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56
“한 가지 제안이 있다. 이걸 수락할지 말지는 네 여동생의 몫이겠지.”
낮게 깔린 중저음으로 유현이 말했다. 말을 하면서 둘의 얼굴을 응시한다.
랑샤오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고, 랑샤셴은 천천히 고개만 든 채 하염없이 유현을 응시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제안…? 그게 뭐지?”
랑샤오가 힘을 내서 묻자 유현은 담담히 말했다.
“랑샤셴이 우리 파티에 오는 것.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할 때까지.”
“…너의 파티에? 어떻게 하려고?”
“글쎄. 그건 내 마음대로겠지. 파티의 장은 나니까. 싫으면 거절해도 좋아.”
거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랑샤오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거절하면 그 자리에서 유현은 여동생을 베어버릴 것이다.
“결국 네가 원하는 건 여동생의 미래시인가?”
랑샤오의 물음에 유현은 숨길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능력이 쓸만한 건 분명하니까. 비록 그걸 완전히 믿어서는 안 되겠지만.”
“…파티원으로서 최소한의 보장은 해주는 거겠지?”
“너의 여동생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차가운 유현의 말에 랑샤오는 조심스레 여동생을 살펴봤다.
고민이라도 하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대답이 없는 그녀에게 랑샤오가 말을 걸려고 할 때였다.
그녀가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온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겨우 그걸로 되는 겁니까? 저의 능력은 불안정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가치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원해도 정작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을 테니까요. 그래도 괜찮습니까?”
랑샤셴은 유현의 제안을 듣고서 이것이 진정으로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본 미래가 무엇이든 애초에 그를 죽이려고 한 건 무모했다.
차라리 파티원으로서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랑샤셴의 말에 유현은 피식 웃었다.
“상관없어. 대신 너는 미래시로 본 광경을 나한테 숨기지 않으면 되는 거야.”
애초에 자기가 원할 때 미래시를 사용한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C등급의 능력으로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기대 한 적도 없었고.
“…숨기지 않을 겁니다.”
유현은 말했다. 자신이 본 광경은 미래에 일어날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라고.
하지만 만약 자신이 보았던 것이 현실로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거기서 그녀는 생각했다.
유현이 그런 미래를 만들지 않도록 그의 옆에서 말려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의 파티원으로서 조언을 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거짓된 순종은 더욱 참혹한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어.’
그녀는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던 유현의 살기가 풀리고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럼에도 무모한 도전을 한 건 그만큼 생각이 짧았다는 증거겠지.
*
돌아가는 길은 상당히 조용했다.
랑샤오와 랑샤셴은 무거운 침묵을 유지한 채 유현의 뒤를 따랐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무방비해 보이는 유현의 등을 응시하며 랑샤오는 생각했다.
여동생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신 유능한 파티원을 잃게 되었지만.
말없이 유현의 뒤를 따르는 도중이었다.
“유현.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랑샤셴이 침묵을 찢고 질문을 했다. 어느새 그녀는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상처투성이 얼굴이지만 처연했던 얼굴을 다소 사라져 있었다.
유현은 랑샤셴의 물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검은 정체가 뭐죠?”
“…검?”
유현은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검을 살폈다. 현재 유현이 소지하고 있는 검은 두 자루였다.
그 중에서 랑샤셴이 가리킨 건 마검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이 마검을 가리킨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의문에 유현이 물었다.
“이 검에 뭔가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러자 랑샤셴은 복잡한 얼굴을 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봤던 미래에서 그 검을 본 거 같아요.”
“흐음.”
그녀의 말에 유현은 마검을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갑작스러운 유현의 행동에 랑샤오가 퍼뜩 놀란 얼굴로 여동생을 뒤로 물렸지만 유현의 표정을 풀고는 긴장을 풀었다.
살기가 없다.
랑샤셴은 랑샤오를 옆으로 밀어낸 채 유현의 마검을 바라봤다.
한 동안 마검을 자세히 살펴보던 랑샤셴은 표정을 흐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군요. 분명 닮은 것 같지만 달라요. 제가 본 건 이게 아니에요. 비슷하지만 형태가 분명 달랐죠.”
“다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네가 본 건 분명 이게 맞을 거야.”
유현이 마검을 깨웠을 때 마검은 스스로 성장했다.
그녀가 본 건 미래이니 그 때의 마검은 더욱 성장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녀가 이상하게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게 무슨 소리죠?”
“외부인이 있는 중에 말하는 건 조금 꺼려지는데.”
말을 하면서 유현은 옆에 있는 랑샤오를 응시했다.
유현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랑샤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외부인은 맞지만.. 그런데 내 여동생은 괜찮은 거야?”
“지금은 내 파티원일텐데? 아무리 네 여동생이라도 다른 파티에게 정보를 흘리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만약 그럴 경우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유현의 말에 랑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랑샤셴도 유현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고지식한 그녀니 유현의 말을 따르겠지.
아무리 랑샤오가 물어도 랑샤셴은 이야기 해주지 않을 거다.
어쩐지 그 점이 쓸쓸하게 느껴졌지만 만약 그게 유현의 파티원으로서 받아들어지기 위한 조건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느꼈다. 이왕 파티원이 된 거면 제대로 녹아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차라리 나 먼저 가볼게. 아직 라비락 토벌이 안 끝났을 테니까.”
파티장이 없어도 알아서 잘 움직이고 있을 녀석들이지만 랑샤오는 그런 말과 함께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다.
랑샤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유현은 마검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랑샤셴을 쳐다봤다. 랑샤오가 사라진 것도 모른 채 그녀는 마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검은 성장하는 검이다. 먹이를 먹을수록 점점 형태가 바뀌지.”
먹이는 마소다. 실제로 유현은 마소를 흡수하고서 부러진 날을 회복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현은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현의 말에 랑샤셴은 감탄했다. 특별한 검이라는 건 잘 알았다.
“…성장하는 검. 엄청난 검이군요. 하지만 정작 왜 쓰지 않는 거죠? 라비락을 벨 때 당신은 그 검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좋은 검을 쓰는 게 좋지 않은 가요?”
“라비락 녀석들을 상대할 때 쓸 검은 아니라서 말이야. 이 검을 사용하게 될 때는 특별한 놈들을 상대할 때뿐이야.”
“특별한 놈들이라고 하면?”
“마수. 흔히 그렇게 불리는 괴물들이지. 미궁의 몬스터와는 많이 다른 놈들이야.”
“마수…? 그게 뭐죠?”
모를 수밖에 없는 건가. 훈련소에서도 잘 다루는 내용은 아니었다. 단지 불가해의 영역에 들어가지 말라고 가르칠 뿐. 교관들도 불가해의 영역은 잘 모를 것이다.
“미궁에 그런 것들이 있다는 것만 알아둬. 어차피 직접 볼 일은 없을 테니까.”
유현이 비록 불가해의 영역에 관심이 있다지만 파티원들까지 이끌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마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유현의 태도에 랑샤셴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이 그렇게 말한다면 굳이 자세히 묻지는 않을 게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당신은 그 검을 마수를 상대할 때만 쓴다고 하셨죠?”
“그렇지.”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랑샤셴은 더욱 알 수 없다는 것처럼 표정을 흐렸다. 뭔가 방향을 잃은 듯한 그녀의 얼굴에 유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건 뭔가 이상해요. 정말로 마수만 상대할 때 쓰는 검이 맞는 건가요?”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유현이 눈썹을 찌푸림에도 랑샤센은 흔들림 없이 의연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굳이 당신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죠. 하지만 제가 이렇게 몇 번이나 묻고 있는 건 미래에서 본 당신의 모습 때문이에요.”
“내 모습?”
“제가 한 번 말했죠. 당신이 시체가 널려 있는 로렐라이를 무표정한 얼굴로 걷고 있었다고.”
잘 기억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던가.
“…제가 본 광경에서 당신은 그 검을 들고 있었어요. 그리고는 시체가 쌓여 있는 바닥을 천천히 지나쳐 움직이고 있었죠. 거기서 당신은 어째서 그 검을 쓰고 있던 걸까요. 더욱이 로렐라이에서 말이죠. 마수가 로렐라이를 공격하기라도 했던 건가요?”
“………..”
랑샤셴의 침착한 이야기에 유현은 심각한 표정을 했다.
그녀가 보는 미래는 불안정하다.
작은 변화에도 그녀가 본 미래는 의미가 없어질 수 있으니까. 그녀가 수초후의 미래를 엿보고도 유현을 활로 맞출 수 없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가 쏜 화살을 피하기 위해 그 순간 유현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수십 가지였다. 그녀가 본 미래는 그런 수십가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틀릴 수밖에.
하지만 그런 걸 감안해도 그녀의 이야기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내가 로렐라이에서 이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손에 쥔 마검을 내려다본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라고 생각하던 직후였다.
우우우우웅-.
갑자기 마검이 울기 시작했다. 손아귀를 타고 느껴지는 마검의 울부짖음에 유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랑샤셴을 쳐다봤다. 랑샤셴도 어딘가 긴장한 듯 말이 없다.
이 마검이 반응할 때는 마수와 관련된 무언가 밖에 없을 것이다.
마수를 죽여라-. 안식처에서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한 동안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던 유현이 작게 혀를 찼다.
“네가 봤던 미래 생각 보다 빨리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그, 그런.”
랑샤셴이 자신이 본 광경을 떠올리며 새파랗게 지린 얼굴을 하는 사이 유현은 어느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 유현의 등을 보며 랑샤셴이 물었다.
“뭘 할 생각입니까?”
“로렐라이에 가봐야겠지. 너는 가서 랑샤오에게 전해. 토벌이 끝나는 즉시 곧 바로 플레이어들을 로렐라이에 귀환하게 만들라고. 6명의 대장들 중 하나니까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멀어지는 유현의 등을 보며 랑샤셴은 어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