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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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화 재벌은 지성의 척도가 아니야 (2)
“예…?”
순간, 자기도 모르게 멍한 말이 나와 버린 고신근.
정말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윤기의 반응이었다.
‘아니, 뭔데? 도청 장치를 알았기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었어?’
물론, 고신근의 추측은 맞았다.
윤기가 지금 이러는 것은 도청 장치를 설치해서 그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윤기는 고신근에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연기하는 윤기.
그렇기에 고신근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져 버렸다.
“도청 장치라니, 전혀 모르겠네요. 요즘은 농담을 그렇게 하나요?”
“아니, 회, 회장님, 그게…. 정말 모르셨…던 겁니까…?”
“아니, 진짜 모르겠다니까요? 도청 장치? 뭐죠? 지금 농담하시는 거 아니에요?”
50대인 고신근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윤기.
‘큰일 났다….’
고신근은 자신이 그야말로 독박을 썼다는 것을 직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해 버린 상황.
지금 고신근이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이 있을까?
‘농담이었다고 할까? 아니, 그래 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당장 그룹이 나자빠지게 생겼는데?’
제분 업체가 망할 경우, 대상그룹은 100퍼센트 연쇄 부도가 난다.
한마디로 그룹이 공중분해가 된다는 것.
따라서, 고신근은 이미 이렇게 된 거 모든 것을 자백하기로 마음먹었다.
“회장님, 진짜입니다. 제가 이 저택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습니다.”
“농담하지 마세요. 그룹의 회장이나 되시는 분이 그런 일을 뭐 하러 하나요?”
“진짭니다!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시 따라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렇게 된 이상 직진밖에 없다.
그렇기에 고신근은 자신이 도청 장치를 설치했던 첫 번째 장소로 향했다.
그것은 바로 거실에 놓여 있는 시계의 뒤쪽.
그곳에는 놀랍게도 정말 도청 장치가 있었다.
다만, 이미 윤기는 해당 도청 장치를 한 차례 수거했었다.
지금 이 도청 장치는 윤기가 도로 가져다 놓은 것.
하지만, 윤기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진짜였나요…?”
바로 다시 무릎을 꿇는 고신근.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윤기는 그런 고신근을 향해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가 없네.”
순간 고신근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딱히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그저 단 하나의 분명한 사실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윤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고신근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죄송합니다!”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넙죽 엎드린 고신근.
윤기는 그런 고신근을 향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왜 이제 와서 고백하는 겁니까? 이유가 뭐죠?”
“그, 그게…….”
결국, 고신근은 모든 것을 이실직고했다.
최근 대상그룹의 밀 수입이 차단되었고, 원정대가 테러 위험을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국내 밀도 구할 수 없다는 상황을 말이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최윤기 회장님이 제가 설치한 도청 장치를 찾아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반쯤 울먹이는 고신근.
그런 고신근을 향해 윤기는 기가 찬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상식적으로 회장님이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알아내요?”
알아냈다.
아주 확실하게 알아냈다.
하지만, 윤기는 계속해서 모른 척을 했다.
그러니 답답해서 뒤질 거 같은 고신근.
그런 고신근을 향해 모처럼 메릴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한국에서 1등 기업 아니야?”
“그렇지.”
“그런데, 왜 저 사람은 우리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어?”
“원래 위험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거든.”
“위험한 상상?”
“응. 예를 들어서 부부라면, TV나 잡지에 나온 예쁜 여자, 잘생긴 남자를 보고 그 사람과 관계를 가지는 상상을 하는 거지. 그런데, 어디까지나 상상에서 끝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잖아?”
순간 메릴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런 상상을 했어…?”
방금 윤기의 말은 서로 입을 맞추지 않은 명백한 애드립.
그렇기에 메릴은 심장이 싸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응, 안 해 봤어?”
“아니, 어떻게…….”
눈물을 글썽이는 메릴.
윤기는 빠르게 테이블 위의 잡지를 들더니 익숙한 듯 어떤 페이지를 펼쳤다.
“봐, 난 맨날 이 사람으로 상상하는데?”
순간 메릴의 눈이 동그래졌다.
살짝 낡은 잡지.
그것은 메릴이 마지막으로 촬영한 화보 사진이었다.
“아이, 참…….”
순식간에 눈물이 쏙 들어가고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한 메릴.
이를 바라보는 고신근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아니, 이런 모습을 생판 남인 나에게 보여 준다고…?’
물론, 고신근이 이런 생각을 하건 말건, 윤기는 계속해서 깨를 볶았다.
“앞으로는 상상하지 말까?”
“아니, 상상할 필요가 없잖아….”
몸을 배배 꼬는 메릴.
육아도 익숙해졌겠다, 이제 고용인들도 육아를 많이 도와주겠다, 박경자가 영양식도 자주 주겠다.
윤기와 메릴은 나름대로 체력이 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리고 오늘 윤기의 애드립은 메릴에게 다시 불을 지폈다.
“지금은 잠깐 참자. 알았지?”
“응….”
발갛게 물든 얼굴로 조용히 몸을 꼬는 메릴.
윤기는 다시 고신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죠? 빨리 자리를 끝내고 싶네요. 더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윤기는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지금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일까?
드디어 고신근은 그 이유를 알아챘다.
‘아뿔싸!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자신의 앞에서 남이 놀릴 수 있는 부부간의 애정 행각을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
이 모습을 통해 고신근은 애초에 윤기가 도청 장치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판단의 근거가 이성적으로 봤을 땐 다소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과 근거가 한곳으로 모이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이러다가는 우리 대상그룹이 공중분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고신근에게 남은 것은 그저 용서를 비는 것뿐.
하지만, 윤기가 누군가?
적에게 온정을 베푸는 자가 아니다.
적에게 고용되었던 사람이라면 모르겠지.
하지만, 고신근은 고용되었던 사람이 아니라 적 그 자체였다.
고신근의 아들이나 딸은 용서할 수 있지만, 고신근은 예외가 될 수 없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가요? 그리고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니까요?”
“아니, 회장님. 회장님이 미국 입국심사대에……”
윤기는 고신근의 말을 잘랐다.
“아니, 미국이 그렇게 하는 걸 제가 어떻게 간섭합니까? 미국 같은 대국의 행동에 제가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국내 밀 농장과 관련한 것은……”
“직원들한테 싱싱한 밀가루를 먹이려고요.”
“미국 밀 농가한테서 160만 톤에 달하는 밀을 사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밀을 수집하는 게 취미예요.”
이 말이 결정타.
결국, 고신근은 눈물을 흘리며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회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아, 귀찮네요.”
다시 경호원을 부르려는 윤기.
마침내 고신근은 마지막 제안이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님, 저희 제분 업체를 회장님에게 판매하겠습니다. 회장님도 밀을 제분하려면 제분 기계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제발 사 주십시오. 네?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윤기는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저 수집이 목적이라니까요? 회장님 집 가신다네요. 내보내세요.”
윤기는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고, 고신근은 울부짖으며 집 밖으로 쫓겨났다.
물론, 누군가는 의아할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고신근의 제분 업체를 꿀꺽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고신근의 제분 업체를 사려면 당연히 부채도 책임져야 한다.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 윤기.
따라서 윤기는 대상그룹이 부도나면, 그다음에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과 기계, 그리고 부지 등을 매입할 생각이었다.
만약 매입하기 힘들다면 미국에서 설비를 주문해도 되겠지.
애초에서 미국에서 산 밀은 미국 업체를 경유해서 원가에 한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판매하면 되니, 윤기로서도 딱히 손해 볼 일이 없는 상황.
결국, 고신근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윤기를 회유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차라리 ‘시키시는 대로 모두 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조금 나았을지도?
물론, 그래도 큰 변화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크으, 재밌구만.>
옆에서 만족스러운 추임새를 내뱉는 최덕배.
하지만, 윤기는 최덕배의 말 대신, 손등으로 느껴지는 감촉에 집중했다.
검지로 손등을 꾹꾹 찔러오는 메릴.
윤기는 메릴과 함께 조용히 침실로 향했다.
하아….>
어쩐지 외로움을 느끼는 최덕배였다.
* * *
12월 초순.
결국, 성산, 오성, 금철, 대상 그룹은 보유한 제분 업체의 공장 설비 가동률이 0퍼센트가 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물론, 지금 당장 부도가 날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곳의 예산으로 돌려막기를 하면 되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봉책.
제분 업체를 유지하는 이상 고정 비용의 지출을 피할 수 없었고, 이 비용은 절대 만만한 금액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 곳은 모두 일제히 제분 업체에 대한 매각 의사를 공표했다.
하지만, 국내 그 어떠한 기업도 입질을 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일단 부채가 가득한 제분 업체의 상황.
보증에 담보까지 겹친 업체를 누가 사겠는가?
I.M.F 이전 국내 기업들의 상황이 바로 이러했다.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줄도산을 맞이하는 모습 말이다.
괜히 부채율 평균이 500퍼센트를 넘어서겠는가?
평균이 500퍼센트였으니, 고점에 달하는 기업은 도대체 몇 퍼센트였을까.
더군다나 현재 한국에서는 ‘적정한 가격의 밀’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산 밀이 아닌 다른 곳의 밀은 오히려 미국산보다 비쌌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싼 밀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농장의 밀인데, 이쪽은 아예 구매가 막혔다.
남은 것은 그냥저냥 한 중소 규모 농장의 밀.
하지만 이곳의 밀을 들여와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현재 재벌가에 돌고 있는 소문.
그것은 바로 와이케이가 밀 제분 산업에 뛰어든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제분 업체에 뛰어들까?
결국, 네 개 업체는 일제히 제분 업체 소속의 모든 노동자들을 잘랐다.
이어서 공장설비와 부지를 처분하기 시작했다.
이것들을 다 판다고 해도 부채를 감당할 수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이제 네 개 그룹은 천천히, 년 단위의 시간을 들여 돌려막기를 하다가 고사하겠지.
그리고, 이때 윤기가 개입했다.
그것은 바로 신규 법인을 통해 네 개 그룹의 설비와 부지를 매입한 것.
심지어 윤기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도 않았다.
[와이케이 제분]하지만, 네 개 그룹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적정가보다 더 낮은 가격에 부지와 설비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와이케이가 아니면 사줄 곳이 없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타결된 계약.
직후 윤기는 기존 제분 업체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 자격시험을 공표했다.
한마디로 상식과 기술만 보증된다면, 다시 일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결국 새 된 건 네 개 그룹과 제분 업체에서 라인만 잘 타 쓸데없이 높은 월급을 받던 인물들.
하위 노동자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게 되었다.
1월이 되면 와이케이 제분이 힘차게 밀가루 생산을 시작하겠지.
여기서 끝낼 거냐?>
“그럴 리가요.”
윤기는 다른 곳은 몰라도 성산만큼은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