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484
제 484화
484. 91층. 우로보로스 (5)
‘이거 신기하네.’
세계 자체의 시간이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대한 법칙이었다. 태산도 경계선이 아니었다면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갔을 것이다.
태산은 불멸자를 바라봤다.
그의 육체가 시간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저항하는 건지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진 상태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되돌아가는 자신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워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되돌아가는 시간이 끝이 났다.
“허억.”
불멸자가 삼킨 숨을 토해낸다. 태산이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장은 무척 깨끗했다. 마치 하루 전에 청소가 된 것처럼.
하지만 사람들은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자마자, 그들의 얼굴은 다시금 일그러졌다. 광소가 터지고 광기에 찬 행동들이 보였다.
‘무한하게 되돌아가는 시간.’
“저희는 이곳에 갇혀 있습니다.”
불멸자는 말했다. 그 얼굴은 이전보다 더욱 지쳐 있었다.
“당신께서는 아직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얽매이지 않은 상태이시지만, 머물면 머물수록 당신도 붙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 비틀린 세계에서 빠져나가시기를 바랍니다.”
태산은 당연하게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불멸자에게 물었다.
“이 세계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렇게 된 거야?”
“…….”
불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모습이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태산은 그에게 다가갔다.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망가진 그는, 우습게도 육체적으로 보자면 그 어떠한 손실도 없는 완벽한 상태였다. 그의 앞에 선 태산은 입을 열었다.
“나는 네 소망을 이루어줄 수 있어.”
“…….”
불멸자의 눈이 작게 떠졌다.
태산은 검을 들었다.
“나는 너를 죽여줄 수 있어.”
일렁.
잿빛이 세상에 구현된다. 불멸자의 동공이 커졌다.
“……아?”
“아까도 썼는데,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나.”
불멸자는 홀린 듯이 경계선을 바라봤다.
“고신의 힘? 아니야. 그렇다고 이 세계의 것도 아니야. 그건…….”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고. 너도 느끼고 있겠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경계선의 효과는 법칙의 변질과 간섭.
우로보로스와 뒤섞여 하나가 된 불멸자를 제거하여, 그 목숨을 끊어줄 수 있었다.
불멸자의 얼굴에 갑자기 절박함이 서렸다. 그가 비틀거리며 옥좌에서 일어나더니 태산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부,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부디. 부디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그는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제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위대한 불멸자. 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 분명 수많은 이들의 숭배를 받았으리라. 그 자리에 오를 때까지 수많은 난관과 고난을 이겨내고,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그런 자가 마치 아이처럼 태산의 자비를 바라 빌고 있었다.
“진정으로 네가 바란다면, 이루어줄 거야. 하지만 조건이 있어.”
“무, 무엇입니까…….”
“이 세계의 정보.”
태산은 말했다.
“이곳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
“그거라면…… 저를 죽여주신다는 말씀이시지요.”
“그래.”
불멸자의 얼굴이 희망으로 벅차올랐다.
* * *
“어디서부터 말씀드리면 됩니까?”
“처음부터. 너흰 어떻게 된 거야?”
“처음부터면…….”
불멸자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척 오랜만에 생각이란 행동을 하는 건지 그 행동은 무척 느렸지만, 그래도 이해할 정도는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뱀이 저희를 집어삼켰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도 모릅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희는 우로보로스의 배 속에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야?”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셀 수 없습니다. 그저 무척,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불멸자조차 정신의 한계에 몰리고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릴 정도의 오랜 시간.
계속해서 생각을 쥐어짜던 불멸자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뱀에게 먹히기 얼마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주의 전쟁이 끝났다고요.”
“……전쟁이 끝나?”
“네. 무슨 전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불멸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었습니다. 저희의 별은 상당히 변방에 있는 곳이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우주의 전쟁.
태산의 머릿속에 한 가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고신과 초월자의 전쟁.’
상반된 두 존재가 우주의 지배권을 두고 다툰 기나긴 전쟁. 그 전쟁의 승자는 초월자였다. 패배자인 고신은 세상 저편으로 봉인되었다.
하지만 그건 무척이나 오래전의 일이었다.
극히 일부의 초월자를 제외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그런 시대의 일이었다.
이들은 그 시대부터 여태까지,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초월자마저 아득하게 여길 시간인데 필멸자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신성으로 회복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망가진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계속 말해 봐.”
“저희는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일부 강한 이들은 무언가 변했다는 걸 느꼈지만, 그 이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불멸에 이른 자들만이 순환의 뱀이 저희를 먹어치웠다는 걸 알아차렸죠. 하지만…… 그 이상은 알지 못했습니다.”
순환의 뱀은 순환의 끝에서 움직인다. 그 하나의 사실을 제외하면 우로보로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기에 당장은 평소처럼 생활했죠.”
물건을 팔고, 우아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춤을 춘다.
그들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뱀에게 먹히고 하루란 시간이 지난 후, 세계는 다시금 되돌아갔습니다.”
마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되새기듯 불멸자의 목소리는 무척 떨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저희는 영원한 하루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들 미쳐버린 건가.”
“돌아가는 시간은 정신만큼은 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백년이 지났을 무렵부터는 제정신을 유지하는 이가 사라졌습니다. 오백 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이성이란 것이 사라졌습니다.”
쨍그랑!
바깥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멸자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저들은 그들 자신도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망가진 기계장치처럼 반복할 뿐이죠.”
불멸자의 말로 태산은 제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이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건 위석의 효과와 동일했다.
위석이 특정 대상이 아닌,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였다.
본래는 세계를 순환시키는 데 사용됐겠지만 무언가 비틀려 이런 비틀린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너 말고 강한 자들도 제법 있었다고?”
불멸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먹힌 것은 저희만이 아니었습니다. 우주의 일부가 뱃속에 들어온 만큼 불멸자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행성신 또한 있었죠.”
“딱히 느껴지는 건 없는데.”
“이곳은 그저 외곽일 뿐입니다.”
불멸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해결법을 찾지 않은 건 아닙니다. 초기에는 완전히 물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강제적인 순환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불멸자와 행성신과 함께, 해결법을 찾기 위해 순환의 뱀을 찾았습니다.”
“이미 뱀 속에 들어왔는데, 그 안에서 순환의 뱀을 찾는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초월자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우리를 집어삼킨 것은 뱀의 권능일 뿐이라고. 진정한 뱀의 몸은 깊숙한 곳에 있다고요.”
“……그걸 아는 초월자가 있어?”
마법사조차 우로보로스의 내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 갇힌 초월자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다니.
“신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분은 그러셔도 이상하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무척 강력하신 분이셨죠. 저희는 그분의 말을 듣고 함께 이동했습니다.”
결과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불멸자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깊숙한 곳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곳은…… 심연입니다. 저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왔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은 모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이거지.”
“이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불멸자는 태산을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에는 무척이나 간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제…… 저를 죽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하나만 더. 여인을 봤다고 했었지. 그건 무슨 말이야?”
“아…….”
불멸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가 기억을 쥐어짜 내며 간신히 말했다.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여인이 언젠가,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무척 두려워하고 안절부절못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생머리에 흑발이고, 흑안이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태연이다. 태산의 눈이 가라앉았다.
그것은 시간이 되돌아가기 전의 일. 하지만 불멸자는 이태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의 시간이 바깥과는 다른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좋아.”
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이제 네 소망을 이루어줄게.”
“아아. 다행이다…….”
태산은 바드레이를 들었다. 잿빛이 일어나 바드레이를 뒤덮었다.
“감사드립니다…….”
태산은 검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저는…… 저들의 왕입니다.”
불멸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수많은 필멸자가, 되돌아가는 시간에 미쳐버린 채 있었다.
“세계의 주인이죠. 저들을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쳤습니다. 저는 쉬고 싶습니다.”
“그래.”
푸욱.
검이 불멸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불멸자는 무척이나 안도한, 이제야 쉴 수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경계선이 그를 뒤섞은 우로보로스의 힘을 배제하고,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그 안에 담긴 힘이 아카샤와 바드레이에게 깃들었다.
[이거 참…… 기분이 묘하네.]바드레이가 애매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는 생전에 불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불멸이란 위대하고 드높은 경지였다.
그런 경지에 달한 자가 스스로 죽음을 바랐다. 태산은 검을 갈무리하고 얻어낸 정보를 정리했다.
‘우로보로스의 몸.’
우주를 집어삼킨 우로보로스는 그저 권능. 우로보로스의 실체는 이 안 깊숙한 곳에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어진다.’
이곳처럼 단순히 시간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 아예 이질적인 무언가가 된다. 불멸자마저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초월자.’
그것도 상당히 급이 높은 존재. 어쩌면 개념 자체를 관장하는 레벨의 초월자.
그가 이곳에 있다.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만한 격을 가진 존재라면 버텨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일단 목적은 그 두 가지로 정한다. 태산이 마나를 모았다. 응축된 마나는 신성과 검은색에 뒤섞였다.
[당신은 텔레포트[혼돈]를 발동했다.]태산의 몸이 우로보로스의 더욱 깊은 곳으로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