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71
그 날 이후로 에리스는 유현의 일행과 거리를 벌렸다.
단지 멀리서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매일 같이 유현의 옆에 오려고 했던 걸 생각하면 확연한 변화였다.
그 때 들었던 랑샤셴의 이야기가 에리스를 바꾼 듯하다.
아니, 정확히는 겁을 먹게 한 거겠지. 그녀는 혼난 아이처럼 보였다.
그런 언니의 행동이 신경 쓰인 걸까.
지상에 거의 다 왔다고 할 수 있을 때 쯤 이리스가 찾아왔다.
유현은 에리스와 빼닮은 듯 하면서도 차가운 색을 지닌 이리스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렇게 그녀가 찾아온 이유는 하나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한테 화를 내러 온 건가?”
그 물음에 이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화를 낼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언니와 당신의 일이니까요. 게다가 언젠가는 제가 직접 나섰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미궁에 들어오고서 언니의 머릿속은 꽂밭이었으니까요.”
“그러면 어째서 나를 찾아온 거지?”
“저는 알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이 에리스 언니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순간 이리스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미약하지만 적의도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의 변화에 유현은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무언가 안 것일까.
“저희 언니는 여러 가지로 순수한 분입니다. 너무나도 떼를 타지 않아서 어린 아이 같죠.”
얼핏 들으면 그건 조롱하는 듯한 말투 같지만 그녀의 눈을 보면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리스의 눈동자에는 존경과 애정이 얽혀있었다.
“저는 그런 언니를 좋아합니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언니죠. 저는 그렇기에 당신이 아론에게서 언니를 구해주신 일은 무척이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몆 번을 감사해도 부족하겠죠. 하지만···.”
···이리스는 말끝을 흐렸다.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이것만 보면 누가 언니인지 모르겠다.
“···언니를 이용하려고 하지는 말아주세요. 그냥 저희 자매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굳이 음흉하게 행동하지 않으셔도 저희는 당신을 도와드릴 수밖에 없는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음에는 언니가 아닌 저에게 말해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들통이 난 듯하다. 에리스를 이용해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한 일-.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이리스는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부탁합니다.“
***
지상으로 올라오는 일은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다. 미궁 도시의 병사라고 생각되는 이들이 몇 가지 검문을 했지만 에리스가 무언가 말하자 그들은 유현의 일행을 가볍게 통과시켰다.
“···여기가 지상이군요. 처음입니다.“
미궁에서 나와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데 류트가 중얼거렸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래봤자 에이리어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을 텐데.
하지만 그의 눈에는 무언가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류트는 웃고 있었다. 그것은 평소의 능청스러운 웃음이 아닌 순수한 웃음으로,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춰 그를 기다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는 돌상처럼 멈춰 있었다.
유현은 페르시를 쳐다봤다. 그녀는 류트와 달리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에리스가 마련해준 여관에 도착하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눈이었다.
“너는 신기하지 않은건가?”
“···응? 뭐가?”
나른한 목소리를 흘리며 페르시를 고개를 갸웃했다. 하품을 쩌억 벌린다.
···아무래도 지상에 올라온 소감 따위는 없는 듯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피곤한가 보네.”
“으음···. 뭐 그렇지. 계속해서 여동생의 일지를 읽고 있었으니까.”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페르시는 여동생의 일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자기 직전에도 계속 읽고 있을 정도였다. 유현은 페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야.“
“그냥. 요즘 고생하고 있구나 생각해서.”
“흐음. 그러면 나중에 포상이라도 주는 거야?”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매력적인 미소.
그런 그녀의 미소에 유현은 그녀의 볼을 꼬집는 걸로 호응해주었다.
“여관에 돌아가면 먼저 잠부터 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으니까. 안 그래도 서연이가 걱정하고 있더라. 몸도 약하면서 너무 무리하지 마.”
“음. 알겠어.”
페르시는 꼬집힌 볼을 살살 매만지며 약간 아쉽다듯이 표정을 흐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에리스가 준비해준 여관은 상당히 쾌적한 곳이었다. 사실 여관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여관이라 하면은 유현의 일행 말고도 다른 손님이 있어야 정상인데 여기엔 그런 게 없다.
때 마침 관리인으로 생각되는 늙은 여인이 있어 물어보니 에리니아 가문에서 따로 관리하는 건물 중 하나라고 했다. 혹시나 싶었는데 정말로 여관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건물 하나를 통째로 빌려주다니. 이쯤 되면 유현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너무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단순히 무사히 지상으로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어쨌든···. 이쪽으로서는 편한 일이었다. 유현은 곧 바로 짐을 풀게 했다.
페르시 같은 경우에는 곧 바로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잠에 들었다.
피곤했던 건 사실인 듯했다.
일행은 빠르게 1층으로 모였다. 어차피 짐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는 것들이었다. 대부분 필요한 것들은 페르시의 아공간에 보관하는 상태였다.
“그나저나 기껏 지상에 올라왔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류트가 테이블 위로 턱을 괴더니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막막해. 지금 여기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으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만약 무언가 도움이 된다면 페르시가 가지고 있는 연구일지다.
하지만 지금 페르시는 잠에 든 상태. 그녀를 깨우는 것도 뭐했다.
“그러면 일단 도시를 둘러보도록 하죠. 한 동안 있어야 할 텐데 대충 어떤 곳인지 알아야 할 필요도 있을 테니까요. 숫자는 2명씩 나누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의견을 꺼낸 건 송가연이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
유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가연은 제비뽑기라도 하려는 건지 기다랗게 짤린 종이다발을 꺼냈다.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걸까. 조금 그런 것에 의문이 갔지만.
“파트너는 제비뽑기로 하죠.
“음. 그렇게 할까.”
“뭐, 나쁘지 않군요.”
일행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했는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제비뽑기가 진행되는데 조합은 이렇게 짜여졌다.
[이유현:이서연]
[남궁민:길유미]
[랑샤셴:송가연]
[류트:천설호]
대충 파트너도 정해졌고 유현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이서연을 부르려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데 이서연은 멍하니 자기가 뽑은 종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뭐지.’
두 손에 꼬옥 쥐며 소중한 걸 바라보듯-.
유현은 한 동안 조용히 있다가 그녀를 불렀다.
“서연아. 가자.“
“네? 아, 네!”
멍하니 제비를 바라보던 이서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힐끔 송가연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는데 잘 들리지는 않는다.
···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걸까.
입구에서 기다리자 이서연은 빠르게 달려오고는 유현의 옆에 섰다.
”가요!”
미궁에서 방금 올라온 것 치고는 상당히 활기찬 목소리였다.
***
미궁도시의 분위기는 다른 던전의 대도시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차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인간이 아닌 이종족들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겠지.
처음에는 어디를 가볼까 고민했지만 이서연은 시장에 가보자고 말했다. 딱히 계획은 없었기에 유현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일 무난한 선택이기도 했다.
시장이 열린 곳에는 미궁 안에 있는 인간들의 시장과 똑같이 활기가 넘쳤고, 주위에서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으며 구매욕을 자극하는 멘트들이 여기저기서 돌아다닌다. 그 모습만 보면 인간이나 이종족은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엽네요.“
문득 이서연이 중얼거렸다.
흔잡한 길거리이기에 그녀는 유현의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궁 도시에서 길을 잃으면 곤란하다. 움직일 때마다 길거리의 주민들과 몸이 부딪쳤기에 손도 연결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던 그녀지만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유현의 손을 꼬옥 쥐고 있었다. 유현은 부드러우면서도 따스한 이서연의 체온을 손에서 느낄 수 있었다.
“一一一一“
그녀는 뭘 보면서 말한 걸까.
유현은 이서연이 바라보고 있는 걸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자 어린 애들이 보였다. 당연스럽지만 인간의 아이는 아니다.
‘수인족 꼬마들인가.’
그것은 수인족들이었는데 나이는 대략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이서연이 귀엽다고 말한 건 아마 저 꼬마들이겠지.
이서연은 그 꼬마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걸음도 느릿하게 변해 있어 유현은 아예 걸음을 멈추었다. 이서연은 어딘가 풀린 표정으로 꼬마들을 구경했다.
수인족 꼬마들은 골목길 같은 곳에서 공 같은 걸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어딜 가든 저런 건 비슷한 듯했다. 능숙하게 공을 올리는 모습은 유현이 보기에도 꽤나 대단했다.
수인족이라서 그런가. 탁월한 신체 능력 덕에 온갖 기술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오빠. 저 아이들 대단하지 않아요?”
그걸 보고서 이서연은 눈을 반짝였다. 아무래도 신기한 거 같다.
비록 이종족이라고 하지만 이서연의 눈에는 아이들이 귀여운 건 변함이 없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아이들을 보면 귀엽다고 많이 중얼거리던 그녀였다.
유현이 보기에는 이서연 또한 아이들이었지만一.
어린 소녀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못한 앳된 얼굴은 유현에게 있어서 애로 밖에 안 보였다.
그런 그녀가 아이들을 보며 사랑스럽다듯이 귀엽다고 말한다.
어쩐지 재미있다는 생각에 유현은 웃었다. 그러자 이서연은 몸을 움찔거리며 조심스레 고개를 올렸다.
“저, 저기···. 제가 뭔가이상했나요?”
“아니, 그냥 귀여워서. 내 눈에는 서연이도 어린 애로 밖에 안보이거든.”
“····으으으.”
부끄러운 건지 이서연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이 땅바닥에 꽂힌다.
한 동안 그렇게 있던 이서연이지만.
“···그러면 가연이나 유미는요?”
문득 그런 질문을 해왔다. 유현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어린 애지.”
“으으음···. 그러면 제가 몇 살정도 되면 괜찮을까요? 그, 페르시 언니처럼···.”
···몇 살이라.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리고 왜 페르시를 언급하는 걸까.
분명 페르시는 겉으로 보면 어른스러운 여인이지만, 알맹이는 어딘가 애 같은 면이 있다.
차라리 랑샤셴 같은 경우가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겠지.
잠시 대답을 생각하던 때였다.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수인족 꼬맹이가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울음을 터뜨린다. 무릎에 생긴 상처가 아픈 걸까.
“아···“
그 모습에 이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수인족 꼬맹이에게 달려가버렸다.
···정말이지. 유현은 쓴웃음을 짓고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