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23
-죽여라.
명령하듯 말해오는 불쾌한 목소리에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주위를 둘러본다. 보이는 건 짙은 어둠뿐이다. 코를 간질이는 냄새는 어딘가 기억에 남아 있다. 이 냄새의 정체가 무엇일까 하고 길게 생각에 잠기니 머지않아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불가해의 영역.
그 특유의 음침한 냄새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곳의 정체를 알게 되니 안막이 따갑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공기 중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마소가 통증의 원인이다.
마소. 불가해의 영역에서만 생겨나는 정체불명의 힘.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게다가 그 마소를 먹고 자라나는 마수의 정체도.
불가해의 영역은 단어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미궁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인간들도 1000년 넘게 불가해의 영역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말은 다했다.
앞으로도 알 일은 없겠지.
유현은 그렇게 느꼈다.
회귀 전에도 불가해의 영역에 대해 아는 건 그다지 없었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겠지만 무언가 사람들 사이로 이야기가 떠돌 것이 없을 정도로 정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제일 연약한 부위를 넘어 슬슬 피부마저도 화상을 입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유현은 작게 신음하며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무언가 목적도 없는데 이런 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점점 고통의 크기가 심해지고 있다. 마소가 목구멍 안까지 비집고 들어온 것인지 숨을 쉬기가 어렵다.
어떻게든 안전한 곳을 찾아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앞에서 갑자기 몸을 비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보고서 유현은 걸음을 멈추었다.
-강해져야 해···. 아직···. 힘이···!
이를 악물며 남자는 말한다. 누구한테 말하는 건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정신병 걸린 환자마냥 강해져야 한다는 말만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검을 지팡이 삼아 쓰러질 것 같은 움직임으로 겨우 걷고 있다.
“·········”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워 유현은 한 동안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도대체 저 남자는 누구지.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몸을 태우고 있는 마소를 잠시 잊은 채 유현은 그 남자를 쫓았다. 남자는 비틀 거리며 간신히 걷고 있던 탓에 무척이나 느리지만 어째서인지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바로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다. 하지만 닿지가 않아 답답하게 느껴질 때였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유현은 순간 뭐라고 말 하려고 하다가 말문이 막혔다.
계속해서 힘겹게 걸어가 어딘가로 향하던 남자가 도착한 곳에는 녀석이 있었다.
마수라 불리는, 미궁의 괴물들과는 본질 자체부터가 다른 존재. 살육을 뜯는 몬스터들과 달리 마소로 성장하며 살아가는 괴물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으하하하! 발견했어! 발견했다고! 이 녀석만 죽이면 나는! 나는! 하하하하!
마수를 발견한 남자가 죽어가던 얼굴을 감춘 채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마냥 그 들뜬 모습에 유현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남자가 환호를 터뜨린다. 유현은 남자를 눈살 찌푸리며 쳐다봤다.
남자가 검을 들며 마수를 향해 달려든다. 마수가 소리를 지르며 대항하지만 그다지 강한 마수로는 안 보인다. 남자의 움직임은 뛰어났고, 마수는 약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남자의 움직임이 산만했다. 상처 없이 이길 수 있을 텐데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마수에게 계속 상처를 입는다. 전부 쓸데 없을 정도로 산만한 움직임 때문에 입은 상처들이다. 도대체 뭐하는 거지.
광소. 미친 웃음이 남자의 입가에 터진다.
온 몸에 생겨나고 있는 상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마수를 죽이는데 몰입한다.
역시 미친 남자였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등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유현은 돌아가던 몸을 잠시 멈추었다.
지금 무언가 중요한 걸 본 거 같은데.
딱딱하게 굳어 있던 목을 풀 듯 천천히 움직여 남자를 다시 관찰한다.
남자는 싸우고 있다. 미친 웃음소리를 숨김없이 흘리며 마수를 사냥하는데 몰입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마수를 잡아서 무슨 이득이 있겠다고.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던 중 유현은 남자의 손에 있는 검을 쳐다봤다.
‘저건···.’
익숙한 생김새였다. 불쾌할 정도로 검은색 검신을 가진 검.
어째서 저 검을 저 남자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뜰 때였다.
남자의 미친 웃음소리도, 마수의 울부짖음도, 음침한 마소의 감촉도.
모두 갑자기 사라져버려 새하얗게 변했다.
*
눈을 떠보니 보이는 건 익숙하기 짝이 없는 나무 천장이었다. 밝은 갈색을 유지하며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깔끔한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던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창문 너머로 가늘게 비집고 들어오고 있는 빛을 보니 아침인 듯 싶다.
온 몸이 나른하다. 피곤한 건 아니었지만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짙은 탈력감이 피를 타고 흐르는 것만 같았다. 유현은 왜 하필 지금 깨어난 건지 속으로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꿈을 꾸었다.
악몽 같은 건 흔히 꾸던 거였다. 회귀를 하고서 악몽을 꾸지 않은 날 보다 꾼 날이 많았다.
그나마 최근 들어 악몽을 꾸는 게 적어지기는 했는데.
“큭. 머리가 아프군.”
유현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제 오랫동안 여관 주인장과 술을 마셨더니 머리가 띵하다. 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강렬한 취기에 시야가 비틀거리는 걸 느끼며 유현은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블루 스카이는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그런데 그걸 감안해도 몸 안에 남아 있는 취기가 강하다. 유현은 천천히 마력을 활성화 시키며 취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 작업이다. 고난이도의 마력 컨트롤을 요구하는 세밀한 작업.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것 따위에 쓰는 건 상당히 사치였지만 마리가 아픈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천천히 맑아지기 시작하는 정신에 유현은 멍하니 천장을 본 채 생각에 잠겼다.
이번 악몽은 뭔가 이상했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은 아닌 거 같고.‘
본래 유현이 꾸던 악몽은 잃어버린 기억을 한 조각씩 모으는 과정이었다. 악몽을 통해 그나마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기억은 무척이나 적었다. 그래도 아예 이런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잃어버린 기억이 나중에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유현은 방금 전까지 꾸고 있던 악몽의 내용을 상기했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뿐이었다. 마수를 잡고 있는 남자는 도대체 누구였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신경 쓰이고 있는 건 남자가 마수를 죽이기 위해 휘두르던 검의 정체였다. 유현은 그 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본래 여관 주인장에게 부러진 상태로 받았지만 불가해의 영역에서 마소를 흡수함으로서 되살릴 수 있었던 마검이었다.
그리고 그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와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생각해 보니 악몽이 시작될 때 울리던 그 불쾌한 목소리도 마검을 잡았을 때 들었던 그 목소리와 비슷했던 거 같다.
여러 정보들이 정리되며 사고가 여기까지 이어지자 유현은 곧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마검을 찾았다. 보관은 신중히 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도록.
혹시라도 일행 중 누군가가 이 검을 붙잡게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모른다. 그런 사고는 막아야 한다. 한번 진행된 정신 오염은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비록 사제인 이서연이 있지만 그녀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유현은 오래 걸리지 않아 천과 쇠사슬로 꽁꽁 감아 놓은 마검을 찾을 수 있었다.
본래 탐사를 나갈 때 빼고는 풀어놓을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쇠사슬과 천을 풀어 마검을 확인한다.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맞아.”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반쯤 확신하고 있었지만 악몽에서 보았던 건 이 마검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얼굴도 모를 남자가 그 검을 들고 마수를 잡고 있던 거지.
불쾌하다. 가슴 한 쪽으로 흐르는 불쾌함에 유현은 마검에 손을 뻗었다. 마검의 차가움이 손끝을 타고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넝실거리는 마력이 마검에 주입된다.
반응은 없다.
무언가 이야기 좀 해보라고 말을 걸어보지만 마검은 대답이 없었다. 이 녀석을 깨우려면 역시 그곳에 가야하는 건가. 머리 한 편으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악몽의 내용에 유현은 작게 혀를 차고는 다시 마검을 봉인 했다. 한 동안 쓸 일이 없는 놈이다.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게 하는 놈이군.”
어쩌면 정말로 단순한 악몽이었을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여관 주인장과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이야기를 나누며 마검의 주인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런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너무 막연한 생각인가.
아무리 고민해 봤자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에 유현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일단 이 녀석 좀 깨워볼까.”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유현은 늘어지게 자고 있는 남궁민을 잠시 쳐다보고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아침 바람이 안면에 돌진해 왔다.
다행히 기온은 산뜻하다. 몸을 움직이기에 적당한 공기가 주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애들을 굴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1분이 지났을 때. 남궁민이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