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성도대란(成都大亂)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새벽이 다하기도 전에 고수가 등장하고, 폭발이 연이어 일어나다니. 삽시간에 진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성도라는 거대한 일성을 물샐 틈도 없이 에워싸고 있는 만큼이나 수많은 인원이 어지럽게 뭉쳐 있었다. 그런 까닭에 방만했던 계통은 삽시간에 혼란해졌다.
홍천의 군세를 이끄는 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본래의 목적은 대치에 불과했기에, 지금과 같은 급습에 대하여서는 딱히 염두에 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쾅!
“이게 뭐야! 저것들이 정신이 나갔나. 갑자기 왜!”
탁자를 내려치는 손짓에 분노가 가득하다. 당장 격한 외침이 터졌다.
홍천군의 포위망, 그 중심에 있는 한 군막이다. 그곳에서 혼자 여유를 부리던 사내가 솟구치는 불길을 보고서 노발대발했다.
수천에 이르는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주제에, 누가 누구에게 미친 짓을 운운하는 것인지.
중요한 것은 죽어 나가는 수하들이나, 군병이 아니었다.
고사 직전까지 몰아붙인 성도, 그것을 목전에 두고서, 이런 방해가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였다.
“고작 하루, 하루가 남았을 뿐인데!”
무슨 하루를 말하는가.
이곳을 총괄하는 대군장, 홍천교 오사령은 이를 바득바득 갈아대며 두 눈에 불길을 뜨겁게 일으켰다.
하루만 더 버티면 이 지옥은 끝나고 자신들 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야말로 금은보화, 입신양명의 길이다. 분명하게 자신하였는데. 바로 직전에 일이 틀어지다니.
“대군장! 군장!”
“또 뭐냐!”
신경질적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저기 다급한 소리에 덜컥 가슴이 내려앉은 지경이다. 그것이 드러나기라도 할까, 더욱 거친 모습이다.
그러나 급하게 달려온 홍천 사자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뒤를 향해서 정신없이 팔을 흔들었다. 손끝이 불안하게 떨렸다.
홍천교 오사령은 그만 눈을 크게 떴다.
외곽에서 주저하고 있던 사천련의 깃발이 들불처럼 일어 빠르게 몰려온다. 이제껏 억눌렸던 것이 계기를 통해서 터져 나온 셈이라, 아직 거리가 있음에도 절로 두려움이 일었다.
바람과 불이 일으키는 통에 무너져버린 전열이다. 더 이어지지 못하는 광신의 인파가 전에 없이 흩어지니 다시 세를 수습할 수가 없었다.
‘늦었다!’
오사령은 마른침을 억지로 삼켰다.
본래 계획이라면 하루, 하루 정도만 더 버티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끝장이 나버렸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가 있는 일이다.
사천련은 불안한 연합, 쉽사리 손 쓰지 못한다는 것을 크게 확신하던 차였는데. 그 확신이 와르르 무너졌다.
덜덜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후, 후퇴, 후퇴한다.”
“네?”
“후퇴한다! 잡병은 필요 없어. 정예를 따로 추려서 당장 물러나!”
“허나, 대군장.”
“후퇴라니까!”
“갈 곳이 없습니다.”
사자는 망연한 눈으로 겨우 답했다. 오사령은 이익 이를 드러내었다가, 사자가 꺼낸 한 마디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허겁지겁 군막을 치우고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여러 군장이 어지러운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지, 상황을 수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곳은 사천련이 밀려오는 곳과는 또 다른 방향이었다.
그곳으로는 무섭게 달려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번쩍거리는 투구를 눌러쓰고, 기창을 높이 세웠다.
저들은 대체 무언가.
“사, 사천련이 저리 인원이 많았던가?”
“아니, 아닙니다. 대군장. 저들은 무림의 무리가 아니오…….”
군장 중 하나가 맥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몇백을 헤아리는 자들이 무섭게 질주하면서 오열을 단단히 갖추었다. 그야말로 정병 중의 정병으로, 마치 똘똘 뭉쳐 있는 하나의 창이 되어 있었다.
“가자!”
선두에서 금빛 번쩍거리는 투구를 쓴 자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공력이 충만한 일성은 수삼 리 정도로 떨어져 있는 무리에까지 똑똑히 들려왔다.
저기에는 정체 모를 군부의 무리가, 뒤에는 사천 무림인이. 진퇴양난이라 할 수 있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여긴 최악의 상황이 지금 벌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너무 갑작스럽게.
“산개, 산개해야…….”
“여기서 산개하면 모두 죽소.”
“이렇게 있다고 살겠소!”
누군가 더듬거렸다. 그러자 바로 말을 받았고, 거기에 성질을 내기도 했다. 다들 제각각, 하나로 생각을 모을 수가 없었다.
두려움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다들 닥쳐!”
오사령이 버럭 소리쳤다. 거칠기 그지없었다. 왈칵 일으키는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면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흐으, 흐으, 흐으.”
몰아쉬는 소리가 힘겨웠다. 크게 뜬 눈동자가 차츰 붉어졌다. 당황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노한 기색이 한참 솟구쳤다.
물러나는 것과 도망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군장들은 아예 내버리고 튈 생각만 가득하지 않은가.
“대, 대군장.”
“홍천의 가호를 받고 도망할 생각을 하다니. 네놈들이 내 손에 먼저 죽고 싶은가 보구나.”
“도망이 아니라.”
“듣기 싫다!”
쨍하니 터진 소리에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오사령은 뿌득 이를 악물고서, 전후를 급히 두리번거렸다. 포위망을 구축하는 것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감당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저기서 죽어 나가고 있는 신도들에 대해서 아끼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가능한 병력을 일거에 모아라. 사천련을 친다.”
“사천련입니까.”
“그래, 저기서 달려오는 것들, 어디 녀석인지는 몰라도, 군의 녀석들이 분명하지. 저것들을 상대할 바에야, 사천 무림을 조금이라도 흔들어놓는 편이 좋겠지.”
“상황이, 상대가 그러하다.”
후퇴라는 선택을 지워버리자, 대사령은 이제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홱 몸을 돌렸다.
가까이 우뚝 솟은 성도의 성벽을 노려보는 눈초리에 핏발이 어렸다. 저곳을 두고 벌인 한판의 도박은 분명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도, 두 번째 목적까지 포기할 수는 없다.
“가라! 오늘이 사천 무림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상황이 크게 요동친다. 크지 않은 변화였지만, 그것을 풍양자는 바로 알아챘다. 일검을 가볍게 휘두르니, 정신없이 밀려드는 이들이 그대로 허리가 양단된 채 흩어졌다.
녹슨 창, 이 빠진 칼날이라도 한번 휘두를 새를 주지 않았다.
일거에 주변을 무인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서, 풍양자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꿍꿍이지? 더는 웅크리고 있지 않겠다는 건가?”
거리가 상당했고, 사이에는 수많은 인원이 악다구니 쓰면서 발악하는 참이다. 그래도 풍양자는 여러 깃발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깃발.
홍천의 사령이라는 것을 뜻하는 깃발이 분명했다. 저것이 움직인다는 것은 곧 진짜 마군이 움직인다고도 할 수 있다.
상황을 헤아리는 그 사이, 흩어지는 핏물을 짓밟고서 누군가 바짝 파고들었다. 초점 없는 눈이 아니다. 다른 곳을 보는 풍양자의 배후를 딱 노렸다.
그러나 풍양자는 자리에서 빙글 돌아섰을 뿐이다.
“억!”
빈 허공만 갈랐다. 동시에 자신의 목이 홱 뒤집히면서 날았다. 미처 칼날을 휘두르기도 전에 풍양자의 검기가 먼저 파고든 것이다.
목은 높이 날았고, 목 잃은 몸뚱이는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내달리다가 철퍼덕 바닥을 나뒹굴었다.
풍양자는 핏방울 한 점 맺히지 않은 검신을 한 번 떨쳤다.
지이잉.
검이 운다. 풍양자가 청풍의 검기를 두르고서 아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성도의 성벽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불빛이 연신 번쩍거렸다.
당민의 작품이 분명했다.
손끝으로 북조류의 암기가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피를 부르는 암기의 소나기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겠다. 떠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서 더욱 현란했다.
두려운 것은 소리도 없고, 공기의 흐름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예리하게 파고든다는 점이었다. 뚜렷하게 잔혹하지 않았다. 반사광이 번쩍이면 끝이다. 이보다 더 깔끔한 죽음이 어디에 있을까.
광기에 빠진 정도를 떠나서, 대부분 어찌 당했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녹면 속에서 당민의 눈동자는 차분할 따름이다. 그리고 당민 뒤로는 양정과 장우빙, 두 사람이 각자가 지닌 공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지닌 무공은 고절하지만 어떻든, 경험으로 보자면 한참 어린 강호인이 둘이다. 그러나 길지 않아도, 험난한 여정 속에서 전혀 딴판으로 돌변한 참이다.
둘은 힘껏 손을 썼다. 어설픈 사정 따위는 조금도 없고, 무공에 휘둘려서 앞뒤 없이 날뛰는 것도 아니다.
호흡과 완급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나아갔다. 뒤처지지도 않고, 앞서 나가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청성검과 아미창은 단호했다.
“차합!”
“아미, 타불!”
상대하는 자들은 무력한 촌부라 할 수 없다. 광신에 홀려서, 더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태반이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자들 앞에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뽐내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은 없다.
여기서 무공의 고하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얼마나 강하느냐였다.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
무공에 입문하였을 적에 이미 들었던 가르침이려나, 지금처럼 끔찍한 곳에서 마음을 지켜내는 것은 어렵기도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었다.
양정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언뜻 보기에도 한참 늙어서,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모습을 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눈을 하얗게 뒤집고, 웅크린 두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다가 용케도, 양정의 검 끝을 덥석 붙들었다.
강한 악력이다.
팍삭 늙어, 금방이라도 묏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앙상한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 강렬한 악력이었다. 그런 상대에게 무슨 사정을 둘 수가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 먼저 베는 것이니.
키익!
사람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할 수 없는 짧은 비명을 끝으로 노구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청풍검법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청령귀일(淸靈歸一)의 일초로 검을 거두고 목을 끊어냈다. 잡고자 하여도 잡을 수 없는 것이 청성에 이는 푸른 바람이라.
크게 공력을 발할 것도 없이, 한 번의 검초로 목을 날려버리고서, 양정은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과연, 과연 무공고하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게다.’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저 마음이 얼마나 강하느냐,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분노하지도 않는다. 측은하지도 않다. 두려움이라 할 것도 없었다.
양정은 자신을 단단히 지키면서 검을 펼쳤다.
뭇 모든 무공도 그렇지만, 청성의 무공은 먼저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이란, 내 몸, 내 팔, 내 다리를 뜻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마음이었다.
무공은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니.
“차하압!”
맑은 일성이 홀연 높이 터져 나왔다. 광기 어린 웅성거림이 바로 깨져나갔다. 이어 퍼져가는 맑은소리가 너머에서 들려오자, 풍양자는 잠깐 입술을 끝을 들썩거렸다.
“흠, 그래도 성취를 보기는 하였군.”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정의 검풍은 전혀 딴판이 될 것이 분명했다.
풍양자는 사제의 큰 성장에 뿌듯한 한편, 더욱 단호하게 손을 떨쳤다.
촤차차착!
위로 뻗어 올린 일수를 쫓아서,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검풍에 몇이나 되는 자들이 그만 반쪽이 되어서는 좌우로 흩어졌다.
이제 구축한 포위망은 다 뚫어낸 셈이다.
풍양자는 짧은 호흡을 삼켰다. 피비린내가 그득한, 참으로 고약한 냄새였지만, 욕지기할 것도 없었다. 수염이 뾰족한 턱을 치켜들었다.
“이것들 봐라.”
풍양자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아우른 광신도들을 뚫어냈더니, 지금 보이는 것은 성도의 성벽이나, 흉수들이 아니었다. 수뇌가 있을 법한 군막은 버려진 채였다.
대신이랄까. 촌각 전에 감지했던 군세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 마구니라 할 무리들, 그것들이 한쪽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도주일 수도 있고, 마지막 몸부림이라 할 수도 있다. 밀려오는 사천련을 마주하겠다고 나아가는 모습이다.
분명한 것은 주변에 널려 있는 신도들은 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 그래, 저것들 하는 짓거리야 다 비슷비슷한 게지.”
풍양자는 입꼬리를 치켜들고서 서늘한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