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시체는 북악신묘에서 수문장 역을 하고 있던 목장시와는 전혀 달랐다. 이들은 진정으로 시체들이었다. 움직이는 시체들. 썩은 살점이 뚝뚝 흘러내렸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두 발로 휘청거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리가 없어 땅을 기어 다니는 것도 있었다. 썩어가는 시체들은 하나같이 금줄 가까이로는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금줄은 끝도 없이 뻗어서, 산 위를 아예 둘러싼 모양이었다. 그런 얘기는 금줄 위로는 전부 저런 움직이는 시체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산 자의 기척을 느낀 까닭인지, 시체 한 구가 이상한 울음을 흘리며 소명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 썩어서 검은 얼굴이었다. 금줄이 있는 까닭에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제자리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다른 시체들도 이쪽으로 다가왔다.
소명은 시체들 모습을 보다가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과연 강시당이라고 해야 하나. 어이쿠, 지독도 하군.”
“아, 아저씨.”
아이도 이런 꼴은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크르, 크르르.”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시체들의 고개가 금줄 너머의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말소리가 아니니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호의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앞에 금줄이 있어 어찌 당장 달려들지는 않았으나, 고개를 느릿하게 꺾어대며 유심히 소명과 문수를 향하는 썩은 눈동자에는 흉포함이 머물러 있었다.
“아이야, 이거 어쩌면 좋으냐?”
“제, 제가 어떻게 알아요!”
문수는 잔뜩 겁에 질려서는 소명이 묻는 말에 버럭 소리쳤다. 눈앞에 있는 움직이는 시체들은 강시가 되지 못한 요물이었다. 땅의 혼탁한 사기에 혼백 중의 백만이 남아서 제 몸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헛되이 구천을 헤매고 다니는 요물이다. 소명은 버둥거리는 시체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수에게 다시 물었다.
“저것들 부셔도 좋은 거니?”
“예? 아저씨가요? 어떻게요?”
“뭐, 때려서 부수지.”
“에이, 말도 안 돼.”
소명은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에게 가볍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문수는 이 와중에도 얼굴을 한껏 구기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요물 강시는 도력이 실린 기물이 아니고는 감히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공을 비롯한 내공기력과는 무관한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강시당에서도 부주파의 어른들이 아니면 감히 제어할 수 없는 것이 눈앞의 시체들이었다.
강시당의 흔한 강시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들은 그저 몸이 단단한 인형이라면, 이것들은 진정으로 요괴라 할 만한 것들이었다. 무턱대고 손을 썼다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 뻔했다. 소명은 문수의 일그러진 눈썹이 머쓱하여서 턱 아래를 긁적거렸다.
“하하.”
괜한 헛웃음이 흘렀다. 권야이자, 소림의 용문제자로서 참으로 면구한 일이다. 그는 문수의 찌푸린 얼굴을 흘깃 보았다. 얼굴에 불신이 그득한데, 소명은 개의치 않고 셋으로 묶은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쓸어주었다.
“아이, 뭐예요.”
“그럼, 그냥 가로질러 가야겠구나.”
“예에? 아저씨, 그러다 죽어요!”
아이는 소명의 손길에 싫은 표정을 지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소명은 거리낌 없이 금줄을 넘었다. 미처 잡을 새도 없었다. 고사리손을 급하게 뻗었지만 소명은 이미 괴성과 함께 휘청거리는 시체들 사이로 들어선 다음이었다.
“으히익!”
문수는 이제 일어날 일이 두려워서 절로 질린 소리를 내질렀다. 강시 요괴의 억센 손에 사지와 육신을 조금도 돌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시취가 가득한 땅에 괜히 피만 더 뿌려서, 원혼만 더할 뿐이다. 헛된 짓, 헛된 짓. 그런데 문수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자 멍청하니 입을 헤 벌렸다.
소명은 그저 멀뚱히 있었다. 달리 무슨 수를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강시 요괴들은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것들은 모였던 것이 무색하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문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소명이 두려워 도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죽은 자가 두려워할 수나 있는 것인가.
소명 또한 이상한 얼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인지, 강시당 사람이래도 알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고 고민을 오래 붙들고 있지는 않았다.
소명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는 금줄 너머에 있는 문수에게 길을 확인하고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나아가자 강시 요괴는 상태가 어떻든지 괴이한 소리를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문수는 놀란 얼굴로 있다가, 이내 눈살을 한껏 찌푸리면서 머리통을 벅벅 긁었다.
“도대체 저 아저씨 정체가 뭐야?”
마을의 어른들도 단단히 채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강시 요괴였다. 그런 것이 바글바글한 곳을 지나는데, 도리어 강시들이 몸을 사리는 꼴이라니. 문수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잡고 소명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소명의 모습은 나무 그늘 사이로 사라졌다.
문수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몸을 돌렸다. 이상한 일이 있었지만, 촌장, 석 노인이 시킨 일은 다 한 셈이다. 아이는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다가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네, 뭘 깜빡한 것 같은데. 뭐지?”
소명에게 산 오르는 길을 알려주기는 하였는데, 무엇인지 한 가지를 깜빡한 것 같았다. 영 껄쩍지근한 기분에 아이는 한참 머리를 굴렸지만, 도통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결국 포기하고는 마저 걸어 내려갔다.
동백암은 강시당, 그리고 도향촌을 에워싼 산봉 중에서 제일 높은 산봉에 있었다. 문수가 안내한 길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 아니라 험준했지만, 소명은 녹음이 짙은 숲을 지나 산정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높이 솟은 절벽 아래 당장 무너질 듯이 위태한 단칸의 초막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초막은 동백암이 아니었지만, 소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초막의 마당에 들어섰다.
그곳은 한눈에도 버려진 세월이 오래었다.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소명이 들어선 흔적뿐이었다.
마당에는 삭은 관 뚜껑이 굴러다녔고, 만들다가 만 목관이 두서없이 쌓여 있었다. 쌓여 있는 것은 흙먼지였고, 자란 것은 잡초뿐이다.
소명은 둘러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곳 마당은 옛적의 그리운 광경과 닮았다.
묵묵히 관을 정리하고 만들었던 탁 노인 옆에서 어린 탁연수가 그를 거들거나,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못해도 십수 년 전의 일이나, 소명은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짧게 숨을 흘리며 구석에 놓인 관 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관에는 흙먼지가 그득했다.
소명은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향촌과 다른 산봉우리의 윤곽이 아득하다. 이곳에서는 도향촌의 모습이 손바닥만 하게 보였다. 기름진 옥토에 농사짓는 사람들 모습이 까마득했다. 곳곳에는 무엇인지 사당이 하나둘씩 있어서 향을 태우는 몽연이 가냘프게 솟아오르고 흩어졌다. 소명은 풍광 살피기를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절벽 너머, 동백암은 그곳에 있었다. 그는 제법 긴장이 되는 모양인지 가슴을 애써 펼치고 더운 숨을 훅 내뱉었다.
“후, 좋아. 가볼까.”
강시당의 소당주가 과연 소화촌의 어린 탁연수일지, 소명은 걸음과 함께 설레는 가슴과 불안함 심정을 다잡았다. 초막의 뒤를 지나자 절벽 아래에 작은 틈이 있었다. 찬바람이 그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비좁은 틈바구니로 높이 솟은 돌계단이 쭉 뻗어 있었다. 그런데 소명은 계단 위에 올라서기가 무섭게 혀를 찼다.
“어허, 이거야 원.”
선 자리를 중심으로 주변 모습이 한순간 뒤바뀌었다. 들어선 입구가 사라지고, 사방천지가 온통 희뿌연 운무로 가득했다. 나아갈 곳,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자신의 발아래조차 볼 수 없었다. 아울러 스산한 바람 소리가 윙윙 울렸다.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였다. 그는 입매를 찌푸린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운무가 고이고, 귀신 울음이라. 이런 게 있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이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 할 수 없었다. 곡(哭)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런 변고에 대해서는 문수에게 들은 바가 없었다. 아래에 움직이는 시체처럼 갑자기 생긴 변화일지도 몰랐다.
소명은 새삼 집중하여 주변을 살폈다. 그의 눈이라면 아무리 짙은 운무라 하여도 능히 꿰뚫어 볼 수 있으려나, 지금은 보이는 바가 없었다.
묵직하게 고인 운무는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더욱 짙어갔다.
소명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마냥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소명은 차분하게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귀신의 울음인 양 드높던 바람 소리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그는 다만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밀었다.
보이지 않는 길목이었으나 흔들림 없이 성큼성큼 올라섰다. 그렇게 걷기를 한참, 소명을 휘감은 운무가 색을 달리하고 길목이 요동을 치지만 모두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을 뿐, 바위 사이로 난 비좁은 계단이라는 실제는 변함이 없었다.
소명은 이목을 비롯한 일체의 감각을 차단하고, 오직 한 점에 대한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바위 건너에서 들려오는 흐린 숨결이었다. 산 자의 숨결이 있는 이상, 그곳에 이르는 길목이 있기 마련이다.
소명은 그렇게 계단의 마지막에 올라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 감은 채로 쓴웃음을 그렸다.
“이런, 앞뒤 없는 것이 강시당의 예의인가?”
소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인 운무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누군가의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하얀 얼굴에 꽃잎을 머금은 듯 붉은 입술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단호한 기색으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내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크윽!”
그녀는 낭패함에 붉은 입술을 찌푸렸다. 소명은 그제야 눈을 떴다. 그의 턱 바로 아래에는 서늘한 예기가 바짝 닿아 있었다. 흡사 꼬챙이처럼 폭이 좁은 한 자루의 협봉검(狹鋒劍)이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검날은 한겨울 서리처럼 싸늘하여 당장 목덜미를 파고들 듯했지만, 두 손가락이 검 끝을 간단히 잡고 있었다. 여인은 검을 빼내고자 힘을 썼지만 얇은 검신이 흔들릴 뿐, 검 끝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는 곧 헛심을 관두고 소명을 날 선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소명은 따가운 눈초리를 말없이 마주하며 여인의 모습을 살폈다.
은밀하게 파고든 검세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단아한 미색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여염의 여인이나, 강호의 여협이라 하기에는 어딘지 남다른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인지 제법 두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목덜미에 하얀 여우 털을 휘감은 백색 장포 차림이었다. 다른 손에는 산 하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화려한 문양이 가득한데, 범상치 않은 기물로 보였다. 소명은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어느 분인가 하였더니. 설마 이곳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소. 강시당에 몸담은 분이셨던가?”
“무슨?”
여인은 소명이 알은체하자 재차 눈썹을 모았다. 무슨 일인지 그녀는 새삼스럽게 소명의 위아래를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눈을 치떴다. 소명이 그녀를 알아본 것처럼, 그녀 또한 소명을 알아본 것이다. 진성의 하동대하에서 잠시나마 같은 자리였던 사이가 분명했다. 소명은 깊이 눌러쓴 초립이 없어도 어렵지 않게 백의 여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뜬 채, 퍼뜩 굳었다. 검을 쥔 손이 잘게 떨렸다. 굳게 다문 입술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자 소명은 여인의 협봉검을 놓고 물러섰다.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 고인 운무가 흐를 새, 어디선가 우짖는 새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소명은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위 높은 곳은 그저 황량할 뿐 아무것도 없었다. 여인은 소명을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그렸다. 물러선 그를 쫓아서 재차 손을 써야 할 것인지, 갈등이 일었다. 기회는 좋을지도 몰랐지만 운무 속에 숨어서 떨친 일검을 하나 어려움 없이 잡아챈 고수였다. 주저할 새, 운무 어느 곳에서 서두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 잠시만!”
운무가 흩어지며,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솟구쳤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에서 불쑥 솟은 것처럼 느닷없는 등장이었다. 인영은 백의 여인과 달리 검은 털옷으로 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는 둘 사이를 막아서더니, 대뜸 소명을 향해서 두 손을 맞잡아 보였다.
“노선을 뵙습니다.”
소명은 먼저 눈살을 찌푸렸다. 권야를 비롯해서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는 처지였지만, 늙은 노(老)자가 떡하니 붙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소명에게 노선이라 칭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몇 되지 않았다. 인사를 하고 다시 고개 든 여인은 바로 흑선당의 매향이었다. 홀연 모습을 감춘 통에 흑선당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당주 백운당을 심란하게 했던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당신까지 보게 될 줄은 몰랐소, 매향 아가씨.”
“저도 그렇습니다, 노선.”
매향은 공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곧 뒤에 선 여인에게 손을 펼쳐 보였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소명과 매향을 번갈아 보았지만, 사연을 짐작할 길은 달리 없었다. 그녀는 물러서며 검을 거두었다. 손가락 마디처럼 얇디얇은 협봉의 검신은 묵직한 산의 자루 속으로 숨어들었다. 매향은 조심스럽게 소명에게 말했다.
“노선, 이곳에는 어떻게 오셨는지요. 이곳은 강시당에서도 중지인 곳입니다.”
“알고 있소. 헌데, 그 말인즉 매향 아가씨와 저 여인 또한 강시당의 외인이 아니라는 뜻이오?”
“그것은.”
매향은 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