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 singer is one RAW novel - Chapter 73
68.역시 방송은 보는게 재미있다. >
학교를 마치고 회사에 왔다.
언제나처럼 본부장님 사무실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선배님은 뭐야? 그냥 누나라고 불러.”
늘 한산하던 본부장님의 사무실에는 뷰티핑크가 와 있었다.
“해외 다시 나가신 거 아녜요?”
“소율이만 나갔어. 우린 올해 다 끝났다. 올해에는 못 들어올 거야.”
“율이 누나가 누나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이 많네요.”
“예성아, 다 뿌리는 대로 거두는 거야. 우리도 소싯적에 얼마나······. 흠!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아. 우리 그룹은 소율이가 하드캐리해왔지.”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사람 무안하게끔.”
내 말에 아리 누나가 피식 웃음을 보였다.
“넌 좀 무안해야 돼.”
“그런데 오늘은 여기 웬일이세요?”
“글쎄다. 우리도 그냥 오라고 해서 왔는데 말이지.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마침 잘 됐다. 예성이도 부르려고 했는데. 너희 말이야. 예성이랑 라디오 시대 나가라.”
그 말에 놀랐다. 누나들과 같이 나가라니.
“저 혼자 나가고 나머지 게스트 짜여 있던 거 아니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 보다시피 한국에 들어왔으니 같이 나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이야기를 해보니 그쪽에서도 좋아하더라. 아무래도 네가 나가게 된 게 갑작스러운 일이잖아? 거기도 부랴부랴 게스트 맞추느라 곤란했나 봐.”
“네. 그렇기는 하겠네요. 이런 예능은 미리 편성해 녹화하고 방송을 내보내는 거로 아는데, 갑자기 제가 툭 하고 끼어들었으니.”
“그렇지. 하지만 넌 신경 쓸 거 없어. 자기들도 계산을 해보고 나오라고 한 거니까.”
“네. 물론이죠. 제가 남 사정 봐줄 수 있는 레벨도 아닌데요.”
내가 대답하자 본부장님은 누나들을 쳐다봤다.
“아리야, 어때? 괜찮겠어?”
“전 빼주세요. 아무래도 입원해야 할 것 같아요.”
입원이라는 말에 내가 놀랐다. 입원이라니.
“누나, 스캔들 터졌어요?”
“야! 여기서 스캔들이 왜 나와?”
“본래 그런 거 터지면 입원하고 그러잖아요?”
“야! 나 진짜 아프거든. 어디서 스캔들을 들먹이는 거야?”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정말 멀쩡해 보였다.
“내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 거야. 아프다. 마이 아파.”
“언니는 애한테 엄살을 떨어요?”
“엄살 아니거든. 정말 아프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쳐다본다. 마치 어디 아픈지 물어봐 주라는 눈빛이다.
어린 나에게 그러고 싶은가?
하지만 안 물어보면 계속 쳐다보고 있을 것 같아 물어봐 줬다.
“어디가 아프세요?”
“척추야. 내가 이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은 척추 디스크와 피로골절밖에 없어.”
골절이면 골절이지 피로골절은 또 뭐야?
“춤을 많이 춰서 그런 건가요? 많이 아파요?”
“이제 적응이 되어 괜찮아. 이번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게 나 때문이야. 내가 아프니까 이 애들도 같이 떨어져 나온 거지. 어차피 완전체가 되지 못하면 소율이만 있으면 된다고 하더라고.”
“아쉽게 됐네요. 돈을 갈퀴로 끌어모을 기회였을 텐데.”
“넌 누나가 아프다는데 돈이 문제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돈이 문제죠. 그럼 뭐가 문제일까요?”
“이런, 음악 한다는 아이가 돈이 문제라니, 실망이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볼 때 제대로 살았는지 판가름해주는 것은 돈밖에 없어요.”
“넌 예술은 돈으로 환산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몰라?”
“하지만 대중문화는 돈으로 환산이 된다는 것을 누나는 모르나 보네요. 누나가 노력을 할 때마다 통장에 환산이 되는 걸 확인 했을 텐데요?”
“…”
“아리 졌네. 호호호 너도 맨날 그랬잖아?”
아리 누나와 동갑인 앨리스 누나가 허리를 숙여 가며 웃었다.
“내가 뭘?”
“데뷔 초기에 네가 통장을 흔들며 그랬잖아. 우리가 아이돌을 그만둘 때 남는 것은 골병든 몸과 통장밖에 없어.
그런데 통장이 이 모양이라니. 애들아 우리 더 열심히 하자. 이랬잖아. 그렇지 설아?”
“참 지겹게도 말했죠. 돈 귀신이 쓰인 리더라니 끔찍했죠.”
“뭔가 짠한 이야기네요. 다른 누나들은 괜찮아요? 비슷한 나이잖아요?”
“야! 난 두 살 어리거든.”
윤설누나의 말에 아리 누나가 콧방귀를 꼈다.
“그래 봤자 골병든 몸은 마찬가지.”
“아니 기획사에서 얼마나 일을 많이 시키기에···.”
“예성 학생, 나 여기 아직 있다.”
“네.”
“일을 많이 시켜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직업병이야. 내 무좀과도 같은 거지.”
본부장님,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무좀이라니.
“참 본부장님다운 비유네요.”
“왜 내가 더럽게 보여? 예성 학생, 이건 훈장과도 같은 거야. 내가 그만큼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증거지.”
“그냥 안 씻어서 그런 것처럼 보이는데요?”
“바로 그거야. 씻을 시간도 없었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아리도 마찬가지야.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거잖아. 예성 학생, 내가 저렇게 골병 얻게 만든 게 아니야. 그냥 프로 니까 저렇게 된 거야.
너무 열심히 해서 말이지. 스타란 건 그런 거야. 저 애들이라고 킬힐 신고 댄스를 추면 허리에 부담이 되는 걸 모를까? 무릎에 부담이 되는 걸 모를까? 다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스타란 건 아름답게 빛나야 하니까. 자기들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저렇게 하는 거야. 계속 빛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워야 하는 거야.”
본부장님의 열기를 띤 말에 침묵이 흘렀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아니 하나만 잃을까? 많은 것을 포기 해야 한다.
나는 아리 누나를 보았다. 사람이 다시 보인다.
“누나. 멋져요.”
“응?”
“꿈을 위해서 모든 걸 걸었군요.”
“그···. 그렇지.”
아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아리를 쳐다보는 윤설과 앨리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잘생긴 남자 쳐다보다 넘어져서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알면 저렇게 말 못할 텐데···. ㅋㅋ’
자기들도 지금에서야 그러려니 하지, 공연때 얼마나 황당하고 짜증이 났던가?
“그런데 무슨 이야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라디오 시대 이야기요.”
“아! 예성 학생 이야기 좀 이상하게 끌지 마. 예성 학생이랑 이야기하고 나면 매번 입술이 말라. 그냥 일 이야기만 하자.”
“아니, 이야기하시는 분은 본부장님이라니까요. 전 그냥 듣기만 해요. 듣는 것도 노동인 거 아시죠?”
나는 억울하다. 오히려 피해자는 나다. 나는 이야기를 들어줄 뿐인데. 들어 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됐고, 그러면 설이와, 앨리스가 같이 나가는 거로 하자.”
“네.”
이렇게 해서 라디오 시대에는 나, 윤설, 앨리스, 그리고 레드엔젤의 리더인 요원이라는 여자가 합류해서 같이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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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말이죠. 저희는 한 사람을 불렀는데, 예능 새내기라 걱정이 된다고 누나들이 다 따라 나왔어요. 이름하여 GJ패밀리가 떴다.
먼저 GJ에서 처음으로 나온 걸그룹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죠. 하지만 그게 벌써 몇 년 전. 이제는 관록의 아이돌 그룹이죠. 뷰티핑크의 윤설, 앨리스.”
“아! 이번에도 아닌가벼. 두 번째 미니앨범도 첫 번째와 같네. 이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웬걸? 남자가 부르니까 확 떴네? 차트 역주행의 아이콘 레드엔 젤의 리더 요원.”
“모야? 아! 모야? 도대체 애 모야? 가수 한다고 오디션프로그램 나갔는데 노래보다는 행동으로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 결국에는 윤종수에게 점수테러를 받고 탈락한 비운의 참가자죠. 신예성”
“난 냉정한 사람이야. 객관적으로 평가했어.”
“뭐가 객관적이야? 차트에 이 친구 노래만 남았는데.”
“이래서 내 노래가 안 팔리는 건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설이 누나가 나를 툭 쳤다.
“지금 들어가야 해.”
“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녹화를 시작하면서 MC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는 만나주지 않았다.
그리고 게스트에게는 대본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냥 MC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뭘 언제, 어떻게 시킬지 모르니 긴장이 되었다.
여기에 나오기 전에 라디오 시대를 열심히 시청했다.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아야 리액션이라도 잘할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방송을 너무 얕본 모양이다. 녹화는 방송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질문이 중구난방으로 날아들었다.
‘아 이것도 편집으로 방송을 만드는 거구나.’
녹화가 끝나면 짜깁기를 해서 순서를 조정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예성씨, GJ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어요? 오디션 봤어요?”
“당연히 봤겠지. 오디션을 안 보고 어떻게 기획사에 들어가?”
윤종수 씨의 질문에 나는 기억에 혼란이 왔다.
‘내가 오디션을 봤던가?’
“오디션을 본 것 같지 않은데, 봤나? 누나 제가 오디션을 봤던가요?”
“아니 어떻게 자신이 오디션을 봤는지도 기억을 못 해?”
강구라 씨의 핀잔에 할 말이 없다. 그런 나를 보다 못한 설이 누나가 나섰다.
“예성은 기억 못 할 수도 있어요. 자기가 오디션 보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일종에 몰래카메라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너 곡 가지고 온 날 노래 불렀잖아? 그게 오디션이었어.”
“네? 그게요? 황당하네요.”
“곡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 무슨 말이죠?”
김진국 씨가 이해가 안 가는지 물었다.
“처음에 예성이 우리 기획사에 오게 된 게 소율이가 부른 ‘그 한 걸음’이라는 곡 때문이에요. 그걸 계약하러 왔었어요.”
“GJ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니고 제가 아는 사람이 GJ에 아는 분이 있으시더라고요.”
내가 말하는 게 답답해 보였는지 윤설 누나가 툭 끼어들며 말했다.
“그냥 말해. 어차피 다 알려지는 일인데 뭘 그렇게 어렵게 설명하는 거니? 저희 기획사 본부장님 와이프께서 예성이 음악 선생님이에요. 아실지 모르겠네요. 소프라노 하연정 씨라고.”
“아! 알아. 어쩐지. 애가 오페라 쪽 냄새가 나더라니.”
“또 오바한다. 냄새는 또 모야? 냄새가. 신예성씨, 기획사에 들어갔는데 오디션은 왜 나갔어?”
무슨 청문회를 하는 느낌이다. 왜 이렇게 공격적인 거야?
“그냥 기획사에 들어가기 전에 슈스케를 나가기로 마음을 먹어서 나갔습니다.”
“그럼 오디션 나가기 전에 기도라는 노래를 유투브에 올린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기획사에서 그렇게 하라고 시킨 건가요?”
아, 곤란하다. 왜 이래?
“그건 아니고요. 기도라는 곡은 제가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아는 형과 친한 동생 이렇게 셋이서 만들었어요. 그전까지는 노래를 만들어서 내가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소율 누나가 ‘그 한 걸음’을 부르는 것을 보고 내가 만든 노래를 내가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었던 거예요.”
“그렇지, 가수라면 자기가 만든 곡을 자기가 불러보고 싶어지는 게 당연해.”
그 뒤로도 나를 아주 탈탈 털어버리듯이 여러 가지 질문이 날아들었다.
“신예성씨, 예성씨도 예성 씨지만 어머니도 큰 화제가 되었어요. 알고 있나요?”
“네.”
“어떻게 생각해요?”
“네? 뭐가요?”
“어머니가 미혼모센터에 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었죠. 아들이 이제까지 번 돈을 다 기부하는 거라고, 그러면서 3,100만 원을 기부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어땠어요?”
“네? 기분이라면 그냥 그랬어요. 어머니가 기부하기 전에 통장을 보여 주면서 미리 말해줬었어요.”
“그래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네. 솔직히 제가 아직 어려서 돈이 크게 필요하지 않잖아요. 거기다 어머니가 기부하겠다 공언한 것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머니가 말하길 이 돈은 제가 번 돈이지만 많은 사람이 노래를 들어줘서 번 돈이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번 돈이니 이 돈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시는 데 공감이 됐어요.”
“참 좋은 말이네요. 말로는 나눔은 어렵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 행하는 이들은 많지가 않아요. 어머니가 참 멋진 분이네요.”
김진국 씨의 말에 나는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어머니도 이번이 처음이세요. 그전까지는 저희 키우느라 바쁘셨거든요.”
그 뒤로도 학교의 피자 이야기가 나와 나는 또 어머니의 손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에피소드들을 말해줘야 했다.
그리고 나의 차례는 지나고 누나들의 근황과 레드엔젤의 요원 씨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와 요원 씨가 두 번째로 보는 것이라는 것에 MC들은 모두 놀랐다.
“정말 두 번째 보는 건가요?”
“네. 저번에 오디션프로그램 방청 갔을 때 보고는 오늘 두 번째입니다. 거기다 말은 오늘 처음 나눠봤어요.”
“기획사에 있으면 다 알고 지내지 않아요?”
“저는 좀 달라요. 연습생을 거치고 가수가 된 게 아니라서 아는 사람들도 일하시는 분들 몇몇밖에 몰라요.”
“완전 비밀병기네.”
강구라의 말에 설이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본부장님이 완전히 아껴요. 우리 기획사에서 개인 연습실 있는 사람은 신예성밖에 없어요.”
“끼고 돌만 하지. 성과를 죽죽 내고 있잖아. 우리 애들도 노래로 좀 흥했으면 좋겠다.”
“거긴 대표가 시원찮아서.”
“내가 어때서?”
“너 혼자 다 해 먹으니까, 애들이 못 크지. 월간 종수는 그만두고 애들 좀 신경 써.”
‘질린다.’
토크 방송의 이런 것일 줄이야. MC들은 재미있는 한 컷을 위해 질문을 정말 마구잡이로 던졌다. 우리도 그것에 맞게 리액션을 펼쳐야 했다.
내 개인기인 목소리 격산타우도 5번이나 해야 했다. 내가 실수해서 그런 게 아니라 리액션 때문이다.
그리고 5번째에 내가 애지중지하던 와인잔이 깨져버렸다. 이제 더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 방송의 마지막은 나에게 힘이 되어준 노래라는 코너에서 나는 내가 꼭 불러보고 싶었던 ‘그 한걸음’을 불렀다.
내 노래를 마지막으로 나의 첫 예능 녹화는 끝을 맺었다.
장장 4시간이나 걸려서.
나는 재미 없었지만, 방송에는 재미있게 나와야 할 텐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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