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11
···방금 전까지 그런 이야기들을 줄줄이 흘려놨으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건가.
지난 1시간 동안 유현이 들은 랑샤오의 푸념은 클랜에 대한 이야기였다.
클랜을 만들게 되면 합법적으로 단체를 만들 수 있지만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다. 보고를 일반적인 원정대가 쓰는 것보다 자세하고, 숨기 없이 써야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제일 귀찮은 건 클랜이 자리 잡은 던전의 요정이 제시한 클랜 룰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랑샤오가 늘어놨던 푸념의 대부분이 카르나덴이 제시한 클랜 룰 때문이었다.
현재 카르나덴은 여러가지로 곤혹스러운 일을 겪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봉기를 일으키듯 쿠와로들이 날뛰고 있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투 인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까.
그 중에서도 플레이어들이 만든 클랜은 그 어떤 원정대들 보다도 충실하게 활동하는 중이었다. 그건 그들이 카르나덴을 지키고 싶다는 눈물 어린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이 룰이었기 때문이다.
클랜 결성을 허용 받는 대신 따라오는 제약.
클랜은 요정에 제시한 정책에 따를 필요가 있었다.
현재 요정이 제일 우선시 하는 건 쿠와로 토벌.
즉 지금까지 랑샤오가 하던 푸념들은 그런 정책들이 상당히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같이 쿠와로 토벌에 나서고 있으니 아무리 그라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레날드와 료코 두 사람도 랑샤오와 비슷한 상황인 듯했다. 덕분에 매일 같이 플레이어의 수준은 성장하고 있지만 사상자는 늘어나고 있다.
그런 것들을 말하며 한숨을 쉬던 그가 클랜을 만들라고 제안하는 건가?
단점들만 줄줄이 말하던 그가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이상했다.
무언가 그에 어울리는 이유가 있을 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왔다는 건 무슨 소리지?”
“아무래도 훈련소에 들어갔던 신규 플레이어들이 나오는 순간을 노려 대규모 플레이어 지원을 할 생각인 가봐. 그런 지원 중에서 핵심적인 일은 우리 클랜들이 맡게 될 예정이고.”
“···핵심적인 일?”
“훈련소에서 졸업하는 신규 플레이어의 육성을 우리한테 맡긴다고 하더군.”
과연···. 그래서 랑샤오가 그런 말을 한 거였나.
그렇지만 신경 쓰이는 점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만큼 신규 플레이어가 카르나덴에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여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직접 고생도 하고 있고.”
“음. 뭐 그렇지. 그래서 말했잖아. 카르나덴이 대규모 지원을 할 생각이라고.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신규 플레이어들에게 무기와 방어구는 물론 포션까지 전부 지원할 생각인가 봐. 그러면 몇몇 녀석들은 혹해서 오지 않겠어?”
“호오.”
그 정도까지 하는 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쿠와로들의 힘이 쌘 듯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다른 던전에서 원정대를 불러오는 것보다 싸게 먹힐 수도.
물품을 지급하고서 플레이어 육성은 플레이어가 만든 클랜에게 맡긴다.
제일 탈이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현재 2기 플레이어들이 거주민 원정대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역시 여러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거주민들이 플레이어를 이해하지 못하듯, 플레이어들도 거주민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살아온 세계가 달랐는데 갈등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신규 플레이어 육성은 단순히 귀찮은 일을 플레이어에게 떠맡기는 것 같아도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일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클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새길 수 있다.
명성과 힘이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재능을 가진 플레이어 물색도 한 층 편해진다. 게다가 요정이 지원까지 해주니 손해 보는 일도 없다. 인원이 많은 만큼이나 클랜은 유지하는데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유현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흥미로운 제안은 아니었다.
랑샤오의 말에 따라 클랜을 만들게 될 경우 카르나덴에서 수개월은 벗어나지 못한다. 활동 지역으로 정한 이상 카르나덴이 정한 기간만큼은 반드시 룰에 따라줘야 했다.
그 기간 동안은 쿠와로들과 미친듯이 싸우겠지.
미궁 탐사는 저 멀리 둔 채.
그건 그다지 좋은 미래가 아니었다. 에이리어의 몬스터와 싸우는 건 지난 2달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슬슬 미궁으로 나가볼 차례였다. 음침한 미궁의 공기가 그리울 정도다.
별로 유현의 반응이 좋지 않자 랑샤오는 쓰게 웃었다.
“···그다지 흥미는 없어 보이네. 뭐 그럴 거 같았지만.”
“딱히 명성이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힘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그래? 흠. 어쨌든 제안은 거절하는 거지?”
“응.”
랑샤오는 아쉬운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직접 이야기 하러 왔지만 그다지 그가 기대할 만한 대답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럼 너는 다른 던전으로 갈 거야?”
어디서 그런 단서를 얻은 걸까. 어쩌면 랑샤오가 가진 초감각과도 관련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는 감이 좋다.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로. 아니, 초능력이 맞다. 초감각은 그런 거니까.
“눈치가 좋네. 하지만 아직 결정한 건 아니고 생각중이야.”
“만약 결정되면 랑샤셴를 통해 정보 좀 전해 줘. 만약 떠날 경우 여동생 얼굴 정도는 보고 싶으니까. 그건 괜찮겠지?”
랑샤오가 허락을 구하듯 묻는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수 있는 광경이지만 그 만큼 그가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랑샤셴은 어떻게 보면 인질 같은 존재였다.
이제는 완전히 파티의 일원이 되었지만 랑샤셴과의 만남은 그다지 좋지 않다. 미래시가 발동된 눈으로 유현을 향해 활을 쏘던 그 때 일은 잊지 못한다. 물론 지금은 그 때와 달리 단아하고 조용한 여인이지만. 유현으로서도 이제는 쉽게 놔주기가 싫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둘게.”
“오케이. 어쨌든 내 동생 좀 잘 부탁한다고.”
어딘가 팔불출처럼 느껴지는 오빠의 얼굴로 그렇게 말한 랑샤오는 여관에서 나갔다. 더 이상 그의 발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유현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거야?”
갑자기 등뒤에서 물컹물컹한 감촉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페르시가 뒤에서 껴안았다. 목을 팔로 완전히 두른 채 귓가에 나긋나긋한 숨소리를 흘리며 묻자 유현은 담담이 대답했다.
“클랜을 만들어 볼 생각이 없냐고 묻더군.”
“···흐음. 클랜이라. 그런 거 만들면 꽤나 귀찮을 거야.”
아마 페르시는 속박되는 걸 싫어하겠지. 영령 예정자 주제에 요정의 허락도 없이 던전을 빠져나가던 걸 생각하면 그녀에게 클랜이란 집단은 귀찮게만 느껴질 것이다.
“후···.”
후우우···. 갑자기 페르시가 따스한 숨결을 귓가에 흘렸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달콤한 소리까지 내고 있으니 유현은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그녀에게 물었다.
“뭐하는 거야?”
“어때, 기분 좋지 않았어? 예전에 책에서 읽어 본 바로는 남자들이 꽤나 좋아한다고 하던데. 솔솔 바람을 불어주면 스위치가 켜진다고 했어.”
도대체 무슨 책을 읽은 걸까. 그리고 보면 그녀의 아공간에 책이 쌓여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덕분에 송가연이 눈을 반짝이며 페르시에게 온갖 공세를 가하지 않았는가.
냉철한 성격의 송가연이 책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걸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페르시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던전의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인 듯 싶다.
“스위치는 또 무슨 소리야.”
“스위치는 스위치지. 그냥 이러면 저번처럼 짐승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해봤어. 어쨌거나 뭔가 가슴 한쪽이 뜨거워지거나 그런 거 없어?”
···저번이라는 건 1주일 전을 말하는 건가.
그리고 보면 지금 유현이 앉아 있는 자리는 그 날 밤 일을 저지른 자리였다. 란슬렛이 깔끔하게 치워준 탓이 지금와서는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다. 하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
아무 생각 없이 앉고 있었는데 그걸 깨닫고 나니 왠지 불편해 졌다. 여기서 유현은 그녀를 몇 번이나 탐했고, 그녀는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그 강렬했던 기억은 뇌리에 선명하다.
눈을 감으면 그 때의 일이 조금의 흐릿함도 없이 재생이 될 정도로-.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리를 바꾸기에는 페르시가 깔깔 웃을 거 같아 참기로 했다. 유현은 자신의 목에 둘러져 있는 페르시의 팔을 천천히 풀어내고서는 말했다.
“그나저나 내가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되었어.”
유현은 페르시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류트의 선생님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마스터급 마법사 밑에서 배운다면 그 성장은 엄청날 터.
평상시에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류트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동의했다. 문제는 류트를 가르치게 될 페르시겠지. 일단 부탁을 수락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녀가 진심으로 가르쳤을까.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그다지 흥미는 없어 보였다. 유현이 부탁했을 때도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싫다면 유현도 어쩔 수 없다.
계약이라는 걸 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장난스럽게 하던 주인님 놀이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면 배우는 입장인 류트도 여러가지로 불편할 것이다.
페르시는 붉은빛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며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일단 결론적으로 말하면 재능은 뛰어나. 흔히 말하는 천재라는 부류겠지.”
“···호오. 천재라.”
확실히 류트의 마법 응용은 뛰어났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영창을 할 수 있는 마법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는 필요한 마법을 사용해 냈다.
그 모습만 떠올려도 그의 능력은 충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위기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특히 지능이 무척이나 좋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모른다고 하던 것도 조금만 가르쳐 보니까 알아서 깨우치고 있더라고. 다만 문제가 하나 있어.”
평가는 좋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좋았던 건 아닌가 보다.
페르시가 눈빛을 어둡게 가라앉히자 유현도 긴장이 되었다.
“마력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 지능도, 검사로서의 신체능력도 우월하지만 마력에 대한 재능이 너무나도 꽝이야.”
“흐음···.”
그리고 보면 확실히 류트는 화려한 마법을 쓰는 것보다도 단조롭고 공격력이 강한 마법만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마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버릇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등급이 높은 마법은 강력하지만 마력 소모가 심하다.
“그렇다고 해도 일행들 사이에서는 두 번째로 마력 보유량이 많지만.”
첫 번째는 유현. 그리고 두 번째는 류트라는 건가. 한 때 대마법사였던 페르시는 유현에게 마력 공급을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그 녀석 A 급 이상의 고위 마법은 쓰지 못할 거야. 마력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니까. 이해는 하고 있어도 영창이 수월하게 되지가 않겠지.”
“마력의 질이 문제라면. 확실히 나중에 발목이 잡히겠네.”
“네 말대로야. 분명 류트의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무서울 정도지만 언젠가 그가 가진 마력의 재능이 발목을 붙잡겠지. 명확하게 한계가 보인다고 해야 할까.”
“성장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글쎄. 류트와 연결된 영령을 보니까 딱히 그럴 거 같지는 않던데. 류트, 그 녀석 엄청 이상해. 마법도 할 줄 알고, 검도 다루면서 정작 레인저 계열의 영령이랑 이어져 있다고.”
본래 류트의 역할이 척후병이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녀석이 스스로 자신을 소개할 때 척후병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흔히 잡캐라고 하는 건가.
“뭐, 어쨌든. 가르치는 재미는 있는 녀석이야. 그러니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볼 게.”
“······음. 그거 고마운 일이네.”
“그래, 고마워 하라고. 대마법사가 직접 가르치는 거니까.”
뚱했던 얼굴은 어디가고 페르시는 화사하게 웃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유현은 불길했다.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는 그녀의 눈이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새 그녀는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노력해 주는데 뭔가 상 정도는 줘야하지 않겠어···?”
“···상이라면 뭘?”
바싹 몸을 붙여오며 속삭이듯 말해오자 유현은 조금 몸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건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오버드 웨폰의 동력원. 남는 거 있지? 그것 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