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36
“…………이건.”
유현은 검 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자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방을 베지 못한 게 아니다. 유현의 마검은 분명 적을 베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마치 허공을 벤 것처럼.
무언가를 벨 때 느낄 수 있는 감촉이 검 끝에서 느껴지지 않는다.
눈과 손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눈은 상대를 벤 걸 보았지만, 손끝으로는 벤 걸 느낄 수가 없다.
유현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좋은 움직임이군.”
어깻죽지부터 시작해 허리부근까지 베여 가슴 전체가 검에 베인 고블린이 신음하나 흘리지 않은 채 웃는 목소리로 말한다. 유현은 칫, 하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흔들림 없는 자세로 다시 검이 휘둘러졌다.
푸른 섬광이 고블린을 몇 번이나 베어낸다.
수초 동안 휘둘러진 검격은 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블린은 신음 하나 없다. 피하려는 노력조차도 없었다.
거기서 유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공격을 그만두고서 유현은 약간 거리를 벌리고는 상대를 노려봤다.
천천히 녀석의 몸을 훑던 유현은 이상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게 너의 이능인가?”
녀석의 베인 몸에서 피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단지 검에 베인 상처에서 피를 대신해 검은 기운만 흘러나오고 있을 뿐.
검 끝에 아무런 감각이 없는 이유를 아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저건 근육과 뼈로 이루어진 생명체의 몸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으로 만들어진 가짜 몸이었다.
피를 흘리지도, 고통에 신음하지도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방금 전의 공격이 소용이 없던 건 아니라는 걸까.
이윽고 몸에 새겨진 상처를 버텨낼 수는 없는 건지 고블린의 몸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녀석의 몸은 실타래 풀리듯 서서히 바닥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싸움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말해오듯.
다시 다른 어둠속에서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새 상처가 회복된 건가?’
방금 전에 검에 베인 상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봤던 상태 그대로다.
그 사실에 유현은 놀랄 것 없이 차분히 녀석을 분석했다.
기척이 감지되지 않는 건 저런 이상한 몸뚱아리 때문인가.
방금 녀석이 새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어떤 기척도, 소리도 없었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녀석은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길게 숨을 내쉬던 유현은 다시 땅을 박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능력에 무작정 달려드는 꼴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단서가 부족하다. 녀석의 능력이 뭔지는 좀 더 상대해 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새로 모습을 드러낸 고블린은 유현의 검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다.
막아보려고 해도 짓뭉개듯 힘으로 밀어붙이자 그대로 몸이 두 동강이 난다.
검에 베인 몸뚱아리에서 흘러나오는 건 검은색 뿐. 한계 이상의 데미지가 수용되자 녀석의 몸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녹아내려 모습을 감추었다.
“………..”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신음 하나 내지 않고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유현은 작게 혀를 차고는 공격을 멈추었다.
쓸데없는 체력 낭비다. 녀석을 몇 번이나 베어도 상황은 변할 거 같지가 않다.
유현이 녀석을 관찰하듯, 녀석도 유현을 관찰하고 있었다.
뚜렷한 반항이 없는 건 녀석도 단순히 관찰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인가.
지금까지 주어진 단서로 녀석을 파악컨대, 한 가지 알 수 있는 게 있다.
이상할 정도로 육체 능력이 약하다는 것.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하지만 마스터 정도만 된다면 강화계를 상당한 수준으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일 터. 지금의 유현에게 무력하게 밀릴 정도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오히려 유현을 힘으로 이겨도 이상할 거 없다. 오버드 웨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전제하에 유현은 녀석과의 힘 싸움에서 밀릴 확률이 컸다.
그런데 유현은 지금까지 오버드 웨폰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도 녀석을 힘으로 압도했다.
그렇다고 녀석이 일부러 봐주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저건.’
녀석을 노려보던 유현의 눈빛이 차갑게 변한다.
유현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바닥에 그림자 같은 게 잔뜩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나무의 그림자 따위는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달을 확인한다.
두 개의 달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이 숲의 나무들 마다 그림자를 세우고 있지만, 유현이 발견한 바닥에 널려 있는 그림자들은 무언가 이상했다.
이상할 정도로 검었고, 형태가 있다.
그걸 보며 여러 생각을 짜깁기하며 이어나가던 유현은 어느 순간인가 감정이 착, 하고 깊게 가라앉았다.
저건 그림자들이 아니다. 고블린의 몸을 이루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운이었다.
단지 지금까지 그림자로 위장해 나무 그늘 밑에 숨어 있었을 뿐이지.
그걸 이제야 눈치 채다니. 자신의 둔함을 욕하며 유현은 고개를 들었다.
“….장난감으로 날 언제까지 상대할 생각이지? 날 상대할 거면 모두 나와야 할 텐데. 주변에 있는 그림자에서 모두 꺼내는 게 어때.”
유현의 말에 고블린은 씨익 웃었다.
“벌써 눈치 챈 건가?”
말과 동시에 주위에 변화가 일어났다.
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부풀어 오르더니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유현의 눈앞에 있는 고블린과 똑같은 모습을 만들었다.
차림새도, 무기도, 육체도, 모든 것이 똑같은 것들이 수십 개로 늘어난다.
‘많아. 숨어 있던 게 이렇게 많았던 건가.’
주위를 둘러보자 어느새 똑같이 생긴 고블린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갑자기 혼자였던 고블린이 수십 명으로 늘어나 유현을 쳐다본다.
흉흉하게 빛나는 수십 쌍의 시선에도 유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단지 지금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할 뿐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상처를 회복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소멸하는 즉시에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이것이 고블린의 능력인 듯하다.
정확히 말하면 마스터 클래스로서 얻은 이능이라고 해야 할까.
이 그림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방금 전에 모두 파악한 상태.
육체 능력은 이쪽이 압도한다. 숫자가 얼마나 많던 모두 베어버리면 그만.
유현은 발끝을 끌고는 바닥을 향해 검을 늘어뜨렸다.
“본체는 여기에 없는 건가.”
넓게 만들어 놓은 마력의 망에는 여전히 그 어느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수십 명의 고블린들도 여전히 기척은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저것들은 단순히 그림자 인형들이다.
질량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이 기척이 있을 리가 없다.
이능이라는 힘으로 이루어진 마력 덩어리.
저것들의 정체는 이랬기에 유현은 감지해 낼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다루는 방법에 따라 상당히 위협적인 능력이었다.
마법사가 치밀하게 결계를 짜서 주위에 펼쳐도, 그림자는 아무렇지 않게 침투해버린다.
실제로 류트의 결계는 길드장의 접근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건 즉-. 상대방을 암살하는 능력에 특화되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대치하는 상황이라면 조금 달라진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모두 그림자 인형들뿐이었다.
본체는 없다고 생각된다. 유현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다면-.
‘….이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림자들이 유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검은 파도처럼 몰려드는 그림자를 보며 유현은 물러섬 없이 검을 휘둘렀다.
선풍을 동반한 채 긴 호선을 그리는 검격이 다여섯의 그림자를 한꺼번에 베어낸다.
뻗어지는 검기는 주위에 있던 그림자들 까지 휩쓸어 소멸시켰다.
쏴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광풍이 몰아친다. 푸른빛을 동반한 광풍은 번쩍일 때마다 그림자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제대로 된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단지 상대를 압도하고 있을 뿐.
세 자리수가 되었을지 모를 그림자들이 끝내 한 자리수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무작정 달려들던 그림자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그 물러섬에는 역시나 소리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공기 중에 녹아들 듯 뒤로 스르르르 밀려나고 있었다.
잘 보면 발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빙판 길을 타듯 뒤로 미끄러지고 있을 뿐.
그러한 작은 특징마저 하나도 놓치지 않은 채 유현은 녀석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얼마나 물러났을까. 대략 15M 정도 되는 거리.
녀석은 그 정도면 적당하다고 느낀 건지 그 거리를 유지하며 유현를 쳐다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녀석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 검은 어디서 구한 거지?”
무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에, 질문을 이해하려는 사고가 늦는다.
“내가 굳이 그걸 너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유현의 말에 고블린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그러면 죽여서 빼앗아야 하겠군. 애초에 물을 필요도 없었어.”
죽어 준다고 한 적도 없는 그런 말을 제멋대로 내뱉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검에 관심을 보이는 걸까.
유현은 그게 궁금해졌다.
“이 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뭐지?”
마검을 들어 검 끝을 녀석에게 향한다. 달빛에 검 끝이 더욱 예리하게 빛나고 있다.
처음 여관 주인에게 마검을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검신을 뽐내고 있었다. 아마 마검을 웨블에게 보여주면 그 노인장도 감탄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거기서 고블린은 더욱 이상한 말을 꺼냈다.
“어째서라니? 한 때 모험가였던 입장 상 당연히 마왕의 유물에 관심이 안 갈수가 없지 않은가. 역시 그 검은 상당히 탐이 나는 군. 너의 강함은 거기서 나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