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22
유현이 오늘 하루도 일행을 열심히 굴렸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관 주인장도 오늘 하루를 정리하듯 주방을 정리하고는 유리 잔과 술 병 하나를 들고 테이블에 착석했다. 그가 내미는 유리잔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여관 주인이 말없이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가 꺼내 온 건 이번에도 블루 스카이였다.
지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 만들어서 그런지 푸른 색을 띤 술이었다.
그 비싼 녀석을 공짜로 제공하니 유현으로서는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유리 잔 안으로 천천히 차오르고 있는 푸른색을 눈에 담으며 여관 주인이 슬쩍 웃는다.
“저번에 보니 블루 스카이를 상당히 좋아하시더군요.”
“비싼 녀석이니까요.”
“하하. 그렇죠. 술은 비싼 녀석이 맛이 좋은 법이죠.”
유현의 대답이 유쾌했는지 여관 주인이 기분 좋은 미소를 흘린다.
이 술 한 병이면 어지간한 파티의 한 달 식비는 충분히 만족하고 남았다. 지금 유리 잔에 따라지는 푸른빛들이 여관의 하루 매출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관없는 일이다.
여관 주인으로서는 가볍게 술친구를 할 사람이 있는 걸로도 만족스러웠다.
주위는 침묵에 잠겨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모두 잠에 든 시각. 언제나 둘이 술잔을 나누는 시간은 이랬다. 처음에도. 두 번째에도. 그리고 이렇게 세 번째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아도 된다는 건 무척이나 편한 일이었다.
유현으로서는 신규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여관 주인으로서는 이세계의 주민이 플레이어와 가깝게 지내는 걸 보이기가 꺼려지는 일.
말없이 서로 잔을 비우던 중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여관 주인이었다.
“며칠 전에 일행들 모두가 직업을 얻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남궁민님이 자랑하듯이 말하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빨리 직업을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웃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부드럽다. 유현은 주인장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궁민이가 주인장에게 벌써 말했습니까? 아쉽군요. 제가 직접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말 한지는 조금 되었습니다. 다만 신규 플레이어분들의 시선 때문에 언제 축하드려야 할지 몰라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지요.”
여관 주인은 중립을 유지하는 게 좋다. 다른 누군가와 유독 친하게 지내는 걸 보여준다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가볍게 이야기들을 나누며 여관 주인은 넌지시 물었다.
“그것보다 영웅들의 안식처에서 검의 주인 분과 만나보셨습니까?”
여관 주인으로서는 제일 궁금한 일이었다. 유현에게 영령과의 매개체를 준 인물인 이유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만나지 못하고 다른 영령을 선택했다면 곤란했다.
다시 검을 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다른 영령을 선택했다면 검을 회수할 필요가 있었다. 장식용으로 누군가의 손에 쥐어져 있을 법한 물건은 전혀 아닌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런 여관 주인의 생각 까지는 짐작하지 못한 채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관 주인의 눈동자에 안도의 감정이 스쳤다.
유현은 그걸 놓치지 않고 발견하고서 속으로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그는 유현이 검의 주인과 만나보기를 원했던 듯 싶다. 유현은 술로 감정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영령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테니 굳이 숨길 건 없을 것이다.
“꽤나 무서운 분이더군요.”
“그랬습니까?”
여관 주인은 진심 어린 유현의 말에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검의 주인에 대해서는 당연스럽지만 잘 알고 있다. 유현에게는 숨기고 있지만 이 검을 통해 유현보다 앞서 검은 악마에게서 힘을 받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정군에서 신병으로 움직이고 있던 시절 같은 시기에 입대한 동료였다. 비록 모험가들의 싸움에서 버티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가 보여준 힘은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
어떻게 보면 죽은 동료의 유산을 다른 사람에게 줬다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먼지 쌓이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버려지는 힘은 없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령과 이어주는 매개체인 부러진 마검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히 쓰여야 옳았다. 그래서 여관 주인은 어울리는 인물로 유현을 골랐다.
그라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빠른 성장을 보여줄 것이고 머지않아 큰 성과를 올릴 거라고 믿었으니까. 실제로 그는 그랬으며 오히려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결과를 보여줬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그가 만들어낸 결과를 알고 있을까.
머지않아 알려질 것이다. 이름을 공개하지는 않겠지만 플레이어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을 겸 누군가 이야기를 흘리기 시작할 것이다.
어쨌든 그가 다행히 힘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어째서 이 검의 주인이 검은 악마라 불리는 겁니까?”
아무렇지 않게 흘린 유현의 질문에 여관 주인은 후후, 웃으며 대답했다.
“들리는 이야기로 그 분은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벌써 반년이 되었으니 알고 있겠지만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분들은 그다지 많이 없습니다. 특히 이리아스 계열 쪽에서는 말이지요.”
여관 주인의 말에 유현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곳 거주민들 대다수가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전부 외국인의 얼굴이었다. 동양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서양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서양인들에게도 이곳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류트만해도 푸른 머리카락을 가졌고, 그것 말고도 드문드문 이질적인 머리카락 색들도 보인다.
지구인과 이곳 세계 사람들은 확연히 분류가 된다.
거주민들 중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드물었다.
별명이 붙여지는 게 상당히 단순한 이유에서 오기도 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던 찰나였다.
‘검은 머리카락?’
유현은 어쩐지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다.
술잔을 잡고 있던 손이 살짝 떨리자 자연스럽게 억누르며 유현은 여관 주인을 쳐다봤다.
“검은 머리카락이라고 하셨습니까?”
“예. 소문으로는 그렇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여관 주인은 확신하듯 말하고 있다. 애초에 그가 모든 정보를 털어 놓지 않았다는 걸 유현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고 거짓 정보까지 흘리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매치가 안 되는 이야기다.
검은 머리카락이라고?
유현이 그곳에서 본 건 핏빛처럼 불길하고 강렬한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였다. 절대로 검은 빛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피로 물들어 검은 머리카락이 붉게 변한 걸까, 싶었지만 정말로 바보 같은 생각인지라 속으로 곧 바로 부정하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현은 웃고 있는 눈으로 물끄러미 여관 주인을 쳐다봤다. 몇 번이나 쳐다봐도 저 표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고.
안식처에서 영령을 만나게 될 유현에게 생김새에 대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 역시 그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
“그 분이 언제 적 시절에 활동하던 분인지 알고 계십니까?”
영웅들의 안식처에는 죽은 영혼들만이 모인다. 다르게 말하면 안식처 안에 있던 영령들 모두가 한 때 살아있던 몸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다. 영웅이라는 건 그만한 업을 쌓았다는 소리. 뭔가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하듯 턱을 쓰다듬던 여관 주인이 말한다.
“500년 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무슨 이유인지 잘 알 수 없지만 모험가들이 미궁 깊숙이 있는 던전을 공격했던 적이 있지요. 그 때 검의 주인께서 모험가들을 막아내고 검은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던 걸로 압니다.”
···500년 전.
유현은 입안에 맴도는 술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를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500년 전의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여관 주인이 말하고 있는 시대는 인간이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고서 미궁에 떠밀려졌을 때였다. 던전이라는 이야기부터 시대가 완전히 다름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럼 뭐지. 내가 만났던 남자는?’
그 남자도 마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마검을 키워서 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검이 매개체로서 역할을 충분히 한 건 분명할 텐데···.
여관 주인이 검은 악마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유현의 귓가에 재대로 스며들지 못하고 있었다.
여관 주인은 지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웅들의 안식처에서 유현은 검은 악마를 만난 게 아니다.
전혀 다른 누군가.
그럼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는 누구지.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여관 주인도 그게 누구인지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건 오로지 검은 악마일 뿐이다.
결국 거기서 유현이 할 수 있는 건 아는 척을 해주는 것뿐이었다.
몇 번이나 확인하듯 조심스레 이야기를 돌려보지만 여관 주인은 전혀 붉은 머리카락 사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유현의 흑안은 점점 어두워질 뿐이었다.
재미있는 일이다.
유현은 여관 주인의 말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리잔을 천천히 들이켰다.
마검을 키워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그 인간이 뭐하던 인간인지 유현은 알아보고 싶어졌다.
========== 작품 후기 ==========
120화 내용 수정이 있습니다. 200명 넘게 보시기 전에 수정하기는 했는데, 유현이 따로 얻은 능력은 빛과 어둠 뿐입니다.
그래서 현재 유현이 가지고 있는 직업보유능력은 강인한 육체F 백병전C 빛과 어둠F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