단’이라는 별명대로 스피디한 역습에 최적화된 전술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한 차례의 방심도 허용해서는 안 되었다.
‘침착하게 하자.’
호영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눈을 시도 때도 없이 굴렸다.
상대 수비조직의 간격을 힐끗 살피면서, 지단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패스의 길은 패스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패스 받는 사람이 만드는 거다.’
하지만 지단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플레이메이커라면, 선수들로 하여금 그 길을 수월하게 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것이 빌드 업이고 아트사커의 첫걸음이다.
예술의 경지.
그것이 프랑스 레블뢰 군단을 세계 최고로 이끌었던 아트사커의 기본이었다.
‘배운 대로, 실전이라 생각하고 해보는 거야.’
사실 호영은 그것을 따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단의 빌드 업 재능을 가져오면 모를까, 지금의 상태로는 턱도 없을 테니까.
다만.
‘시작이 반.’
늘 그렇듯 시작은 반.
축구신동의 8개월 치 노력이라면 걸음마를 뗀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 걸어볼만했다.
패배는 두려워도 실수는 두렵지 않았다.
천천히 두드린다면 열릴 것이다.
이후에도 따분한 경기가 계속되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점유율과 주도권을 꽉 잡았으나 점수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들은 그 정도로 신중했다.
발렌시아의 골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다비드 티모르(David Timor)로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왜 안 넘어오는 거야.’
만 17세인 그는 발렌시아 후베닐B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오늘의 경기를 위해 지난 일주일간 진절머리가 나도록 강도 높은 특훈을 받아왔었다.
일부러 기회를 내어주는 척 함정을 파놓고, 그것을 역으로 노리는 역습전개를 준비해왔는데, 레알 마드리드는 좀처럼 걸려들지를 않았다.
‘너무 티 나나?’
퉷.
“더러운 놈들.”
축구선수로서 아주 기분 나쁜 흐름.
레알 마드리드는 마치 소꿉장난하듯 유치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거야? 소풍 나왔어?’
발렌시아의 3선.
호영을 따라다니던 티모르가 호영의 유니폼을 살짝 잡아끌면서 신경을 긁었다.
얼마 안 가 호영이 반응을 보였다.
“내 유니폼이 갖고 싶은 거야? 끝나고 사인해줄 테니까 그때 다시 와.”
“미친놈. 어떤 멍청이가 흰둥이의 유니폼을 가지고 싶어 하겠어? 줘도 안 가져. 나는 영원한 박쥐군단이야.”
“낭만적이네.”
“그만 비아냥거리고, 어디 그 잘난 득점왕 솜씨 좀 보자. 내가 오늘 경기 때문에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몰라.”
발렌시아CF로서는 오늘의 경기가 리그 역전의 발판이었다.
따라서 모든 것을 걸어야 했고, 티모르는 ‘도발’이 그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호영은 티모르의 도발에도 끄떡없었다.
과묵하게 상대진영의 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그리고 기회는 예정 없이 찾아왔다.
타악!
바로 지금, 호영의 발끝을 벗어나 좌측 미드필더에게 전달된 축구공.
별 거 아닌 패스로 보였지만, 그것은 상대 우측 풀백으로 하여금 라인을 올리게 만들었다.
일순 우측 뒷공간에 공간이 생겼다.
그쪽으로 레알의 좌측 풀백이 전광석화로 파고들었다.
아까부터 슬금슬금 오버래핑을 준비하고 있던 마르코스 알론소였다.
“찔러!”
타악!
뒷공간으로 파고든 마르코스가 스루패스를 받자마자 우측 중앙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
그 중앙, 한가운데에서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괴물 같은 주력으로 빈 공간을 찾아 침투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
43번 우호영이었다.
그 모습에 마르코스는 직감이 들었다.
‘저기다.’
우호영의 움직임이 마르코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골포스트 반대편 부근으로 크로스를 올리라고.
마르코스가 그 직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은 정확히 전반 41분이었다.
뻐엉!
인프런트 킥으로 감아 차올린 공이 큰 궤적을 그리며 박스 안쪽으로 향했다.
“붙어!”
공간을 잡기 위한 공수간의 혈투가 벌어졌다.
공이 크게 회전하는 탓에 착지지점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호영은 일찌감치 골포스트 반대편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코스의 크로스는 과연 명품답게 그 자리에 착지하였다.
정확히 말해서, 호영이 곧게 뻗은 왼쪽다리에.
철렁!
“호우!”
빌드 업의 완성.
득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