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25
거미들에게 조종당하는 인간들은 상당히 기분 나빴다. 움직임에 생기는 없고 마네킹 마냥 삐거덕 거리는 듯한 기괴한 움직임이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 나쁨이 있다.
“정신 차려!”
그렇지만 인간은 인간이다. 녀석들이 비록 거미들에게 영혼 없이 조종당하고 있는 인형들이었지만 가지고 있는 형태는 우리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일까. 아이들은 녀석들을 쉽게 죽이지 못하고 망설이는 경향이 있었다. 살인에 대한 감각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예상했던 일.
“으윽!”
달려드는 인형들을 베어내며 나는 급히 몸을 틀었다. 바로 옆에서 길유미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달려드는 인형들에게 어찌하지 못하며 낑낑 거리는 게 보였다.
“설마, 고통도 못 느끼는 거야!? 제발 좀 떨어져!”
분명 창으로 몸을 찔렀지만 인형들은 신음 한 번 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니 당황한 듯했다. 그녀의 창날이 인형의 가슴팍을 꿰뚫었지만 그걸로 숨을 끊기에는 부족했다.
길유미가 온 몸에 힘을 주며 인형의 가슴에 박아 넣은 창을 뽑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창날은 더욱 깊숙이 박혀 들었고, 밀고 들어오는 인형 탓에 의미 없는 발버둥이 되어버렸다.
비록 조종당하고 있는 존재들이지만 녀석들도 숨을 쉬고 심장이 뛴다. 목을 베어내거나, 심장에 검을 박아 넣는다면 녀석들의 움직임도 멈춘다는 소리.
하지만 그걸 실패하게 된다면 고통도 못 느끼는 녀석들이기에 공격한 입장이 곤혹스럽게 된다. 어쨌든 위급해 보이는 상황이기에 나는 급히 땅을 박찼다.
핏물이 마르지 않은 검을 매섭게 휘둘러 길유미에게 달라붙던 인형들의 목을 쳐냈다. 오랜 시간 동안 굶주린 듯한 인형들은 나뭇가지 마냥 메마른 몸둥아리를 가졌다.
아마, 그 탓일까. 살을 베는 듯한 느낌은 없이 딱딱한 뼈만을 쳐내는 느낌만이 검끝에서 느껴졌다. 이건 나로서도 꽤나 이질적인 감각인지라 표정을 찌푸린 채 인형의 목을 베어냈다.
허리를 비틀어 온 힘을 다한 일격은 인형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목이 잘려나가며 바닥에 그 머리가 떨어지자 피분수가 뿜어졌다. 그 틈에 목줄기로 새끼 거미가 튀어나와 도망치는 게 보인다.
“···쯧.”
나는 도망치던 거미의 몸통 위로 발을 내려찍었다. 푸드득, 기분 나쁜 감각이다. 갑각이 부서지고 듣기 싫은 비명이 귓가에 닿았다.
내가 거미를 밟아 죽이는 틈에 머리를 잃은 인형 몸통이 탁, 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를 스쳐 들으며 나는 길유미의 상태를 확인했다. 목줄기로 뿜어지는 핏물에 그녀의 얼굴에 피가 묻어 있다.
“······”
그녀는 그걸 손등으로 조심스레 훔치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복잡해 보인다.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다. 아직 사람을 죽이는 건 무리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달달 떨리는 손은 창을 겨우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게 신기해 보였다. 멍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나는 내버려 둔 채 다른 아이들을 살폈다.
나름 파티 안에서 강한 전투력을 가진 길유미가 이럴지언데 다른 이들은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특히 송가연이나 이서연의 경우 근접 전투는 그다지 강한 편이 아니었다.
‘다행이네.’
하지만 너무 걱정 한 듯 했다. 이서연이 인형과 대치하며 시간을 버는 동안 송가연이 이서연의 뒤에서 석궁을 장전하고는 인형의 머리통에 볼트를 쏘았다.
푸슉!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인형의 머리에 볼트가 박혀 든다. 이마에 정확히 명중한 인형이 힘없이 쓰러지는 걸 대치하던 이서연은 새파랗게 지린 얼굴로 쳐다봤다.
이서연이 시간을 버는 대신 송가연이 일격을 날리는 걸로 둘은 정한 듯했다. 하지만 인형의 얼굴에 볼트를 박아 넣은 걸로 싸움은 끝이 난 게 아니었는데, 진짜 본체는 인형을 조종하는 거미였으니까.
송가연은 그걸 잊지 않았는지 멍 때리는 이서연을 깨우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서연 정신 차려. 아직 죽은 게 아니야.”
“으, 응? 그게 무슨···.”
“이걸 조종하는 거미가 있을 테니까.”
그녀의 말대로 인형이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직 인형이 죽지 않았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 속에서 살과 내장을 꿰뚫고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히익!”
기괴한 장면이다. 핏물을 온몸에 묻히고 치솟는 그것에 이서연이 깜짝 놀란 듯 뒷걸음 쳤지만 송가연은 그대로 매섭게 다가가 단검을 내려찍었다. 그런 그녀의 거침없는 일격에 시체 속에서 튀어나오던 그것은 바깥 공기를 쐬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송가연이 단검을 들어 올리자, 그 칼날에 몸이 꿰뚫린 무언가가 같이 들어 올려졌다. 기다란 다리와 함께 기분 나쁜 붉은 눈동자를 쌍으로 가지고 있는 새끼 거미였다.
새끼 거미라고 하지만 몸집은 사람 얼굴만 했다.
“으으윽···.”
그걸 보며 이서연은 끝내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송가연도 기분 나빴는지 단검에 꿰인 거미 시체를 눈에 닿지 못할 곳에 내던지고는 고개를 돌렸다.
다행스럽게 싸움의 끝은 보이고 있었다.
“젠장, 죽어!”
남궁민이 이를 악물고 인형들의 머리를 박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도 마지막엔 눈을 질끈 감는 게 사람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장면을 두 눈에 담고 싶지는 않은 듯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아 매섭게 방망이를 휘둘러 인형의 머리를 박살내고는 도망치려고 살을 뚫고 튀어나오는 새끼 거미들을 처리 하는걸 그는 잊지 않았다.
특히 새끼 거미를 죽일 때면 남궁민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남궁민이 마지막 인형을 쓰러뜨리는 걸로 전투가 끝나자 나는 길유미에게 다가갔다. 그녀도 비록 잘 싸웠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 보였다.
차라리 인형들이 우리가 잘 모르는 이질적인 복장이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죽인 이들의 복장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특히 내가 그녀를 돕기 위해 베어냈던 조종당하던 인간은 젊은 여성이었기에 더욱 충격 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봤자 대학생 정도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몸통과 분리되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시체의 얼굴은 그만큼 젊었다.
머리 잃은 몸통은 살이 많이 드러나는 화사한 옷과 함께 허벅지를 드러내는 숏팬츠는 어딘가 놀러 가기 위한 복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녀를 망설임 없이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나는 말없이 길유미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껴안아주었다. 비록 여자 치고는 신장이 크던 그녀였지만 나 또한 작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쉽게 내 품속에 안기었다.
이윽고, 그녀가 소리 없이 울음을 터뜨리는 걸 확인하며 나는 고개를 당겼다. 주위로는 인간의 시체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무리 못해 10구가 넘는다.
그 중에 절반 넘게 내가 처리했지만 이번 싸움은 꽤나 충격적이었겠지. 분명 내가 이런 싸움을 하게 될 거라고 미리 주의는 했지만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탓인지 모두가 지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봤던 표정들 중에서 제일 피로감에 가득 차 보였다. 나는 길유미를 품속에 안아준 상태로 여기를 쳐다보고 있을 녀석을 찾았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둠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여러 쌍의 붉은 눈동자는 계속해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전투의 시작과 마지막을 계속해서 지켜본 것이다.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윽고, 녀석이 어둠에 스며들 듯 소리 없이 사라지는 걸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흘낏 쳐다보면서도 조금의 미동도 없던 녀석이다. 그건 역시 자신감일까.
어딘가 기분이 싸해지는 걸 느끼며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나는 절대로 사냥감이 될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몇 번 더 싸움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죽여야겠어.’
녀석이 가지고 있는 인형의 수는 몇이지. 아니면 다른 거미를 불러 올 것인가. 이대로 녀석을 두고 숲을 움직이기에는 거슬리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나는 반드시 녀석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모두들 쉬고 있어. 뭔가 일이 있으면 소리 치고.”
싸움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보고 휴식을 취하라고 말했다. 당연스럽지만 자리는 옮긴 후였다. 고블린들 시체 주위에서는 괜찮을지도 몰라도 아직 까진 인간의 시체를 옆에 둔 채 숨을 쉬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위치에 아이들을 놔둔 채 나는 전투를 치렀던 장소로 돌아와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확인해 볼 것들이 있다.
이미 확신에 가까운 예상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CBT 플레이어는 맞는 것 같네.”
시체들을 뒤지자 나름 소환된 시기들을 알 수 있는 증거들이 나왔다. 그 중에 하나가 고속버스 티켓이었는데 발행된 날짜를 보니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아무리 못해도 2년 전인가.
그 후로도 나온 건 신분증이 든 지갑이나 이제는 오래 되어버린 껌, 라이터 같은 잡다한 것들만 나왔다. 나는 그 중에서 라이터만 회수 한 채 몸을 일으켰다.
본래라면 그걸로 아이들에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조심스레 돌렸다. 발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사람의 것은 아니다. 인형이다.
나는 더 이상 녀석들을 사람이라고 칭하지 않기로 했다. 바닥에 발을 질질 끌고 움직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그걸 보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이들을 불러야 하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혼자서도 충분하다. 게다가 지금은 휴식을 취하게 두는 게 더 맞는 선택이다.
스르륵. 스르륵.
소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역시 거미는 우리를 좀 더 건드려보기로 결정한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당해줄 수는 없겠지.
다행히 아이들 쪽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는 없는 걸 보아 이쪽으로만 모여들고 있는 듯했다. 그럼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텐데.
점점 모여드는 인형들의 수를 세어보며 주위에 뻗어 있는 어둠들을 꿰뚫어 보듯 살펴봤다. 그리고 긴 시간 요구할 것 없이 빠르게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 녀석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고혹적으로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를 보며 나는 재미있다듯이 입술을 비틀었다.
“재미있네.”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나를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한 걸까. 녀석을 발견한 나는 고개를 당기며 시야에 넣고는 곧 바로 땅을 박찼다.
순식간에 인형들을 가로 질러 나는 녀석에게 달려 나갔다. 그에 당황한 듯 몸을 숨기려고 하는 거미였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거리는 10m 안팎.
녀석은 너무나도 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정도 거리면 녀석을 잡기에 충분하다.
귀찮은 것은 여기서 처리한다. 나를 막기 위해 달려드는 인형들을 순식간에 베어내고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녀석의 머리통에 순식간에 검을 박아 넣었다.
흥미롭게도 거미의 소리는 인간의 것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