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32
“………!”
목소리의 주인은 상당히 반가운 사람이었다. 류트는 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류트는 은은한 눈웃음을 지으며 반가워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갑작스러운 목소리의 주인은 유현이었다.
얼마나 놀랬는지 알고는 있는 건지,
“너희들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런데 좀 더 주의하지 그랬어. 조금 실망인데.”
예상치 못하게 어딘가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유현은 바닥에 무언가를 내팽개쳤다. 유현이 바닥에 내던진 건 고블린이었다.
고블린을 바라보는 류트의 눈이 가늘게 변한다.
“이건….”
녀석은 심장이 꿰뚫려 이미 죽어 있었다.
아무래도 유현이 죽인 듯하다.
지금 유현이 말한 의미를 류트는 눈치 채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거 정말로 위험했군요.”
아마, 이 고블린은 일행이 모두 지쳐 잠에 드는 걸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아쉽게도 그런 생각은 유현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류트는 아직 쫓아오고 있던 고블린이 더 있었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위험했다. 그 오싹한 사실에 류트는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고블린의 시체를 한 동안 주시하던 류트가 유현을 바라본다.
유현은 전신은 피투성이였다. 당연스럽지만 그의 피로는 안 보인다. 아마 고블린들의 피겠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죽이면 저렇게 될지 의문이 들었지만.
유현의 몸 상태를 볼 때…
“…저희를 몰래 도와주시고 있었나 보군요.”
그렇게 밖에 유추가 되지 않았다. 밤새 이어진 추격에 고블린들이 지쳐 떨어진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 듯하다.
일행이 도망치는 사이 그 동안 고블린들은 유현에게 사냥당하고 있던 것이다.
모험가들은 지쳐 떨어진 게 아니다. 그저 유현의 손에 모두 죽었을 뿐.
도망치면서 그런 낌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에 유현의 등장은 더 놀라웠다.
“너희가 미끼가 되어준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각개격파 할 수 있었어. 자, 이거 받아.”
류트는 유현이 품속에서 포션을 하나 꺼내 던지자 휙, 받고는 곧 바로 입 안에 들이 부었다.
유현이 준 건 활력 포션이었다.
다만 맛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고블린들이 사용하는 포션이 아닐까 싶다. 출처가 어디든 효과만 있으면 되었기에 류트는 한 번에 전부 들이켰다.
“후…”
몸이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다. 다만 마력 탈진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힘이 풀린 다리에 활기가 돌아오는 걸 느끼며 류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잘도 저희를 찾았군요. 내심 영영 못 만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끔찍한 소리를. 밤 동안 고블린들이 그렇게 화려하게 쫓고 있는데 못 찾는 것도 이상하지.”
수십 번이나 쏘아 올려진 마법은 멀리서도 잘 보였다. 어둠을 쫓아내는 빛의 마법이 그렇게 지겹도록 반복되었는데 못 찾는 것도 이상했다.
마법을 쫓아 유현이 도착했을 때 이미 상황은 처참했다.
가는 길 도중에 살아 있는 몇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유현에게는 일행이 우선이었다. 지금쯤이면 그들은 죽었을까. 그것에 유현은 연민이나 미안함은 없었다.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도 결국 상대적인 것이었다. 유현은 그들의 목숨보다도 일행 한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했다.
“그것보다 크게 한 방 당한 거 같던데.”
류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꽤나 크게 한 번 대였지요.”
그다지 대단한 수단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다.
류트는 나직이 한숨을 쉬고는 그 광경을 떠올렸다. 숫자가 몇이나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엄청난 숫자가 갑자기 들이닥쳐 류트도 어떻게 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많은 모험가들은-.
“그런데 저희를 쫓고 있던 모든 고블린을 죽인 겁니까?”
“아아,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아마 그런 거 같아.”
“…………”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유현을 류트는 복잡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강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상상 이상이었다.
일행을 쫓던 고블린들 중에서는 마력 유저들도 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익스퍼트 클래스가 없었던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행을 쫓던 모험가들 중에 혹시라도 익스퍼트 클래스가 있었으면 아무리 류트라도 일행을 제대로 보호하기 힘들었다. 익스퍼트와 싸우면서 일행을 살필 여유까지 가지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뭐든 좋다.
유현이 등장에 모든 게 안심이 된 류트는,
“….저는 이제 좀 자겠습니다.”
의식이 멀어지는 걸 느끼는 동시에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 후로 기절하듯 쓰러졌던 일행이 일어난 것은 유현이 도착하고서 3시간 조금 지났을 때였다. 충분한 수면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안색이 좋아졌다.
“후후. 이제 오빠가 왔으니 우리는 무적이네.”
눈 밑에 검은 다크서클을 매단 채 길유미가 해맑게 웃었다. 웃고는 있지만 피곤에 찌든 얼굴 때문인지 그 모습이 어딘가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유현이 돌아오자 일행의 분위기는 긴장감이 풀려 있었다. 유현이 무사하다는 것과 이제는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 일행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안 좋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도 죽고 있겠지.”
그런 변화가 싫은 걸까. 의도된 것마냥 싸늘하기 짝이 없는 송가연의 이야기에 모두가 정신을 차린 듯 몸에 힘을 주었다.
갑자기 긴장감이 풀린 일행을 어떻게 조일까 고민하던 유현은 송가연에게 속으로 잘했다고 말하고는 현재 상황을 물었다.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좀 해주겠어?”
저번에 만났던 플레이어들보다 애들에게 직접 듣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그..그게. 음. 좀 일이 많았는데…”
“멍청아. 미궁에서 있었던 일부터 설명하면 되잖아.”
“뭐야. 그럼 네가 설명하던가. 어쨌든 미궁에서 있었던 일부터 말할게요.”
유현의 물음에 일행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저번에 만났던 플레이어들보다도 더 자세했다. 도망만 치던 그들과 달리 일행은 고블린들과 직접 싸워서 그런 걸까.
그래도 대충 핵심적인 이야기들은 같았다.
“….어쨌든, 엄청 쌨어요. 똑같은 고블린인데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강했다니까요. 미궁에서는 혼자서 플레이어 그룹을 박살냈다고 하니까…”
“그룹을 혼자 박살냈다라… 그럼 죽은 그룹의 리더는 누구지?”
“아,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에요. 오빠도 잘 모르는 사람일 걸요? 그러니까 이름이..”
거기서, 랑샤셴이 한참 기억을 헤매는 길유미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안드레센이라는 남자였습니다. 신중한 성격인 남자로 적어도 모험가들에게 함정에 빠져 당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안드레센… 흐음.”
들어본 이름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다지 인상에 남는 남자는 아니었다.
아마, 랑샤셴이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이쪽에 합류하기 전에 랑샤오랑 같이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옆에서 몇 번 안드레센이라는 남자를 봤던 거겠지.
“그 고블린은 보통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인 모험가들하고는 그 강함이 차원이 틀려요. 어째서 그런 모험가가 여기에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고요.”
이번에는 류트가 말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류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경험했던 모든 모험가들 중에서 강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류트의 말에 모두가 눈을 크게 뜨며 류트를 쳐다봤다.
이서연이 조심스레 지팡이를 끌어안고는 류트에게 묻는다.
“그렇다는 건 그 고블린은 유현 오빠보다 강한 가요?”
그녀의 물음에 류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누가 더 강하냐고 할 때, 그걸 판단할 재료가 아직 부족했다.
유현은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함이 어디까지인지 류트도 잘 예측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그 고블린도 똑같았다. 일방적으로 사람들을 학살한 강력한 힘을 지닌 모험가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많은 게 부족하다.
결국 그녀의 물음에 류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에 유현이 직접 말했다.
“나보다 강해. 그건 확실하다고 말 할 수 있어.”
“그…그런.”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말하자 이서연은 어딘가 믿기 어렵다는 것처럼 표정을 흐렸다. 유현은 내심 그녀의 믿음을 꺾은 게 미안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이서연 뿐만 아니라 모두가 믿기 어렵다는 것처럼 유현의 말에 숨을 삼켰다.
일행의 시선으로는 유현이 그 누구에도 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일행의 반응에 유현은 무심코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믿고 있어도 문제였다. 제대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믿음은 때로는 오히려 독이 되어 목숨을 위협하게 된다.
게다가, 상대는-.
미궁 도시의 모험가 길드를 책임지는 길드장 아닌가.
길드장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말해줘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동글게 원을 그리며 모여 있던 일행의 중심으로 푸른빛의 무언가가 날아 들어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푸른 나비였다.
“…..이건.”
누군가를 찾듯 주위를 맴돌던 나비는 이윽고 류트의 손가락 끝에 안착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유현도 류트의 손가락에 앉은 나비를 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하하하하. 정말…이지.”
류트는 놀란 얼굴을 하면서도 어딘가 웃고 있었다.
강한 모험가의 존재에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웃고 있자 그 모습은 미친놈처럼 보이기도 했다.
뒤늦게 일행의 시선을 눈치 챈 류트는 웃는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로베리아 원정군 병사로 활동할 때 서로 주고받던 사역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