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485
제 485화
485. 91층. 우로보로스 (6)
일단은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보다 깊은 곳. 우로보로스의 심연으로.
텔레포트의 최대 거리는 지표면에서 대기권까지지만 경계선을 섞어서 그런지 그보다 훨씬 멀리 이동할 수 있었다. 태산은 자신이 있었던 행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로보로스는 우주 그 자체를 집어삼켰다.
아무리 텔레포트를 발동하더라도 목적지까지는 쉽게 도달할 수 없었다.
[당신은 텔레포트[혼돈]를 발동했다.]그러니까 계속하여 공간을 뛰어넘어 깊은 곳으로 향한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수많은 행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가는 수천만의 생명들 또한 보였다.
우로보로스에게 삼켜진 행성은 하나가 아니었다. 생명이 살아가는 별 수십이 우로보로스에게 먹혀 그와 융화되어 있었다.
태산은 행성들을 스쳐 지나갔다. 경계선으로 해방해줄 수는 있지만, 한두 명이 아닌 만큼 소모가 너무 컸다.
원흉을 제거하면 저들도 자연스레 해방하게 되리라. 태산은 마나를 모았다.
[당신은 마법 중첩을 발동했다.] [당신은 텔레포트[혼돈]를 발동했다.]혼돈의 텔레포트를 중첩하여, 해방한다.
육체가 공간을 뛰어넘어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얼마만큼 이동했을까. 태산은 어느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태까지는 일정 주기마다 강제적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우로보로스의 영향력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아니었다. 그저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육체의 시간이 어지럽게 일그러지려 하고 있었다.
태산이 검은색으로 전신을 둘렀다. 스멀스멀 파고들려는 우로보로스의 권능이 검은색에 가로막혔다.
“가까워지고 있군.”
외곽에서 중심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로보로스의 권능이 점점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태산은 다시금 텔레포트를 발동해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사방에서 느껴지는 우로보로스의 힘이 짙어졌다. 검은색으로 두르지 않았다면 태산도 강한 압박감을 느낄 정도였다.
‘살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한때 생명으로 보였던 것들은 가끔 보였다. 개중에는 불멸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저들이 처음 만난 불멸자가 말했던 우로보로스를 찾아 떠난 이들이겠지.
하지만 그들 모두 권능에 집어삼켜, 더 이상 생명이라 할 수 없는 형태로 바뀌어버린 지 오래였다.
태산은 더욱 안으로 향했다.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함에도 거리는 무척이나 멀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이동했다.
그리고 그 결과, 태산은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음.”
태산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전신에 두른 검은색이 비명을 지르며 비틀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검은색으로도 버틸 수 없다.
태산은 경계선으로 전신을 두르고 주변을 둘러봤다.
[……여긴 뭐 하는 곳이야?]유령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공간이, 시간이 마구잡이로 비틀려 있었다. 마치 환각을 보는 듯한 풍경이었다.
[오래 머물기에는 좋은 곳은 아닌 거 같은데.]“목적을 이루면 떠날 거야.”
그러려면 우선 뱀의 위치를 찾아야 했다.
태산은 자신을 지킨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뱀은 쉽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틀린 공간과 시간이 시야와 감각을 어지럽혔다.
일단은 저것을 먼저 해결해야 파악이 가능할 것 같았다.
결론을 내린 태산은 힘을 끌어모았다.
뒤섞인 힘이 우로보로스의 깊은 곳에서 터진다.
안개가 밀려나듯 공간과 시간이 강제적으로 배제되어 태산의 시야가 넓어진다. 태산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뱀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것이 보였다.
태산이 눈을 찡그렸다.
“저건 뭐야?”
그것은 무형의 힘이었다.
마치 따개비처럼 비틀린 공간과 시간 속에 무언가가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을 비틀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없애고 있었다.
그리고 무형의 힘에서는 고신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우로보로스가 망가진 이유가 고신 때문이었나.’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아마 마법사도 짐작하고 있었겠지. 우로보로스가 누군가에 의해 움직였다면, 그걸 할 수 있는 존재는 고신 밖에 없었다.
태산이 정확한 확인을 위해 움직이려는 순간이었다.
[감히!!!]천지가 울리는 목소리가 태산의 귀를 때렸다.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에 태산이 반사적으로 검을 들었다.
[그것들의 떨거지가! 이곳으로 기어와!]거대한 힘이 태산을 덮친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응집된 어떠한 개념.
저것에 직격당한다면, 죽는다. 스킬이고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공격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태산은 경계선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자신을 덮치는 힘을 향해 거칠게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앙!
힘이 폭발한다.
공간이 떨린다. 태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경계선이 그를 덮친 힘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힘 자체가 순수하게 무거웠다. 단순한 무게가 아닌, 그 안에 한 존재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너무나도 높은 밀도에 경계선으로도 밀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태산은 경계선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
검 끝에 모아내고, 그대로 힘을 주었다. 그를 덮친 공격이 반으로 갈라졌다.
쿠구구구궁!
“뭐 이딴.”
태산이 혀를 찼다. 단 일격을 막아내는 데 경계선이 상당히 소모되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다시금 울렸다.
[감히! 비천한 것이!]강렬한 살의가 실체화되어 태산을 억압한다. 평범한 자였다면, 설령 불멸자라도 버티지 못하고 숨이 멈출 만한 격이었다.
[죽어라.]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것이 떨어진다.
응집된 법칙이 실체를 가진 채 태산을 죽이려 한다.
저것은 법칙 자체를 지배하고 관장하는 존재만이 다룰 수 있는 힘.
지금의 태산보다 명백히 드높은 존재가 진심으로 가하는 일격이었다.
[당신은 혼돈부름을 발동했다.]태산의 전신이 잿빛의 영역으로 둘린다. 그대로 검에 담아, 자신을 내리찍는 힘을 향해 찌른다.
[천한 것. 네놈들의 오염 따위가 나에게 통용될 것 같으냐?]조소 어린 목소리가 울렸지만 태산은 반응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카가가가각!
법칙 그 자체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응집된 법칙에서 태산을 향한 살의가 사라진다.
[뭐?]당혹에 찬 목소리가 울린다. 태산은 영역을 터트렸다. 그를 덮친 법칙이 사라졌다.
“죽겠군.”
태산은 부하를 억지로 억누르고, 검을 잡았다.
그를 공격한 존재는 당황한 듯 더 이상 공격을 가하지 않고 있었다. 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위대한 초월자시여.”
침묵이 비틀린 공간 속에서 맴돈다. 태산을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키이잉!
소음과 함께 힘이 집중되었다.
태산의 앞에 괴팍한 인상의 노인이 찡그린 얼굴로 등장했다.
“너…… 뭐야? 분명 그것들의 힘이 느껴지는데, 노예처럼 보이지는 않네.”
“저는 그들의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이지요.”
태산은 차분히 말했다.
“저는 미궁을 만든 마법사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왔습니다.”
“미궁이 뭔데?”
“…….”
태산은 말문이 막혔다. 눈앞의 노인은 미궁이란 장소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다.
노인은 모르겠다는 얼굴로 태산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익숙한 놈들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태산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초월자들의 축복을 받은 상태였다. 그들 중 일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었으니, 노인도 그들에 대해서 아는 모양이었다.
“뭔가 이상하지만, 뭐. 적은 아닌 거 같군. 마법사인가 하는 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초월자지? 이곳의 정찰을 위해서 들어왔냐?”
“네.”
“흐음. 이곳을 버틸만한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은데…… 내 법칙에 개입한 것도 그렇고, 이상한 잿빛도 그렇고. 상당히 이질적이야. 바깥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노인은 투덜거렸다. 적의는 완전히 사라졌기에 태산은 경계를 풀었다.
“당신의 신명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산은 조용히 물었다.
노인은 강했다. 그것도 태산보다 압도적으로. 이만한 강함을 가진 존재를 태산은 몇 번 본 적 있었다.
눈앞의 노인은 라키라타스, 마리아, 마법사와 같이, 최상위의 초월자였다.
노인은 답했다.
“나는 본질의 신. 에센셜이다.”
* * *
본질이란 개념을 관장하는 초월자.
눈앞의 노인이 불멸자가 말했던 위대한 자라는 걸 태산은 알 수 있었다.
에센셜은 가늘게 뜬 눈으로 태산을 바라봤다.
“……초월의 경지에 도달해 있지만, 비틀려 있군. 제대로 읽을 수 없어.”
의문스러운 눈으로 태산을 바라보던 에센셜이 입을 열었다.
“너는 우로보로스의 해결을 위해서 이곳에 온 거겠지?”
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센셜은 턱을 쓰다듬었다.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신뢰할 수 없는 놈한테 자신의 축복을 줄 리는 없으니. 상관없나.”
에센셜은 호탕하게 웃으며 태산의 등을 두들겼다.
“갑자기 공격해서 미안하게 됐다! 그 잡것들의 떨거지인 줄 알았거든. 내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는 마땅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군.”
“괜찮습니다만…… 떨거지라면 고신의 하수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주 간간이 이곳으로 들어와서 귀찮게 하고 있지. 죄다 모가지를 분질러버렸지만, 질리지도 않는 것들이야.”
에센셜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로보로스의 깊은 곳까지 들어올 정도면, 최소 불멸 이상의 하수인이었으리라.
하지만 에센셜의 목소리는 날파리 그 이상의 취급이 아니었다. 그리고 에센셜에겐 그만한 힘이 있었다.
“일단 해결을 위해 왔다면 나와는 협력 관계겠군. 하나보단 둘이 좋겠지.”
에센셜은 씨익 웃었다.
“이 지긋지긋한 흐름 속에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건, 좋은 일이야.”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물어라. 답해주지.”
“에센셜님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계셨던 겁니까?”
“흠.”
에센셜이 턱을 쓰다듬었다. 잠시 시간을 파악한 그가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나도 모르겠군. 고신들이 세상에서 쫓겨난 거의 바로 직후였으니까,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마법사에게 들었던 것과 같았다. 에센셜은 찌푸려진 얼굴로 말했다.
“우린 분명 그것들을 상대로 승리했다. 하지만 그 잡것들이 세상에 자신의 잔재들을 미리 퍼트려놨었다. 우로보로스가 비틀린 이유도 그중 하나지.”
“역시 고신이군요.”
“순환의 뱀이 움직이려면 한참 남았다. 하지만 고신이 직접 개입하여 우로보로스가 망가진 것이지. 그 덕에 나도 휘말려 이곳에 갇혀 있다. 아주 귀찮은 것들이란 말이지.”
“혹시 그 고신이 누구인지 아시고 계십니까?”
“알고말고.”
에센셜은 입을 열었다.
“무가치한 자. 그 잡놈이다.”
무가치한 자. 고신의 전초지에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태산이 작게 중얼거렸다.
“찬탈자는 아닌 건가.”
“찬탈자? 그놈을 알고 있어? 다른 신들이 어지간히 너를 총애하나 보군.”
에센셜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반응에 태산은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찬탈자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겁니까?”
“그걸 왜 몰라?”
“…….”
에센셜이 힐끔 태산의 반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저것도 그놈이랑 연관이 있군. 참 거지 같은 놈이야.”
[네?]아카샤의 목소리에 혼란이 섞여 있었다.
에센셜은 몸을 돌렸다.
“일단 따라와라. 천천히 이야기해보자고.”
“그게 좋을 것 같군요.”
태산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마법사를 비롯한 마신은 찬탈자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들이 잊었다기보다는, 찬탈자의 권능이 기억 속에서 강제로 지워버린 쪽에 가까웠다. 그래서 태산도 찬탈자에 대한 정보는 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앞의 초월자는 찬탈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로보로스의 안에 있어서인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회였다. 생각지 못하게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