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위기의 곽지철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짐작하기엔 이미 출처가 너무 많았다.
같은 선도부인 송천혜가 귀뜸했을 수도 있고.
동생 곽지철이 대화중에 흘렸을 수도 있고.
혹은 그외, 멘토링 4대4 대인전에 참여했던 손형택이나 북궁한설 등일 수도 있고.
그래도 가장 유력한 후보라면 역시,
“김갑두 선배님이 말씀하셨나 보네요.”
“그렇다.”
곽승재는 부인하지 않았다.
4대4 당시 곽지철이 이런 말을 했었는데,
– 예전에 형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김갑두 선배님에 관해서.
– 무투가답지 않게,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라고 했습니다.
얼핏 들으면 단순한 평가처럼 들리지만, 김갑두와 곽승재 사이에 어느 정도 친분이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애담 같은 개인적인 대화를 할 정도라면 그보다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넋두리를 한참 하시더군.”
물론 이 경우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신세 한탄에 가까웠을 테지만 말이다.
곽승재를 불러내 무알콜 술주정을 시작한 김갑두.
– 둘이 엄청 가까워 보이더라…….
– 막 스킨십도 하더라…….
– 알콩달콩해서 부러워 죽겠더라…….
– 난 또 차단했더라…….
– 귀찮게 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리고 곽승재는 무념무상으로 그것들을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후폭풍이 오셨나 보군.’
김갑두는 마지막으로 당규영에게 거절당하자 미련 없이 돌아섰었고, 심지어는 잘 챙겨 주라면서 나한테 보급형 엘릭서를 건네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떠나는 뒷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내심 실연의 아픔을 다 이겨 내지는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애초에 누가 고생을 하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그거고, 정정할 건 정정하고 넘어가야겠지.
“당규영 선배와 가깝기는 한데, 연애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아직은’이라고 들었다. 서로 호감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
“선후배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도 들었는데.”
“멘토랑 멘티니까요.”
“……그런가.”
내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답하자, 곽승재가 무덤덤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김갑두한테 한참 듣고 온 것이 있어서인지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부끄러워서 숨기거나, 관계가 진전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보는 것 같다.
거기까지 정정해 주고 싶은 생각은 없고, 세상 앞일은 모르는 것이기도 해서 굳이 사족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곽승재가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의 개인사에 이 이상 관여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겠지. 허나, 뭘 하든 교칙으로 정해진 선 안에서만 하도록. 지하층에서처럼 내가 잡으러 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고 안 걸리면 그만 아닐까?
곽승재는 그런 내 속내를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잠시 나를 응시했으나, 이내 눈길을 거두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지철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
‘걔는 그냥 짐짝이에요.’
전투력으로 따지면 0.3인분 정도죠.
—라고 본인 형 앞에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그럭저럭 남들 하는 만큼은 합니다.”
“내가 보기엔 따라가는 것조차 벅찬 것 같던데, 아닌가?”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보통 남들이 아니니.”
객관적으로 따져 보면 곽지철이 모자라다기 보다는, 조원들이 너무 뛰어난 것이다.
나는 예외로 치더라도, 송천혜는 선도부에 홍연화는 유망주급.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다 보면 가랑이가 찢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당규영도, 곽승재도, 그런 점을 감안해서 너그럽게 평가를 내리는 성격은 아니었다.
“못난 동생 놈이다. 언제쯤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날런지…….”
“차차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계속 지켜보시죠.”
“그래야겠지.”
곽승재의 태도는 내내 그랬듯 무뚝뚝하기 짝이 없었으나, 지금은 은근히 동생을 위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퇴부에 대해서는 들었나?”
“저는 번복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에메랄드 마탑과의 결투.
당시 부장 목종화는 곽지철에게 ‘지면 넌 퇴부다’하고 선언했었는데, 내가 퍼펙트 게임으로 두들겨 팬 뒤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해서 퇴부는 그냥 해 본 소리였구나 싶었는데, 곽승재가 이렇게 언급하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유예됐을 뿐이다. 두 달 뒤로.”
“결투하고 두 달 뒤라면……. 중간고사 다음 한두 주 정도겠네요.”
“그래, 그때까지 랭킹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이었구만.’
그간 곽지철이 묘하게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이 눈에 띄곤 했었다.
가령 지난 주 4대4 대인전을 돌아보면, 여러 이유를 들어 자신과 일공이 붙도록 당규영을 설득했었다.
기본적으로는 팀의 승리를 위해서였을 테지만, 어떻게든 일공을 쓰러뜨리고 싶은 강한 승부욕도 엿보였다.
당시에는 저 녀석이 저런 캐릭터였나 싶었는데, 퇴부가 연관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랭킹을 올리려면 승패 하나하나가 중요할 테니까.
다만 곽지철은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
예시로 든 일공과의 승부에서는 처참하게 패했고, 랭킹도 겨우겨우 현상 유지가 고작이다.
그 말은 즉,
“이대로 가면 쫓겨나겠지요.”
“후……. 그렇겠지.”
곽승재가 드물게도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제 동생이 동아리에서 쫓겨난다는데 심란하지 않은 형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곽승재가 여기까지 얘기를 꺼냈다는 것은,
“제게 부탁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그렇다. 허나 많은 것을 약속할 수는 없다.”
선도부는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해야 하기에, 부원들의 개인적인 거래는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방침이다.
따라서 내가 곽승재의 부탁을 들어주더라도 그가 지불할 수 있는 대가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와 달리 까다롭게 따지지 않았다.
‘물질적인 대가가 전부가 아니니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더욱.
“말씀하십시오.”
“퇴부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지철이 본인의 실력이 느는 것이 더 중요하지.”
“동감입니다.”
“지금 녀석이 처한 난관을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네가 유도해 줬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오우거한테 뚝딱뚝딱 두들겨 맞고 뻗는 현 상황을 곽지철이 자신의 힘만으로 극복하게 만들어 달라는 말이다.
“쉽지는 않겠네요.”
“불가능한 요구라면 손 닿는 데까지만 해 주면 된다.”
“아닙니다. 방법을 찾아보죠.”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곽승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고인물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 * *
곽지철은 초조한 기색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물었다.
“형이랑 무슨 얘기 했냐.”
“네 얘기. 형 걱정 좀 그만 시켜 자식아. 이 우물 안 개구리 자식아.”
“…….”
평소대로라면 버럭 역정을 냈을 곽지철이지만, 내가 제 형을 들먹여서인지 계속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그러다가 조금 억눌린 어조로 말문을 연다.
“……부탁이 있다.”
“싫은데?”
“다 들어보고 거절해라.”
“아, 싫다고.”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안 봐도 뻔했기에 빠르게 선수를 쳤다.
다양한 몸값 올리기 수법 중 하나다.
예상대로, 다급해진 곽지철이 인벤토리에서 에메랄드를 꺼냈다.
“공략전 좀 도와다오. 대가는 치르겠다.”
“…….”
나는 심드렁한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인벤토리에서 루비를 꺼내 옆에 갖다 댔다.
스티커 대인전 때, 홍연화와 루비 마탑 측의 부탁을 들어주며 받은 루비.
곽지철의 에메랄드와 크기를 비교하면 정확히 두 배다.
D급과 B급의 차이다.
“보이니? 이게 너랑 홍연화의 성의 차이야.”
게다가 홍연화는 만년한철 녹이는 데 도움도 줬다.
곽지철은 설마하니 나와 루비 마탑 사이에 그런 거래가 오갔을 줄은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
“대가를 치를 거면 비슷하게라도 맞춰 주든가.”
“지, 지금은 이게 제일 큰 거다.”
현재로서는 에메랄드 마탑에 추가 지원을 받기는커녕 퇴부가 걸린 상황이고, 가문에 연락을 넣기에도 눈치가 보인다.
곽승재한테 손을 벌리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될 테고.
그럼에도 곽지철은 어떻게든 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나, 나중에 반드시 사례하겠다.”
“이거보다 큰 걸로?”
“무조건이다.”
내가 루비를 가리키며 묻자 곽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곽승재에게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건 이런 이유도 있었다.
곽지철 본인한테도 뭘 받을 테니까.
추후 지불할 에메랄드가 홍연화에게 받은 루비 만하다면 충분히 일을 맡을 만하다.
나중에 에메랄드를 받아도 되고, 비슷한 가치의 아이템을 요구해도 되고.
물론 곽지철이 정말 퇴부를 당해 버린다면 에메랄드 마탑의 지원이 완전히 끊기는 셈이니 보수를 덜 받거나, 아예 붕 떠 버릴 위험성도 조금은 존재한다.
‘그러니 일단 받은 만큼만 가르쳐 보면 되지.’
잘 따라오나 보고, 영 싹수가 노랗다 싶으면 발을 빼면 그만이다.
내가 말없이 손을 펴자 곽지철이 그 위에 에메랄드를 올려놓았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알겠다.”
우리는 우선 던전에 입장했다.
초반부는 어려울 게 없으니 진행하면서 얘기해도 상관없다.
각자 크리스탈을 회수하고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몰려드는 고블린을 처리하고 나아가면서 내가 말문을 열었다.
“여태까지 네 방어 수단이 뭐였냐. 방어 아니면 피하기였는데, 방어는 오우거한테 그냥 뚫려 버리고 피하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지.”
“……그렇다.”
착잡한 표정으로 수긍하는 곽지철.
나름 올라운더로 멘토링을 들으며 회피 능력이 늘기는 했지만, 오우거의 공격을 다 피하기는 역부족이다.
“원래는 네가 알아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정답부터 줄게. 공격을 흘려 봐.”
“그게 더 어려운 것 아닌가?”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근데 넌 목토술사잖아.”
모든 마법사 중 방어 수단이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목토술사.
당연히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수단도 부지기수다.
그리고 곽지철이 에메랄드 마탑에서 배워 온 수십 가지 마법 중에는 분명 이 상황에 걸맞은 것이 한두 개는 존재할 거다.
“맨날 쓰던 것만 쓰니까 머리가 굳은 거지. 잘 생각해 봐.”
“…….”
그러자 곽지철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빠졌다.
구체적인 방법을 떠올리는 건 이 녀석의 몫이다.
내가 남들 상태창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마탑에서 뭘 배워 왔는지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도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게 고블린들 정리는 내가 맡았다.
계속 나아가다 보니 시야가 밝아지며 성소가 나타났다.
커다란 종유석에서 빛기둥이 뿜어져 나와 곽지철을 가리켰다.
이번엔 얘부터 충전이네.
[크리스탈 1%]“꾸우우?”
우리를 등지고 앉아 있던 오우거가 고개를 돌려 곽지철을 바라보았다.
오우거는 곤봉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곽지철은 그때까지도 고민을 거듭하다가, 번뜩 무슨 생각이 스친 듯했다.
“생각났냐?”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해 보겠다.”
에메랄드가 강렬한 녹빛을 발했다.
곽지철이 그 상태에서 스태프를 지면에 푹 꽂아 넣자, 그를 중심으로 일대가 고운 모래로 화해갔다.
[퀵샌드(Quicksand)]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