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irst day of my life in living alone, a portal opened RAW novel - Chapter 272
272. 끝까지 (8)
“갑자기 왜 멈췄…….”
나는 지율이의 해맑은 표정을 보고는 말을 멈췄다.
경계할 것이 없다는 뜻.
애초에 나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였지만.
갓질라 등에 타고 있는데 무서울 게 있을 리 없었다.
갓질라는 바다 한가운데 섰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다 같이 갓질라의 목 뒤를 지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겼다.
“엇.”
바다 위에 방석만 한 나뭇잎 하나가 떠 있었다.
나뭇잎 위에는 인상을 찡그린 무룩이가 앉아서 우리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늦었냥!”
“무룩아아아아아!”
무룩이의 윽박에도 지율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집 잘 지키고 있었어?”
“보면 모르냥?”
무룩이는 갓질라에게로 시선을 옮기더니 말했다.
“이 녀석이냥?”
갓질라는 자신의 발톱보다도 한참 작은 무룩이를 보고는 콧김을 뿜어냈다.
“모두 내리라냥.”
무룩이의 말에 나와 지율이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 물었다.
“우리 내리라고?”
“갓질라 타고 있으면 안 돼?”
고성우는 우려심이 잔뜩 묻어나는 눈으로 무룩이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쟤가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그때 무룩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냥! 모두 내리라냥!”
“알았어, 내리면 되잖아. 왜 화를 내고 그러냐.”
나는 바람을 일으켜 지율이, 고성우와 함께 허공에 떠올랐다.
쩌저저저적.
고성우가 얼음으로 비탈길을 만들어 바다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게 했다.
“다들 뒤돌라냥.”
무룩이는 매번 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적이 없었다.
“보면 안 돼?”
지율이가 묻자 무룩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냥. 어차피 볼 수도 없겠지만냥.”
내가 물었다.
“그럼 보고 있어도 되는 거 아니야? 궁금해서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으면 방해되는 거야?”
“그렇다냥!”
하긴, 평소에 잘하던 것도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잘 안 될 수도 있기는 하다.
“무룩이가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자.”
그렇게 나와 지율이, 고성우는 마주하고 있는 무룩이와 갓질라를 두고 등을 돌렸다.
“꼭 이렇게 해야 되는 거야?”
고성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양이 말 잘 듣네.”
“그냥 고양이가 아니니까.”
“뭐가 되긴 돼? 쟤가 말하는 게 신기하긴 한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기다리면 알아.”
그사이 지율이가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나는 손을 뻗어 멈췄고, 지율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건 반칙이야.”
내가 씩 웃으며 말하자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순간 뒤에서 빛이 번쩍였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
뒤에서부터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다 같이 고개를 돌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거대했던 갓질라가 보이지 않았다.
줄어들었다.
곰곰이, 삐삐, 핫도그처럼 작아지지는 않았다.
공룡 인형 같은 모습이 된 갓질라는 코끼리 크기 정도였다.
워낙 거대해서 지금이 최대한 줄인 모습인 듯했다.
“까흐으으으으.”
독특한 울음소리.
“아하하하핫! 귀엽게 우네!”
지율이가 까르르 웃자 갓질라는 화답하듯 다시 목소리를 냈다.
“까흐으으으으.”
딱히 귀엽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공룡 외모에 걸맞은 울음소리였다.
“가자냥.”
잎사귀 위에 앉은 무룩이가 앞발을 뻗었다.
“어디를?”
내가 묻자 무룩이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알을 부라렸다.
“냐아아아아아아아?”
“아, 집에 가자고?”
“냐아아아아아아아!”
“갈 거야. 가야지.”
“배고프다냥!”
무룩이는 갓질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도냥.”
* * *
돈까스를 먹은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았는데, 나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긴,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은 자연식만 먹은 듯했다.
충분히 먹을 게 많았을 테고, 맛도 있었겠지만, 요리를 한 것을 먹는 것과는 또 다르니까.
“고오오오옴!”
“삐삐이!”
“멍멍멍멍!”
곰곰이, 삐삐, 핫도그는 커다란 갓질라에 관심을 쏟았다.
“까흐으으으으.”
의외로 갓질라는 다른 아이들을 경계하거나 하지 않았다. 곧장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었다.
“무룩아,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무룩이가 갓질라를 이긴 거야?”
지율이가 묻자 무룩이는 가슴을 펴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으스댔다.
“나를 이길 수 있는 녀석은 없다냥. 내가 최고다냥. 서열정리만 하면 되는 거다냥.”
그 서열정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무룩이에게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탁탁탁탁탁탁탁탁.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좋았다.
오늘 식사는 다양한 메뉴를 할 예정이었다.
작아져도 코끼리 덩치인 갓질라를 배부르게 먹이려면 상당한 음식이 필요할 테니까.
“이따 후식은 너한테 좀 부탁하자.”
내가 말하자 고성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맡겨둬.”
그렇게 열심히 요리하는데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싹이였다.
내가 요리를 시작할 때부터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더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뭐야, 왜 그래? 왜 그렇게 쳐다봐?”
싹이는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요리하는 것을 본다.”
“요리하는 거? 갑자기 왜?”
“나도 요리를 잘하고 싶다.”
내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데 싹이가 다시 말했다.
“아니, 잘하고 싶은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익힌 요리를 먹고 싶더구나.”
“나 없는 동안 힘들었구나?”
“놀랍게도… 그랬다.”
“놀라울 것까지는 없잖아.”
“사실 네가 없더라도 휴도에서 영양분을 섭취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에 놀랍다고 한 것이다. 너의 빈자리를 느낄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부터인가 음식들을 그냥 계속 먹으면 질리더구나.”
뭔가 기분이 좋은 듯하면서도 그냥 식모 취급인 것 같아서 애매하기도 했다.
“하하… 그래? 고맙… 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휴도가 너의 것인 것도 인지하고 있고, 우리들 모두 중요한 구성이라 생각한다.”
“구성?”
“그렇다. 우리가 곧 휴도 아니겠는가? 우리가 곧 휴도이고, 휴도가 곧 우리인 셈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래서 하는 말이다. 다시금 느꼈다. 전부 필수적이라고.”
그걸 알게 된 계기가 요리한 음식을 먹지 못해서라는 게 조금 애매했지만.
“아무튼 뭐… 그럼 잘 봐둬. 처음부터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은 금세 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이것저것 요리를 열심히 했고, 싹이는 내가 보물덩어리라도 되는 듯이 눈을 떼지 않았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요리를 하던 내가 묻자 싹이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전혀.”
“뭐어?”
“단 한 가지도 따라 할 수가 없다. 요리란 복잡하군.”
그나마 싹이가 이해하고 넘어간 것은 샐러드 정도가 전부였다.
그 샐러드마저도 이것저것을 뒤섞은 정도에 불과한 게 뻔했고.
“괜찮아.”
내가 말하자 싹이는 조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다는 말이냐?”
“응. 하나하나 배우면 되지. 쉬운 것부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이것저것 반찬도 만들었고, 밥도 먹겠지만, 양을 많이 하기 위해 준비하는 메뉴.
바로 라면이었다.
보글보글보글보글.
살면서 깐 라면 봉지가 몇 개일까?
몇 개나 먹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지율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밥보다 라면을 더 자주 먹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라면을 가끔 먹는다.
“다 됐다.”
그릇들을 하나씩 옮기고, 일부러 면을 다 익히지 않은 채 냄비를 옮겼다.
“그렇게만 하면 끝인 것이냐?”
싹이가 의구심을 가졌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응, 끝이야.”
그렇게 앞마당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일본에서 먹은 돈까스가 엄청나게 맛있긴 했지만, 당연히 느끼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느끼함과 고소함도 즐거운 맛이지만, 이후 칼칼한 라면을 먹으니 ‘크으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율이가 먹을 라면은 아예 작은 냄비에 따로 끓였다. 라면 스프는 아주 조금만 넣고, 사실상 국물을 새로 끓여냈다. 어쩌면 더 이상 라면이라 하기도 애매했다.
이러나저러나 맛있고 몸에 좋으면 됐지 뭐.
“어때?”
나의 물음에 국물 한 숟갈을 먹은 지율이가 방긋 웃어 보였다.
“끝내줘.”
“끝내줘?”
예상치 못한 말에 웃음이 터졌는데, 후루룩후루룩 라면을 먹던 고성우가 말했다.
“야, 잘 끓였다. 면도 꼬들꼬들하고.”
싹이도 라면을 맛보더니 의미심장한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식사 자리의 가장 큰 이유.
“까흐으으으으!”
갓질라가 웃으며 밥을 먹고 있었다.
“갓질라야! 라면도 먹어!”
지율이의 말에 갓질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갓질라 앞에는 냄비가 따로 있었는데, 라면만 20개를 끓였다.
갓질라는 어떻게 먹을지 잠시 고민하다가 모두의 손을 유심히 쳐다봤다.
“까흐으?”
갓질라는 젓가락 다섯 개를 움켜쥐어 보였다.
“아하하하핫! 그렇게 하는 거 아니고 이렇게!”
지율이가 젓가락질 시범을 보였다.
“까흐으으!”
갓질라는 서툴지만 젓가락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손이 너무 커서 젓가락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이걸 쓰거라.”
싹이가 드럼스틱 같은 젓가락을 만들어주자 갓질라가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손의 구조 때문에 젓가락을 쓰기는 어려워 보였다.
“차라리 포크를…….”
내가 말하는데 갓질라가 드럼스틱 같은 젓가락을 움켜쥐었다.
“까흐으으으!”
갓질라는 거꾸로 움켜쥐듯 젓가락을 잡고는 손아귀에서 굴리듯 조금씩 움직였다. 능숙한 젓가락질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나저나 젓가락질을 하며 라면을 먹는 갓질라라니.
정말로 귀한 장면이라 생각됐다.
“집이 최고야!”
지율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
고성우가 묻자 지율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리고 밥도 집밥이 최고야!”
휴도에 한바탕 웃음이 쏟아졌다.
* * *
“잘 가아아아아!”
지율이가 손을 흔들었고, 인형 모습의 갓질라가 바다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얼굴은 분명하게 웃고 있었다. 눈도 어찌나 착한지.
갓질라는 인형 모습으로 바다에서 살아갈 예정이었다. 지금 크기라면 배를 채우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잘 됐다.
아마 퀸하고도 왕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비록 시작은 싸움이었지만 인연도 있었고, 둘 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살아가니까.
“그럼 나중에 보자.”
고성우도 얼음으로 된 서핑보드에 오르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다녀와 삼촌!”
지율이가 건넨 인사에 고성우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 입가에 녹아내리는 듯한 미소가 번졌다.
“응.”
또 놀러 오라는 말이 아니라, 아예 다녀오라는 얘기가 고성우의 마음을 흔든 듯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다시 네모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을 때는 해가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끝까지 가봐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심지어 끝이라고 생각한 게 끝이 아닐 때도 있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을 거라 여기는데 끝일 수도 있으며, 끝이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으니까.
뭐든 끝까지 해봐야 하고, 끝까지 해야 안다.
갓질라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갓질라 같은 녀석이 진짜로 있을지도 몰랐지만.
“빠아.”
내 손을 꼭 잡은 지율이가 나를 올려다봤다.
“왜애?”
“우리 들어가서 동화책 읽자.”
“그럴까?”
“응!”
그때 싹이가 반대편에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새로운 것이 읽고 싶구나.”
지율이와 싹이는 동화책이 그렇게 재밌을까 싶다.
사실 내게는 비교적 시시하다.
어린애들이나 읽는 동화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때로는 몰랐던 내용이 흥미롭기도 하니까.
동화책이 비교적 시시한 이유는 현실 때문이다.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래, 재밌는 거 읽자.”
휴도의 하루는 오늘도 행복하게 흘러가고 있다.
귀촌 첫날 차원문이 생겼다 273화