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179
유현은 뒤에서 류트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굳이 유현이 나서지 않아도 고블린들은 알고 있는 걸 전부 토해낼 정도로 고분고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녀석들이 긴장의 끈을 놓게 하고 싶지는 않은지 류트는 단검을 고블린들의 목밑에 들이 내밀고는 물었다.
“첫 질문은 간단하게 가죠. 먼저 이름이 뭡니까?”
고블린은 자신의 목젖에 닿아있는 날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키..키릭 체, 체파다! 내 이름은 체파다!!”
류트의 물음에 고블린은 쓸데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류트의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더욱 가늘게 휘어졌다. 고블린은 그런 류트를 보며 더욱 몸을 떨었다.
“그럼 체파 씨. 제가 묻는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류트는 존댓말을 놓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섬뜩한지 고블린은 죽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류트의 뒤에서는 일행들이 류트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첫 번째로 무엇을 물어볼까, 잠시 고민하던 류트는 가벼운 것부터 가기로 했다.
“여러분들은 어느 도시에서 오셨습니까?”
미궁 위에 올라서 있는 도시는 무척 많다.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며 도시마다 가지고 있는 특유의 특성들도 다양했다.
상대가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정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류트의 질문은 별 거 없는 것 같아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었다.
류트의 질문에 체파는 주위의 눈치를 보듯 동료를 힐끗 살피고는 조심스레 답했다.
“헤이라.. 우리는 헤이라에서 왔다.”
“헤이라. 흐음.. 그렇습니까? 거기라면 고블린 도시라고 불리는 곳이 맞죠?”
“그..그렇다!”
로렐라이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류트는 눈앞에 있는 고블린이 어디서 왔을지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일행에게 닿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말했다.
일행은 미궁 도시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류트는 알고 있었다.
헤이라는 구성원 대다수가 고블린이었다. 헤이라의 모험가 길드를 책임지고 있는 것도 당연히 고블린.
헤이라에서 실력을 쌓은 이들은 헤이라에 머물기보다는 다른 도시로 떠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일까. 헤이라는 언제나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도시였다. 게다가 활동하는 모험가들도 대다수가 고블린들 뿐이니 미궁 개척 능력도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이 떨어졌다.
그건 즉.
미궁 도시로서는 그다지 위협적인 곳이 아니라는 뜻.
그런면에서 로렐라이는 위치를 잘 잡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예상치 못하게 모험가들이 아닌 몬스터에게 크게 당했다. 모험가들을 걱정하던 아이리스의 생각은 의미가 없던 것이다.
그 사실에 류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질문을 계속했다.
“굳이 이 구역의 미궁까지 온 이유가 있습니까? 이쪽 구역과 제일 가까운 도시가 헤이라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떨어진 거리가 있을 텐데요?”
“모..모험가가 미궁을 돌아다니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아니요.”
체파의 말에 류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험가들은 자유로운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골치 아픈 놈들.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 있는 고블린들은 조금 예외였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든 자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들 수준의 모험가들이 아무 이유 없이 미궁 안에 들어오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무언가 의뢰 같은 게 있던 게 아닙니까?”
수준 낮은 모험가들에게 미궁은 언제나 큰 위험 덩어리였다. 모험가들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하지만 그런 낭만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어야 했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밥 벌어 먹고 사는 모험가들이 그런 낭만을 가지고 미궁을 탐사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그들이 미궁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그 만한 수익이 있을 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체파도 류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는 그 모욕감에 목 밑까지 복숭아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혈액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멍청한 고블린도 그 의미를 모를 수가 없다.
-여러분들의 수준.
그 모욕을 참고 있어야 하는 한심한 자신의 현실에 괴로워하며 체파는 대답했다.
“…키릭.. 그래.. 네 말대로 의뢰 같은 게 있었다.”
“호오. 의뢰 말입니까? 무슨 내용입니까?”
체파가 쉽게 인정을 하자 류트의 사늘한 벽안에 이채가 돌았다. 눈앞에 있는 고블린은 말이 쉽게 통하는 상대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블린의 얼굴을 응시한다.
“아이언 호른을 추적해 달라는 의뢰였다. 할 수 있다면 사냥해서 녀석들의 뿔과 가죽을 가져오라는 거였지. 위치만 가져와도 돈을 준다고 했다. 몇 명이 의뢰를 수행하든 상관없이 가져온 결과에 맞는 돈을 지불한다고..”
“아이언 호른 말입니까..? 흐음.”
무언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처럼 류트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지금 녀석의 말은 다른 모험가들도 아이언 호른을 쫓아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아이언 호른은 돈이 된다. 그러니 당연히 모험가들도 따라 오는 건가.
아이언 호른의 무리가 향한 곳은 로렐라이가 있는 쪽이었다. 아이언 호른들이 남기고간 발자국만 쭉 따라가도 로렐라이의 근방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류트에게는 내심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별로 좋지 않군요.’
류트는 단순히 찡그렸을 뿐이지만 상대에게는 아니었다. 자신의 목 밑에 날이 선 상태에서 상대가 얼굴을 찡그리면 놀랄 수밖에 없다.
그걸 보며 체파는 오해한 듯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사..사실이다! 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키릭!”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떨지 마세요. 체파 씨… 저는 당신의 말을 믿는다고요?”
이제는 귀엽게 느껴지는 체파의 반응에 류트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실제로 류트가 가진 정안[正眼]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건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뜻. 눈앞에 있는 고블린이 류트의 능력 앞에서 거짓말을 숨길 수 있는 수준의 모험가는 아니니 믿을만한 정보였다.
류트의 말에 체파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모욕감에 떨고 있어도 살고 싶다는 본능이 더 앞서는 듯 싶다. 그런 상대일수록 류트에게는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다.
아이언 호른을 몇 번이나 입안에서 소리 없이 굴리고 있던 류트는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아, 그런데 아이언 호른을 추적해 달라고 한 건 누구입니까? 아이언 호른이야 돈이 되니 모험가들이 많이 사냥을 하는 녀석들 중 하난데 말입니다. 굳이 의뢰를 할 정도면 꽤나 아이언 호른의 뿔과 가죽이 많이 필요한 듯 싶습니다만?”
아이언 호른은 사냥하기 까다롭다. 유현의 일행이 겪은 것처럼 한 번에 거대한 무리를 이끌며 달리기 시작할 경우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그런 고생을 감안해도 녀석들의 뿔과 가죽은 무기와 방어구를 만드는데 상당히 좋은 재료였기에 수요가 많은 물건이었다. 돈이 되니 모험가들도 많이 사냥하는 녀석들이다.
류트의 물음에 체파는 잠시 기억을 되새기듯 상념에 잠겼다.
누가 의뢰를 했는지까지는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모험가들에게 중요한 건 의뢰의 내용과 액수였다.
의뢰인에 대한 신뢰는 길드에서 알아서 보장해 준다.
모험가는 단지 의뢰를 수행해 길드에 그 결과물을 제출하면 될 뿐이었다.
몇 번이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결국 체파는 등줄기로 차가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키..키릭.. 나는.. 모..모르겠다..”
“그렇습니까?”
체파의 대답에 류트가 안타깝다듯이 표정을 흐렸다.
그리고서 수초도 안 되어 류트의 단검이 체파의 목에 틀어박혔다.
체파가 상황을 파악한 건 목덜미에서 격렬한 고통이 느껴지고 5초 정도가 지나서였다.
“커..커헉..! 나..난.. 저..정말로..!”
목덜미에 틀어박힌 단검을 빼내려고 몇 번이나 손을 허우적거리던 체파가 바닥에 쓰러진다. 류트는 발밑에 닿고 있는 체파의 피를 힐끗 쳐다보고는 옆에 있는 다른 고블린을 봤다.
그리고는 묻는다.
“혹시 여러분들도 모릅니까?”
“키..키릭!”
방금 전 자신이 한 행위에 아무런 느낌이 없는지 담담한 그 물음에 고블린들은 오싹해졌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목구멍 밖으로 소리가 새지가 않는다. 소리마저 지르지 못할 공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저 남자는 자신들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다. 없는 말도 당장이라도 지어내서 할 판이었다.
류트가 체파의 목에 박힌 단검을 느긋하게 빼내고 있을 때였다. 단검 날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이 주변에 생겨난 피웅덩이의 크기를 키우는데 한 몫 더하고 있다.
류트가 단검을 쥐자 남아있는 고블린 중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가 안다! 내가 알아! 드워프다! 분명 드워프가 의뢰주였다!”
“그렇습니까? 드워프라.. 흐음.”
드워프들은 손재주가 좋은 종족이었다.
그러니 모험가들에게 미궁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재료들을 부탁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언 호른 정도의 재료를 드워프가 모험가들에게 직접 의뢰를 할 정도인가?
류트는 모험가들에 대한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로베리아에서 원정군으로서 활동했으니 당연히 모험가들과 여러 번 싸워보기 까지 했다. 그 중에는 당연히 고블린 뿐만이 아닌 다른 여러 종족도 있었다.
오크, 엘프, 수인족.. 심지어 미노타우로스족과도 싸워봤다.
개인 정도라면 모험가들이 시장에 내다 파는 걸로도 충분히 재료를 구할 수 있을 텐데. 직접 의뢰를 할 경우 추가적인 금액을 더 내야하는 걸로 알고 있다.
아이런 호른의 뿔과 가죽은 좋은 재료지만 그렇다고 귀한 건 아니었다. 아이언 호른은 층계 깊숙한 곳에 있는 녀석들과 비교하자면 나름 흔히 보이는 놈들이었다.
…분명 그럴 텐데?
괜히 류트의 머릿속만 복잡해지던 그 때였다.
“이제 거기까지 하지. 지금 정도면 충분하니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유현이 류트에게 말했다.
유현은 지금까지 고블린들이 털어 놓은 이야기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다른 모험가들이 무엇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았으니 다른 이야기들 까지 굳이 상세하게 알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얻은 정보로 어떻게 움직일 지다.
류트는 뒤에서 들려온 유현의 말에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은 고블린 분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 물음에 유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뭘 묻는 거야. 당연히 전부 죽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