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cension Through Skills RAW novel - Chapter 518
제 518화
518. 여덟 번째 귀환, 지구 (3)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수호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가…… 약하다고?”
“약하지는 않아. 약하지는.”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세계를 구할 수준은 아닌 거 같거든. 정말 세계를 구한 거 맞아?”
“감히! 건방진 입을 놀려!”
참지 못한 수호자 한 명이 노성을 터트렸다. 그 손에는 무기가 강하게 쥐여 있었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데 뭐 어쩌란 거야?”
아멜리아가 투덜거렸다. 그 얼굴에는 일말의 긴장감도 없었다.
아크라시안이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입가를 비틀었다.
“……강하군.”
“적당히 강하지. 너무 괴물 같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야. 너희는 결국 이 세계조차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건 뭐…….”
아멜리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자체는 사실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희가 강한 것도 아닌데.”
“너.”
순간, 살의가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충돌할 듯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교육이 필요하겠어.”
아크라시안이 검을 뽑으려는 순간이었다. 그 일련의 동작을 아멜리아는 태연히 지켜봤다.
하지만 검은 뽑히지 않았다. 어느샌가 나타난 태산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태산.”
“가, 강태산 님.”
태산은 아무 말 없이 아크라시안을 바라봤다. 감정 없는 시선에 아크라시안은 순간 식은땀을 흘렸다.
태산은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다가, 다시 떠났다.
아크라시안은 간신히 흥분을 억눌렀다.
‘위험할 뻔했군.’
이들의 주인은 초월자. 그가 마음대로 공격을 했다가는 초월자의 분노가 덮칠 수 있다.
아크라시안은 냉정을 되찾았다.
“무어라 지껄이든 상관없다. 어찌 됐든 너희는 이 자그마한 세계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세계를 구했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아멜리아도 거기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단지 의심스러울 뿐.
“……뭔지 알겠네.”
아멜리아가 홀로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를 물러선 거라 생각한 건지 아크라시안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너희의 경험과 지식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 어리석지는 않을 터. 잘 생각해봐라.”
침묵이 맴돌았다.
* * *
결론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수호자들의 말을 따르게 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호자들은 수많은 세계를 고신의 손아귀에서 지켜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에 반해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순수한 실적의 차이가 나니, 따르지 않고 고집부릴 수도 없었다. 전체적인 의견은 수호자들을 따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 요소는 있었다.
아멜리아와 이태연과 같은, 심층을 밟은 자들.
그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당장 아멜리아는 수호자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반발은 없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 편하게 가고. 잘 됐지.”
“알아서 해.”
이태연은 태평하게 말했다. 아멜리아도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괜찮은가? 우리는 저들의 말을 따를 거다.”
“어차피 싸울 것도 아니잖아? 그럼 신경 안 써. 물론 나는 따를 생각 없지만.”
“뭐라고?”
“내 주인은 태산이야.”
아멜리아는 부끄러움 없이 말했다.
그녀는 태산의 하나뿐인 사도다. 그에게 영혼을 바쳤으며, 그녀의 모든 것은 태산의 소유다.
“나한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는 태산 하나야.”
그 외의 존재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를 속박할 수 없다.
“김휘연이나 올리버. 너희야 태산이 직접 대리인을 맡겼으니 일단은 따르겠지만…… 저것들은 아니거든.”
“괜찮나? 자칫 충돌이 일어나면…….”
“그게 왜?”
무엇이 문제냐는 듯, 너무나도 무심한 태도였다. 이태연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태도가 당황스러웠지만 우선은 결론은 났다.
수호자들은 플레이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억이나 되는 숫자라 처음에는 조금 애를 먹었지만, 김휘연의 도움으로 곧 통제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출발했다. 그린란드로. 하늘의 균열 바로 아래를 향해.
이번에도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괴물들이 등장했다.
[우어어어어!] [크어어어!] [괴물 48881이 등장했다.] [괴물 97745가 등장했다.] [괴물 32319가 등장했다.] [괴물 47515가 등장했다.]괴물 수천이 정면에서 달려든다. 아크라시안이 기다렸다는 듯 무기를 쥐었다.
“보아라. 무지한 이들이여.”
그는 당당하게,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수호자들이 질주한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수천의 괴물과 충돌한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괴물들이 찢겨 소멸한다.
“하하하하!”
수호자 하나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도끼를 휘두른다. 괴물들이 쪼개지고 갈라진다.
우우우웅!
괴물 하나가 도끼를 피하고 수호자의 팔을 붙잡는다.
“흥!”
수호자가 거칠게 몸을 밀친다. 괴물이 날아간다.
콰드득.
수호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괴물들이 정리되어 나갔다.
오래지 않아 모든 괴물을 처리한 수호자들은, 뿌듯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우오오오오!”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아크라시안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지구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많은 당혹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그것이 자신들의 강함에 대해 놀란 것이라 생각한 건지, 아크라시안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구했다. 이 정도 힘은 당연히 가지고 있다.”
기분이 좋아진 아크라시안은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뭐. 이 정도면 제법 강한 괴물들이군. 초월자분의 도움이 없다면 여태 처리하지 못했을 법해. 노력했군.”
다시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당황한 건, 수호자들의 강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왜 겨우 B급이야?”
최소 A급 수백에서 수천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겨우 B급이었다. 저 정도는 지금 그들이라도 별다른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세계를 구원한 수호자들이 겨우 저 정도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괴리감을 느꼈다. 위대한 전사가 상대한 가장 무서운 적이 동네 들개라는 말을 들은 느낌이었다.
물론 문제는 없었다. 결국 괴물들은 처치할 수 있었으니. 수호자들 덕분에 그들이 나서서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무 피해 없이 나아갈 수 있으니, 손해는 아니었다. 굳이 의문을 풀 이유가 없었다.
일단은 현상 유지인 상태가 되었지만, 김휘연은 고민이 많아졌다.
그들은 수호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수많은 세계를 구했다는 것만 알지, 그들이 어떤 집단인지, 성향이 어떻게 되는지는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판단을 맡겨도 되는가.
태산의 대리인으로 수많은 지휘를 했던 그녀로선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강태산을 찾아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자신의 고민을 태산에게 말했다.
그리고 태산은 답했다.
“너희가 알아서 해.”
“네?”
“수호자와 너희의 문제에는 난 관여할 생각 없어.”
필멸자들의 알력 다툼이다. 괴물들처럼 멸망의 위험에 해당되는 일도, 그렇다고 다수의 목숨이 위험한 일도,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너희는 나한테만 너무 의존하면 안 돼. 물론 의존은 할 수밖에 없지. 내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의 판단까지 나한테 맡겨버리면, 너희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는 거야.”
“그…….”
김휘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수호자들과 그들의 문제는 태산의 도움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습관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온 쪽에 가까웠다.
“이제는 너희 스스로 자립할 필요가 있어.”
무엇보다 태산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는 문제였다.
“나도 나대로 할 일이 있고.”
“할 일이요?”
“미리 가서 확인을 해볼 생각이거든.”
태산이 손가락을 튕겼다. 바람을 가르며 미네르바가 모습을 보였다.
“읏차. 너무 오랜만인 거 아니야?”
“미안. 하지만 네가 나올 일이 없어서.”
지금의 태산이 싸우는 적들은 전부 미네르바가 어찌할 수 없는 적들뿐이었다. 딱히 소환할 일이 없었다.
“미네르바. 이들이 바다를 건널 때 길을 만들어줘.”
“알았어!”
태산은 몸을 일으켰다. 김휘연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저. 태산 씨?”
“모르는 게 있으면 다이애나한테 물어봐. 잘 부탁한다.”
그 말과 함께, 태산은 사라졌다. 김휘연은 멍한 얼굴로 텅 빈 하늘을 바라봤다.
* * *
태산이 사라졌다.
그 사실은 오래지 않아 퍼졌다. 사람들은 동요했다. 자신들을 이끄는 절대적인 지주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그들을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김휘연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다독였다.
태산은 할 일을 정리하기 위해 떠난 거라고.
우리의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의 혼란은 간신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태산이 떠났다는 걸 알 게 된 수호자들은 본성을 드러냈다.
밤이 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거처를 마련하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다.
그 순간 수호자들이 사람들을 붙잡았다.
“정지.”
아크라시안은 사람들의 앞에서 말했다.
“오늘부터 허락 없이 모여서 잠을 자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 타인과 거리를 벌린 채 수면을 취해라.”
“네?”
“질서와 규율이 흐트러진다. 그렇다면 그런 거로 알도록.”
“그게 무슨.”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래서 무엇이 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규율이었다. 아크라시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정한 규율을 무시하겠다는 건가.”
살벌한 목소리와 함께 아크라시안이 검을 꺼냈다. 강압적인 태도에 사람들은 투덜거리며 아크라시안의 명령을 따랐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불편해지긴 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갈수록 아크라시안이 정한 규율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괴물들과 싸우고 있을 때는 떠들지 말아라.”
“우리의 식사에 수발을 들 인원이 필요하다. 데려와라.”
“우리의 몸을 씻겨줄 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을 돕기 위해 지구에 온 이들이다. 그만큼 호의적으로 대하고, 많은 것을 양보하려고 했지만 점점 선을 넘고 있었다. 마치 귀족과 노예처럼, 상하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사람들의 불만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다.
“뭐야?”
“아무리 도우러 왔다고 해도 이게 맞는 거야?”
불만은 원래 그들을 이끌었던 김휘연에게 전달되었다. 결국 김휘연은 다이애나를 찾아갔다.
“다이애나 님은 저들에 대해서 아시나요?”
“알고 있습니다.”
다이애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했다. 고신의 위협에서 세계를 구하는 자들이라고.
그리고 자신의 세계도 구하러 왔었다고.
“하지만 제 세계는 고신에 의해 멸망하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착각이었죠.”
다이애나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들은 저희의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절망하던 그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죠. 사람들은 기뻐하며 그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음식과 술. 금은보화. 여자까지요.”
“그러면 공주님의 세계는 멸망하지 않으신 건가요?”
“아니요.”
다이애나는 차분히 말했다.
“제 세계는 멸망했습니다.”
“네?”
김휘연의 동공이 커졌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라면 멸망할 이유가 없었다.
“멸망한 이유는 간단하다.”
벨뎅키아가 경멸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세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 즐길 걸 전부 즐긴 저것들은 고신이 없다면 이딴 세계 볼일 없다고 떠났거든.”
“하, 하지만 구원할 수 있다고…….”
“가능하다고 말했지. 해준다는 말은 안 했다고 비웃더군. 나도 세계가 멸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기에 뭐라 따질 생각은 없지만, 참 웃기는 것들이야.”
“…….”
김휘연은 입을 다물었다. 다이애나는 차갑게 말했다.
“저들은 분명 정의로운 이들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선한 자들도 아닙니다.”
“애초에 정의롭지도 않았으면 공주님이 박살을 냈을 거다. 참고 계시는 거에 가깝지.”
“그렇…… 군요.”
김휘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이애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을 고민하시는 거죠?”
“네?”
“고민하실 필요는 없으실 텐데요.”
“하지만 그들은 저희를 돕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 만큼 일단 그들의 말을…….”
“아니요.”
다이애나는 김휘연의 말을 끊었다.
“여러분은 수호자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네?”
“아아. 어째서 그러시나 했더니.”
다이애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멜리아 씨나 이태연 씨는 알고 계시는 것 같았는데. 김휘연 씨는 모르고 계시군요.”
“그게 무슨…….”
“저희가 과거 저들의 말을 믿고 대우했던 건, 어디까지나 저들이 저희보다 훨씬 강했고, 세계를 구할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러분은 아니에요.”
“……그 말씀은.”
“어째서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의 말을 따르고 계신 거죠? 저들은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아닌데.”
다이애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순수한 의문을 담아 물었다.
* * *
“심심하군.”
수호자 한 명이 투덜거렸다.
괴물들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렇게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유흥거리밖에 없는데 죄다 파괴되어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흠…….”
그는 입맛을 다셨다.
그의 앞에 수많은 지구의 사람들이 지나갔다.
잠시 그들을 훑은 수호자가 움직였다.
“거기. 너. 이리로 와라.”
그는 한 여인을 붙잡았다. 여인이 애매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그래.”
여인을 이끌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향한 그는 당당히 말했다.
“우리는 너희를 구원하고 있다. 이 멸망하는 세계를 지키고 있지.”
“어…… 그래서?”
“그러면 너희는 그에 걸맞은 보답을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수호자의 얼굴에는 탐욕이 있었다.
“아아.”
여인은 무엇을 바라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싫은데.”
“……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싫다고.”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수호자가 주먹을 들었다. 일단 위협한 다음에 강제로 말을 듣게 할 생각이었다.
“귀찮은데.”
하지만 여인. 이태연의 표정에 긴장감은 없었다.
그저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이태연의 손이 흔들렸다.
콰드득.
그와 동시에 수호자의 몸이 벽에 처박혔다.
* * *
그리고 그때.
태산은 균열의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흐음.”
하늘에 뚫린 거대한 균열.
그것은 확실히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너머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
‘문지기.’
균열을 지키는 자.
“이번엔 저건가.”
태산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