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the devil in the labyrinth? RAW novel - Chapter 39
우리는 신전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아직 신전의 용도가 뭔지 모르는지 그저 관광하는 기분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리아, 그 요정 녀석이 설명해주지 않은 건가.
“그런데 우리 신전의 위치는 어딘지 알아?”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고 들었어.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던데.”
아이들의 말대로다. 신전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신전이 어떤 존재인지 대충이나마 알 수 있다. 실제로 도시 제일 중심에 자리 잡은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는 존재이기도 했다.
신전이란 플레이어에게 있어 자신의 업적을 평가 받고 레벨을 올릴 수 있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했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도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는 중요한 존재였다. 질병과 관련하여 건강에 대한 문제는 신전을 통해 빠르게 치료가 가능하다.
게다가 어디를 가도 종교는 존재했다. 이곳 주민들이 뭘 믿고 있는지 관심은 없지만 나중에 사제 직업을 가진 이들을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신전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신전의 근처에 이를 쯤 이었다. 주변에 사람들의 밀도가 급격히 늘어나며, 조금만 실수해도 다른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것 같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네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이곳에 많이 오나 봐요.”
생각지 못한 광경에 당황한 듯한 이서연이 말에 주위를 둘러보자, 확실히 숨이 막혀올 정도로 많은 인간들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는 데로 여전히 신전은 인기가 많았다.
오죽하면 약속 장소로 신전을 잡는 사람들도 있을까. 고개를 들어 조금 먼 곳에 시선을 두자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웅장한 건물이 하나보였는데, 그게 바로 신전이다.
신전을 이루는 새하얀 여러 개의 기둥들은 마치 거인이 직접 들고 새운 것처럼 두껍고 거대했다. 어떻게 저런 걸 세웠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신전의 모든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멋진 건물이네요. 화려하면서도 주변의 광경이란 너무 잘 어울려서 놀라울 정도에요.”
평소에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송가연이 스스로 자신의 감상을 표현했다.
화려하지만, 천박한 느낌의 화려함이 아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의 기품 있는 건물이었다. 저곳 안에서 꽤재재한 도시 주민들과 비교 될 정도로 새하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몇몇 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그들이 바로 신전의 사제들이었다.
도시 주민들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축복을 부탁하자 사제들은 기쁜 얼굴로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도시 주민들은 신전에 몇 푼의 돈을 기부하며 등을 돌렸다.
실제로 사제들이 축복을 걸었을 리는 만무했다. 축복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뿌릴 정도로 간단한 힘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민들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다.
이건 일종의 고마움의 표시인 것이다. 시작의 도시 로베리아를 지켜주고 있는 건 그 수준을 아우르기 힘든 아득한 정도의 고위 결계였고 그걸 관리하는 게 신전이었다.
이렇게 숨을 쉬고 위험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건 신전의 사제들이 헌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도 그걸 알기에 신전에 대해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부쩍 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약간 구석진 곳으로 온 아이들은 잠시 신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골목의 그늘이 머리 위를 가리고 있다. 신전 주변이라 그런지 골목길도 유난히 청결해 보였다.
“이거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많은데. 여기서 우리가 뭐 할게 있나? 그냥 다른데 갈까?”
그런 말을 꺼낸 건 길유미였다. 이마 한 쪽으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게 보인다. 사람이 많다보니 그 열기마저도 대단했기에 약간 더운 감이 있었다.
그녀는 질린 듯한 눈으로 골목 밖의 길거리를 바라봤다. 이윽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길유미의 말에 남궁민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굳이 신전 안 까지 가볼 필요는 없겠지. 일단 도시의 구조를 알아보는 게 첫 번째 일이니까. 게다가 신전 안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그렇지? 확실히 보통 사람은 신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거 같더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나는 슬며시 웃음을 냈다. 큰 웃음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들리기에는 충분한 소리였나 보다. 길유미가 말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라···.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어떻게 보면 그럴지도.”
조롱이 담긴 웃음은 아니었는지라 길유미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다행히 감정이 상하지는 않은 듯했다. 오히려 호기심만 가득하다.
나는 그녀의 호기심을 빠르게 풀어주었다.
“우리가 평범한 사람은 아니잖아. 아무리 못해도 다른 세계의 인간들인데.”
“···아.”
그제야 깨달은 것인가. 골목길 밖의 사람들이나 우리나 모두가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똑같은 인간이지만 살아온 세계가 서로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다.
평범이라는 말로 우리를 표현하기에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그들과 우리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있는 것이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길유미였지만, 아직 남은 게 있는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신전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보니까 사제들이 사람들의 진입을 막던데. 확실히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우리라고 다른 취급 받을 이유가 있나.”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
내가 입을 열려고 하기도 전에 다른 이가 길유미의 말에 대답했다. 송가연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확신에 가까운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있었다.
“그게 뭔데?”
“우리가 플레이어라는 것. 다른 세계의 존재라는 것보다 요정들에게 소환된 사람들이라는 게 중요해. 어쩌면 우리를 소환한 건 요정들뿐이 아니라 신전도 그에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유현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유미에게 답을 말해주듯 확고한 목소리로 말하던 송가연이 갑자기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던 나는 마른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맞을 거야. 게다가 무엇보다 리아도 나한테 신전으로 한 번 가보라고 했었고.”
“···리아요? 그게 누구죠.”
설마 요정의 이름을 모르는 건가. 플레이어의 튜토리얼 담당 요정 주제에 덤벙거리는 게 많은 녀석이다. 아무리 못해도 이름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았나.
“요정의 이름. 튜토리얼을 끝내고 너희들을 여관으로 안내한 요정이 있을 거 아니야. 그 녀석이야.”
“아, 그 귀여운 요정이요. 그 요정 이름이 리아였나 보군요. 생각해보니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네요. 그냥 요정이라고만 불러서…”
귀여운 요정이라. 어찌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나는 속으로 헛웃음 짓는 걸로 끝냈다. 어린 소녀의 형상을 지닌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나이를 먹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요정이라는 걸 사람과 같은 선상으로 둘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요정이 오빠에게 신전을 들르라고 말했다고요?”
“응.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신전은 플레이어의 접근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환영한다. 플레이어들이 신전에 오는 건 퀘스트를 달성할 때 뿐이었다.
송가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엉덩이 밑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가봐야죠. 가면 좋은 일이 있다는 게 뭔 소리인지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거짓말을 하진 않았겠죠.”
제일 기세 좋게 일어난 길유미가 기지개를 피며 밝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녀가 기지개를 피자, 매끈한 선을 그리는 등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기지개를 피면서 옷이 살짝 올라가 새하얀 피부와 함께 배꼽이 보이지만 내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다시 신전으로 향했다. 거센 파도처럼 신전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주민들 때문에 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전 안에 들어서는 입구에 접근하자 사제가 우리를 발견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제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를 정확히 발견했다.
그걸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사제도 우리에게 뭔가 목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주민들에게 향했던 웃고 있는 그 표정이 변함이 없어서 설마 하는 느낌이 들고 있을 뿐이지.
아이들의 확신은 사제가 우리에게 오며 내민 첫 마디에서 생겨났다.
“어서 오세요. 저희는 플레이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언제 찾아오실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오시는 군요. 따라오시지요.”
그 말로 사제는 등을 돌렸는데, 뭔가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일단 사제의 뒤를 따르는 게 우선이 되어버렸다.
*
신전 내부의 모습은 외부에서 보던 것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단순히 겉모습을 보는 것과 내부의 모습을 관찰하는 건 다른 느낌이기에 아이들은 정신 사나울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사제의 뒤를 따랐다.
차분한 얼굴로 사제의 뒤를 따르고 있는 건 나와 송가연 뿐이었다. 남궁민은 신전 내부의 모습이 신기한지 자꾸 시선이 이상한대로 향하고 있다.
그러다가 가끔은 신전 안의 사제들에게 시선이 향했는데, 대부분이 여자들이었다. 딱히 여자를 밝히는 녀석이 아니지만 여사제들의 미모에는 어쩔 수 없다.
꾸미는 것 없는 수수한 모습이지만 여사제들은 아름다웠다. 마치 얼굴만 보고 뽑은 것처럼. 몸매를 가리는 새하얀 옷차림들이 오히려 그녀들의 매력을 한 층 더 끌어 올리고 있었다.
“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는 플레이어 분들만 진입이 가능한 구역이니 저는 이만 뒤로 빠지겠습니다.”
사제는 그렇게 말하며 소리 없는 걸음으로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 은밀함이 사제보다는 암살자에 가까운 움직임이었기에 감탄이 나왔다.
‘상당한 실력인데.’
아마, 전투 계열의 사제일 것이다. 그리고 보면 수수한 그의 사제복에서 이질적인 모습들이 관찰되기도 했다. 옷 속에 은밀히 무기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신전의 존재가 도시의 종속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에 어울리는 보안도 형성 되어 있는 거겠지. 당장 옆으로 우리의 목을 전부 쳐낼 수 있는 실력자가 있었지만 그걸 잘 모르는 아이들은 사라지는 사제에게 고맙다는 말만 전할 뿐이었다.
안내해 주던 사제가 완전히 사라지자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대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었다. 먼지 하나 묻어 있지 않는 순백의 문이 우리 앞에 있다.
“···엄청 큰 문이네요.”
문 앞에서 멈춘채 아이들은 긴장하는 얼굴을 지었다. 애들이 뻘쭘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고만 있자 결국 내가 나서야 했다. 문의 높이만 해도 3m는 넘었는지라 문을 열려면 힘을 줘야만 했다.
끼이익.
서서히 문을 열고 너머의 모습을 밝혀온다. 그리고 안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지라 나는 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유현님. 그리고 송가연, 이서연, 길유미, 남궁민님.”
유난히 내 이름을 힘주어 말한 건 실수였을까 의도였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라 그런가. 가슴이 뛴다. 그녀를 보며 반갑다는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나는 마른 미소를 보이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변한 것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그렇지만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
죽은 이의 눈동자 마냥 색을 잃은 듯한 회색빛 눈동자, 창백한 얼굴,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남자라면 그 누구도 시선이 끌릴 만한, 마치 실력 좋은 조각가가 다듬은 듯한 극상의 미모가 저기에 있었다.
아이리스. 그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