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72
치료는 순조롭게 끝났다. 꽤나 예의 바른 꼬맹이들이었다. 이서연이 치료를 해주자 두 꼬맹이는 공손히 배꼽 인사를 하고서 사라졌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는지.
”방금 그 꼬마 애들 이름이 샤리랑 샨이래요. 서로 형제였나봐요. 서로 손잡고 가는 거 봤어요? 엄청 귀여웠어요!”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걷고 있었다. 그러 면서도 유현의 손을 잘 붙잡고 있다. 그녀는 눈치 채고 있을까. 지금 그녀의 모습도 길을 잃을까봐 손을 연결하고 있는 꼬마 같다는 걸.
발걸음이 가볍다. 방금 전 수인족 아이들과의 만남이 그녀는 그렇게 좋았나보다.
”오빠. 시장 좀 구경해도 좋을까요?”
“맘대로.”
꼬마들과 헤어지고서 유현은 시장을 돌아다녔다.
시장 안에 뭐가 있는지 이서연이 보고 싶다고 말해서였다. 시장의 규모는 꽤나 컸는데 서로 다른 종족들이 섞여서 그런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손님과 상인들 모두가 다양하다.
그 덕분인지 눈이 어지럽다고 할 정도로 물건들이 많았다. 유현도 지상에 나와 이종족들의 시장을 보는 건 처음인지라 부지런히 눈이 움직였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보겠는가.
처음 보는 물건들이 대다수였다.
저건 뭐하는 물건들일까, 생각하며 걷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빠르게 피로를 느끼며 유현은 이서연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길거리에서도 이서연은 잘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 때문인지 이종족들 틈새를 잘도 비집고 들어간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고생하는 건 유현이었다. 이서연은 유현의 손을 꼬옥 쥐며 걸어 다녔다. 이서연이 틈새를 파고들면, 유현은 근처에 있는 이들에게 사과를 하며 뒤를 쫓았다.
“···이건. 오크들의 옷인 걸까요?”
“아마, 그럴 거야. 오크들이 주로 그 옷을 입었으니까.“
“네? 오빠는 어떻게 알아요?”
예전에 많이 봤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기에 유현은 데페르라에서 오크들이 입고 다니는 걸 봤다고 다르게 말했다. 이서연은 납득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살포시 옷을 내려놓았다.
나름 여성 오크들이 입는 옷인 듯 했지만 이서연의 체격에는 맞지 않았다. 아마 이서연이 입는 다면 어린 애가 어른 옷을 입은 것마냥 헐렁했을 거다.
하지만 그 옷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이서연은 옷을 내려놓고도 한 동안 쳐다보았다. 소인족 주인장은 그런 이서연을 보며 조금 놀란 눈을 했다.
“수인족 아가씨가 오크족 옷을 좋아하다니. 그거 신기한 일이구만. 최근 들어 오크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수인족 녀석들이 대부분인데 말이야. 고민되면 그냥 사버려. 싸게 넘겨주마.”
“그, 그게 말이죠. 하하···.”
나름 소인족 주인장이 호의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서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렸다. 예쁜 옷이지만 자신한테 맞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거겠지.
“저 쪽으로 가보죠!”
아직 이걸로 끝은 아니라는 건지 이서연은 옆에 있던 다른 가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손을 잡아 당기며 말하자 유현은 쓴웃음을 짓고는 끌려 다녔다.
그 후로 7개 정도 되는 옷가게를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한두개에서 멈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서연은 그런 유현의 예측을 가볍게 깨고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힘들군.’
유현은 다리가 아픈 걸 느꼈다. 정말로 오랫동안 걸어 다녔다. 차라리 몬스터와 싸우는 게 정신적으로 편했을 거다. 많은 이들이 돌아다니는 길거리는 숨이 막혔다.
그런데 이서연은 괜찮은 걸까. 여전히 발걸음에는 기운이 넘친다. 그 사이 능력치라도 오른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녀의 활력에 유현은 놀랐다.
“으음···. 확실히 이종족이라 그런지 옷들이 신기했어요. 다음에 유미랑 같이 와봐야겠네요.”
방금 전까지도 보고 있던 옷을 떠올리는지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보면 전에도 애들과 저런 식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했다.
유현은 뻐근한 어깨를 움직이며 물었다.
“이걸로 끝인가?”
“아니요. 한 곳만 더 가보고 싶은 데가 있어요.”
“···더 있다고?”
순간이지만 유현의 표정이 흐트러졌다.
하지만 이서연이 어딘가 중요하다는 것처럼 말하기에 무시하기도 뭐했다.
어쩔 수 없이 유현은 헛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거기가 어디야?”
”저기에요.”
이번에 그녀가 가리킨 곳 또한 옷가게였다.
다만-. 남자 옷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
가게에서 나왔을 때 이서연의 손에는 몇 가지 종이봉투가 들려져 있었다. 당연스럽지만 남자 옷을 파는 가게였기에 전부 남자 옷이었다. 유현은 이서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 옷은 사지 않는거야?”
“음···. 네. 오빠가 더 필요할 거 같아서요.”
정작 많은 옷가게를 돌아다녔으면서 이서연은 자기가 입을 옷을 산 게 없다. 단순히 도시를 돌아다니는 게 목적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옷을 사기는 했다.
다만 그건 그녀가 입는 옷이 아니라 유현의 옷이었다.
옷을 고르던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신중했기에, 유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분위기가 유현을 압박했었다.
“오빠가 지금 입고 있는 옷, 벌써 며칠 째라고 생각하세요?”
앞을 보며 걸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유현은 잠시 생각하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이서연이 눈을 좁히더 니 입술을 삐죽였다.
“그 옷 데페르라에 있을 때도 계속 입고 다니셨어요. 똑같은 옷만 1달 넘게 입으신 거죠.”
그랬던 건가. 하지만 그럴게 문제가 될 건 없을 텐데.
“어차피 가연이가 깨끗하게 세탁을 해주니一.”
거기까지 말하는데 이서연이 말을 끊었다.
“···오빠.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 멋을 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음···. 멋이라.“
“네. 오늘 산 옷을 입으면 분명 잘 어울릴 거예요. 그러니까 내일은 옷을 꼭 갈아입으세요. 그 다음 날에도 새로운 옷을 입어주시고요.”
유현은 그녀의 말에 거부할 수 없는 힘 같은 걸 느꼈다.
그건 마치 언령과도 같았다.
작은 소녀의 어깨에 투기와 비견될 정도의 매서운 무언가가 있었다.
‘무섭군.’
···유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지상으로 올라온 건 점심쯤이었다. 그러니 시장을 어느 정도 돌아다니고 나왔을 때 하늘은 어둡게 변해 있었다. 저녁이 온 것이다. 그런데 조금은 특별한 저녁이었다.
낮게 깔린 어둠은 에이리어에 있을 때하고는 분위기가 달랐다. 별들이 보인다. 밤하늘에 깔려 있는 은하수와 별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제야 지상에 왔다는 걸 실감한다.
이대로 여관으로 돌아가 밤하늘을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모험가길드로 가자.“
유현은 아직 갈 곳이 남았다고 느꼈다. 이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시장을 둘러보면 모험가 길드로 갈 생각이었다. 다만 이서연이 생각보다 가게를 둘러보는 것에 재미를 느낀 탓에 시간이 꼬였지만 그다지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저녁이 되자 길거리는 나름 한산했지만 여전히 숫자는 꽤나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곳은 전부 일정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설마···.’
그 이유를 아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낮일 때는 조용했던 곳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흥등가라 불리는, 유곽들이 밀집해 모여 있는 은밀한 구역이었다.
그걸 발견한 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혼자라면 상관없지만 지금 뒤에는 이서연이 있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는 유현의 손을 꼬옥 쥔 채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길거리도 한산해진 만큼 굳이 손을 연결할 필요는 없는데도 놓지 않고 있었다.
유현의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길을 잘못 왔군.’
이런 곳이 여기에 있다는 걸 유현이 알았을 리가 없다. 지금 여기에 온 것도 모험가 길드의 위치를 주위에서 걸어 다니던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였다. 그런데 알려준 길이 이렇다.
‘역시 상대를 잘못 골랐나.’
그들의 눈빛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런 장난을 할 줄이야.
미궁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미궁도시에서도 수인족에 대한 혐오는 있는 듯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데페르라에서 벌어진 참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변장하고 있는 인간이 겪어야 하다니.
’방향을 틀어야겠어.’
유현은 이서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녀의 시야를 막았다. 갑자기 유현이 위치를 바꾸자 이서연은 의아한 얼굴로 커다란 눈동자를 떼구르르 굴리더니 싱긋 웃었다.
”길을 잘못 오셨나 봐요?”
“뭐, 그렇지.”
”역시 처음 온 도시라 어쩔 수 없는 건가. 오빠도 길을 헤맬 때가 있군요. 헤헤.”
생글생글 웃는 이서연의 얼굴은 귀여웠다. 그렇기에 유현은 더욱 긴장했다.
유현은 일부러 이서연의 시선이 그곳에 닿지 않도록 했다. 고등학생이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다. 은밀한 부위를 겨우 가리며 남자를 유혹하는 여인들이 그곳에 가득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이서연이 그런 걸 보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딱히 창녀를 멸시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이 아이에게는 그런 걸 보지 않았으면 할 뿐.
“으음. 생각보다 찾는 게 늦을 지도 모르겠네요. 날이 어두워졌어요.”
“그러네. 모험가 길드는 내일 찾아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그런 유현의 노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유현의 뒤를 따랐다.
본래라면 유현은 거기서 이서연을 데리고 벗어나려고 했을 거다.
“一一一一一“
돌아가던 유현의 고개가 문득 멈준다.
무언가 본 거 같은데. 옆을 누군가 지나쳤다.
유현이 수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 본 건 로브를 쓴 여인이었다.
하지만 로브의 틈새로 보였던 옆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페르시一.
하지만 그녀가 이런 곳을 올리는 없으니.
그러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다.
“············.”
“오빠?”
갑자기 유현이 얼어붙자 이서연이 조심스레 이름을 부른다.
유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옆에 류트가 있었으면 편했을 텐데.
“서연아. 혹시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기억하고 있어?”
“그, 그게···. 오빠 뒤만 따라와서 길은 잘···.”
길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저런데 다른 곳도 아닌 미궁 도시에서 이서연을 혼자 돌아다니게 하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혼자 둘 수도 없는 일.
유현은 힐끔 그곳을 바라봤다. 유현이 본 로브를 쓴 여인은 그곳에 가고 있다.
···젠장.
유현은 한숨을 쉬며 이서연에게 주의를 주었다.
“···서연아. 손 꼭 붙잡고 있어. 눈은 내 등만 보고 있고. 절대로 딴 곳은 보지마. 오로지 나만 봐.”
“네? 그, 그게···. 아, 으음···. 그럴게요. 오빠만 보고 있을 게요.”
뭘 오해하는 건지 이서연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은 그녀의 눈을 가리듯 그녀의 앞에 서고는 그녀의 손을 꼬옥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