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all-purpose machine RAW novel - Chapter 21
21화
그로부터 삼 일 후, 내가 쉘터A를 들렀을 때, 에밀리가 내게 하소 연하듯 말했다.
“생존자들이 사라졌어요.”
“자의? 아니면 타의?”
“당연히 타의겠죠. 다섯 명이나 되는 생존자들이 아무 말없이 떠날 리 없으니까.”
에밀리는 이것이 디바우러의 소행 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소총으로 무장한, 경험 많은 다섯 명의 생존자 NPC들이 일반 좀비들에 의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는, 그쪽이 훨씬 타당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사람들이 쉘터A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해주십시오.”
인간 고기를 맛볼 대로 맛본 녀석 은 앞으로 기세등등하게인간을 찾아다닐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습격할 인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디바우러의 특성상 인간 고기를 더 이상 맛보지 못한다면, 금단 증상이 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금단 증상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녀석은 아마 쉘터A를 야습할 확률이 높다.
확률적인 문제긴 하지만, 야습한다, 야습하지 않는다, 둘 중에 배팅해야 한다면 나는 전자에 배팅할 것이었다.
만약 내 예상대로 된다면, 야습한 녀석을 격퇴시켜 내쫓는다. 녀석의 금단 증상이 극에 이르도록. 더 이상 녀석이 이성을 유지할 수 없도 록.
그리고.
‘폭탄 덫을 설치해서 녀석을 잡는다.’
“알았어요.”
에밀리는 제임스와 상의해보겠다고했다. 쉘터A의 리더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고 있었고 실권을 가진 것은 그였으 므로.
이번에 실종 당한 생존자들 중에서 제임스의 수하들도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임스는 손쉽게 상의를 마 쳤다. 그렇게 쉘터A의 출입이 엄 금됐다.
어느 누구도 쉘터A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물자가 풍부한 쉘터A이기 때문에 한동안 파밍을 멈춘다 하더라도, 물 자난에 시달릴 염려는 없다는 것.
존슨의 파티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되자, 생존자들 틈에 껴서 자신들이 변종 좀비가 오면 처치해주겠노라 하는 식으로 생존자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존슨 은 내게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대신 내게 관심을 보인 건 그의 파티 안에 있는 다른 힐러, 올리비아였다.
“쯔쉬안은 잘 지내고 있나요?”
“조금 있다 데려올 겁니다.”
쯔쉬안과 여자 좀비를 쉘터A 안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센트리건을 설치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쯔쉬안 혼자 두기에는 영 찝찝해서였다.
“그녀를 잘 부탁해요.”
내가 부담스럽다 느낄 정도로, 그녀는 내게 정중하게인사했다. 역시 귀족 힐러님답게, 개념까지 탑재하 신 모습이었다. 존슨이나 고일이 저 반만 따라가면 얼마나 좋겠어?
‘그나저나 고일 녀석은 어떻게 됐으려나?’
나는 쉘터A에서 내쫓긴 고일에 대해 떠올렸다.
벌써 디바우러에게 잡아먹힌 건 아닐까? 물론 명색이 싸이코인 만큼 디바우러도 호락호락하게생각할 수 없는 상대겠지만.
고일에 대한 생각을 지운 나는 힐 끔 존슨을 살핀다. 그는 두 눈을 시 퍼렇게 뜨고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저 녀석이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은 간다.
쯔쉬안을 빼갔는데 올리비아까지 빼가는 게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겠지. 그게 아니면, 내게 화가 났거나.
물론 내가 녀석의 시선을 신경 쓸 이유는 하나도 없기에 나는 오히려 녀석이 보라는 듯 과장된 동작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오히려 잘 부탁드립니다.”
힐러는 한 명만 있으면 되긴 하지만, 두 명이 있으면 더 좋다. 그녀가 내 파티에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다.
나는 이내 자동차를 타고 하우스플 러스로 향했다. 그때 승용차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거칠게 흔들리는 차체. 차체가 움푹 팼다.
이것이 디바우러의 소행임을 짐작한 나는 차체 위로 손을 뻗었다. 금속 변형을 통해, 자동차의 차체를 변경한다. 차체는 뾰족한 금속 가시 로 변해서 무언가를 꿰뚫는다.
“아, 아프잖아!?”
내렸더니 일전에 마주쳤던 녀석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어째, 생김새가 이전에 마주쳤을 때와 달라졌다. 그동안 새로운 변종 좀비를 먹기라도 한 건가.
녀석의 머리에서는 머리카락 대신 뱀과 같은 작은 촉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갑각류의 다리에서는 새하얀 털이나 있다.
점점 탈 인간 해가고 있는 녀석이었다. 하기야 원래부터 탈 인간이긴 했지만.
나는 침착하게소총을 꺼낸 후, 녀석을 향해 겨눴다.
“형, 그동안 잘 지냈어?”
그리고 해맑게 웃는 녀석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알이 녀석 의 다리에 맞고 튕겨나간다. 나는 굴러다니는 쇠파이프를 들었다. 쇠 파이프는 곡괭이 형태로 변화한다.
“재밌는 재주를 쓰네?”
녀석은 웃더니,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거대한 다리가 내 곡괭이와 격돌한다. 애석하게도 부러진 건 곡 괭이였고, 나는 엄청난 충격에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아이기스를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아이기스를 입고 있지 않았더 라면 나는 단숨에 짜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뻐적지근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고는, 뒷걸음질 쳤다.
“도망치는 거야? 형? 저번에 봤을 때랑 너무 다른데?”
아니, 미친놈아. 네가 강해진 거야.
마땅히 녀석을 상대할 무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폭탄이 답인가? 녀석의 몸에 어떻게 폭탄이라도 설치할 수 있다면… 하고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한 줄기 빛이 날아와 녀석에게 꽂 혔다. 퍽! 녀석의 다리 부분이 관통 당한다.
“으아아악!”
녀석이 비명 소리를 지른다. 누구 의 지원사격인지는 뻔했다. 에밀리 의 대물 저격총이다.
“비, 비겁한 새끼!”
기습한 놈이 할 말이야? 그나저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 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녀석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기라도 하듯, 녀석의 등에서 나온 괴상한 촉수들이 녀석의 덩치를 두 배 이상 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표적이 더 커졌을 뿐이다.
퍽!
또다시 총알이 녀석의 몸을 관통하자, 녀석은 덩치에 맞지 않는 비명 소리를 내더니,
“두, 두고 보자! 형도, 저, 저 새끼 도 가만 안 둘 거야!?”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말을 더듬던 녀석은 이내 뒷걸음질 치더니 사라져버렸다. 나는 에밀리가 있을 방향을 향해서 감사의 의미로 고개를 숙 이고는 승용차 차체를 붙잡고 한숨을 쉬었다.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찌릿찌릿하다. 저번에 마주쳤을 때는 그나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사이에 뭐라도 하고 온 건지 아주 괴물이 됐다.
에밀리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저 녀석의 입속에서 헤엄치고 있지 않으려나. 물론 아이기스를 착 용하고 있는 이상, 쉽게 먹혀줄 생각은 없지만.
잠시 가만히 있던 나는 승용차에 탑승했다. 녀석이 올라타는 바람에 차체가 찌그러지긴 했지만, 모는 데는 크게 상관없다.
녀석이 다시 습격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녀석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데다, 에밀리의 저격을 염두에 둬야 할 테니, 오늘 다시 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내 예상처럼 녀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괘, 괜찮아요?”
쯔쉬안이 내 상처를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불안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내쫓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내쫓은 것이 아니라, 에밀리가 내쫓은 것이지만, 그게 그거지, 뭐.
쯔쉬안이 내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녀의 손이 밝게 빛나더니, 내 몸에 있는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귀족 힐러 만세!
“하지만 당분간은 쉘터A에 머물 러야 할 것 같습니다.”
“존슨이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겠죠?”
그녀는 존슨이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모양이었다. 듣기로는 그녀가 나가겠다고 했을 때 아주 노 발대발 했었다는데. 물론 미치지 않고서, 그녀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의 뒤에는 내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에밀리나 제임스도 있을 것 이고.
물자는 나중에 쉘터D로 이동할 때 챙기기로 하고, 여자 좀비와 센트리건을 밴에 싣고, 우리는 쉘터A로 이동했다.
* * *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인간들을 향 해, 조재환은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 도 잠시, 그는 자신의 은신처에 꽁 꽁 숨었다. 밖에 나간다면 총알이 날아오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와 마찬가지로 불안감 역시 잠시였다. 그는 인간 고기 맛을 떠올렸다. 처음 자위행위를 했을 때 느꼈던 오르가즘 따위와는 비교 조차 안 되는 천상의 맛.
‘먹고 싶어, 먹고 싶어.’
그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리고 다시금 사냥을 개시했다. 그의 몸에 생겼던 상처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애석 하게도, 사냥감이 없었다.
쉘터A를 계속 배회했지만 인간은 커녕 좀비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허기를 달래지 못한 그는 좀비를 먹었지만 이미 인간 고기를 맛본 그에게 좀비 고기 따위가 맛이 있을 리 없었다.
굳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상한 고기’를 먹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래도, 그는 기다렸다. 무려 삼 일이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인간들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그는 금속 장 벽을 바라봤다. 저 안에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을 것이다. 몰래 들어갈까?
아니, 그러다가 저격총에 맞기라도 한다면…
아니, 밤에 들어가면 저격총을 맞을 일도 없겠지? 내면의 자신과 실 랑이를 벌이던 조재환은 이내 가닥을 잡는다. 한번 들어가 보기로.
그는 극도의 흥분을 느끼면서 밤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금속 장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쉽게 올라간 그는 쉘터A를 한눈에 내려다 본다.
흥분 끝에 해방감이 찾아왔다. 이제 쉘터A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다 내 먹이다. 조재환은 껑충 뛰어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인간들의 냄새를 찾아, 후각에 의지해 몸을 맡겼다. 그의 몸 이 이끌리는 곳으로 갔을 때, 조재 환은 한 무리의 인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중무장한 인간들이었다. 마치 자신이 이곳에 찾아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마냥. 그 가운데 서 있는 건 박시현이었다.
“혀, 형?”
“기다렸다, 동생아.”
그의 눈은 퀭했지만, 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마치 고기를 낚아 올 린 어부처럼. 진심으로 조재환이 온 것이 기쁘다는 걸.
그 순간, 그의 손에 들린 샷건이 불을 뿜었다. 금속 강화에 의해 강화된 샷건인데다, 근거리였다. 그도 더 이상 경시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조재환이 다리에 금이 가는 걸 깨 닫고, 뒤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에게 일제사격이 쏟아졌다. 그들 중에는 존슨의 파티와 알리샤의 파티도 섞여 있었다.
총기의 최대 공격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너의 공격은 한 발, 한 발이 치명적이었다. 싸이코의 염동력도,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붙은 블레이더의 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엄청난 상처를 입은 조재 환은 급기야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그의 머리에 에밀리의 저격총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기어코 금속 장벽을 넘어 도망치는데 성공한 조재환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시현은 이제 최종 페이즈에 들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해치우면 좋겠지만, 오늘 해치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폭탄 덫이 녀석을 죽여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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