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ocalypse became the strongest Alba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별건 없네
디아볼로스는 동상같이 딱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군. 그냥 원래 알 수 있다.”
“원래 그런 존재다?”
“그렇다.”
조금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거슬렸다.
디아볼로스는 자기 세상에서 어떤 존재였을지 궁금했다.
“이전의 네 세상에서 넌 어떤 존재였나?”
“이 세상에는 예를 들어 줄 비슷한 존재가 없군. 너희들의 이야기책 속에 드래곤이 그래도 가장 비슷하겠지만 외형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과 는 매우 다르다.”
“드래곤이라고? 키마리스는 세계수, 여왕들은 엘프 정도 되고 안드로말리우스나 다이몬은 오크 정도 되는 건가?”
“굳이 말하자면 네가 말한 그 존재들과 가깝다. 하지만 외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좀비들은 다른 세계의 인간이겠군.”
“맞다. 우연히도 너희들과 같은 외형이지.”
“우연인가?”
“모르지. 누구의 의도일 수도. 하지만 우린 그걸 알 위치에 있지 않다.”
판타지 속의 드래곤에 엘프, 오크나 좀비나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이야기다.
그래서 나를 알아본 건 그렇다 치고 황당한 이야기도 그렇다고 치고 왜 찾아왔는지가 궁금했다.
“너는 왜 내려왔지? 그냥 아는 사람이라 온 건가?”
“네가 이 인간 중 가장 강하다고 하더군.”
“그런가?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싸워보자고 온 것인가?”
“아니, 너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제안?”
항복 권유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제안이라니 새로웠다.
“너는 네가 우리를 이기고 테오스까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싸워보지 않으면 모르지.”
“테오스는 강하다.”
“그래서? 강하니 포기하라는 건가?”
“아니, 너를 돕겠다는 것이다.”
“나를 도와? 테오스는 너희 세계의 신이 아닌가? 그를 배신 하겠다는 건가?”
다른 존재들은 모두 자기의 신에 종속된 존재였는데 디아볼로스는 그게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이 말을 이었다.
표정은 없었지만 약간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테오스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배신했다. 세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자 신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어. 그 이후 너희 세계를 멸망시키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그가 문제가 있다고 해도 너희들은 그의 피조물이 아닌가? 뜻을 어길 수 있다고?”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테오스의 조각에서 태어났지만, 그가 창조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조력자이면서 대적자이다. 그가 만들려는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아니다.”
“당신들이 싫어한다고 해도 나를 도울 이유가 있나? 내가 테오스를 처치하면 당신들의 세상도 사라지는 거 아니야?”
종속된 관계가 아니고 신을 반대한다고 해도 이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다른 방법이 있어. 퀘스트 완료를 안 하면 된다.”
“뭐? 그게 무슨 말이지?”
“세 개의 세상과 싸워서 이긴 세계는 ‘생존’이라는 퀘스트를 완료할 수도 있지만 ‘공존’으로 바꿀 수 있다.”
“공존? 지금처럼 살라는 말인가? 농담하는 건가?”
디아볼로스는 내 비아냥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생존’을 완료하면 이전 세계로 돌아간다. 파괴되고 죽은 자들이 되돌아오지는 않지만, 너희들이 이용하던 에너지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와 키마리스, 안드로말리우스의 세상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그게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결말이지.”
“‘공존’을 선택하면 우리와 키마리스, 안드로말리우스의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고 너희 세계와 중간계라는 공통의 세계로 분리된다. 그리고 게이트를 이용해 중간계로 갈 수 있게 되지.”
“너희가 하나로 통합된다고? 뭔가 우리 세상이 불리한 것 같은데? 너희들끼리 뭉쳐서 다시 우릴 침공하는 것 아닌가?”
“만약 ‘공존’을 선택한다면 우린 중간계에서 만날 수는 있지만 서로의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 넘어갈 수 있다면 네 말대로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침공할 수 있어서 그걸 막은 거다.”
공존에 중간계라니, 말은 쉽게 하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없다.
“공존이고 뭐고 다 좋은데 우리는 전기나 가스 같은 에너지를 이용해 왔다. 지금은 싸우는 중이라 참을 수 있지만 싸움이 끝나고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갈등이 커질 거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야.”
“우리는 너희와는 다르게 마석이라는 걸 에너지로 사용했다. 너희들의 배터리 정도 되는 에너지 원이고 중간계에서 채취할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어.”
“···.”
배터리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본 적 없고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여전히 우리에게 이익은 없다.
“그리고 각성해서 강해진 너희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말이지?”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힘을 가진 채로 일상에 복귀하면 그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을까? 힘을 가진 너 스스로 그 힘을 포기하며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봐라.”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냥 가지고 있는 힘으로 자재를 날아서 옮긴다는 우스개 같은 생각만 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일상에서 곰돌이 갑옷을 입고 공기를 분사해 겅중겅중 뛰어다닐만한 일은 없다.
날카로운 손톱이나 팔뚝의 칼날도 필요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좀비와 괴물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 본 적이 있을지 궁금했다.
있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이 일은 내가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난 일단 힘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중에 고민해 보기로 하고 궁금한 걸 물었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돕겠다는 건가? 일부러 져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일부러 질 수는 없다. 테오스가 알아볼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약한 자들을 올려줘 봐야 테오스를 이길 수 없다. 다만 너희들의 수준에 맞는 상대가 나가게 될 것이다.”
“그게 끝인가?”
“100명에 들만한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보상을 주도록 하겠다. 그러면 훨씬 더 강해질 것이고 테오스를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러고도 우리가 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싸우기 전까지는 돋기는 하겠는데 우리 능력이 부족해서 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 같다.
“당신들이 테오스와 싸울 수는 없나?”
“말한 대로 우리는 테오스의 조각에서 태어났다. 직접 테오스와 싸우지는 못한다. 만약 싸울 수 있었다면 우리 세계를 이렇게 만들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세계의 신을 죽이도록 돕는다는 게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거기에 더 바라는 건 욕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생각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한번 들어봐야 했다.
“조금 더 생각해 보겠다. 지금은 뭐라 답하기 어렵군.”
“그러도록.”
디아볼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띄웠다.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면서 촉수들을 움직여서 원래의 몸으로 금방 복구했다.
나는 하늘에 떠 있는 디아볼로스를 한 번 보고 하산했다.
디아볼로스의 제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저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막막했었는데 조금은 답답함이 풀렸다.
사람들과 의논은 해봐야겠지만 디아볼로스와의 대화를 전부 말할 수는 없다.
다시 고민이 깊어졌다.
***
날이 밝은 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디아볼로스와의 대결에 100일이라는 기한이 생기니 바쁘게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끼리 팀을 모으느라 모두 바빴다.
나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했다.
모든 일이 해결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 것인지였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내가 디아볼로스에게 질문받고 말을 못 한 것같이 사람들 모두 쉽게 답하지 못했다.
“어, 제가 사람을 찾고 추적하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일이 뭐가 있을까요? 형님?”
권호창은 정말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회사를 정상화해야죠. 좀비 사태로 긴급하게 회사를 운영하게 된 거라서 아직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회사 운영에 대해서도 좀 배우고 양성된 병력은 한동안 치안유지에 집중해야죠. 회사의 규모도 조금 키우고 싶습니다. 얻게 된 힘이요? 저야 뭐 제가 직접 싸운 적이 많지 않으니 안 써도 문제없습니다. 그래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네요.”
서윤재는 회사를 안정화하고 더 키우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기가 키운 사병집단은 계속 운용할 것 같다.
정부가 무너진 상황에서 저런 기업이 무력까지 잡고 있으면 그 자체로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공통의 적이 있지만 그런 적이 없어진다면 저 힘이 어디로 향할까 새삼 걱정이 됐다.
“저는 부대로 복귀해야죠. 계속 군인으로 있을 거냐고요? 이런 시기에 제대한다고 해도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정부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군인으로 있을 것 같습니다. 국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 군대와 군인의 역할이 중요해질 겁니다.”
나연제는 계속 군인으로 있겠다며 국경을 이야기했다.
북쪽이 무주공산이 됐으니 군인들이 북으로 밀고 올라갈까? 중국이나 일본의 사정은 어떨지 모르겠다.
국경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욕심이 좀 있어 보였다.
“음, 그때가 되면 병원이 다시 열리겠죠. 수련의 생활을 마치지 못했으니 가능하면 전문의가 되고 싶네요. 나중엔 저한테 아이템 강화 해달라고 오지는 않겠죠. 뭐, 가끔 부업으로 해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대장장이인 임효영은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각성으로 얻은 힘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임효영은 주로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크게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원래도 영업일을 했고 직업도 상인이니 관련 일을 하거나 나이가 있으니 카페를 차리는 게 어떨까 생각해 본 적 있지. 난 뭘 해도 장사 쪽 일을 할 것 같긴 하네.”
임효영의 짝과 같았던 상인 김규왕도 큰 변화가 없다.
“이제 은퇴할 나이도 넘었는데 힘을 얻어서 은퇴가 10년은 미뤄진 것 같네. 조금 더 오래 망치질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아주 좋아.”
대장간을 운영하는 진짜 대장장이인 70대 중반의 이판석은 각성해서 힘이 넘쳐나는 이 상황을 즐겼다.
공방 거리의 다른 대장장이나 건축가, 연금술사들도 원래 하던 일과 각성으로 얻은 직업이 같거나 비슷한 계통이니 대체로 하던 대로 살겠다고 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더 현 상황을 긍정했다.
“제가 하던 일이니 이 일을 계속하면서 능력이 필요한 일에 적극적으로 사용할 겁니다. 가지고 있는 힘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거기에 회사에서 레벨을 높이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니 회사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될 생각입니다.”
명신 그룹 공략대의 정 부장은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다른 전투직업인 전사들도 원래 군인이나 경찰, 경호원같이 원래 하던 일의 연장선상인 사람들은 하던 일을 계속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반면, 평범하게 살다가 전사가 된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고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각성한 힘도 아깝고 이전 삶으로는 돌아가고 싶어 대답에 고민이 많았다.
‘각성으로 갖게 된 힘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은 다들 결정하지 못했다는 게 맞아. 기업이 기반이 된 그룹이나 군 조직들은 견제할 세력이 없으니까 어쩌면 군벌처럼 변할지도 모르겠어.’
바쁘게 돌아다니던 안성희가 옥상으로 찾아왔길래 마지막으로 일상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살 것인지 물었다.
“나는 내 능력을 살리는 일을 찾아볼 것 같아. 탐정 같은 거라도 해야 할까? 아무튼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지.”
안성희도 능력을 상당히 높은 레벨까지 올린 상태라서 그걸 무시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건 낭비일 것 같기는 하다.
“만약 이 모든 능력이 없어진다면 복귀가 쉬울까?”
“그렇게 되면···허탈할 것 같아. 전투직업이 아닌 나도 그런데 전투직업들은 더 그렇지 않을까? 중년 이상인 사람들도 각성 후 건강해졌는데 각성 전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지.”
나도 마찬가지로 능력이 없어진 미래를 생각해 본 적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들 비슷했다.
역시 가진 걸 포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힘이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사용할 방법을 찾겠지.”
“적이 없어지면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다른 적을 만들어서 싸우겠지.”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네.”
“뭐 예전이라고 안 그런 적 있었나? 그래도 결국엔 질서를 찾게 될 거야.”
“그런가?”
“그런데 나중 일까지 고민할 필요 있어? 지금은 저 디아볼로스 상대하는 게 먼저잖아.”
“그냥 문득 궁금해졌어.”
안성희는 나를 보고 눈을 좁혔다.
“수상한데?”
“뭐가 수상해?”
“그런 고민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잖아.”
“하긴, 나하고 어울리는 일은 아니지? 그냥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더라.”
“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다녔다던데 결론은 뭔데?”
나는 잠시 멈칫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 대답에 안성희는 실망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억지로 되돌린다고 되돌려질 것 같지 않다는 거.”
“별건 없네.”
“뭐, 그렇지.”
“난 간다. 나중에 또 보자.”
“그래. 가.”
안성희는 바쁜지 또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갔다.
디아볼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설문조사까지는 아니지만 내 집과 입구의 공방 거리 그리고 피난민촌까지 아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물어봤다.
나는 사실 마음속으로 결정을 한 상태였지만 이게 맞는지 확신이 없어서 물어봤었던 거다.
사람들의 대답에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었다.
이제 다시 디아볼로스를 만나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