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5
끔찍한 참상을 발견한 직후였지만 나는 움츠러들 것 없이 신속히 움직였다. 적어도 오늘 안에 두 번째 호수까지는 도달할 생각이었다.
물론 굳이 호수를 찾지 않더라도 목적지를 찾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몇 번 길을 헛돌아야 하는 경우를 겪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우리가 마실 물의 확보가 첫 번째 일이었다.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도 답이겠지만 비효율적이다.
고블린들에게서 회수한 물은 소량이었는지라 빠르게 한계를 맞이했다. 가는 도중 남궁민이 물통을 흔들며 미간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물통이 빈 듯하다.
“···이렇게 막 움직여도 되요?”
하지만 방금 전 참상을 보고도 거침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내가 불안한 건지 뒤에서 길유미가 물었다.
불안한 기색이 감도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 뜸들이고는 대답해주었다.
“어차피 우리가 뭘 해도 바뀌는 건 없을 테니까. 차라리 빠르게 움직이는 게 덜 위험한 수단일지도 몰라. 그러면···”
“···그러면?”
나는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숨겼다. 그러자 길유미가 의아한 듯 따라 붙어 오지만 대답을 해주진 않았다. 이걸 말하면 그렇게 좋은 눈초리를 받진 않을 것이다.
굳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새겨 줄 필요는 없겠지.
짐승 녀석은 어떻게 되든 계속해서 플레이어를 공격할 것이다. 그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 애초에 그런 존재이다.
포식을 위해서든 모함가로서의 활동을 위해서든 녀석은 사냥을 계속할 것이다.
게다가 내가 예측한 종족이 맞는다면 녀석의 특성상 우리가 주위에 대한 경계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쓸데없는 발버둥에 불과하다. 녀석의 접근은 예상하기 어렵다.
사람이 아무리 갈고 닦아도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는데,
그게 바로 맹수만이 가진 은밀한 기동성이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주어진 사냥을 위해 발달한 기관과 움직임은 훈련 따위로 쉽게 따라할 수 없다.
태생적인 한계라는 것이다. 고블린들 또한 숲 속에서는 날렵한 존재지만 그렇다고 그 조그만 난쟁이들이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닐 것이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훈련을 했고, 그 결과 그것이 가능해졌을 뿐이다. 훈련 받지 못한 고블린들은 인간들과 다를 것 없다. 아무것도 하도 못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고블린들을 상대할 수 있던 거겠지. 훈련 되지 않은 고블린들. 튜토리얼을 위해 조성된 고블린 모험가들은 우스울 정도로 약했다.
목숨을 건 싸움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이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우리가 비록 여러 번 고블린과 싸웠지만 누군가 그것으로 아이들이 충분히 강해졌다고 물어보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잘못하면 한 순간 누군가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나 또한 괜한 위험을 겪고 싶진 않고.
그러면 차라리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우리가 먼저 앞서 움직여, 녀석이 뒤에서 오고 있을 다른 플레이어들을 잡게 하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플레이어들을 미끼로 이용하자는 거다.
이게 제일 안전하고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다른 아이들에게 좋게 들릴 리가 없다. 그걸 알기에 길유미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미끼로 하여 살겠다는 추악한 생각은 아직 제대로 된 현실을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있어 큰 충격을 줄 것이다. 차라리 말을 숨기는 게 제일 좋다.
내가 길유미에게 하지 않은 말엔 그렇게 대단한 내용은 없었다.
‘···우리가 빠르게 움직이면 다른 플레이어들을 미끼로 위험 없이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걸 생각 없이 말하는 순간 그녀가 어떤 시선을 할지 뻔한 일이다.
혐오스러운 시선을 할까. 아니면 무서워할까.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라고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가진 건 아니었다.
만약 나에게 힘이 있고 녀석을 추적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녀석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을 지도 모른다.
굳이 등 뒤로 위험한 놈을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진 방법이 없다.
죽일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녀석은 죽을 거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민도 없이 도망을 칠 것이다. 도망을 작정하면 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녀석의 속도를 내가 따라 잡아 움직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고블린처럼 약한 종족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가진 능력은 3개뿐이었고 추적에 도움이 될 법한 능력은 없었다.
생존본능F 전투속행F 상황분석F
이 중에서 생존본능은 살기 위한 감각을 활성화 시켜주는 능력이었고 전투속행은 부상을 당한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역시 녀석을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그럼 남은 것은 하나뿐인데 아쉽게도 남은 한개는 전투 능력과 관계가 없었다. 그나마 좀 더 성장 시키다 보면 나중에는 전투 상황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지금 랭크에서는 큰 의미가 없을 거다.
상황분석은 주변의 함정이나 환경의 변화를 눈치 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술이다.
지금처럼.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셨습니다.] [확인 결과 ‘토끼’로 확인 됩니다.] [짐승의 발자국을 발견하셨습니다.] [확인 결과 ‘사슴’으로 확인 됩니다.]아직 랭크가 낮기에 눈에 그다지 유용한 정보들은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발견한 함정들이 어떤 구조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지만 마법 장치가 들어간 특수 함정이라면 의미 없겠지. 그건 마법사 클래스가 있어야 한다.
‘거의 다 왔네.’
나는 속속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짐승의 흔적들에 슬슬 호수 가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나 다름없다. 살기 위해선 물이 필요했고, 그러니 짐승들도 호수 가에 많이 몰려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짐승들과 우리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어쨌든 우리도 물이 필요했고, 제대로 된 위치를 잡는 필요성은 둘째 치고 물주머니에 물을 채워야만 했다.
안 그래도 이미 아이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모든 물을 소모한 상태였다. 회귀 전 때와 비교해도 유난히 많이 싸운 느낌이 있기에 그에 따른 체력 소모가 컸다.
“···호수네요.”
도착하자마자 송가연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지친 듯이 닦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아이들은 호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 간 상태였다. 가서 곧 바로 핏물과 땀을 씻어내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은 씻고 나서 확보해도 늦지 않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아이들과 달리 송가연이 뒤에서 조용히 주시하고 있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가서 씻는 게 어때. 안 그래도 어젯밤 손에 묻은 피 때문에 찝찝했을 텐데. 그 시체 직접 손으로 만졌잖아.”
“···알고 있었나요?”
내 말에 송가연은 가늘게 몸을 떨고는 고개를 천천히 당겨 올렸다. 예상치 못한 내 말에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내 눈을 바라보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뜸들이고는 그녀는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사람 시체인줄도 몰랐어요. 시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각조각 나 있었고, 눈에 들어온 조각 난 시체의 크기가 작았으니까. 동물의 시체인 줄 알았죠. 그나마 피 냄새가 있었기에 주변에 시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나무 냄새들 속에서도 코를 찌르는 냄새가 강했으니까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겠지. 그래도 시체가 있음을 알았음에도 그걸 굳이 확인 해본 그녀의 담에 내심 놀라울 정도다. 대부분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도망쳐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잠시 어젯밤 일을 회상하듯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한 그녀는 조심스레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 아직 오빠랑 애들한텐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이거 다른 애들한테 비밀로 해주실 수 있나요?”
“비밀?”
송가연은 말하기 꺼리는 듯한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사실 주변에 학생들 시체 말고 다른 시체가 더 있었어요. 조금 오래된 시체였는데…”
“오래 된 시체?”
“예. 살점은 전부 사라지고 뼈만 남은 시체요. 아마, 경찰이었던 거 같아요. 경찰 복장을 하고 있었거든요. 언제 죽은 건지 모르지만, 거기서 이걸 발견했어요.”
“그건…?”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동시에 그녀가 품속에서 생각지 못한 걸 꺼내 보였다. 오랜만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건. 그녀에게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아마 웃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