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95
295화. 중원도 움직인다
담아인 말마따나, 사람 인연이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겠나.
그저, 그저.
‘제기, 지금껏 아무도 모른다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건 게 창피해 그렇지.’
송 의원은 눈물을 머금었다.
그는 팽가 여인, 팽문빙과 남모르게 연서(戀書)를 주고받는 사이였다.
세월이야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남호동 화재가 벌어지는 그때에, 담가 후계 일로 팽가에서 크게 몹쓸 짓을 했다.
소명이 없었다면, 아마 담가도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고, 남호동도 싹 사라졌을 터였다.
그때에, 가문의 흉험한 명령을 받은 도객이 소명에게 호된 꼴을 당했고, 그들을 치료하고자 팽가에서 급히 달려온 핏줄이 팽문빙이었다.
무공도 그렇지만, 의술에 특히 조예가 깊은 여인이었다.
일이 모두 마무리된 후에도, 환후가 걱정되어서 서찰을 주고받던 것이, 어느새 연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송가의방이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연서를 써 내려가는 것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마음은 솔직한데.
송 의원은 쉽게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판에 담 노가주가 등 떠밀어준 셈이었다.
“본가 전서가 오히려 송 사형께 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부탁합니다.”
“응? 아니, 아닐세. 폐는 무슨. 어디 폐랄 것이 있겠나. 하하. 하, 그보다 팽가라면 내 서둘러 다녀오지.”
“튼튼한 말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말은 무슨. 되었어. 내 다리가 더 빠르고, 더 튼튼하니.”
“송 사형, 그 힘은 아끼시지요.”
“응?”
담아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 진지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송 사형이 눈을 끔뻑이는데, 담아인이 마저 말했다.
“팽가 사람들은 안하무인이기도 하지만, 천생무인이기도 합니다. 분명, 송 사형을 시험하려 들 터이니.”
“이 사람. 내가 누구 제자인 줄 알고 그런 말을.”
“알지요. 아무렴요. 이미 절정을 넘기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팽가입니다. 근래에 이런저런 일이 터졌다고 해도, 팽가예요.”
“그야 그렇지.”
송 의원은 도리 없이 고개 끄덕였다. 지금 팽가가 어수선하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팽가에 사람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이던가.
하도 뛰어난 이가 많아서 벌어지는 일이지.
“그것도 있습니다만. 송 사형.”
“음, 말하게.”
“팽 소저의 두 오라비. 그 두 사람도 어지간한 걸물이 아닙니다. 아마도 송 사형께 손을 쓸 게 뻔하고 뻔합니다. 그러니 각별하게 몸을 사리셔야 합니다.”
“자네, 지금 그게.”
송 의원은 아연하여서는 담아인을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거야 큰일을 걱정하는 건지, 큰일이 나라고 고사를 지내는 건지.
그런데 옆에서 장인지가 끼어들었다.
“사형! 그냥, 이 사람 말 들어요. 조심해서 나쁠 게 뭐 있다고 그러세요.”
“허, 헛흠. 헛흠.”
송 의원은 헛기침을 괜히 흘리면서 몸을 돌렸다.
결국에는 담아인 뜻에 따라서 움직였다. 그리고 담아인 역시 개방 제자를 찾아 청하고자 바삐 움직였다.
담일선은 그제야 옷을 갈아입었다. 가벼운 경갑이라고는 하지만, 내내 걸치고 있기에 편한 옷은 아니지 않나.
그는 문득 후우, 한숨을 흘렸다.
하북은 조용하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 놓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월부대도께서 행방이 묘연한 것도 그렇거니와, 하북을 크게 돌고 온 지금에 자꾸 걸리는 게 있었다.
뚜렷한 증좌가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노강호로서 지닌 감에 불과하니.
담일선은 자리에 쉬이 앉지 못했다. 개방에서도 파악하는 바가 있을 터이다.
팽가에서는 또 어찌 나올까.
이번 행도에도 팽가 출신이 몇 있었지만, 하나같이 연배가 부족했고, 어두운 얼굴이었다. 내내 의기소침하여서, 지금 팽가 상황을 짐작할 만했다.
과연 호응이나 할는지.
“어찌 생각하시오. 그대는?”
담일선은 갑자기 물으면서 몸을 돌렸다. 방 한쪽 구석, 그늘 어린 자리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하하. 어디 무례랄 것까지야. 상황이 그리 급한 모양이지요.”
“예, 담 노가주.”
그늘 속에서 검은 인영이 한 걸음 나섰다. 그는 모습 드러내기가 무섭게 두 손을 단단히 맞잡고 깊이 허리를 숙였다.
천룡세가 흑권당주. 그 사람이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수일 만임에도 반갑구려. 흑권당주.”
“저 또한 그렇습니다.”
뻣뻣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흑권당주 이충도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천룡세가 안가에서 크고 작은 고난을 함께한 바가 있지 않은가.
대단한 인사들 옆에 있는 것이 죄라면, 죄였으니.
“그래, 당주께서 직접 담모를 찾으신 것은 어떤 연유이시오.”
“지금 짐작하시는 바대로입니다.”
“마교는 무너진 게 아니라, 따로 움직인 것이로군. 그렇지 않소.”
“과연, 담 노장주이십니다. 그 말씀 그대로입니다. 천하 각지에 흩어진 마교가, 갑작스럽게 인원을 빼어서는 한 곳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디요, 그곳이.”
“소림사.”
담일산은 흐읍! 힘껏 숨을 삼켰다. 소림사라, 그리 멀다고 할 거리는 아니다.
“당주, 권야께서는 그럼?”
“소림사가 지척이실 겁니다.”
그는 벗어둔 경갑을 다시 움켜쥐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상황은 아니겠군.”
하북 무림에서 변화는 정명담가, 정명장에서부터 시작했다.
한편, 산서.
강시당이 새롭게 문호를 열기는 하였다만, 아직은 크고 작은 무리가 소란한 산서무림이다. 오랜 역사를 지녔음에도, 크게 세상 밖으로 나온 역사가 없는 흑선당이 지금은 바빴다.
얌전히 상황을 보고 있다가, 한 사내가 불현듯 소리를 높였다.
“소식을!”
“예, 당주!”
일제히 손이 멈췄다. 다들 고개 돌려서 확인한 내용만을 힘껏 외쳤다.
“사천 무림이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성도에서는 십삼황자 직령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당가, 청성은 성도에 남았고, 아미는 봉문에 들었습니다!”
“사천련은 잠정적으로 해체한답니다!”
사천 얘기는 끝이다. 흑선당주는 버럭 소리쳤다.
“다음!”
“호북, 호남, 모두 무당이 정리했습니다. 홍호(洪湖)에서 남은 마교를 모두 밀어냈습니다.”
“헌데, 파악한 바로. 마교인 수가 부족합니다!”
“합비에서는 남궁세가가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대공자가 부리던 마교 무리가 궤멸되었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천하 각지 소식들. 흑선당주가 재차 다그쳐 물었다.
“그쪽 남궁세가 마교 수는!”
“역시 부족합니다. 오백 마교 고수가 들었다고 하는데, 남은 시신은 채 삼백에 이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분주하게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의 비슷한 시기를 두고서, 천하 각지에서 흉한 일이 벌어졌다.
어지간한 일로는 세상밖에 나서지 않는다는 남존무당이 산문을 열고 내려왔는데, 그 위급함을 알았는지, 삼대뿐만 아니라, 이대제자들도 태반이나 있다고 했다.
남궁세가에서도 겉보기로는 후계 다툼이나, 파고드니 마교가 있었다.
세가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다른 오가가 그렇듯 남궁세가는 강남을 대처한다고 할 만큼 거대한 가문이었다. 그 여파를 생각하면, 어찌 가문 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만 말할 수가 있겠나.
다만, 관중검이라는 잠룡이 크게 깨어나서 삽시간에 마교 세력을 일소하였고, 흔들리는 후계를 쟁취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들어온 소식을 파악하니, 호북에서도, 강남에서도 또 다른 계책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썩을!”
이제 신임 당주로 활약하는 백운당은 버럭 욕설을 내뱉었다.
“삼천 중에서 이천이 비었다는데.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게 말이 돼!”
“저희 영역이 아니니 도리 없지 않습니까!”
“후우, 그도 그렇지. 그도 그렇지만.”
백운당은 참모이면서 내자인 매향의 한 소리에 한숨을 삼켰다.
대관절, 마교 속내가 무언지.
“다른 움직임은 없나?”
“소소한 교전 정도입니다. 하북이야 십삼황자께서 죄 쓸어버리셨으니. 지금은 잔불을 끄는 정도라 할 것이고, 호북, 호남 일대는 역시나 무당파가 나서니, 조금도 반항을 하지 못하는군요.”
“무가련 오가도 제법 피해를 보기는 하였다지만, 상황을 수습하는 데에는 대부분 성공했습니다. 특히 남궁세가는 발 빠르게 수습한 편이지요.”
“그것이 더욱 수상해. 그게 더 수상하단 말이지.”
연신 중얼거렸다.
백운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시당주 탁연수가 사천으로 발 벗고 뛰어나가기 전에 당부한 바가 있지 않았는가.
마교는 천하를 두고서 다른 수작을 부리고 있다. 그 동정을 파악해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산서에 치우친 바라서 아무래도 한계는 있었지만, 지난 수삼일 동안에 가능한 모든 소란과 정보를 낱낱이 파악하고 또 파악한 참이었다.
그래서 결국 파악해낸 것이, 사람 수가 너무도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다.
일천이 모여서 한 지역을 흔들었다.
다시 수천이 튀어나와서 무림일문을 멸문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중원 무림이 바로 제압하여서는 대부분 소란을 제압한 바였다.
헌데, 막상 뒤를 정리하면서 파악하니. 일천 중 수백이 없고, 수천 중에 못해도 일천이 없었다.
사라져 버린 마교인, 그들은 대체 어디로 움직였다는 말인가.
그것은 흑선당이 파악하는 정보망으로도 답을 내지 못하는 일이었다.
백운당은 눈을 치뜨고서, 흑선당 내에 펼쳐놓은 중원 전도를 뚫어질 듯이 노려보았다.
하얗게 뜬 눈가에 기광이 맴돌았다.
‘뭐가 있어, 분명히 뭐가 있어.’
하기야, 오래도록 침묵하다가 갑자기 들고 일어난 것부터가 한참 수상한 일이겠다만.
백운당의 눈길이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그렇게 교차하며 움직였다. 그러다가 불현듯 백운당은 어느 한 지점에서 눈빛이 멈췄다.
그곳은 숭산, 그리고 소림사였다.
왜 그곳이 눈에 확 들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걸어놓은 지도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당주?”
“쉬이, 쉿!”
의아해 부르는 목소리에, 백운당은 손을 우선 휘저었다.
무언가 떠오를 듯하면서 떠오르지 않는다.
소림사, 용문제자, 그리고 마교와 마도.
‘강시당 배후에는 마교가 있었지. 하남 등용문에서도 수작을 부렸다고 했고.’
그리고 불과 얼마 전만 하여도, 신임 등용문주가 소림파 정예를 이끌고서 하남 땅을 모조리 정리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생각지도 못한 마교 방수, 이매망량이라고 하는 자들이 튀어나와서 얼마나 놀랐던가.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매망량이라는 자들은 단지 소림파뿐만이 아니었다.
무당에서도, 화산에서도, 심지어는 오가 곳곳에서도 벌어졌음을, 흑선당은 파악하고 있었다.
“소림사.”
뜬금없는 일이지만, 백운당은 그 이름 석 자를 입 밖으로 내었다.
개방을 통해서 들은바, 마교의 진정한 목적은 존체를 찾는 일이라 했다. 그리고 소림사.
백운당은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너무도 비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백운당은 지금 떠오르는 바를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매향!”
“당주.”
“개방에 연통을, 그리고 강시당에도! 이건 화급을 다투는 일이다. 당장 소림사로!”
몸을 확 돌리는 순간이다. 백운당은 주춤하면서 멈춰 섰다.
매향은 그대로 있다. 그런데 낯선 이가 뒤에서 차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무, 무어냐?”
“그래서 제가 부르지 않았습니까, 당주.”
‘으응?“
“손님이세요.”
“아.”
백운당은 심각하게 굳은 얼굴을 바로 풀었다. 살짝 맹한 얼굴이다. 흑선당에 든 사내, 그는 아주 차분한 얼굴이었다.
“흑선당주를 뵙습니다.”
“아, 예.”
두 손을 맞잡는 그 모습에서부터 묘한 위압감이 돌았다.
딱히 백운당이나, 흑선당 사람들을 겁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품은 무공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다.
하얀 백의를 단정하게 걸친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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