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07
“전직을 하기 위한 업적 점수는 1000점 이상. 그렇지만 지금 여기서 이 조건을 만족 못하는 사람은 없어.”
일반적인 경우라면 본래 세 번 정도 탐사를 진행해야 1000점 정도를 얻을 수 있지만, 이번에 보고한 내용들이 여러 가지로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네임드 몬스터를 토벌한 덕에 이미 조건은 충족되어 있었지만.
“그러면 이번에 로베리아로 돌아가는 건가요?”
이서연이 조심스레 묻는다. 전직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영웅들의 안식처가 로베리아에만 있다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전직을 위해서는 반드시 로베리아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송가연처럼 특별한 매개체가 없는 이상은 말이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당분간 로베리아에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야. 거기가 로렐라이보다는 좋을 테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죠.”
로렐라이는 현재 한 참 재건 중이다. 사람이 머물 건물도 많이 없는데 오락을 위한 건물이 지어져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술집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빈약한 수준이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생각이면 로베리아로 돌아가는 게 제일 좋았다.
“나는 멋진 여기사를 만나면 좋겠네.”
문득 무슨 상상을 하고 있는 건지 길유미가 키득, 웃으며 중얼거렸다.
“···흐음. 그럼 나는 카리스마 있는 기사.”
남궁민도 길유미의 분위기에 흐름을 타듯 말한다.
“나는….”
그 모습에 이서연이 우물쭈물 입을 움직이다가 끝내 말하지는 못했다.
그런 이서연의 모습을 유현은 눈여겨보듯 쳐다봤다.
“서연이 너는 뭔가 원하는 직업 같은 건 없는 거야?”
“그게···. 솔직히 말해서 애매하네요. 저는 이도저도 아니라서요 궁민이나 유미처럼 무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연이처럼 정령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표정을 흐린다. 전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보다는 어쩐지 우울해 보였다.
이서연의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하고 길유미와 남궁민은 서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뚜렷하게 나타나는 둘과 달리 이서연은 외롭게 혼자 동떨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너무 깊게 고민하지 마. 영웅들의 안식처에서 너에게 접근하는 영령들을 보고 너는 고르면 되는 거니까. 자신에게 제일 어울릴 것 같은 힘을 찾아 손을 뻗으면 되는 거야.”
“···만약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유현은 쓰게 웃었다.
“그럴 일은 없어. 그건 내가 보장할게.”
과거의 업이 뛰어난 영령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일반적인 영령들까지 관심을 안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그런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되네요. 뭔가 확고하게 원하는 게 없으니···. 오빠는 뭐가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녀의 물음에 유현이 침묵을 유지할 때.
“···그럼 사제가 되는 게 어때?”
지금 말을 꺼낸 건 유현이 아닌 송가연이었다.
“사제···?”
“너도 신전에서 여사제가 치료 마법을 사용하는 걸 봤을 거 아니야. 그런 힘이 있으면 엄청 편할 거야. 물론 포션이 있지만 연달아 사용할 때 생겨나는 부작용을 생각하면 치료 마법보다 좋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차분한 송가연의 목소리에 흐려져 있던 이서연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온다.
유현은 그걸 보며 내심 다행이라고 여겼다. 송가연이 말하지 않았으면 유현이 말했을지도 모른다. 특정 직업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유현이 말하면 이서연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반드시 그걸 고르려고 했을 테니까.
유현이 원하는 건 자신의 의사를 통한 결정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상념에 잠기던 이서연은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고민을 완전히 떨쳐낸 듯한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럼 저는 사제가 될래요.”
사제가 되면 일행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서연은 힐끗 유현을 쳐다봤다.
유현은 현재 길유미와 남궁민에게 공격적으로 질문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주로 나오는 이야기는 무슨 직업을 얻을 것인가, 이었는데 그는 쓴웃음만 지으며 대답을 피하고 있었다.
이서연은 유현을 보며 엘더 라비락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유현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일행을 서포터 할 수 있는 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제는 어쩌면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서로 무슨 직업을 원하는지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뭔데 그렇게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까?”
볼 일이 있었던 것처럼 자리에 없던 류트가 드디어 돌아왔다. 류트는 유현의 부탁을 받고 게이트웨이가 열리는 시간을 확인하러 갔던 참이었다.
그 사이 일행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갔다. 도착하고 수초만에 류트는 그걸 알아챘다.
“뭐 때문일 거 같아?”
길유미가 흐흥, 하고 웃음을 흘리며 묻자 류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밑을 매만지고는 오래 걸리지 않아 담담히 말했다.
“전직 때문이겠죠.”
그러자 길유미는 약간 놀란 표정을 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야, 여기에 무슨 도청 마법이라도 설치한 거야? 어떻게 알았어?”
영화에서 흔히 나오듯, 테이블 밑을 손으로 더듬더듬 훑으며 길유미가 말한다. 류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전혀 알 수 없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청 마법이라는 건 또 뭡니까? 아쉽게도 전 그런 마법 따위는 모릅니다. 하지만 있으면 편리할 거 같군요. 나중에 한 번 알아봐야겠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류트가 진지한 표정을 했다. 어쩌면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도청 마법을 어디선가 배워올지 모른다는 사실에 길유미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돼, 됐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장난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정말 어떻게 알았어?”
“사실 저는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줄 아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방금 길유미 씨의 생각을 읽었죠.”
류트는 진지한 목소리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냈다. 그것에 길유미가 꽁꽁 얼어붙었다. 설마 정말로 믿는가 싶어, 유현이 속으로 헛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길유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 거, 거짓말 하지마.”
“예. 사실은 거짓말입니다. 그냥 한 번 찔러 본겁니다.”
그제야 길유미의 얼굴에서 힘이 풀린다. 정말로 내심 믿고 있었나보다. 송가연이 그런 그녀를 한심하다듯이 쳐다보고는 유현에게 물었다.
“류트에게 뭘 부탁한 거예요?”
송가연은 유현이 류트에게 뭔가 부탁하는 걸 보았다. 류트가 자리를 비운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 그다지 복잡한 부탁은 아니었을 거다.
“게이트웨이 활성화 시간을 알아달라고 했지.”
“게이트웨이 활성화 시간···. 그렇다면 오늘 바로 가게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궁민이가 퇴원하는 순간 바로 가려고 했어. 너희들이 전직하는 것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듯이 나도 내심 기대하고 있으니까, 참을 수가 없더라고.”
말하면서 유현은 살포시 웃었다.
“흐음. 역시 오빠도 기대는 하고 있었구나.”
유현의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처럼 길유미는 요염하게 웃고는 유현의 옆구리를 찔렀다.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건 유현도 결국 다른 일행들과 똑같았다.
“게이트가 활성화 되는 시간은 정확히 오후 2시입니다.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은 거죠.”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동석한 류트가 아직 남아 있던 빵을 하나 집으며 입을 열었다.
“오후 2시···. 흐음. 어서 준비해야겠네.”
“예. 어서 떠날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빨리 여관에서 짐부터 챙기고 나오죠.”
게이트웨이가 활성화 되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은 편이었다.
1분 정도를 유지하는 것도 상당한 돈이 필요할뿐더러,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면 더욱 활성화 시간은 짧아진다. 로렐라이의 유동 인구를 떠올리면 5분 정도만 늦어도 도착했을 때 비활성화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미궁에서 귀환석을 사용한 탓에 여관에서 챙겨야 할 일행의 짐은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만약 저녁에 열렸으면 시간은 충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유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잘 먹었습니다. 얼마입니까?”
“···저 녀석이 워낙 많이 먹어서 액수 좀 클 거요.”
식당 주인이 남궁민을 가리키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남궁민은 멀뚱멀뚱 눈을 깜박이다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유현은 피식 웃고는 돈을 지불했다. 확실히 남궁민 혼자서 4인분 정도는 먹은 듯 싶다.
유현은 곧 바로 식당의 카운터에 음식 값을 지불하고는 여관으로 향했다. 본래 방을 잡아 놓기로 한 기간보다 빨리 나가게 되었기에 돈을 환불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일행의 사정에 맞추어 남은 기간만큼 정확히 돈을 환불해주지는 않겠지만 상관은 없다. 이번 탐사로 인해 벌은 돈은 상당하다. 여관 가지고 골골 거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볼일을 끝내고 일행은 게이트웨이 앞으로 모였다. 사람은 없다. 로렐라이에서 로베리아로 건너가는 이들은 극히 없었으니까.
시간이 되자 게이트웨이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력의 파동을 뿜어내며 비틀리는 공간.
아직 긴장이 되는 건지 일행이 삐죽삐죽 다리가 얼어붙은 것처럼 그 앞에 서자 유현이 먼저 나섰다.
“먼저 가서 기다릴게.”
유현이 망설임 없이 공간을 넘자, 일행도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곧 바로 뒤따랐다.
무사히 로베리아로 건너와 플레이어들의 휴식처로 향한다. 여관부터 잡을 생각이었다.
나름 익숙한 길을 기분 좋게 걸을 때였다.
앞에서 걷던 유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멈추어 그 뒤에서 따라 걷고 있던 이서연이 유현의 등과 코를 부딪쳤다.
“아앗. 오, 오빠···. 음?”
다행히 엉덩방아까지 찧지는 않았지만 코가 아프다. 작은 눈물을 글썽이며 유현을 찾는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른 일행들도 유현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건가.
“오빠···. 왜 그렇게 멈춰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이서연은 자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는 유현의 등에서 나와 옆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수초도 안 되어 이서연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플레이어의 휴식처가 뭔가 달라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플레이어의 휴식처는 그대로다.
그런데 뭔가 달라져 있다.
본래라면 텅 비어져 있어야 할 플레이어들의 휴식처다.
분명 미궁 탐사를 하기 전에 여기는 텅 비어져 있었다. 여관 주인이 손님이 없다고 쓸쓸하게 웃었던 것까지 뇌리에 선명하다.
거기서 유현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신규 플레이어···.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