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73
Chapter.6 영광의 이름으로(8)
***
끼이익-
– 노루Drug해요 : 와, 저걸 그냥 열어버리네.
– takealook : 가챠할 때 재물도 안 바치고 10연차를 질러버리는 저 패기! 역시 한 집단의 수장이 되려면 저런 배포는 있어야 하는구나!
– 간장게이바 : ★★ 하급 이단 광신도 x 10
문고리에 손을 얹자 대화방 사람들이 뭐 가챠용 BGM도 안 틀었다느니, 그런 안일한 정신머리로는 좋은 동료를 얻을 수 없다느니 하는데 싹 다 무시했다. 이게 구세계 말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리얼리티를 자랑하는 게드로이츠의 게임인데, 그런 민간 신앙 따위가 끼어들 틈이 어디있겠냐고.
‘세나디스는 분명 대주교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했었지. 그렇다는 건 이 자살 행이 광명 교단 본단에서 계획된 임무라는 거야. 그냥 툭, 던지는 잽으로 끝날 사이즈가 아니라는거야.’
광명 교단쯤 되는 교단의 본단은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교세도 확장해야 하지, 이단도 때려잡아야 하지, 그러려면 성기사도 열심히 키워야 하고 신앙이라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수도 귀족들의 정치적 복마전도 헤쳐나와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시간을 쪼개서 세운 계획이다. 충분히 적의 심장부를 향해 뚫고 나갈 수 있을 정도는 준비해뒀을 것이라는 말이다.
탁-
그렇게 기대감에 문을 연 교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와장창!
“캬아아악!”
“이….이단의 짐승! 드디어 속내를 드러냈구나! 죽어라!”
하얀 법복을 입은 바싹 마른 대머리 수도승과, 그의 주변에서 날뛰고 있는 털복숭이 남자.
“배, 배고파….”
“아, 아아아…. 스승님, 저는, 마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안 된다! 이보게! 거기 아무도 없는가!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물과 먹을 것을!”
분명 방의 한쪽 구석에 잘 차려진 테이블과 빵이 준비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며칠은 굶은 듯 바싹 마른 몰골로 사경을 헤매는 무리.
그리고….
킁킁, 킁킁킁.
“그, 그워?”
무슨 쇠로 만든 조형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움직이면서 나를 돌아본다. 기둥처럼 굵직한 팔다리와, 그 위에 입혀진 커다란 갑옷. 그 갑옷 사이로 보이는 연녹색 피부.
기다란 엄니와 들창코를 가진 연녹색 얼굴이 교수에게 불쑥 다가오더니,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반가운 얼굴을 했다.
“작은…. 큰 인간?”
“너, 너 설마…. 노툼이냐?”
“작은 큰 인간! 다시만났다!”
노툼은 믿을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교수를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틀림없었다. 그를 향해 호의를 가지고, 작은 큰 인간 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트롤. 눈앞의 갑옷 입은 트롤은 그가 이 게임에 처음 들어왔을 무렵 숲에서 만났던 말하는 트롤, 히어로 유닛 노툼이었다.
***
화악! 화아악!
교수는 일단 노툼과 재회의 기쁨은 뒤로 미뤄두고, 이곳에 있는 인원들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정신 쇠약이 극복된 정신 쇠약으로 바뀐 뒤로 그 지긋지긋한 두통이 사라지면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주변 정보가 물 흐르듯 흡수되었다.
대충 훑어보니,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선 가장 알기 쉬운, 굶어 죽어가는 무리.
“으으으으, 이, 이보게. 자네 방금 밖에서 들어왔지? 호, 혹시 먹을만한 것 좀 있나?”
피골이 상접한 노인. 분명 테이블 위에 좀 마른 감이 있긴 하지만 먹음직스러운 빵이 잔뜩 올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인은 그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주린 배를 틀어쥐고 있었다.
“오트만. 리드 플로우 학파의 마법사 오트만 보들레르님이 맞으십니까?”
“나, 나를 아는가?”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럼. 그쪽은 지금 모습의 나는 못 알아보겠지만.
오트만 보들레르. 처음 들어올 때부터 익숙한 얼굴이다 했더니, 이 영감님, 그날 마탑에서 만났던 그 마법사다. 내가 토브룬 병력들을 상대로 인질극한다고 탑에서 막 쥐고 흔들었던, 제자들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던 착한 마법사 할아버지.
“뒤에 있는 분들은 제자분들이고요.”
“이, 이런…. 다 알고있는 것을 보니 교단이 보낸 사람이었나.”
살짝 실망한 얼굴의 노인은, 돌연 눈을 카악! 하고 치뜨며 교수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그렇다면 제발 교단에 우리 리드플로우 학파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달라고 좀 전해주게! 그 실험은 아이작과 그 제자들의 독단이었어! 탑주님도 마탑을 떠나있는 상황이라, 그 다음으로 위계가 높은 아이작 그놈이 자기 마음대로 마탑을 주무르고 있었단 말일ㅅ-”
오트만의 필사적인 변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하면, 교수가 인벤토리에서 생선과 맑은 물이 담긴 가죽 주머니를 잔뜩 꺼냈으니까.
벌떡!
“비, 비린내!”
“먹을 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토브룬으로 오기 전, 강에서 몇 마리 잡아서 넣어놓은 생선과 비상시 진정제처럼 쓰려고 잔뜩 들고다니던 맑은 물.
인벤토리에서 꺼내자마자 사흘 굶은 들개처럼 달려드는 그들을 보며 교수는 확신했다. 한쪽에 모여있던 거렁뱅이 무리는, 그때 봤던 리드플로우 학파의 마법사들이 맞았다.
교수는 짐승처럼 날것의, 그것도 잡은 지 하루가 지나 비린내가 제법 심한 손질도 안한 날생선을 마구 입에 쑤셔넣고는 폭포수처럼 눈물을 흘리는 마법사들을 보며, 그의 옆에서 간절한 표정을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는 오트만 마법사에게 따로 한 마리를 건넸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네 삶 또한 흘러가기를. 드시지요 오트만님. 저도 물의 길을 걷는자입니다.”
“가, 강물이 바다를 향하듯 만남의 끝에 같은 곳을 향하기를. 오오오, 정녕, 흐름이 그대를 인도했구려! 고맙네! 정말 고맙네!”
교수가 수계 마탑 사람들의 인사를 입에 담으며 손 위로 작은 물방울을 띄워 올리자, 지금까지 그를 경계하던 오트만의 표정이 순식간에 확 풀려버렸다.
게걸스럽게, 하지만 제자들과는 달리 맨손으로도 솜씨 좋게 날생선을 발라먹는 그를 보며, 교수는 상황이 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교단이…. 그날 일에 대해 리드플로우 학파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교수의 물음에 오트만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의심이 아니라 확신일세. 그 붉은 뮤트가 마탑을 저리 만들어놓고 도망친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광명 교단의 성기사들이 들이닥쳤지.”
“탑에 그대로 계셨단 말입니까? 제가 듣기로는 엄청난 양의 물이 탑에서 쏟아져나와 주변 사람들이 다 휩쓸렸다고….”
“아, 그거야 평범한 사람들이나 그런거고. 우리는 수계 마법사가 아닌가? 마나가 봉쇄되고 몸이 묶여있다고 해도 우리 깨달음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지. 놈들이 밖으로 향했으니 익숙한 마탑에 그대로 있는게 더 안전하겠다 싶어서 그대로 물이 우리 주변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했네. 겸사겸사 수압을 이용해 묶인 줄도 풀었고.”
음. 겨우 1위계 마법 좀 쓸 줄 안다고 나도 마법사입네, 하고 다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게 진짜 수계마법에 평생을 바친 마법사의 짬이구나. 공마 수정 바로 옆이라 마나를 한 톨도 못 쓰는 상황에서 그 엄청난 물이 쏟아지는데, 휩쓸리기는커녕 태평하게 앉아있었다니.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성기사들이 들이닥쳐서 끌고 온 다음 [왜 뮤트가 습격한 자리에 그렇게 태평하게 있었나.] , [어째서 인류의 적인 그들이 당신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도망쳤나.] 같은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못 하니 그때부터 여기에 억류했다는 말이었다.
“우린 정말 억울하네! 대관절 마탑을 때려 부순 게 그 괴물들인데, 어떻게 우리가 괴물의 편이 될 수 있겠냔 말이야! 창밖으로 봤는데 자네, 사제를 따라 제 발로 들어오더군! 교단에게 무슨 말을 들었지? 그렇지! 제발 우리 좀 살려주게! 나 같은 늙은이는 몰라도, 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은 살아야 할게 아닌가! 이단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일세!”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이 할아버지는 틈만 나면 제자들부터 살리려고 들었다.
– takealook : 교수 혐성 수준.
– Jokass : professor,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 takealook : 선량하기 짝이 없는, 제자들 마법이나 가르치고, 날생선에 물이나 한잔 마시면 그저 좋다는 저 욕심없는 할아버지와 그 제자들을, 이 지옥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은 게 누구지?
– 하이웨이나초맨 : 사탄 일동 기립박수! 저희 지옥은 professor 님이 사망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망한 뒤 이적 시즌이 오면 최고의 조건으로 교수님을 모실 것을-
‘으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솔직히 이 마법사들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마탑이 완전히 알거지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귀족에 마법사잖아? 어디 가서 굶고 살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뜬금없이 이단으로 몰려서 교단에 잡혀 오다니. 안 봐도 뻔하다. 결사대로 써먹을 인재를 물색하고 있는데, 웬 마법사들이 무더기로 이단 사건에 연루되었네? 보나마나 되도 않는 이유를 갖다 붙여서 얼씨구 좋다 하고 납치해온 것이다.
교수는 벌써 여섯 마리가 넘는 생선을 다 뜯어먹고 이제 살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마법사들을 보았다. 오트만 마법사를 포함해서 다섯 명. 그때 포로로 잡아뒀던 마법사는 열 다섯 명이 넘었는데, 왜 이 사람들만 있지? 설마…. 진짜 나 때문에?
“이게…. 리드플로우 학파의 마법사 전부입니까? 제가 알기론 이것보다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설마…. 교단에서 그 사람들을…. 주, 죽….!”
교수가 끔찍한 상상을 하며 뒷말을 흐리자 오트만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행히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다네. 나머지 아이들은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이 데려갔어. 여기 남은 이 아이들은, 전부 평민 출신 마법사들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오트만 님도 가문에서 사람을 보냈지만, 이분은 자진해서 이곳에 남으셨으니까요.”
“예끼, 이 녀석아. 그런 얘기는 뭐 하러 하는게야. 당연한 소리를 가지고. 내가 이 수상쩍은 곳에 너희들만 남기고 집에 가서 어떻게 발을 뻗고 자겠느냐.”
“마, 마법사님!”
“스승니임! 평생 아버지처럼 모시겠습니다!!”
와락!
이제 좀 살만해졌는지 저들끼리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마법사들. 일단 이들은 더 알아볼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정확한 전투력은 나중에 천천히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다음은, 아까부터 계속 흐뭇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노툼.
– 간장게이바 : 얘가 진짜배기지.
– 스피드 웨건 : 얘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좀 물어봐. 얘도 정보 없는 히어로 유닛이잖음. 분명 영입 실패 떴는데 이벤트로 강제 동료 되는 거 보니까 꽤 중요한 놈 같음.
– Jokass : 새삼 천류제 그 인간이 얼마나 월드 3을 날먹으로 클리어했는지가 느껴진다. 딱 봐도 중요한 히어로 유닛이 죄다 정보 하나 나온게 없으니. 그러니 몇 년째 월드 4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
– takealook : 무장트롤! 무장트롤! 무장트롤! 무장트롤!
– 하이웨이나초맨 : 히어로 유닛 무장트롤이면 4성 정도는 충분하지.
그래. 나도 얘 이야기는 좀 궁금했어. 그도 그럴 게, 그때 내가 홀로서기니 뭐니 하면서 떼어놓고 숲으로 돌아갔거든? 그런데 왜 교단에 잡혀있는지 아무리 깡통을 굴려봐도 모르겠단 말이지?
교수가 아직도 부둥켜안고 뭐 영원히…. 평생을…. 아버지…. 마나에걸고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는 마법사들을 뒤로하고 노툼에게 향하자, 노툼은 두툼한 손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퍽퍽 두들겼다. 여전히 녀석은 내게 호의가 넘치는 것 같았다.
교수가 그 옆에 앉자, 노툼은 손을 들어 교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큰 인간. 훌륭하게 성장했다. 이제 작은 중간 인간? ….음. 아니. 아직 노툼보다 작다. 여전히 작은 큰 인간. 그래도 많이 변했다. 홀로서기, 매우 힘들다. 작은 큰 인간, 많이 다쳤다. 아팠나?”
“어….음….”
툭툭.
“애썼다. 잘 컸다.”
‘크흑!’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으로 그의 몸에 생긴 흉터를 살피고 있는 노툼을 보고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잔혹한 GG의 세계에서 조건 없이 그를 걱정해주는 동료라니. 이 녀석, 사람 감동하게 하는 재주가 있잖아.
교수도 노툼을 따라 말없이 노툼의 무릎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역시 이 녀석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찡한 코 밑을 손가락으로 훔친 교수는, 반가운 마음에 노툼에게 물었다.
“그러는 너도 많이 변했네. 어쩌다 숲을 떠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 갑옷은 또 뭐고?”
교수의 물음에, 시종일관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던 노툼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노툼이 원한 게 아니다.”
그야 그렇겠지. 딱 봐도 이 건물은 키가 3미터가 넘는 트롤이 살기에는 좁아 보이니까. 나한테도 좁은데 노툼한테는 갇혀있는 것 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런 장소에 원해서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툼은 그저, 약속한 말 백마리를 받고 싶었을 뿐이다.”
뜨끔!
노툼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한테도 빚이 있었지! 말 백마리! 분명 그 다음날 바로 가져다 준다고 해놓고 그냥 튀었는데!’
대화방을 살펴보니, 커뮤니티 사람들도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그때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간장게이바 : 설마 이쪽도 업보냐.
– 노루Drug해요 : 그러고 보니 처음 시작할 때 추수 시즌이었으니까 지금 가을이네. 첫 만남부터 이어진 사건이 돌고돌아 다시 찾아오다니. 이게 마법의 가을인가 뭔가 하는 그거 아니냐.
– takealook : 교수, 말 백 마리를 내놓지 않으면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무장트롤의 분노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툼의 입에서 ‘말’얘기가 나오자마자 말 100마리가 얼마인지 세어보고 있었다. 빚 갚는 데 쓰고 남은 돈이….
띠링-!
[소지금 : 367,210 sil]….? 잘못봤나?
띠링-!
[소지금 : 367,210 sil]어? 어어어어, 이거 왜이래! 36만 실링? 내 기억에는 180만 정도 벌어서 110만 정도 빚 갚는데 썼던 것 같은데! 왜 34만이나 비는 거지?
최근 게임하면서 상태창을 한번도 안 보긴 했다. 돈 쓸 일도 없고, 상태창이라는게 굳이 볼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별로 쓴 곳도 없는데 36만이나 돈이 나갈 리가 없는데? 마지막으로 지갑에서 돈 뺀게 빚 갚는다고 거래소에 송금을….
‘아! 송금! 거래소!’
– professor : 야야야야야!! 지금 게임->거래소 환전 수수료 얼마인지 아는사람?
– Jokass : 얼마 전에 30% 넘었음. 돔에서 최근에 크게 돈 쓸 일이 있었는지, 실링 수급한다고 언더돔 작업장 24시간 돌리기 시작했다고 들었음. 덕분에 수수료는 또 뻥튀기됐고.
‘망할! 그거였구나!’
저 수수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게드로이츠가 게임 만들 때 혹시나 매크로 작업장이 만들어질 것을 대비해서 인 게임에서 거래소 계정으로 넘어가는 실링의 양에 따라 환전 수수료가 늘어나게 만들어 인플레이션을 대비했다고 하는데, 세상이 이렇게 되면서 엄청난 양의 실링이 거래소와 인게임을 넘나들며 저렇게 수수료가 뻥튀기된 것이다. 게임에서 거래소에서 사용하기 위해 꺼내는 실링에는 수수료가 붙지만, 반대로 거래소 계정에서 인게임으로 투입하는 실링에는 수수료가 붙지 않는다고 하니, 누가 봐도 거래소에서 사용되는 실링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많이 생산하는 만큼 수수료로 허공에 증발하게 하는 거니까.
중요한 건, 그런 대기업의 횡포에 애매한 박교수씨가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
‘가장 싸구려인 늙고 병든 말만 해도 2만 5천실링 정도 하는데, 이걸 무슨 수로, 무슨 수로….!’
터업.
교수가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데, 노툼이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교수의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괜찮다 작은 큰 인간. 노툼, 인간들과 살면서 많이 배웠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있다.”
‘크흑!’
노툼, 너란 녀석은 정말….!
“잘못한 건 작은 큰 인간이 아니다. 그 ‘나쁜 놈’들이 문제지.”
“나쁜 놈들?”
“그래. 나쁜 놈들. 노툼, 기다려도 작은 큰 인간이 오지 않아서 돌 둥지에 직접 말을 받으러 가다가, 작은 큰 인간이 말하던 나쁜 놈들을 만났다. 말을 훔쳐 가는 나쁜놈들.”
후욱!
노툼은 그때를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지, 콧김을 세게 뿜으며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어….그, 그래?”
잠시 감동의 파도위를 떠다니던 교수는, 그런 노툼의 말에 오래전 노툼을 만났을때의 기억을 뒤졌다.
‘이상하다. 분명 노툼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는데, 그건 내가 지어낸 이야긴데? 어떻게 만났다는 거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말 도둑놈이라도 만난 건가?’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어디보자. 내가 노툼과 헤어지고 투란에 들어가서, 은빛 함성 용병조합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날 점심때쯤 징집되어 전장에 투입됐-
타악!
‘홀리 씨발 유레카!’
“뮤트! 뮤트를 만났구나!”
“뮤트? 음. 분명 철 인간들이 죽기 전에 그런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뮤트. 뮤트.”
노툼은 약속한 대로 하루를 기다렸고, 해가 떠도 기다리던 말이 찾아오지 않자 직접 말을 받기 위해 투란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이동하던 중에, 투란을 향해 진격하던 뮤트를 몇 마리 만난 것이다!
‘에데오르나를 빼면 기껏해야 8급 뮤트가 대부분인 습격이었으니까! 통제가 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놈들이니 몇 마리쯤 숲길로 들어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노툼은, 투란으로 오던 중 그런 본대에서 떨어진 놈들에게 습격당한거야!’
교수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기가 막힌 일이다. 노툼이 원래 있던 숲은 투란으로 오는 길목 한가운데에 있다. 만약 노툼이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뮤트의 본대와 마주쳐 꼼짝없이 죽어버렸겠지. 하지만 그놈의 말 때문에 노툼은 숲에서 나왔고,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Jokass : 특종이다 특종~ 히어로 유닛 이벤트 하나 추가요~
– takealook : 교수는 뭔 놈의 미확인 정보를 시간 단위로 하나씩 뽑아내냐. 그것도 굵직한 놈으로.
– 무카바 : 조건 자체는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노툼을 죽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자극만 하고 도망쳐서 일단 숲에서 나오게 하면 되니까.
– 간장게이바 : 그동안 노툼 끌고나온 사람은 꽤 많았잖아.
– 무카바 : 팔다리 힘줄 자르고 곡마단에 팔아넘긴 놈들이랑 ‘잘 살아야해~’ 하면서 눈물의 이별을 한 교수랑 같냐.
– 스피드 웨건 : 전부 닥쳐보셈. 노툼이 계속 말하고있음.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과거를 회상하던 노툼은, 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발로 걷는 놈은 약했는데 숫자가 많았다. 노툼은 현명하다. 다이어 울프는 숫자가 많아도 무리 지어 덤비면 위험하다. 도망가는 건 지혜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노툼, 배가 고파서 힘이 안났다.”
노툼은 말을 하다가 말고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빵만 잔뜩 있고 고기 종류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트롤은 잡식성이지만, 그래도 빵 보다는 고기가 입맛에 맞겠지.
“그렇게 도망가다가···. 나쁜 놈들이랑 싸우는 인간들을 만났다.”
어느새 구석에 있던 마법사들도, 죽일 듯 치고받던 대머리 사제와 수인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TV도 인터넷도 없는 세계에서, 이야기는 이곳의 유일한 오락거리다.
숲에서 나와 인간들과 함께 살게 된 말하는 트롤의 얘기는 누가 봐도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