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256
제 256화
256. 옛 마신을 믿는 자들 (1)
태산의 격이 퍼져나간다. 마왕성에서 자신들의 일을 하고 있던 시종들이 본능적인 공포에 기겁하며 그릇들을 떨어트렸다.
힘이 마왕성 바깥까지 퍼져나간다.
저벅.
태산이 앞으로 나아간다.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물러난다.
투구 안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마왕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너는! 너는!”
그의 얼굴엔 부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왕은 마계의 왕으로서 마신의 사도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지금 태산이 내뿜는 격이 어떠한 것인지.
“말도 안 돼! 인간 따위가! 그분의 사도가 되다니!”
“사도는 아니야. 이건 그와 다른 힘이지.”
하지만 마왕에게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
태산이 발을 구른다. 마기와 격이 혼합되어 마왕성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아, 아아.”
불길함을 느낀 기사들이 방패를 들었다. 그들이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태산이 주먹을 쥐었다.
“터져라.”
쿠우웅!
“아아아악!”
기사들이 쓰러진다.
격을 담은 감정의 간섭에 그들이 버티지 못한다.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태산이 웃었다.
“괜찮네.”
사도화는 신이 내린 힘이다. 그들의 격을 받아들이는 스킬이었다.
흑마법은 악마의 힘을 받아 다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악마는 고신과 비슷한, 날 때부터 강한 존재들이었다.
신의 힘. 그리고 고신의 힘.
태산은 두 가지를 섞어 경계선을 만든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마왕성으로 향할 때 흑마법과 사도화도 혼합이 가능할까 실험해봤었고,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었다.
부담도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기에 어떻게 사용할 일이 없나 생각해봤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기에 라움의 감정 동요를 격에 섞어 마왕성 전체에 퍼트렸다.
결과는 쓸만했다.
기사들이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땅에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단순히 격을 흩뿌린 것보다 훨씬 뛰어난 효과였다.
태산이 마왕을 바라봤다.
“아아아아!”
마왕이 함성을 지른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서 검은 기운이 마왕에게 강림한다.
저건 마신의 힘이었다.
“명색이 마계의 왕이니. 조그마한 힘 정도는 받았나.”
“헉, 헉.”
마왕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마신께서 그에게 내려준 힘의 파편으로 어찌어찌 버텨냈지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포가 일어나 감정을 집어삼키려 하며 전신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불쾌감이 덮친다.
“이, 이…….”
라움의 감정 동요. 마왕 또한 가지고 있는 흑마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효과 따위는 없었다. 해봤자 나약한 이의 정신에 간섭해 굴복시키거나, 아니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자를 치료하는 용도였다.
이런 식으로 정신 자체를 붕괴시키는 효과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너는…….”
마왕이 떨리는 눈으로 태산을 바라봤다.
“너는!”
그가 소리를 질렀다. 어둠이 들고 일어났다. 마기가 구체화되어 태산에게 달려들었다.
짐승처럼 물어뜯으려는 마기에, 태산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마기가 흩어져 사라졌다.
“아…….”
마계의 왕인 그의 힘이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가벼운 손짓에 짓밟힌다.
태산이 중얼거린다.
“나는 마신의 명령으로 이곳에 왔어.”
저벅.
그가 마왕에게 걸어간다.
옥좌에 앉아 있는 마왕이 흠칫 몸을 떤다.
“그리고 그녀는 콰네드와 아넷샤가 나의 조력자라고 말했지.”
냉정하게 말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둘은 버려진 땅에 대한 대단한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다. 이곳에서 둘이 태산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흑마법의 가르침과, 마왕성으로의 안내였다.
그리고 그건 둘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신이 태산을 마왕성으로 직접 보내고 마왕에게 가르치라고 말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신은 굳이 아넷샤와 콰네드를 태산에게 조력자라고 소개했다.
“마신은 어떤 의미로 그랬을까?”
마신은 직접적으로는 간섭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는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저벅.
태산이 마왕 바로 앞에 도착했다. 마계의 왕이 겁에 질려 옥좌에 몸을 웅크렸다.
“이건 마신의 경고야.”
태산이 바닥에 손을 댔다.
마왕의 옥좌는 마왕성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늘이 맞닿은 이곳에서 태산은 힘을 발현했다.
[당신은 데카라비아의 일그러진 식생을 발동했다.]쿠우우웅!
마왕성의 밑바닥에서 통로가 열린다.
별을 관통한 뿌리가 소환되어 솟구친다.
마왕성에는 수많은 가호와 결계가 쳐져 있었다. 위대한 마계의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단단히 마왕성을 지킨 마계의 마법이었다.
그 수많은 결계와 가호를 깨부수며 최상층까지 올라온다.
쿠구구궁!
뿌리가 거대한 기둥처럼 마왕성 전체를 관통했다.
마왕의 옥좌 바로 앞에 도착한 뿌리의 끝을 매만지며 태산은 입을 열었다.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자고. 마신도 그걸 바라는 거 같으니까. 알았어?”
“아…….”
마왕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 * *
마왕은 더듬더듬 정신을 차렸다.
그는 먼저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허무하군.”
그의 목적, 계획, 가치관.
그 모든 것을 일소시키는 힘이었다.
그가 모든 걸 포기하고 태산에게 버려진 땅으로 가는 목적지를 말했다.
“……마왕성의 뒤편에 작은 문이 있다. 옛 마신을 믿는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결계가 쳐져 있는 곳이지. 그곳의 결계를 잠시 해제하마. 문을 넘어가면 버려진 땅이다.”
“알았어.”
태산이 마왕을 뒤로하고 마왕성을 내려갔다.
방에는 쓰러진 기사와 마왕, 아넷샤와 콰네드만이 남았다.
마왕이 물끄러미 아넷샤를 바라봤다.
“네가 부럽군. 정말로.”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넷샤가 뒤늦게 태산을 따라왔다. 콰네드도 그 뒤를 따랐다.
“태산 님!”
그녀가 헥헥 거리며 달려왔다.
“……고마워요.”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태산이 머리를 흔들었다.
“나한테 고마워하지 말고 마신님께 해. 그녀가 부탁한 거니까.”
“두 분 다 감사해야죠.”
그녀가 감동 어린 얼굴로 태산을 바라봤다.
태산이 입을 열었다.
“따라올 거야?”
이 앞은 위험하다. 결계가 해제됨에 따라 풍기는 기운만 해도 아넷샤 수준이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
하지만 아넷샤는 결의에 차 끄덕였다.
“저는 태산 님의 조력자예요. 위험한 곳으로 혼자 가시게 할 수는 없죠.”
“그러면 준비해. 무장 정도는 미리 챙겨 두고. 난 미리 가 있을게.”
“아. 네!”
그녀가 콰네드를 데리고 황급히 마왕성 안으로 따라갔다.
태산이 그들을 뒤로하고 마왕성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문이 있었다.
문을 중심으로 퍼져 있던 결계는 잠시 해제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덕에 너머에서 느껴지는 힘을 감지할 수 있었다.
유령이 휘파람을 불었다.
태산이 입을 열었다.
“지켜보고 계시던 거 압니다. 나오시죠.”
[들켰어?]웃음소리와 함께 어두운 공간이 열린다.
마신이 공간에 팔을 걸친 채 얼굴을 보였다.
[잘해줬어. 태산.]마신은 빙긋 웃었다.
[마왕이 아넷샤를 싫어하는 건 내가 그녀를 편애한다고 생각해서야. 내가 마왕에게 말해봤자 그는 아넷샤를 더더욱 싫어했겠지. 그래서 너한테 맡겼는데, 역시 훌륭해. 이러면 마왕도 아넷샤에게 더 이상 가시를 세우지는 못하겠지.]“저한테 이런 걸 맡기셔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마신은 태산이 아넷샤를 마주 보기를 바랐다.
그녀가 마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고 그녀가 태산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녀를 조력자로 소개한 것이리라.
[네가 몸을 누일 곳은 어디에 있을까?]마신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가늘게 눈을 떴다.
[너는 이질적이야. 태산. 우리가 봐도 그러한데 필멸자들의 시선에선 더더욱 그러하겠지. 대다수는 너를 받아들이지 못할 거야. 너를 거부하며, 무서워하겠지.]“그건 알고 있습니다.”
멸망하기 직전의 이태연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그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가.
멸망 직전 사람들이 모든 걸 내려놓기 전까지만 해도 이태연과 태산은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하고 사람들 주위를 겉돌기만 했다.
사람들이 둘을 자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장 현생의 지구 사람들도 그를 신으로서 숭배하고 있었다.
[네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나도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너를 받아들여 주는 자를 찾기는 힘들 거야.]마신은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달라. 그녀는 네가 어떻게 변하든 너의 편을 들겠지. 언제나 너를 기다리며 너와 함께하려 할 거야.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좋은 일이거든. 네가 걷게 될 길을 먼저 걸었던 경험자가 하는 말이니 귀담아들어도 좋아.]“감사합니다만…… 역시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
[강요는 아니야. 나는 네가 마음에 들거든. 네가 나중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나와 달리 말이야.]마신이 씨익 웃었다. 어린 웃음이었다.
[그중 하나를 제시해주는 거야. 내 어린 양이 불쌍하기도 하고.]“생각해보겠습니다.”
마신은 시선을 돌려 버려진 땅을 바라봤다.
[너에게는 많은 선택지가 있어. 이후의 선택지만이 아니라 그 전의 선택지 또한. 그중 우리처럼 되는 선택지 또한 있겠지만…… 저들처럼 되는 선택지 또한 있을 거야.]“그건 없을 것 같은데요.”
[원래라면 불가능하지만 너는 이질적이야. 가능성은 있지.]마신이 중얼거렸다.
[저기에서 큰 위협은 없을 거야. 그저 너에게 선택지를 내밀겠지.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너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난 네가 우리의 길을 선택했으면 좋겠네.]마신이 열린 통로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러면 다녀와. 그리고 승리해.]“알겠습니다.”
잠시 후 아넷샤와 콰네드가 돌아왔다.
둘의 복장은 아까까지와는 달랐다.
아넷샤의 경우에는 마기가 흐르는 지팡이와 꼬챙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옷 또한 단정한 검은색 가죽옷으로 변해 있었다.
“좋아. 이거면 태산 님의 도움이 충분히 될 수 있어요.”
“이거 그리운 느낌이네.”
콰네드가 웃었다. 그는 목숨을 걸고 미궁을 내려가다가 마신에 의해 마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건 그거대로 만족스러웠지만 한번 목숨을 걸고 싸웠던 그에겐 전투 또한 그리웠었다.
태산이 진입하기 전에 둘에게 말했다.
“저곳에선 너희 스스로 살아남아야 해.”
고신의 영역에서 무엇이 나올지 태산도 알지 못한다. 그가 지켜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없으니만 못했다. 아넷샤가 진지한 얼굴로 끄덕였다.
“충분히 알고 있어요.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거예요.”
“좋아.”
[당신은 바람의 정령왕. 미네르바를 소환했다.] [당신은 다채로운 색의 최상급 정령. 바르카자를 소환했다.]바람과 무지갯빛이 이루어진다.
소환된 미네르바가 주변을 살피고 놀란다.
“뭐야. 마계?”
[드디어 내 차례인가?]“정령?”
“허억!”
미네르바에 콰네드가 기겁하며 무기를 잡는다.
“정령왕!”
“응?”
그의 시선엔 경계가 가득했다. 태산이 손을 휘저었다.
“네가 생각하는 놈이랑 다른 놈이니까 경계 풀어.”
“……그러고 보니.”
불이 아닌 바람이다. 그걸 깨달은 콰네드가 무기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미네르바가 떨떠름히 말했다.
“쟤 나 보고 왜 저래?”
“정령왕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거든.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들어가자고.”
태산이 고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었다.
치직.
그들이 버려진 땅에 진입함과 동시에 문에서 결계가 다시 생겨났다. 공포에 질린 듯이 빠른 속도였다.
짙고 깊은, 어둠에 가까운 기운이 영역 전체에서 풍기고 있었다.
“어디 보자.”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마계 자체가 짙은 기운이 있지만 이건 그와는 달랐다. 보다 고신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힘들이 느껴졌다.
태산이 대지에 손을 올렸다.
느껴지는 감각을 파악한 태산은 깨달았다.
‘지구와 비슷해.’
멸망 직전의 지구. 그때의 감각과 이곳의 감각이 엇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이미 고신의 힘에 집어삼켜 진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퍼진 감각에서 태산을 향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옛 마신의 시선이겠지.
그 시선에 적의는 적었다.
그보다는 탐욕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